원불교 무시선 수행의 방법에 대한 연구
–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의미와 경계에서의 활용을 중심으로 –
김진후
Ⅰ. 서론
현대사회는 물질이 급격하게 발달되면서 수많은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허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갈등과 파괴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인류의 공통적인 과제로 남게 되었다.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시대 변천을 살펴보면 물질의 지나친 파급력으로 인해서 사람의 인간성, 존엄성 등이 결여되는 동시에 이기주의적 사상으로 물들어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대에 1916년 4월 28일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교조 박중빈, 1981~1943년)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중심으로 욕심과 집착에 가득 차있는 현대 사회에 불교를 주체삼아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불법으로 모든 생령을 구제하고자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은혜로운 낙원세계 건설을 목표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물질에 끌려 다니는 인류의 정신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그 중에도 개인의 수행에 있어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방법으로 ‘무시선법’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욕심과 집착을 놓지 못해서 고통과 무기력, 그리고 인간성을 잃어가는 인류에게 분별과 주착이 없는 성품을 회복시켜서 정신을 주체삼아 물질을 자유롭게 선용하는 동시에 가정, 국가, 세계의 안락을 시작하게 하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이라 하는 것은 원래 분별과 주착이 없는 자기의 본래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회복해서 자유롭게 활용하게 방법을 의미한다. 현 시대는 명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면의 고요한 의식세계를 바라보는 것으로 잠시 평화를 찾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는 반면, 그 고요한 세계를 비춰보아서 사물과 현상을 당해 올바르게 활용하는 참 마음의 수행을 실천하는 사람은 귀한 것이 현실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살아있던 당시에도 깊은 산중에 들어가거나 토굴에 자리를 잡고 마음이 고요해지기까지 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했다. 하지만 많은 인류가 세상을 등지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앉아있기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설사 마음의 고요함을 찾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치열한 일상생활 중에는 고요함을 쉽게 잃게 된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 일상을 떠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무시선법을 수행의 궁극으로 두어서 모든 인류가 고요함을 떠나지 않은 채로 생활할 수 있는 성품 단련법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무시선법의 구체적인 방법에는 어려움이 많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시선법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성품을 닦을 수 있는 대승 수행법이다. 하지만 무형한 마음은 사물이나 학문과는 다르게 그 감각적인 표현들을 구체화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또한 활용에 있어서는 왜곡되거나 오염되기가 쉬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무시선법의 정의와 원리에 입각하여 정산종사(원불교 2대 종법사, 1900~1962년)가 밝힌 무시선의 구체적인 방법인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을 중심으로 『원불교교전』에 수록된 「정전」,「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대산종사법어」에 표현되어있는 각 마음 상태의 표현을 조사하였다. 그 자료를 토대로 마음을 진단하는 방법과 대치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조명함으로써 활용에 있어서 그 표준을 정확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고요함에 머물기만 하는 선이 아닌 고요함을 활용하는 선으로서 무시선법의 위상을 더욱 드러내고자 한다.
Ⅱ. 원불교 무시선의 이해
- 무시선의 개념과 원리
선이라는 단어는 범어의 디야나(Dhyana)를 음역한 것으로써 일반적으로는 좌선 또는 참선의 약어로써 사용된다. 이는 정좌를 하고 정신, 육신, 호흡을 고르게 조절하여 원적무별한 본연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정전」 ‘좌선법’에서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라고 정의하였는데, 무시선법에서는 선이라고 하는 것을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라고 말한다. 좌선과 무시선은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와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는 부분에 있어서 본래 청정한 성품의 고요함을 다루는 것으로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무시선은 마음의 자유를 얻는 공부라는 점에서 단순히 망념을 쉬는 것으로 정신을 수양하는 좁은 의미로서의 선을 벗어나, 경계를 당하여 그 고요함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범위에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원불교 교단 초기 『佛法硏究會規約』 「細則」에서는 선의 개념을 공부라는 단어로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무시선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다음과 같은 표현은 무시선법이 원불교의 궁극적 수행법임을 밝혀주고 있다. “처음에는 시간을 정하고 과정을 정하였으나, 공부하는 정도를 따라서 시간과 과정을 차차 없애고, 무시간단(無時間斷)으로 수양하는 방법과 연구하기를 주장함.” 이와 같이 공부가 깊어갈수록 수양·연구의 시간과 과정을 점점 국한하지 않는 것을 보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을 하는 무시선 공부가 당시에도 이미 궁극적인 수행의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무시선법의 핵심은 좌선뿐만 아니라 움직이고 생활하는 가운데 모든 연구와 취사까지도 선의 개념으로 포함시켜 누구나 장소와 시간을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삼학병진의 선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전」 ‘무시선법’에서 무시선 공부의 핵심 원리를 살펴보면, “사람이 만일 참다운 선을 닦고자 할진대 먼저 마땅히 진공으로 체로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무시선이 일원상 진리에 부합하는 선공부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무시선의 근본원리를 잘 드러낸 대목이다. 진공은 곧 일원의 체성임과 동시에 모든 불보살과 중생의 성품이다. 하늘이 텅 비어있기 때문에 달이 그 밝음을 나타낼 수 있는 것처럼 우주의 바탕과 인간의 성품 바탕이 진공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인간에 비유하면 고요하고 청정한 빈 마음바탕이 체가 되고 그 가운데 일어나는 희·로·애·락과 같은 마음 작용이 용이 된다. 진공으로 체를 삼고 그 고요함 안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매사에 모든 경계를 대상으로 대조하는 것이다. 무시선은 이와 같은 표준에 입각하여 “밖으로 천만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대목은 무시선이 동정 간에 끊임없이 공부하는 ‘동정일여의 공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좌선이 망념을 가라앉히고 고요한 마음을 양성하는 것이라면 무시선은 그 고요함을 일이 없을 때와 일이 있을 때를 막론하고 지키고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응하여도 주한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는 대목도 역시 무시선이 천만가지의 경계를 대하여 항상 청정하고 고요한 자성을 떠나지 않은 채로 생활을 하는 공부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시선은 동정일여의 선법임과 동시에 생활 속에서 공부하는 생활선이자 사상선(事上禪)이며 대중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토굴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수행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선을 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 법이 심히 어려운 것 같으나 닦는 법만 자상히 알고 보면 괭이를 든 농부도 선을 할 수 있고, 마치를 돈 공장도 선을 할 수 있으며, 주판을 든 점원도 선을 할 수 있고, 정사를 잡은 관리도 선을 할 수 있으며, 내왕하면서도 선을 할 수 있고, 집에서도 선을 할 수 있나니 어찌 구차히 처소를 택하며 동정을 말하리요.”라고 밝히고 있다. 종래의 선은 정시좌선(靜時坐禪)에 치중하여 일반 대중이 일을 진행하면서 선을 병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가운데 소태산 대종사는 좌선법을 두어 정신수양을 강조하되, 동과 정을 떠나지 않는 동정일여의 선이자,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생활선이며, 남녀노소와 선악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무시선법을 강조함으로써 혁신적인 선 공부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람이 만일 오래오래 선을 계속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 즉, 철주의 중심이 되고 석벽의 외면이 되어 부귀 영화도 능히 그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고 무기와 권세로도 능히 그 마음을 굽히지 못하며, 일체 법을 행하되 걸리고 막히는 바가 없고, 진세에 처하되 항상 백천 삼매를 얻을지라”라고 밝히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시선은 경계 속에서 분별과 주착을 내려놓는 선공부다. 그래서 꾸준히 반복하면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경계를 대하기 때문에 철주의 중심처럼 흔들림이 없고 밖으로 천만가지의 욕심 경계를 당하더라도 석벽의 외면과 같이 태산의 부동함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시선법은 천만경계 가운데 동하지 않는 마음을 닦는 대법이다. 즉 경계를 대하여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지각과정이 선이 되어야한다. 강한 업력에 끌려서 지각되는 분별의 감각이 아닌, 자성이 경계에 끌림이 없어서 부동한 그 상태로 마음을 내라는 것이 소태산 대종사가 말하는 무시선이다.
다음 장에서는 정산종사가 내수양 공부로 밝힌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소태산은 무시선의 강령을 “육근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라고 밝히고 있고, 무시선은 동정이 분리되지 않는 ‘동정간 불리자성공부’이다.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공부는 동과 정을 떠나지 않는 공부방법이다. 정산종사가 “일심이 동하면 정의가 되고, 잡념이 동하면 불의가 되나니라”라고 밝힌 만큼 정의 실현을 위해서도 일심 양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계를 만나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는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은 동과 정을 모두 아우르는 무시선 공부의 핵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무시선의 실천 방법 : 집심 · 관심 · 무심 · 능심의 의미
「정전」 ‘무시선법’에서는 무시선의 구체적인 단계를 분류하지는 않았으나 정산종사는 『수심정경』의 강령을 들며 내수양 공부로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마음 단계를 밝혔다. 이 네 가지 마음단계는 무시선법으로써 내면의 마음을 깊게 관조하고 단련하여 자유를 얻는 과정이다. 그 무시선 수행의 방법인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을 「정전」 ‘무시선법’ 입각하여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집심의 의미를 살펴보면 육근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을 알아차려서 잡아채는 마음상태이다. 무시선장에서는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고 힘써 행한 즉”이라고 밝히고 있다. 집심은 흘러가는 마음을 잡는 것으로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고삐를 놓지 않는 것과 같다. 경계 속에서도 자성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내는 것이 무시선의 최상위 단계라면 집심은 경계를 당하는 순간이나, 경계를 당하여 정신이 매몰되어 있는 가운데 정신을 차려서 경계에 빠져있음을 자각하고 벗어나는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느 환경을 만나 한 생각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흩어지거나, 끌리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의 마음은 경계를 인지하고 자각하는 주체와 외적대상인 객체가 하나 된 상태다. 그런 마음의 상태를 유념하여 자각하는 것으로, 욕심나는 경계에 매몰되지 않고 알아차려서 주(主)와 객(客)을 분리시키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공부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장려하는 마음 상태가 집심이다.
관심의 의미를 살펴보면 집심으로 알아차려진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보아서 제재하는 마음상태이다. 무시선장에서는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라고 밝히고 있다. 대중이라는 것은 울타리에서 돌아다니는 소를 지켜보는 것과 같다. 소를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뛰어 놀도록 내버려두되 그 소가 울타리 밖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다시 알아차려서(집심) 울타리 안에서 돌아다니도록 하는 것이다. 집심으로 주(主)와 객(客)을 분리시키고 난 이후에 그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며 지켜보는 마음이 관심이다. 즉 대중의 마음으로 “마음을 놓아 자적하면서 다만 마음 가는 것을 보아 그 망념만 제재하듯”하는 것이 관심공부다. 이 관심의 마음상태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할 점은 소가 울타리 밖을 벗어날 때다. 울타리 밖을 벗어난다는 것은 망념에 끌려가는 것, 경계에 끌려 매몰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산종사는 ‘망념만 제재하듯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잘 지켜보되 그냥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마음이 잘못된 곳으로 가면 다시 집심으로 유념하여 잡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관심 공부의 영역이다. 즉 관심은 경계에 이끌려 일어난 마음을 집심공부로 알아차리고 나서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놓치지 않고 대중을 잡아서 살피는 공부로써 망념을 잘 길들이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무심의 의미를 살펴보면 앞의 집심, 관심과는 다르게 잡아채는 공부가 아니라 놓는 공부다. “관심공부가 순숙하면 본다는 상도 놓아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는” 상태가 바로 무심이다. 무시선장에서는 이 무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마음이 동하지 아니한다 하여 즉시에 방심은 하지 말라. 이는 심력을 써서 동하지 아니한 것이요, 자연히 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 놓아도 동하지 아니하여야 길이 잘 든 것이니라.” 여기서 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이 환경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심은 무념의 마음으로써 번뇌 망상이나 사심잡념, 시비이해 등의 마음이 허공처럼 비어버린, 자성에 합한 단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심의 빈 마음상태에서는 경계를 당했을 때 동하게 되면 저절로 절도에 맞아지게 된다. 이를 정산종사는 ‘소 길들이는 이가 사람과 소가 둘 아닌 지경에 들어가 동과 정이 한결같이 하는 것이라, 한 마음이 청정하면 백천 외경이 다 청정하여 경계와 내가 사이가 없이 한가지 정토를 이루리라.’라고 밝히고 있다. 즉 무심은 경계를 당하여 일어난 마음을 관하는 가운데 관하는 상이 없이 자성에 합한 상태로 동과 정을 마주하는 마음상태를 의미한다.
능심의 의미를 살펴보면 무시선장에서 표현된 ‘마음의 자유’를 이루어낸 경지이다. 「정전」 ‘법위등급’에 나와 있는 대각여래위는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으로, 일체의 모든 경계가 걸림이 없고 모든 행위가 법이 되어 처리된다. 능심은 무시선의 최종 단계로 정산종사는 “집심과 관심과 무심을 번갈아하되, 처음 공부는 집심을 주로 하고 조금 익숙하면 관심을 주로 하고 좀 더 익숙하면 무심을 주로하며, 궁극에 가서는 능심에 이르러야 하나니라.”라고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무심과 능심에는 분명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이는 다음 장에서 교서의 표현을 살펴보며 자세하게 분류하고자 한다.
이상으로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결국 무시선의 방법은 ‘집심과 관심, 무심을 반복하여 공부가 익어가고 보면 어떠한 경계를 당할지라도 마음이 항상 고요한 자성을 떠나지 않고 수기응변하되 동과 정이 한결같고 자유자재하여 만능·만덕을 겸비한 능심의 경지에 합일’되기까지 꾸준하게 하는 공부이다.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어나면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가지고 흘러가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아서 챙김의 행위를 연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심에 이르기를 여러 번 반복하여 능심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무시선 공부로 여래를 이루는 것이다.
Ⅲ. 집심·관심·무심·능심의 의미에 대한 교서의 표현
이번 장에서 「정전」,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대산종사법어」에 표현되어 있는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상태를 조사하고 분류하고자 한다. 교서에는 마음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있는 반면에, 각 마음 상태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에 대한 표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분류 과정에서는 ‘직관적 마음상태’, ‘방법’, ‘결과’의 세 가지 표현으로 범주화하여 분류하였다. 또한 분류 결과에 대하여 원불교학 박사 1인과 불교학 박사 1인의 감수를 받음으로써 교서표현 분류에 대한 객관성을 높였다.
원불교 선수행의 핵심인 무시선법의 방법에는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네 가지 마음단계가 있다. 교서에는 이러한 마음의 상태가 여러 가지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중복이 되거나 자주 등장하는 등 좀 더 핵심이 되는 표현들이 존재한다. 이번 장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큰 범주 가운데 특히 ‘직관적 마음상태’와 ‘방법’을 중심으로,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을 표로 정리하였다. 이후, 정리된 표현들에 입각해서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마음의 활용 방법에 대해 제시할 것이다.
- 집심
집심이라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흘러가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는 마음상태를 의미한다. 「정전」,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대산종사법어」에서의 집심을 표현한 대표적인 표현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표 1> 집십에 대한 표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 정기훈련법 | 「정전」 |
마음을 붙잡는 | 염불의 방법 | |
챙기는 마음 | 수행품 1장 | 「대종경」 |
주의할 바이니라 | 실시품 4장 | |
챙김 | 법훈편 24장 | 「정산종사법어」 |
흐트러진 마음을 멈추고 | 적공편 17장 | 「대산종사법어」 |
항상 마음을 챙겨서 | 적공편 40장 |
위의 표에서는 집심을 ‘잊어버리지 않는 마음’, ‘챙기는 마음’, ‘주의하는 마음’, ‘멈추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경계를 당해 생겨난다. 「정전」 ‘일상수행의 요법’에서는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라고 밝히고 있다. 경계라고 하는 것은 나와 관계되는 모든 일체의 대상을 뜻한다. 여기서 ‘나’는 일체의 대상을 인식하는 주(主)가 되고 ‘나’ 이외에 모든 대상들은 객(客)이 된다. 아무것도 없이 공적한 마음상태에서 경계를 당하는 순간에 나와 대상, 즉 주와 객이 생겨나며 좋아하고 싫어하는 여러 가지 분별에 의해서 경계대상을 판단하게 된다. 그 판단은 욕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라는 주체가 객체에 매몰되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를 ‘정신을 빼앗기니’라고 표현하였다. 이렇게 정신을 빼앗긴 가운데 매몰되어 외적 경계에만 몰두해 있는 나를 인지하고 자각하는 단계가 바로 집심이다. 「정전」 ‘무시선법’에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고 힘써 행한즉”의 부분에서 욕심을 당해서 놓지 않아야할 ‘싸우는 정신’이 바로 집심이다. 위의 표에서 ‘마음을 붙잡는’다는 표현과 ‘흐트러진 마음을 멈추고’라는 표현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정전」 ‘정기훈련법’에 11가지의 훈련과목 중 ‘주의’라는 과목은 “사람의 육근을 동작할 때에 하기로 한 일과 안 하기로 한 일을 경우에 따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실행하는 마음을 이름이요”라고 정의되어 있다. 여기에서 주의는 어떠한 일을 정해 놓고 그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 마음 정도로 표현해 놓았다. 「정전」 ‘상시훈련법’과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에서는 주의하라는 표현을 모든 조목에서 활용하고 있다. ‘상시훈련법’ 조목인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그리고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 조목인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공부하는 중 어느 때든지 교당에 오고 보면 그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하는 데 주의할 것이요” 같은 조목들은 모두 하기로 정한 조목들이다. 이 조목들을 경계를 당해 만약 잊어버리고 있었다면 자각하지 못하고 흘러가고 있는 그 마음을 붙잡아 잊어버리지 않고 떠올려서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위의 표에서 ‘주의할 바이니라’라는 표현은 소태산 대종사가 이러한 잊어버리지 않는 마음, 마음을 붙잡는 행위 자체를 ‘주의’라는 이름으로 정하여 과목으로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집심의 마음을 ‘챙기는 마음’으로 표현하였다. ‘주의’가 과목으로 정하여 사용된 표현이라면 위의 표에서 ‘챙기는 마음’은 앞에서 언급한 싸우는 정신을 ‘집심’이라고 하지 않고 ‘챙김’이라고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챙기는 마음’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미묘하여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진다 하였나니, 챙기지 아니하고 어찌 그 마음을 닦을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나는 또한 이 챙기는 마음을 실현 시키기 위하여 상시 응용 주의 사항과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을 정하였고 그것을 조사하기 위하여 일기법을 두어 물 샐 틈 없이 그 수행 방법을 지도하였나니…」
위의 내용에서 ‘마음은 지극히 미묘하여 잡으면 있어지고’라는 것은 경계를 당하여 일어난 마음을 인식하고 자각하는 집심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그 뒤의 내용에서는 조목을 정해 대조함으로써 마음을 붙잡거나 또는 글로 마음을 조사하게 하는 것으로 ‘챙김’을 실현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챙김’이라는 표현은 집심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공부하는 사람이 스스로 목적을 떠올려서 마음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한다는 관점에서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리하면, 집심은 수많은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마음을 붙잡는 행위로서 모든 일을 당할 때마다 주의하여 챙기는 순간순간의 아주 짧은 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 무심, 능심과는 다르게 ‘상태’로 표현되기보다는 ‘챙김’, ‘붙잡아’ 등 찰나의 마음을 잡아채는 행위로 표현한 것이다.
- 관심
관심은 집심으로 마음을 붙잡고 챙겨서 일체 경계와 주체를 분리시키고 그 분리된 마음상태를 대중 잡아서 관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관심을 표현한 대표적인 표현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표 2> 관심에 대한 표현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 좌선의 방법 | 「정전」 |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 | 무시선법 | |
세밀히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잘 살피라는 것이라 | 수행품 1장 | 「대종경」 |
일 없을 때에는 그 잡념만 제거하고 일 있을 때에는 그 불의만 제거할 따름이라 | 수행품 53장 | |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조사하여 | 국운편 7장 | 「정산종사법어」 |
대중 있는 마음 | 경의편 22장 | |
찰나간이라도 망념이 동하지 않게 하는 것 | 경의편 66장 | |
내 마음을 빈틈없이 살펴야 하느니라 | 교리편 15장 | 「대산종사법어」 |
위의 표에서는 관심을 ‘대중 잡는 마음’, ‘살피는 마음’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관심은 경계 상황을 대면했을 때 마음을 붙잡고 난 이후에 마음이 어디로 끌려가는가 대중을 잘 잡아서 길들이는 단계이다. 관심은 집심공부가 어느 정도 순숙된 후에 하는 공부로 마음을 강제로 억누르거나 외면하지 않고 경계 속에 놓아 맡겨보는 공부이다. 무시선법에서는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건수가 차차 늘어가는 거동이 있은즉 시시로 평소에 심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계에 놓아 맡겨 보되”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건수가 늘어간다는 것은 집심 공부가 순숙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계에 놓아 맡긴다는 것이 바로 관심공부의 방법이다. 집심의 단계에서는 ‘챙김’으로써 마음을 붙잡는 것에서 그쳤다면 관심은 그 붙잡은 마음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 마음단계이다. 위의 표를 살펴보면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조사하여’, ‘세밀히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잘 살피라는 것이라’, ‘내 마음을 빈틈없이 살펴야 하느니라’라는 표현들이 관심의 마음상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대종경」 ‘교단품’에서는 “무엇으로든지 전생과 차생에 익힌바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질이 다르고 보면, 나의 아는 바로써 저 사람의 아는 바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며, 심하면 미운 마음까지 내게 되나니”하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어떤 경계를 만나서 욕심이 일어나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질에 따라 경계를 왜곡하거나 회피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이다. 조사하고 살핀다는 표현은 경계를 따라 일어난 마음을 왜곡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지켜보는 것을 의미한다. 「정전」 ‘좌선의 방법’에서도 이 살피는 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라는 문장 중에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이라는 표현이 바로 살피는 마음이다. 마음은 강제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망념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바라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느끼고 바라보고만 있는 것만이 관심의 마음은 아니다. 앞의 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산종사는 관심공부를 ‘마음 가는 것을 보아 그 망념만 제재하듯이’라고 표현하였다. 위의 표에서는 ‘일 없을 때에는 그 잡념만 제거하고 일 있을 때에는 그 불의만 제거할 따름이라’라는 표현과 ‘찰나간이라도 망념이 동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무시선법에서는 “마음이 동하지 아니한다 하여 즉시에 방심은 하지 말라. 이는 심력을 써서 동하지 아니한 것이요, 자연히 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라고 표현하였는데 여기서 심력을 써서 동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망념을 제재하여 동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즉 관심은 살피는 동시에 망념이 동하지 않도록 제거하여 경계에 매몰되어 끌려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관심 단계에 속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중’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위의 표를 보면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하는 표현이 있다. 대중 잡는다는 것은 어림잡아서 헤아려 짐작하거나 표준을 잡는다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끌리고 안 끌리는 데에 이 대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단전에 기운이 주해 있는 것을 대중 잡으라는 표현도 사용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관심의 마음단계에서의 ‘대중’이라는 것은 마음을 세밀히 살피되 망념은 제재하는 것을 표준으로 하고, 경계에 끌리면 제재하고 끌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살피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을 ‘대중’ 잡는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전에 기운 주하는 것을 표준에 두고 기운이 주해있지 않으면 챙겨서 주하고, 주해 있으면 계속해서 주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리하면, 관심은 일어난 마음을 세밀히 살펴보는 동시에 망념에 동하지 않게 하는 표준을 가지고, 마음이 망념에 끌려갈 때에는 제재하고, 끌려가지 않을 때에는 계속해서 관하고 있는 공부다. 즉,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서 마음을 길들이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 무심
무심은 관심공부가 순숙되면 이르는 고요한 마음상태이다. 앞 장에서 언급하였듯이 집심, 관심이 마음을 잡는 단계라면 무심은 마음이 놓아진 단계이다. 집심과 관심에서는 존재했던 주(主)와 객(客)이 무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서에 밝혀져 있는 무심에 대한 문장들은 그 마음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무심을 표현한 대표적인 표현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표 3> 무심에 대한 표현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 | 정신 수양의 요지 | 「정전」 |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 | 무시선법 | |
자타의 관념을 초월하고 | 서품 9장 | 「대종경」 |
그 일 그 일에 일심 | 수행품 2장 | |
부동심 | 수행품 16장 | |
그 마음이 허공 같이 되어야 하나니라 | 원리편 23장 | 「정산종사법어」 |
동할 때에도 착이 없이 동하고, 정할 때에도 착이 없이 정하여 | 경의편 25장 | |
상대가 끊어진 심경 | 교리편 11장 | 「대산종사법어」 |
허공같이 흔적이 없게 | 법위편 24장 | |
걸림도 없고 걸리지 않음도 없어야 이것이 곧 참으로 걸림이 없는 것 | 거래편 33장 |
무심은 집심, 관심과는 다른 종류의 마음으로, 관심공부가 순숙되고 나면 이루어지는 마음이다. 세밀하게 마음을 살피며 망념에 동하는 것만 제재하다보면 그 살피는 상도 놓아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는 마음 상태에 이르는 것이 바로 무심이다. 이 무심은 잡아서 붙들고 있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직관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중에도 대표적인 표현을 선택하자면 바로 ‘허공’이다. 위의 표에서는 무심을 ‘그 마음이 허공 같이 되어야 하나니라’, ‘허공같이 흔적이 없게’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무시선법에서는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 밖으로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라.”라고 밝히고 있다. 근본 바탕인 체를 진공으로 삼는다는 것은 경계를 대할 때마다 허공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태산과 같이 부동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정산종사는 “일원상의 원리는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말로써 가히 이르지 못하며 사량으로써 가히 계교하지 못하며 명상으로써 가히 형용하지 못할지라 이는 곧 일원의 진공체요”라고 밝히며 텅 비어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진공은 언어와 명상이 끊어진 ‘언어도단의 입정처’이며, 이 진공을 체로 삼아서 마음이 작용될 때에 비로소 허공과 같은 마음상태에 도달이 가능하다. 이 허공과 같은 마음인 무심은 걸림이 없다. 위의 표에서는 ‘걸림도 없고 걸리지 않음도 없어야 이것이 곧 참으로 걸림이 없는 것’, ‘자타의 관념을 초월하고’, ‘상대가 끊어진 심경’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허공과 같은 마음은 곧 나와 너, 선악과 귀천, 대와 소, 생과 사가 모두 끊어진 자리이며, 이것에 걸림이 없는 한가하고 넉넉한 심경을 의미한다. 상대가 끊어진 마음단계인 무심은 그 마음상태가 백천 외경 또한 청정하여 경계와 내가 사이가 없는 한 가지 정토를 이룬다. 무시선법에서 찾아보면 ‘힘쓰지 않고 자연히 동하지 않는’ 바로 이 상태가 무심의 마음이다.
또한 ‘그 일 그 일에 일심’도 무심의 마음 상태로 분류하였다. 무시선법에서는 ‘육근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라는 것은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망념을 집심으로 알아차리고, 관심으로 세밀히 살펴서 무심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무심즉 일심(無心卽 一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산종사는 “일심이 동하면 정의가 되고, 잡념이 동하면 불의가 되나니라.”하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무심의 마음상태로 경계를 응하여도 주한바 없이 동하면 정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시선법에서는 “자연히 동하지 아니하여야 길이 잘 든 것이니라.”하고 밝히는데 이 마음이 바로 상없는 마음의 무심을 의미한다.
정리하면, 무심의 마음은 집심에 이어서 관심의 단계를 지나, 경계를 마주쳐도 허공처럼 텅 비어서 상대가 끊어진 마음이며, 자타의 구분이 없어서 나와 너, 선악과 귀천, 대와 소가 하나 된 마음이며, 청정한 일심의 상태이다. 분별이 자성을 여의지 아니하여 육근을 작용하는 바가 다 공적영지의 자성에 부합하는 마음이 바로 무심의 마음이다.
- 능심
능심은 무시선의 궁극처다. 이 단계는 마음의 상태만을 보자면 무심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무심과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능심을 표현한 대표적인 표현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표 4> 능심에 대한 표현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 무시선법 | 「정전」 |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 | 법위등급 | |
모든 경계를 대하여 마음을 쓸 때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에 끌리지 아니하고 | 교의품 5장 | 「대종경」 |
언제든지 하는 그 일에 마음이 편안하고 온전해야 된다 | 수행품 17장 | |
능히 천만 경계를 응용하는 사람 | 수행품 20장 | |
부처는 희로애락을 노복같이 부려쓰므로 | 불지품 8장 | |
매사에 상이 없고 원근이 없으며 증애가 끊어지면 불보살이니라. | 원리편 23장 | 「정산종사법어」 |
빈부 귀천 고락간에 도심이 일관하여야 큰 도인이니라. | 법훈편 73장 | |
일체 경계에 부동심이 되고 | 법위편 36장 | 「대산종사법어」 |
어떠한 순역 경계에서도 상을 내지 않는 것 | 교훈편 13장 | |
평소에 거두고 내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공부 | 거래편 17장 |
위의 표와 같이 능심은 마음상태를 보면 무심과 다르지 않다. 「정산종사법어」에서는 『수심정경』의 강령 중 내수양에 대하여 집심, 관심, 무심까지만 밝히고 능심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정산종사법어」 권도편 48장에서는 “처음 공부는 집심을 주로 하고 조금 익숙하면 관심을 주로 하고 좀 더 익숙하면 무심을 주로 하며, 궁극에 가서는 능심에 이르러야 하나니라.”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무심과 능심의 큰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위의 무심과 능심의 표를 비교하여 보면 대체로 무심은 ‘허공’, ‘걸림 없는 마음’, ‘일심’ 등의 의미로써 걸림이 없고 주(主)와 객(客)이 없는 ‘하나의 마음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표현은 능심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상이 없다’는 표현과 ‘부동심이 되고’라는 표현은 무심에 분류해도 무관한 표현들이다. 하지만 무심과 능심의 표현에는 ‘모든 경계’에 무심이 유지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서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위의 표에 ‘천만 경계를 응용하는 사람’, ‘빈부 귀천 고락간에 도심이 일관하여야 큰 도인이니라.’하는 표현을 참조하면, 능심은 모든 경계와 고락간에 일정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떠한 순역 경계에서도 상을 내지 않는 것’과 ‘일체 경계에 부동심이 되고’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경계를 당하든지 항상, 일관되게 무심의 마음이 유지되는 것이 바로 능심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능심에 이르러야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습관과 업력을 꾸준히 고쳐나가는 것으로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탈바꿈되는 점수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정산종사법어」 경의편 47장에서 “돈오 점수는 지혜의 힘으로써 이미 견성은 하였으나 아직도 다생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법력에 의하여 점점 옛 습관을 고쳐가는 것이니 이는 과거 세상에 지혜의 단련은 이미 많으나 수행의 실력이 적은 이의 공부하는 길이요”라고 밝히고 있다. 무심에 이른 도인이라도 욕심나는 경계를 만나면 전일에 쌓아왔던 업력과 습관에 강하게 끌려간다. 그럴 때마다 다시 집심과 관심으로 무심에 돌아오는 공부를 반복하여 모든 경계에 무심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 수행하여 이르는 경지가 곧 능심이다. 능심은 ‘법위등급’에 대각여래위의 모습과 같이 수행과 지혜가 모두 골라 맞는 경지로써 일체 경계를 당하여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않는 무심의 마음을 잃지 않고 ‘천만 방편으로 수기응변하여 교화하되 대의에 어긋남이 없고,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의 모습으로 만능 만덕을 겸비한 경지이다.
정리하면, 능심은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않아서 천만 경계를 당해도 걸림이 없는 마음이다. 능심과 무심은 마음 상태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으나 돈오 점수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차이점이 분명하다. 아무리 무심에 이른 도인이라 할지라도 전에 있던 습관이 강하면 경계를 당하면 매몰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집심과 관심, 무심을 반복함으로써 궁극에 이르러서는 무심의 마음을 모든 경계에 항상 유지할 수 있는 능심에 이르러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Ⅳ. 무시선법의 활용과 방법
- 집심 공부 : 경계의 인식과 멈춤
「정전」 ‘무시선법’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선(禪)이라 함은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기 위한 방법이다. 본래 마음은 고요하고 깨끗하다. 하지만 ‘경계’라는 대상을 만남으로 인해서 분별과 주착이 생기게 된다. ‘일상 수행의 요법’에서는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진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심지는 본래 청정하여 분별도 주착도 없는 각자의 성품을 이른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경계’이다. 경계는 ‘대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육근 기관으로 인지한 모든 대상을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외적으로 부딪히는 모든 사람과 사물, 현상들이 모두 경계가 된다. 하지만 무시선법으로 공부해야 하는 경계는 외적으로 분별되는 것만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무시선법에 나와 있는 ‘욕심나는 경계’라는 표현과 ‘고락에 대한 법문’에 “대범, 사람이 세상에 나면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두 가지가 있으니”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시선법으로 공부하는 ‘경계’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심리작용을 뜻한다. 즉,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심나는 마음에 따라서 외적으로 부딪히는 모든 대상을 순경, 역경, 공경, 난경 등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며, 인식과 동시에 그 대상에 집착함으로 인해서 요란함과 어리석음, 그름 등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무시선법에서 수행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인식 차원의 경계이다. 사람마다 욕심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외적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심리도 각자 다르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나는 경계를 당했을 때’가 무시선 공부의 시작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은 본래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이 청정하나 경계가 일어나 내 마음에 외재(外在)하며 마음을 유혹시키고 굴절시켜서 주체로서 작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 상태에서는 일체의 모든 대상을 왜곡하여 판단하게 된다. 이때에 바로 집심, 마음을 붙잡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대종경」 ‘수행품’에서는 “사람마다 각각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있는데 범부는 그 하고 싶은 일을 당하면 거기에 끌리어 온전하고 참된 정신을 잃어버리고, 그 하기 싫은 일을 당하면 거기에 끌리어 인생의 본분을 잃어 버려서 정당한 공도를 밟지 못하고 번민과 고통을 스스로 취하나니”하고 밝히고 있다. 순경, 역경에 매몰되어 있으면 이와 같이 참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인생의 본분을 잃어버려서 결국 고통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마음이 경계에 빠져있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멈추는 행위가 집심이다. 처음 공부를 할 때에는 마음을 대중 잡아서 여유롭게 관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마음을 멈추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무시선 공부를 시작할 때에 중요한 점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즉 ‘주의 공부’를 무시로 해야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주의하라’, ‘주의심’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챙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집심공부를 통해 무시로 대조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심 공부의 방법으로 크게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유념’, 둘째는 ‘피경’, 셋째는 염불과 좌선이다.
먼저 첫 번째로 제시할 방법은 ‘유념’이다. 욕심나는 경계를 당하고 나서 끌려가는 그 마음을 억제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에 마음을 모아 정성스럽게 해내다 보면 마음에 힘이 쌓이게 된다. 하지만 대체로 욕심나는 경계라는 것은 마음에 힘이 없이 당하는 초심자의 경우에는 이겨내기가 힘들며, 대면하면서 일상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먼저 ‘주의하는 공부’를 챙김의 매개체로 활용해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주의’에 대해 “육근을 동작할 때에 하기로 한 일과 안 하기로 한 일을 경우에 따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실행하는 마음을 이름이요”라고 밝혔다. 마음을 붙잡는 공부에는 유념공부와 무념공부가 있다. 상시일기로 분류되어 있는 유념과 무념공부는 대승 수행법인 무시선법을 체 잡도록 하는 공부방법이다. 욕심나는 경계를 대상으로 정하고 취사하는 주의심이 있고 없는 것으로 유념과 무념의 번수를 기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경계에 휩쓸려 흘러가고 있는 마음을 챙기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정산종사는 유념과 무념의 개념을 “착심 없는 곳에 신령하게 알고 바르게 행함이 유념이니 이는 생각 없는 가운데 대중 있는 마음이요, 착심 있는 곳에 미혹되어 망녕되이 행함이 무념이니 이는 생각 있는 가운데 대중이 없는 마음이니라.”라고 하였다. 마음을 알아차려 챙겨서 바르게 행함을 유념이라고 할 수 있고, 욕심에 미혹되어서 행하는 것을 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유념과 무념공부로 욕심이 강력하게 작용되는 경계에서 알아차리는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
둘째로는 피경의 방법이 있다. 피경이라는 것은 경계를 알아차리고 나서 부딪히지 않고 피하거나 끊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피경은 모든 경계를 당해서 항상 피하기만 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정정(定靜)을 얻는 방법으로 내정정과 외정정을 강조한다. 그 중에 외정정은 “동하는 경계를 당할 때에 반드시 대의(大義)를 세우고 취사를 먼저하여 망녕되고 번거한 일을 짓지 아니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마음의 힘이 부족할 때에는 일상의 삶에서 평온함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경’을 하여 밖으로는 욕심나는 경계의 자극을 줄임과 동시에 안으로는 수행의 실력을 쌓은 다음에 다시 경계를 접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반대로 욕심나는 경계를 당할 때에 마음의 힘이 견고히 있다면 피경하지 않고 대중을 잡아 관할 수 있는 관심공부의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염불과 좌선이다. 이 방법은 삼학 가운데 정신수양 과목으로, 앞의 피경이 외정정의 방법이라면 염불과 좌선은 내정정의 방법이 된다. 내정정은 “일이 없을 때에 염불과 좌선도 하며 기타 무슨 방법으로든지 일어나는 번뇌를 잠재우는 것으로 온전한 근본 정신을 양성하는 것”이다. 일이 없을 때에 마음의 힘을 키우는 방법으로서, 경계를 당하여 이를 이겨낼 마음의 힘이 부족한 사람뿐 아니라 모든 수행자가 온전한 정신을 양성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다.
정리하면, 집심공부는 내면의 심리작용을 일으키는 경계를 대상으로 시작한다. 조목으로 몇 가지 표준을 정하고 나서 욕심나는 경계를 당하여 유념과 무념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동하는 가운데 마음의 힘이 부족하면 대의를 세우고 그 경계를 피하거나 끊어내는 피경 공부를 하고, 일이 없을 때에는 꾸준한 염불과 좌선으로 온전한 정신을 양성해야 한다.
- 관심 공부와 무심의 취사
정산종사는 집심, 관심, 무심에 대한 공부 순서에 대하여 “처음 공부는 집심을 주로 하고, 조금 익숙하면 관심을 주로 하고 좀 더 익숙하면 무심을 주로 하며”라고 하였다. 집심이 마음을 붙잡는 공부라면 관심은 바라보는 공부이다. 경계를 당하여 어느 정도 마음의 힘이 생겨서 그 경계에 매몰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관심의 마음이다. 관심 공부의 핵심은 마음을 열어놓는다는 것이다. 욕심나는 경계를 만나 집심 공부가 잘 되고 보면 이제 마음을 제재하거나 경계를 피하거나 억제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자연스럽게 두어보는 것이다. 마치 소를 길들이는 사람이 잡고 있던 그 고삐를 놓아버리고 소가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가만히 보는 것과 같다. 더불어 망념만 제재하여 경계에 매몰되지 않도록 챙기는 것을 함께 병행한다. 관심 단계에서는 육신과 정신이 분리되어 ‘보는 나’와 ‘하는 나’의 존재가 지속된다. 다시 말해 이렇게 분리가 된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의 심리현상을 잘 파악하며 지켜볼 수 있고 또한 잘못 판단하거나 망념에 빠지게 될 때에는 제재할 수 있는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관심공부 단계에서는 대체로 그 주체를 통하여 경계를 마주했을 때의 마음을 바라보며 공부의 대상으로 삼는다.
「정산종사법어」‘경의편’ 65장에 “마음을 놓아 자적하면서 다만 마음 가는 것을 보아 그 망념만 제재하기를”에 입각하여 관심공부에서 주의해야할 두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대중의 표준이다. 무시선법에는 “끌리고 안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라는 표현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심 공부로 마음을 바라보는 중에는 울타리와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경계를 당하여 잘 지켜보고 있는지, 혹은 매몰되었는지 스스로 대조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만일 기준이 없이 살피고만 있다면 자신의 마음의 힘이 부족한 지점까지 이르게 될 때에는 자칫하면 일상의 습관에 흘러버려서 관심공부가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이 기준은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을 잡는 것이 가장 좋다. 소태산 대종사는 애착심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애착이라 하는 것은 사랑에 끌리어 서로 멀리 떠나지를 못한다든지 갈려 있을 때에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자신 수도나 공사에 지장이 있게 됨을 이름이니”라고 답한다. 여기에 입각하여 보면 끌리고 안 끌리는 기준을 행동으로 잡을 수 있다. 관심으로 마음을 지켜보되 그 욕심나는 경계를 만나서 자유로운 마음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해야 할 일에 지장을 주거나 그르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을 잘 잡아가며 마음을 지켜봐야한다.
두 번째는 ‘여유로운 마음’이다. 관심 공부는 욕심 경계를 당해서 일어난 마음을 억제하거나 싫어해서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공부가 아니다. 여유롭게 지켜보는 공부이다. 좌선의 방법에도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고 밝혀져 있다. 관심은 경계를 대하여 일어난 요란하고 어리석고 그른 마음을 지켜보는 공부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욕심을 따라 일어난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그 마음을 나쁜 마음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욕심 경계를 당하여 나쁜 마음이 일어난 것만으로도 퇴굴심이 나거나 자책하는 수가 더러 있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초심자가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퇴굴심이 나면 오히려 수도의 생활과 멀어지는 수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정산종사가 “수도하는 가운데 혹 퇴굴하는 마음을 다시 잡아서 새로운 마음을 분발하는 날이 또한 마음의 생일이며”라고 밝힌 만큼 관심의 단계에서는 욕심을 당하여 일어나는 마음을 스스로 수용하고 인정하고 분발심으로 돌려내는 동시에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정산 종사는 관심의 공부가 순숙되고 나면 무심을 주로 공부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무심은 “본다는 상도 놓아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사람과 소가 둘 아닌 지경에 들어가 동과 정이 한결같이 하는 것”을 말한다. 무심의 마음에 이르러야 그 일 그 일에 일심이 가능하다. 소태산 대종사는 “공부하는 사람이 처지 처지를 따라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일심 공부요”라고 밝히고 있다. 앞의 법문을 보면 일심 공부의 과정과 무시선 공부의 과정이 ‘끌리는 대중을 잡아보이는 공부’라는 관점에서 같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일심과 무심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심은 일마다 집중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처하여 마음을 붙잡아 챙기고, 그 챙긴 마음을 바라보는 과정을 지나서 본다는 상도 없이 허공처럼 마음이 비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일심이 되는 것이다. 또한 “공부하는 사람이 성품을 기르되 모름지기 자연스럽게 기르고 활발하게 운전하여 다만 육근이 일 없을 때에는 그 잡념만 제거하고 일 있을 때에는 그 불의만 제거할 따름이라, 어찌 일심 가운데 다시 일심에 집착하리요.”라는 법문을 보면 일 없을 때에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 있을 때에는 그 불의만 제거하는 것이 일심 공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무시선법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육근(六根)이 무사(無事)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는 무시선의 강령을 참고하면 무시선 공부는 일심을 양성하는 공부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무심의 마음은 일심의 마음인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한 제자에게 “네가 그때 약을 달이고 바느질을 하게 되었으면 그 두 가지 일이 그 때의 네 책임이니 성심성의를 다하여 그 책임을 잘 지키는 것이 완전한 일심이요 참다운 공부니, 그 한 가지에만 정신이 뽑혀서 실수가 있었다면 그것은 두렷한 일심이 아니라 조각의 마음이며 부주의한 일이라” 밝힌 바도 역시 참다운 일심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정리하면 무심의 마음은 집심과 관심의 단계를 지나 텅 비어버린 허공과 같은 마음임과 동시에 집중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닌 ‘비움’으로 밝아지는 단계이며, 취사에 있어서는 그 일 그 일에 일심으로 처리하며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는 동시에 은혜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무심의 마음 상태는 ‘온전함’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상시훈련법에서는 “응용하는 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라고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서 온전함이라는 것이 바로 일심의 마음이다. 온전하다는 것을 때로는 ‘정의’ 혹은 ‘바른 생각’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정신수양의 측면에서 온전함은 허공 같은 마음으로 경계를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빈 마음을 뜻한다. 즉 온전함은 일심이며 무심이다. 수행자가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무시선 공부의 과정인 집심, 관심, 무심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이 공부하였을 때 비로소 참다운 온전함이 가능하며, 참다운 일심을 이룰 수 있고, 동정일여의 무시선 공부를 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두 가지의 경계가 아닌 천만가지의 경계를 당하여 무시선의 방법에 입각하여 공부하면 결국 능심에 이르러서 백천사마를 자유자재 할 수 있는 여래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Ⅴ. 결론
본 논문에서는 무시선의 개념과 원리, 방법을 정리하고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개념에 바탕하여 「정전」,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대산종사법어」에 입각하여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표현을 정리해 보았다. 더 나아가, 경계에서의 집시, 관심, 무심, 능심의 활용에 대하여 제시해 보았다.
집심의 마음 상태는 ‘마음을 붙잡는’, ‘챙김’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집심 단계의 공부인은 경계를 당하면 유념과 무념으로 마음을 챙겨서 붙잡는 공부를 하며, 마음의 힘이 부족할 때에는 피경 공부를 해야 한다. 관심의 마음 상태는 ‘살피는 마음’, ‘대중 잡는 마음’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관심 단계의 공부인은 먼저 대중의 마음을 잘 잡아놓아야 한다. 망념을 제재하겠다는 표준 지점을 정해 놓은 후에, 일어난 마음을 없애지 않고 살피면서 망념이 일어나면 그 망념을 또 다시 살피는 마음으로 제재해야한다. 집심공부와 관심공부가 순숙되고 나면 비로소 무심에 이르게 된다. 무심은 텅 비어서 고요한 마음을 의미한다. 무심 단계의 공부인은 고요한 마음을 항상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욕심나는 큰 경계를 만나면 매몰될 수 있기에 집심, 관심의 마음을 다시 챙겨서 무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렇게 반복하여 천만경계에 걸림이 없는 능심의 경지에 이르러서 그 마음을 활용하기까지 공부하는 것이 바로 무시선법이다.
고락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경계마다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끌려서 사는 중생들을 위해서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와 함께 대각으로 얻은 깨달음의 종지인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과 수행의 표준으로 삼도록 하였다. 또한 일원상의 진리에 부합하는 수행법으로 무시선 수행을 제시하였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서 선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고, 더 나아가 그 고요함을 인간사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일 가운데서도 온전한 일심의 마음을 유지하는 동시에 깨어있는 삶을 살게 해준다. 동과 정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선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무시선법은 홀로 수행하는 공부인, 그리고 직장에서 바쁘게 일을 하는 일반 대중에게도 꼭 필요한 선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시선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대승수행이라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아직도 많은 정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무시선 수행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그 단계에서 대처해야할 주의사항과 문제점들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논자는 정산종사가 밝힌 집심, 관심, 무심, 능심 공부가 무시선의 구체적 방법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마음이 무시선 수행, 그리고 삼학병진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 지에 대하여 구체화하는 작업은 아직 많지 않다. 무시선이 수행문의 궁극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그 방법과 경지에 맞는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본 논문에서는 깨달음의 경지에 따른 마음 상태는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정리를 했기 때문에 수행의 깊이에 따른 집심, 관심, 무심, 능심의 차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앞으로의 연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무시선법은 세상에서 멀게 느껴지는 진리를 인간의 삶에 끌어내릴 수 있는 선법이며, 일상에서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대승선이자 생활선이다. 일원상 수행과 좌선법, 그리고 삼학 공부와 함께 무시선 수행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양성하고, 실행해 나갈 때에 우리의 삶은 더 윤택해지고 자유로워 질 것이다.
참고문헌
- 원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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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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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도훈, 『무시선』, 씨아이알, 2015.
- 논문류
김대현, 『논문집』 14집, 「보조선과 원불교 선의 비교 연구」, 원광대학교, 1979.
한내창, 「원불교 ‘마음공부’ 정의(定義)의 한 시도」,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29집, 원불교사상연구원·한국원불교학회, 2005.
김제영, 「원불교 무시선에 대한 고찰」, 圓佛敎學硏究, 1994.
서경전, 『敎典槪論』, 이리:圓光大學校出版局, 1991.
최문채, 「정산종사의 수행론에서 본 사단심(四段心)」,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2019.
박희종, 「‘무시선법’ 중 경계에 대한 인식과 수행의 단계 고찰」,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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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논문집』 14집, 「보조선과 원불교 선의 비교 연구」, 원광대학교, 1979.
- 기타류
『불교대사전』, 홍법원, 1998, 91쪽.
부 록
「정전」
- 집심
마음상태 | 정기훈련법 | – 주의는 사람의 육근을 동작할 때에 하기로 한 일과 안 하기로 한 일을 경우에 따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실행하는 마음 |
염불의 방법 | – 염불 귀절을 따라 그 일념을 ‘챙겨서’
– 마음을 붙잡는 |
|
무시선법 | –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 |
상시 일기법 | –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에 취사하는 주의심 | |
수신의 요법 | – 취사하는 주의심 | |
제가의 요법 | – 잊어버리지 아니하며 | |
정기 일기법 | – 뒷날에는 그렇지 않도록 주의하여 | |
방법 | 좌선의 방법 | –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
– 만일 혼침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으로 돌이켜서 |
- 관심
마음상태 | 무시선법 | –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 |
방법 | 염불의 요지 | – 거래가 없는 한 생각을 대중하여 |
염불의 방법 | – 잡념이 마음을 괴롭게 하거든 염불로써 그 잡념을 대치 | |
염불의 공덕 | – 염불로써 그 산란한 정신을 대치하고 | |
좌선의 방법 | –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
- 무심
마음상태 | 일원상 법어 | –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이로다. |
정신 수양의 요지 | –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 | |
정신 수양의 목적 | – 온전한 정신 | |
일상 수행의 요법 | – 심지는 원래 ~ 없건마는 | |
상시응용 주의사항 | – ‘온전한’ 생각 | |
염불의 방법 | – 천만 생각을 다 놓아 버리고 오직 한가한 마음과 무위의 심경 | |
염불의 공덕 | – 그 원적의 진경 | |
좌선의 요지 | – 진여의 본성 | |
좌선의 방법 | – 무위자연의 본래 면목 자리
– 필경 물아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 |
|
단전주의 필요 | – 동정 없는 진여성 | |
무시선법 | –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
– 공적 영지의 자성에 부합 – 응하여도 주한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 동하지 아니하면 이는 도심이 익어가는 증거인 줄로 알라. –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즉, 철주의 중심이 되고 석벽의 외면이 되어 |
|
참회문 | – 마음이 멸함
– 원래에 죄성이 공한 자리 – 적적성성한 자성불 |
|
고락에 대한 법문 | – ‘온전한’ 생각 | |
방법 | 무시선법 | –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
솔성요론 | – 한편에 착 하지 아니할 것이요 | |
결과 | 무시선법 | – 진대지가 일진 법계로 화하여 시비 선악과 염정 제법이 다 제호의 일미를 이루리니
– 생사 자유와 윤회 해탈과 정토 극락이 다 이문으로부터 나오나니라. – 시끄러운 데 처해도 마음이 요란하지 안하고 욕심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이 동하지 아니하여야 |
참회문 | – 능히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죄복을 자유로 할 수 있나니
– 삼계 육도가 평등 일미요, 동정 역순이 무비 삼매라 고도 고가 아니요 죄도 죄가 아니며, 내외 털끝만한 죄상도 찾아볼 수 없나니 |
|
법위 등급 | –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으며
– 생로병사에 해탈은 얻은 사람 –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 이해를 건설하며 – 원근 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일체 생령을 위하여 천신 만고와 함지 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사람 |
- 능심
마음상태 | 무시선법 | – 놓아도 동하지 아니하여야 길이 잘 든 것이니라. |
방법 | 고락에 대한 법문 | – 정당한 법으로 단련하여 기질 변화가 분명히 되기까지 공부 |
결과 | 사대강령 | – 이타적 대승행 |
무시선법 | –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 일체 법을 행하되 걸리고 막히는 바가 없고, 진세에 처하되 항상 백천 삼매를 얻을 지라 |
|
법위등급 | –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 |
「대종경」
- 집심
마음상태 | 수행 1 | – 챙기고 또 챙겨서
– 나는 또한 이 ‘챙기는 마음’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
수행 20 | – 정신이 끌리는 실상을 잡아 보이는 것이니 | |
수행 39 | – 그대는 정신을 차려 | |
수행 45 | – 여러 방면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바로 잡아 | |
수행 54 | – 그 소를 단단히 잡아서 함부로 가지 못하게 하고
– 그대가 소를 이미 발견하였고 |
|
수행 59 | – 선악간에 마음 발하는 것을 잘 조사하고 또 조사하여 | |
수행 63 | – 조심함이요 (법강항마위의 심계) | |
인도 4 | – 어느 처지에 있든지 ‘그 챙기는 마음’을 놓고 어찌 가히 인도를 다할 수 있으리요. | |
인도 16 | – 유념할 자리에 유념 | |
인도 18 | – 반드시 용단심을 일어내어 | |
인도 38 | – 오직 철저한 생각 | |
신성 12 | – 마음을 항상 챙기고 또 챙겨서 | |
실시 1 | – 정신을 수습하여
– 정신을 차리라 |
|
실시 3 | – 대종사의 미리 경계하심이 생각되어 | |
실시 4 | – 주의할 바이니라.
–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 크게 주의를 할 것이니 |
|
실시 30 | – 그대는 곧 그 생각을 바로잡고 | |
교단 3 | – ‘조심하는 생각’을 두지 아니하여 | |
교단 5 | – 아무쪼록 조심하여 | |
교단 10 | – 그대들은 이에 크게 각성 할지어다 | |
교단 17 | – 참으로 정신 차려 공부하라 | |
교단 20 | – 늘 경계하고
– 크게 주의하라 |
|
교단 26 | – 또 챙기어 | |
교단 28 | – 항상 조심하여야 되나니라 | |
교단 29 | – 어찌 조심하지 아니하리요 | |
교단 31 | – 조심하여야 하나니라 | |
부촉 1 | – 그대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어 | |
부촉 14 | – 각별히 주의하라 | |
방법 | 교의 4 | –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
교의 25 | – 일동 일정을 조심하여 엷은 얼음 밟는 것 같이 하여야 | |
수행 24 | – 마음 가운데에 매양 반조하는 공부를 잘 하면 | |
인도 34 | – 말하기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 편안할 때 위태할 것 ‘잊지 말아라’ | |
실시 15 | – 제초하는 것으로 마음공부를 대조하게 하고 | |
부촉 6 | – 위태함을 자주 반성하는 것이니 |
- 관심
마음상태 | 서품 9 | – 조금도 이에 끌리지 말고 |
서품 14 | – 거기에 끌리지 아니할 것인 즉
– 그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 |
|
수행 39 | – 그 마음을 제거하라 | |
교단 7 | – 잘 살펴서 | |
교단 20 | – 살펴야 하나니라 | |
교단 26 | – 오직 살피고 | |
방법 | 수행 1 | – 세밀히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잘 살피라는 것이라 |
수행 20 | – 그 하고 싶은 데에도 끌리지 말고, 하기 싫은 데에도 끌리지 말고 | |
수행 53 | – 일 없을 때에는 그 잡념만 제거하고 일 있을 때에는 그 불의만 제거할 따름이라, (노는 아기 비유) | |
수행 54 | – (소를) 꼭 길로만 몰아가면 |
- 무심
마음상태 | 서품 9 | – 자타의 관념을 초월하고 |
서품 11 | – 넉넉하고 한가한 심경 | |
서품 13 | – 마음이 한번 전일하여 조금도 사가 없게 되면 | |
서품 18 | – 애착, 탐착을 다 여의고 | |
교의 5 | – 마음 가운데에 아무 사심이 없고 애욕과 탐착에 기울고 굽히는 바가 없이 항상 두렷한 성품 자리 | |
교의 6 | – 일원의 원만한 마음 | |
교의 7 | – 마음의 거래 없는 것
–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는 것 |
|
교의 19 | – 각자의 마음 근본 | |
수행 2 | – 그 일 그 일에 일심 | |
수행 7 | – 사람의 마음 가운데 일호의 사심이 없이 | |
수행 13 | – 온전하고 밝은 것
– 온전한 정신 |
|
수행 14 | – 명랑한 정신 | |
수행 16 | – 부동심 | |
수행 19 | – 온전한 근본정신
– 참다운 마음의 안정 |
|
수행 23 | – 사람이 만일 ‘참된 정신’을 가지고 본다면 | |
수행 25 | – 온전한 정신 | |
수행 50 | – 보살은 시끄러운 데 있으나 마음은 온전하고, (유마경) | |
수행 58 | – 원래 온전하고 평안하며 밝고 깨끗한 것 | |
수행 59 | – 본래에 분별과 주착이 없는 우리의 성품 | |
불지 15 | – 도로써 즐기는 마음락 | |
천도 5 | – 본연 청정한 성품 | |
천도 12 | – 온전한 생각 | |
천도 34 | – 청정 일념 | |
부촉 7 | – 일심 집중 | |
방법 | 교의 16 | – 일체 사념을 제거하고
– 일심으로 정성을 올리면 |
교의 27 | – 마음이 경계를 대하여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게 하나니라. | |
교의 33 | – 세상 낙에 욕심이 나면 오직 심신을 적적하게 만드는 것으로만 낙을 삼으라 | |
수행 2 | –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애착 탐착을 두지말며 항상 담담한 맛을 길들일 것이요 | |
수행 9 | – 원래 착이 없는 그 자리를 알고 실생활에 나아가서는 착이 없는 행을 하는 것이니
–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일심공부요 |
|
수행 13 | – 일어나는 번뇌를 가라앉히고 흩어지는 정신을 통일 | |
수행 53 | – 밖으로는 능히 모든 인연에 대한 착심을 끊고 안으로는 또한 일심의 집착까지도 놓아야 할 것이니 | |
인도 53 | – 부귀와 권세에 끌리지 말고 오직 의식주 생활에 자기의 분수를 지켜서 본심을 잃지 아니하여야 | |
인과 11 | –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다 두지 말고 오직 무심으로 대하라. | |
천도 28 | – 생사 거래와 고락이 구공한 자리를 알아서 마음이 그 자리에 그치게 하라. | |
교단 13 | – ‘사심 없이’ 공사에만 전력하라 | |
결과 | 서품 14 | – 생사를 초월한 |
서품 17 | – 부처님께서는 탐진치에 끌리는 바가 없으시며
– 부처님께서는 있는 데를 당할 때에 없는 데까지 알으시고 없는 데를 당할 때에 있는 데까지 알으시며 |
|
수행 9 | – 정신의 수양력으로도 애착, 탐착이 거의 떨어져서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에 끌리는 바가 드물고 | |
수행 12 | – 망념을 쉬고 진성을 길러서 오직 공적 영지가 앞에 나타나게 하자는 것 | |
수행 26 | – 희로애락에 편착하지 아니하며 | |
수행 35 | – 마음 가운데 일호의 사심이 없으므로 | |
인도 17 | – 상 없는 덕 | |
인도 27 | – 인간 부귀를 심상시하여 부귀가 온다고 그다지 기뻐하지도 아니하고 부귀가 간다고 그다지 근심하지도 아니하였나니 | |
인도 51 | – 자기의 이해를 떠나 남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
– 자기의 이욕이나 권세를 떠나 대중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 |
|
변의 29 | – 자연 일심이 청정하여 각자의 내심에 원심과 독심이 녹아질 것이며 | |
성리 25 | – 참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렇게 하더라도 아는 것이 나오고 | |
불지 7 | – 홍시가 떨어지매 무심히 그것을 주우러 가시므로 | |
불지 11 | – 하늘 기운과 합한 사람 | |
요훈 45 | – 그 마음에 한 생각의 사가 없는 사람 | |
실시 26 | – 덕을 쓸진대 천지 같이 상 없는 상을 써서 | |
실시 47 | – 미운 사람을 잘 보는 것이 이른바 대자대비의 행이라 | |
교단 34 | – 응용에 무념함이요 |
- 능심
마음상태 | 수행 17 | – 언제든지 하는 그 일에 마음이 편안하고 온전해야 된다 |
변의 10 | – 마음이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면 | |
천도 22 | – 세간의 모든 애착과 탐착을 여의고 | |
방법 | 교의 7 | – 모든 일에 무념행을 하는 것
– 모든 일에 무착행을 하는 것 – 모든 일에 중도행을 하는 것 |
수행 26 | – 마음 가운데에 모든 상을 끊어 없애면 그 아는 것이 자타가 없겠나이다 | |
천도 27 | – 항상 심지가 요란하지 않게 하며, 항상 심지가 어리석지 않게 하며, 항상 심지가 그르지 않게 하고 보면 | |
결과 | 서품 15 | – 우주 만물 허공 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
교의 5 | – 모든 경계를 대하여 마음을 쓸 때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에 끌리지 아니하고 | |
교의 14 | – 천지 만물 허공 법계를 다 부처님으로 숭배하며 | |
교의 19 | – 그 마음을 마음대로 쓰게 되어야 | |
수행 20 | – 능히 천만 경계를 응용하는 사람
– 영원히 너의 참되고 떳떳한 본성을 여의지 아니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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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24 | – 모든 응용에 걸리고 막히지 아니하리라 | |
수행 37 | –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을 걸림 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고 하며 | |
수행 50 | – 천만 경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큰 힘을 얻으리라 | |
수행 54 | – 백천 만사를 다 자유 자재하도록 | |
수행 56 | – 능히 고락을 초월하고 거래에 자유하며 모든 복락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할 수 있나니 | |
인도 28 | – 마음 작용이 항상 진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 |
변의 30 | – 그러한 성현들은 심신의 거래를 자유하시는 지라 | |
불지 8 | – 부처는 희로애락을 노복같이 부려쓰므로 | |
불지 10 | – 천조의 대소유무를 보아다가 인간의 시비 이해를 밝혀서 만세 중생이 거울하고 본뜰 만한 법을 제정하는 것 | |
신성 8 | – 공부가 구경처에 이르고 보면 자타의 계한이 없이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한 가지 삼보로 화하나니라 | |
요훈 2 | – 마음의 자유 | |
요훈 13 | –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 자재 |
『정산종사 법어』
- 집심
마음상태 | 예도 16 | – 주의할 바이니라 |
경륜 1 | – 깨닫는 마음 | |
경륜 6 | – 한 때라도 잊지 말고 | |
경륜 8 | – 이 뜻을 잊지 말고 | |
원리 22 | – 살필지니라 | |
원리 35 | – 놓지 아니하여
– 놓지 아니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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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15 | – 주의 | |
경의 23 | – 찰나간이라도 방심을 경계 | |
경의 24 | – 반성하는 생각 | |
응기 1 | – 자주 챙겨야 | |
응기 5 | – 잊지 아니하리라 | |
응기 16 | – 조심할지니라 | |
무본 24 | – 그대들은 이에 크게 주의하여 | |
무본 25 | – 우리의 마음을 챙기는 | |
법훈 24 | – 챙김 | |
법훈 31 | – 조심하여야 하나니라 | |
공도 8 | – 주의심을 놓지 말고 | |
방법 | 경륜 24 | – 대조하고 반조하여 노력하면 |
원리 31 | – 언제나 마음의 움직임에 주의하며 | |
경의 23 | – 유념 공부 | |
경의 65 | – 마음을 잘 붙잡아 외경에 흘러가지 않게 하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고삐를 잡고 놓지 않듯 하는 것 | |
무본 11 | – 자기 마음에 어떠한 싹이 트고 있는가를 늘 살피어 | |
무본 24 | – 본래 목적에 반조하기를 잊지 말라 | |
무본 27 | – 목적 반조
– 반조하는 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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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본 47 | – 퇴굴하는 마음을 다시 추어 잡아서 |
- 관심
마음상태 | 경의 22 | – 대중 있는 마음 |
경의 23 | – 그 마음 대중을 놓지 않는 것 | |
경의 24 | – 그 망상을 제거하는 한 생각 | |
경의 32 | – 자성의 공한 것을 관하여 | |
경의 66 | – 찰나간이라도 망념이 동하지 않게 하는 것 | |
권도 34 | – 대중 잡는 마음 | |
권도 43 | – 경계를 대치해 가나니라 | |
응기 9 | – 끌리지 말고 | |
응기 11 | – 마음 대중을 놓지 말라 | |
법훈 17 | – 대치하며 | |
방법 | 경의 65 | – 마음을 놓아 자적하면서 다만 마음 가는 것을 보아 그 망념만 제재하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고삐는 놓고 소가 가는 것만 제재하듯 하는 것 |
- 무심
마음상태 | 예도 9 | – 일심이 지극하면 |
국운 27 | – 무아 | |
경륜 24 | – 낱 없는 마음, 사 없는 마음 | |
경륜 25 | – 둘 아닌 마음 | |
원리 5 | –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고 바른 때 | |
원리 22 | – 빈 마음 | |
원리 23 | – 그 마음이 허공 같이 되어야 하나니라 | |
원리 24 | – 선악 미추와 자타 미오의 상이 없는 자리 | |
원리 31 | – 일심
– 낱 없는 마음 – 상 없는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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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 59 | – 일심 | |
경의 26 | – 그 마음에 내가 불성의 위를 얻었거니 하는 생각이 없는
– 그 마음에 내가 공익을 하였거니 하는 생각이 없는 – 오직 애욕의 생각이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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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42 | – 허공 같은 심경 | |
경의 63 | – 순일한 마음 | |
경의 66 | – 경계를 대하되 경계를 잊고 착되지도 물들지도 않는 것 | |
권도 14 | – 일심 | |
권도 28 | – 새 마음 | |
권도 29 | – 새 마음 | |
응기 6 | – 일심 | |
응기 50 | – 온전한 심경 | |
법훈 23 | – 나를 떠나 | |
공도 27 | – 자타의 상을 떠나 | |
공도 34 | – 일심
– 마음의 단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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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8 | – 청정 일념 | |
생사 9 | – 청정한 일념인 바 | |
생사 18 | – 일념이 청정하면 | |
생사 20 | – 청정한 한 생각 | |
생사 24 | – 일직심 | |
생사 25 | – 청정 일념 | |
생사 26 | – 청정 일념 | |
유촉 6 | – 대 도인의 심경 | |
방법 | 예도 20 | – ‘사심 없이’ 정성을 다하면 |
원리 15 | – 마음이 정한즉 대령에 합하고
– 정즉합덕(靜則合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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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 39 | – 상이 없어야 | |
경의 24 | – 그 마음이 오로지 그 일에 집주 | |
경의 25 | – 무념 공부
– 오직 염착하는 생각을 없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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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65 | – 놓아버리는 것
– 본다는 상도 놓아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사람과 소가 둘 아닌 지경에 들어가 동과 정이 한결 같이 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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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 33 | – 마음을 놓는 공부 | |
응기 23 | – 착수한 뒤에는 그 마음도 놓아 버려야 일심이 되나니라 | |
응기 29 | – 동정간에 일심을 여의지 않는 것이 곧 입정이며 | |
생사 8 | – 밉고 사랑스러운 데 끌리지 아니하면 청정해 지나니라 | |
결과 | 경의 25 | – 동할 때에도 착 없이 동하고, 정할 때에도 착이 없이 정하여 |
경의 30 | – 일심이 동하면 정의 | |
경의 48 | – 경계를 대하여 정하되 정한 상 없음
– 밝되 혜의 상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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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50 | – 그 마음은 청정하여 질 것이며 | |
경의 65 | – 경계와 내가 사이가 없이 한 가지 정토를 이루리라 | |
권도 14 | – 마음이 한 곳에 일정하여 끌리는 바 없으면 | |
응기 5 | – 애욕에 초월 | |
도운 29 | – 마음이 증애에 편착이 없고
– 순역에 집착이 없고 – 고락에 잡힘이 없으면 곧 심량이 광대하다 하나니라 |
- 능심
마음상태 | 예도 11 | –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신 어른들이시니 |
경륜 5 | – 제불의 심인 | |
원리 1 | – 진리와 우리의 생활이 완전히 합치함으로써 | |
권도 45 | – 평상심
– 평상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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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 46 | – 평상심 | |
권도 47 | – 평상의 마음 | |
공도 15 | – 시방 세계가 오가의 소유인 지경 | |
공도 63 | – 일동 일정에 항상 사심 없는 온전한 마음 | |
결과 | 기연 17 | –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 |
원리 9 | – 대기대용 | |
원리 11 | – 항상 자성을 회광반조
– 오직 청정한 혜광이 앞에 나타나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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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41 | – 모든 상이 공하고 | |
권도 14 | – 매사를 작용할 때에 온전한 생각 | |
권도 41 | – 이 모든 경계를 노복처럼 부려 쓰나니라 | |
권도 54 | – 모든 사리에 다 통달하되 통달 하다는 흔적이 없고 만중생을 두루 구원하되 구원한다는 흔적이 없나니라 | |
무본 27 | – 일체시 일체처에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여 필경은 자성의 진리를 밝게 깨닫는 동시에 자성의 광명이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니 | |
무본 34 | – 자성을 떠나지 않는 것 | |
법훈 73 | – 빈부 귀천 고락간에 도심이 일관하여야 | |
도운 32 | – 모든 성인들은 천하를 일가로 보고 만민을 한 권속으로 삼아 |
『대산종사 법어』
- 집심
마음상태 | 교리 5 | – 정신을 차려서 하라 |
교리 17 | – 마음을 멈추고 | |
교리 64 | – 조심하셨나니 | |
적공 9 | – 흐트러진 마음을 멈추고 | |
적공 16 | – 멈추고 멈추어 | |
적공 19 | – 마음을 멈추고 | |
적공 39 | – 챙기고 또 챙겨서 | |
적공 40 | – 항상 마음을 챙겨서 | |
운심 39 | – 경계를 당해 멈추고 | |
동원 24 | – 조심하며 | |
교훈 35 | – 늘 챙기며 | |
방법 | 교리 65 | – 멈추는 공부를 하여 |
교리 69 | –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챙기는 공부 | |
적공 4 | – 마음이 다른 곳으로 흐를 때마다 바로바로 챙기는 것을 이름이니라
– 사심 잡념이 생길 때마다 정성껏 챙기고 챙겨 |
- 관심
마음상태 | 교리 60 | – 스스로 살핌 |
- 무심
마음상태 | 신심 10 | – 온전하게 |
신심 14 | – 두마음 없이 | |
신심 35 | –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다 바칠 수 있는 마음 | |
교리 11 | – 상대가 끊어진 심경 | |
교리 33 | – 마음의 고향인 자성 자리로 돌아가나니 | |
교리 56 | – 일심
– 생각을 텅 비우는 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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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65 | – 마음을 고요하게 하자는 것 | |
법위 24 | – 허공같이 흔적이 없게 | |
동원 16 | – 그 마음에 상이 없으므로 | |
동원 20 | – 우리의 마음을 허공같이 텅 비워버리고 | |
동원 28 | – 허공 | |
교훈 1 | – 하나 자리 | |
교훈 3 | – 크게 빈 마음 | |
교훈 37 | – 없는 것까지 놓아버리고 | |
교훈 73 | – 마음을 허공같이 지키느냐 | |
거래 13 | – 자성이 공한 자리 | |
결과 | 신심 8 | – 몸과 마음을 오롯이 바칠 |
훈련 9 | – 한 마음이 고요해지면 천지와 내가 하나로 합해지고 | |
적공 2 | – 영문은 동정 간에 마음이 막힘없이 통함을 이름이요 | |
거래 33 | – 걸림도 없고 걸리지 않음도 없어야 이것이 곧 참으로 걸림이 없는 것 |
- 능심
마음상태 | 법위 36 | – 일체 경계에 부동심이 되고 |
교훈 13 | – 어떠한 순역 경계에서도 상을 내지 않는 것 | |
결과 | 신심 8 | – 참마음을 발견해 자유롭게 쓰는 것 |
동원 25 | – 성품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대각 도인이라 하느니라 | |
동원 27 | – 여래의 심법이니라 | |
교훈 5 | – 허공에 합일한 대자대비심 | |
거래 3 | – 자유자재하는 | |
거래 17 | – 평소에 거두고 내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