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학과

Wonkwang University

2025 동서양의 개벽사상 비교 연구 :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D.H.로런스의 인간관과 사회관 비교를 중심으로_정진범(인범)(우수논문)

교학대학 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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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동서양의 개벽사상 비교 연구 :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D.H.로런스의 인간관과 사회관 비교를 중심으로_정진범(인범)(우수논문)

동서양의 개벽사상 비교 연구

–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D.H.로런스의 인간관과 사회관 비교를 중심으로 –

 

원광대학교 교학대학 원불교학과

4학년 정진범(인범)

 

. 서론

본 논문은 20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소설가 D. H. 로런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 이하 로런스)와 같은 시기 동양의 한반도에서 활동한 종교지도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少太山 朴重彬 大宗師, 1891~1943, 이하 소태산)의 인간관과 사회관을 개벽사상을 중심으로 비교·분석하고 이것으로써 개벽사상의 사상적 의의뿐 아니라 원불교 교법의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을 삼을 수 있는 의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같은 시기라 하더라도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사회는 산업화를 통하여 급속하게 변화를 겪고 있었다. 서양의 영국은 제국주의를 확립하며 산업 문명을 선도하는 중심 국가로 자리 잡았고, 반면 동양의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산업화의 영향과 변화를 수용해야 했다. 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영국에서 활동한 로런스와 한반도에서 활동한 소태산은 각각 문학과 종교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였고, 이들의 사상은 ‘개벽(開闢)’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이 두 인물이 각기 다른 문명적 조건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산업화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제시한 인간관과 사회관을 알아보고 현대사회에 주는 사상적 함의를 탐구하고자 한다.

로런스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기술과 자본의 지배를 받으며 자연과의 조화와 인간성의 본질을 상실해가는 것을 심각한 문명적 위기라고 진단하였다. 그는 인간의 내면적 고통, 인간관계의 단절, 자연과의 괴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며, 감각과 육체, 영혼의 통합을 통한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는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인간성 회복과 문명 재구성의 실질적 모색이었다.

반면 동양에서는 ‘개벽’이라는 전통적 사유가 새로운 문명의 비전을 준비하는 이념으로 재해석되었다. 조성환 교수는 이를 단순한 ‘근대’의 번역어가 아니라, 한국 민중이 스스로가 추구한 새로움을 표현한 고유 개념으로 보았다. 이는 개벽을 새로운 발명이나 창조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개벽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보편적 진리를 바탕으로 볼 수 있다. ‘개벽’은 ‘천지개벽(天地開闢)’의 준말로, 세상이 처음으로 생겨 열리거나, 세상이 어지럽게 뒤집히거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이르는 말로서 특정 종교나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는 사상적 표현이다. 19세기 말 조선의 민중이 ‘개벽’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유교적 세계관의 부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세계관의 말폐현상(末蔽現象)을 넘어서는 진리의 회복을 지향하여, 삶과 사회 구조 전반에 걸친 총체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흐름은 동학과 원불교를 비롯한 한국 신종교의 핵심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소태산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를 통해, 산업화로 인해 고도화된 물질문명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정신적 전환에서 찾고자 했다. 그는 도학과 과학, 종교와 생활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문명사회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그 사상은 한국 사회의 개벽운동에 현실적 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소태산의 개벽사상은 로런스의 문명 비판과 ‘정신개벽(精神開闢)’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일정한 접점을 가진다.

두 인물은 각기 다른 문명적 조건 속에서 활동하였기에, 이들의 사상을 단순 비교하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로런스는 문학을 중심으로 인간과 문명을 성찰한 작가였으며, 그의 사상은 체계화된 철학보다는 상징적이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제시하였다. 반면 소태산은 종교를 기반으로, 일원의 진리와 사실적 훈련이 통합된 새로운 신앙과 수행 체계를 구축하였고, 원불교라는 종교를 창립하며 그 사상을 제도화하고 공동체 속에 뿌리내렸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두 인물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비교한 연구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산업문명이라는 동일한 시대적 병리를 인식하고, 인간의 내면과 사회 구조 모두에 대한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백낙청 교수(1938~ 이하 백낙청)는 로런스를 “서양의 개벽사상가”로 평가하며, 그의 사상을 한국의 개벽사상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본 논문은 이러한 공통 문제의식과 사유의 방향성에 주목하여, 두 사상의 상호보완적 의미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로런스와 소태산의 사상적 배경, 인간관, 그리고 사회관으로 논의를 나누어, 각 장에서는 이들이 시대를 어떻게 진단했는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문명의 전환을 위해 어떤 실천적 대안을 제시했는지를 중심으로 나누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로런스와 소태산의 인간관과 사회관을 비교하여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하여서는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힘으로써, 이들의 사상이 지닌 현대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 D.H.로런스와 소태산 박중빈의 사상적 배경

 

동서양을 막론하고 20세기 초반에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문명이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직감한 사상가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단순히 사회개혁을 넘어서, 인간의 존재와 사회의 근본을 다시 묻는 철학적 사유를 구성하였다. 이 가운데 영국의 로런스와 한국의 소태산은 각기 다른 배경과 문화권에 속해 있었지만, 산업화가 시작되고 자본주의의 문제와 제국주의 체제 속에서, 이들은 인간관과 사회 전체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할지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이들은 기존 세계질서의 종말과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통찰하며 ‘개벽’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로런스는 근대 산업사회가 인간을 기계화하고 생명력을 파괴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고, 본능과 감각을 억압당하면서 존재의 뿌리를 잃어버렸다고 비판했다. 백낙청은 로런스가 단순히 산업사회의 부정적 면모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구적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봉건성과 식민성의 잔재를 극복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백낙청은 근대 사회가 직면한 과제로서 서구적 근대성을 수용하면서도, 식민성과 봉건적 전통의 잔재를 극복해야 하는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는 로런스가 작품에서 탐구한 전통과 근대의 충돌과도 맞닿아 있다. 로런스는 인간이 ‘기계적 합리성’에 의해 소외되는 현실을 넘어서, 생명 본연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물질문명의 발전이 가져오는 외적 진보에 맞서, 인간 내면의 생명력과 영혼의 재생을 촉구하는 ‘정신개벽’적 요구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로런스의 성장 과정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는 1885년 영국 중부 노팅엄셔(Nottinghamshire)의 이스트우드(Eastwood)에서부친 토마스 로런스(Thomas Lawrence)와 모친 리디아 로런스(Lydia Beardsall Lawrence) 사이에 4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광산 노동자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어머니는 교사로서 가정을 책임졌기에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가정환경은 로런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다. 교사 생활을 거쳐 작가로 전향한 그는 『백공작(The White Peacock)』(1911)을 시작으로 인간 심리와 사회적 억압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아들과 연인(Sons and Lovers)』(1913), 『무지개(The Rainbow)』(1915),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1928) 등은 모두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와 본능 억압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하며, 새로운 인간성과 삶의 회복을 갈구하는 그의 개벽적 사상을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 『아들과 연인』은 개인의 본능과 사회적 억압 사이의 갈등을 탐구한 작품으로, 그의 문학적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자전적 요소가 강하며, 광부 아버지와 지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한 청년이 어머니의 과도한 애정 속에서 자아실현과 성적 해방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다. 주인공 폴 모렐은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근대적 개인주의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이는 근대 사회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정체성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지개』는 이러한 주제를 더욱 확장하여, 한 가족 3세대에 걸친 변화를 통해 개인의 자아실현과 전통적 가치, 사회적 억압의 갈등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 로런스는 산업화가 진행되는 영국 사회에서 전통적 가치가 점차 붕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근대적 변화가 인간 해방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억압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특히 주인공은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사회적 제약과 전통적 가치의 억압 속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녀의 고민은 서구적 근대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기존의 억압적 질서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과 연결된다.

그의 후기작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그의 성적 자유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비판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당시 영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성적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인간 본능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로런스는 여기서 근대 산업사회가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도덕적 위선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하며, 기존 질서의 해체와 새로운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백낙청은 로런스를 서양 내부에서 근대문명의 총체적 위기를 감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벽사상가적 면모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로런스는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자도 아니었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진보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인간성의 탄생‘을 모색했다. 그것은 억압된 본능의 복귀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질서를 회복하는 새로운 차원의 인간성을 의미했다. 이러한 로런스의 문제의식은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라는 점에서 ‘개벽’ 사상의 서구적 변용이라 할 만하다.

한편 소태산은 한국이라는 또 다른 역사적, 문명적 상황 속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에 도달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단순한 사회의 변화가 아닌, 문명의 본질적 전환기로 인식했다. 그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 속에서, 물질문명이 급속하게 발달하고 인간의 삶 전체가 그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음을 보았다. 이러한 현상을 그는 ‘물질개벽(物質開闢)’이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인류가 이러한 물질개벽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해 어찌 파란고해가 있지 않겠냐고 개탄하였다. 그는 물질문명의 급속한 진전에 상응하는 정신적 전환, 즉 ‘정신개벽(精神開闢)’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지도 강령을 제시하며, 물질문명의 발전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정신혁명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태산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단순한 혼란이나 변동이 아니라, 문명의 본질적 전환기로 보았다. 그가 진단한 당대 문명의 병폐는 단순한 사회 비판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의 위기와 도덕적 붕괴를 ‘돈의 병’, ‘원망의 병’, ‘의뢰의 병’, ‘배울 줄 모르는 병’, ‘가르칠 줄 모르는 병’, ‘공익심 없는 병’으로 명명하며, 이러한 내면의 병들이 결국 문명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에 따라 그는 물질문명 속에서도 인간의 내면을 바로 세우고, 실천적 도덕과 종교적 신앙이 통합된 산 종교를 세우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은 소태산의 성장 과정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는 로런스가 태어나고 6년 뒤 1891년 한반도 전라남도 영광에서 부친 박회경(朴晦傾)과 모친은 유정천(劉正天)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 현상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그 의문은 점차 인간의 본성과 진리의 실상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 그의 고향이기도 한 영광은 동학혁명의 주요 격전지 중 하나로, 그는 혁명의 함성과 처절한 실패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성장했다. 그가 구도에 나섰던 시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가 본격화 되며, 조선 사회 전반이 급격한 혼란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거대한 변화를 직감한 소태산의 의문은 진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이 시대 그리고 문명에 대한 바른 길을 모색하는 고뇌로 확장되어 간다. 1916년 음력 3월 26일, 26세의 나이로 그는 20여 년에 걸친 긴 구도의 결실로 큰 깨달음(大覺)을 얻었다. 대각 이후 그는 유교, 불교, 도교의 경전은 물론 구약과 신약, 그리고 동학의 『동경대전』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경전을 두루 열람했다. 이 가운데 특히 『금강경』을 보고 불법(佛法)이 천하의 큰 도라고 인정했다. 그는 불법을 주체로 하여 동서양의 종교사상과 과학문명까지도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회상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이러한 포부는 단순한 종교 교단 설립을 넘어서 동서고금을 관통하여 인간과 문명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하였다. 그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인간관과 사회관을 재구성한 개벽사상가로 볼 수 있다.

그의 사상은 추상적 이론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깨달음을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는 1924년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를 창립하여, 성별이나 출재가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이가 평등하게 참여하는 공동체를 조직하였다. 이 공동체는 경제적 자립을 위한 활동과 신앙 수행을 병행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도덕적 훈련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정기훈련’과 ‘상시훈련’ 체계를 정립하였다. 이 시기의 활동은 『불법연구회규약』(1924),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1931), 『불법연구회상조부규약』(1935) 등의 규약 제정으로 제도화되었으며, 동시에 교리적 기초를 다지기 위해 『수양연구요론』(1927), 『보경육대요령』(1932), 『조선불교혁신론』(1935), 『예전』(1935), 『불교정전』(1943) 등의 교서가 편찬되었다. 또한 『월말통신』, 『월보』, 『회보』 등의 정기간행물을 통해 회원 간 학습과 소통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이러한 정기간행물은 회원들에게 단순한 신앙과 수행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개벽사상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실천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소태산의 개벽사상은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물질 중심의 근대 문명이 초래한 본질적 위기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신개벽’을 제시하는 사상으로 평가된다. 그는 물질문명의 발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물질에 얽매여 정신이 파괴되는 현실을 깊이 우려하였다. 그리하여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밝히며, 새로운 문명 전환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정신개벽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교법을 제정하였으며, 그의 교법은 단순히 신앙생활을 위한 규범이 아니라, 인간이 물질의 노예생활을 벗어나서 정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종합적 실천 규범이었다.

그의 사상은 그가 제정한 교법에 집약되어 있다. 『정전』은 소태산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집대성한 경전으로, 정신개벽을 실현하기 위한 교법의 근본 원리와 실천 지침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정전』 수행편의 교리 체계는 물질문명의 발전 속에서 신앙과 수행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로써 개인과 사회를 동시에 변혁하려는 소태산의 사상을 반영한다.

또한『대종경』은 소태산의 어록을 후에 제자들이 집대성한 경전으로, 그의 사상과 교법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법문을 제공한다. 이 경전은 소태산 친저 문장과 가사의 원문을 포함하여 그의 ‘언행록(言行錄)’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며, 정신개벽이라는 사상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다. 특히 그는 ‘법인성사(法印成事)’를 통해, 정신이 중심이 되고 물질은 이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철학을 제시하였다. 이는 물질문명이 인간을 지배하는 근대 산업사회의 전도된 질서를 비판하며, 정신의 개벽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과 사회관을 창출해야 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소태산은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과 수행을 추구했으며 『대종경』에서 인간 내면의 욕심과 물질의 노예생활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종경』을 통해 우리는 그가 창생 구제의 교법을 설한 28년의 삶이 단순히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성과 문명의 전환이라는 총체적 과제에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소태산은 단순히 이론이나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교단 운영과 교화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개벽사상을 실천적으로 조직하였다. 그는 불법연구회를 중심으로 신앙공동체와 수행공동체를 운영하고,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며,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러한 실천들은 모두 병든 세상을 구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었다. 그의 정신개벽은 종교적 이상이자, 당대 현실을 치유하고 새 시대를 열기 위한 개벽적 실천이었다.

그의 개벽사상은 단순한 깨달음의 선포가 아니라, 정신개벽을 통한 인간성과 문명 재건을 목표로 한 거대한 사상적, 실천적 기획이었다. 그는 동서양 문명의 위기를 직시하고,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조화를 통해 인류사의 새로운 전환을 꿈꾸었다.

로런스와 소태산 모두 산업화와 근대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건으로 인식하면서, 그 속에서 인간성의 상실과 문명의 붕괴를 경고했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차원의 인간성, 새로운 문명 질서를 지향했다. 로런스는 생명과 본능의 회복을, 소태산은 정신개벽을 통한 문명의 전환을 주장하며, 각각 동서양의 맥락 속에서 ‘개벽’이라는 사상을 제기했다.

이처럼 로런스와 소태산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도, 근대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성 성찰을 공통분모로 인간성과 문명의 본질적 전환을 모색한 동시대적 사상가로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사유는 동서양 개벽사상의 사상적 배경을 이루는 핵심 축이라 할 수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 동서양 개벽사상의 인간관 비교

 

  1. D.H.로런스 :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려는 존재

 

백낙청은 로런스를 ‘서양의 개벽사상가’로 평가하며, 그의 사상은 단순한 사회 비판을 넘어 인간 존재를 근원적으로 회복하고자 한 문학적 실천으로 보았다. 이는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나타난 개벽사상이 서구적으로 전개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로런스가 말한 ‘온전한 인간’은 물질문명이 심화시킨 인간의 분열과 소외를 극복하고, 감각과 본능,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인간 존재 자체를 다시 구성하고자 한 개벽적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로런스가 주장한 ‘온전한 인간’은 단순히 외적인 완성도가 아니라, 내적 갈등과 다양한 자아들이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복잡한 존재를 의미한다. 정남영 교수(1958~ 이하 정남영)는 로런스가 인간의 영혼이 질서 정연하고 규격화된 상태로 억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본능과 감정, 자아의 충돌이 자연스러운 인간 존재의 일부라고 보았다. 이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이하 프랭클린)의 ‘완벽한 인간’ 이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프랭클린이 주장한 인간상은 규격화되고 통제된 자아에 불과하며, 로런스는 이를 비판한다고 말한다. 프랭클린이 상상한 ‘완벽한 인간’은 인간의 본능과 감정, 자아의 충돌을 억제한 상태에 불과하며, 로런스에게 있어 진정한 ‘온전한 인간’은 다양한 갈등을 포함한 복잡한 존재, 즉 여러 자아가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로런스는 이러한 자아들의 온전한 전체(the whole)를 ‘영혼’이라고 명명하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자유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는 다중적 자아의 통합을 통해 자아의 온전함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남영은 이를 ‘총체적 의식’으로 설명하며, 이는 인간의 본능, 직관, 정신, 이성 등이 하나로 융합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하였다. 로런스는 인간이 완전한 의식을 통해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이 ‘총체적 의식’은 단순히 이성적 사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직관, 본능까지 포괄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로런스의 인간관은 산업문명이 초래한 인간 소외와 감정 억압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으로 ‘본능과 감각의 회복’을 통한 존재적 전환을 제시한다. 이는 단지 개인의 내면 성찰을 넘어 문명 전반의 전환을 요구하는 총체적 사유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본질과 자아실현의 문제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문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진정한 인간관계와 자아실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을 가능케 한다. 그가 제시한 ‘온전한 인간’은 곧 새로운 문명의 주체이며, 그가 말하는 인간 존재의 회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사상적 과제로 남아 있다.

그는 산업화 이후의 근대사회가 인간의 본질과 감정을 파괴하고, 자연과의 일체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는 근대 산업문명의 물질적 발전이 인간 존재에 미친 영향을 비판하면서, 인간 본질의 회복, 나아가 인간 존재의 심층적인 갱신을 추구하였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단지 사회적 제도 속의 도덕적 주체가 아니라, 감각과 본능, 정신과 육체가 통합된 ‘온전한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였다. 그의 인간관은 인간을 사회적, 윤리적 틀에 가두는 기존의 문명 구조를 해체하고, 자연과 본능을 회복함으로써 인간의 존재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문학적·사상적 기획이었다.

그는 인간이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억눌린 감정과 감각, 그리고 억제된 본능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사회가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고, 본능을 억압하는 구조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을 기계화된 존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의 대표작인 『아들과 연인』에 잘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폴 모렐은 어머니 윌리엄 모렐과의 과도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그가 자율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어머니는 남편의 사망 이후 자신의 감정적 공백을 아들에게 투사하며, 폴에게 절대적인 애정을 요구한다. 폴은 어머니의 내면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지만, 이러한 관계는 그가 진정한 자아를 형성하고 타인과의 성숙한 관계를 맺는 데 지속적인 억압으로 작용한다.

 

미리엄과 함께 나가 조금 늦게 들어올 때마다 어머니가 조바심을 내고 화를 낸다는 것을 폴은 알았다. 그 이유를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집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어 던지자 그의 어머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에 냉기가 있어 책을 읽을 수 없었기에 생각하며 앉아 있었다. 그녀는 폴이 이 처녀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리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에 느꼈던 미리엄의 매력과 어머니가 초조해한다는 사실 사이에서 마음이 아팠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답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무시할 만큼 무정해질 수 없었다.

 

그가 관계를 맺는 미리엄이나 클리어와의 연애 또한 이와 같은 감정적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리엄은 폴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지만, 폴은 그녀와의 관계에서 어머니와의 유대를 끊지 못하고 결국 감정적 혼란에 빠진다. 클리어와의 관계 또한 내면의 갈등과 결핍이 반영된 복잡한 형태로 전개되며, 어머니와의 미해결된 관계가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폴은 근대 산업사회와 그 안에서의 가족 구조, 감정 억압의 현실 속에서 자율적인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자기로 남게 된다.

 

“클라라는…… 클라라는 엄청나게 좋은 여자예요, 엄마…… 정말 그래요! 엄마는 모르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폴은 어머니에게 무엇인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좋은 여자예요, 엄마. 정말이에요! 그리고 전혀 수준이 낮지 않아요!”

“하지만 엄마는 클라라가…… 그렇게 좋은 여자가 아니라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 그 여자는 백 사람들 가운데 아흔아홉 사람보다 나아요. 그 여자가 더 나아요. 낫고 말고요! 공정하고 정직하고 솔직해요…… 음흉하거나 거만한 데가 없어요…… 클라라를 업신여기지 마세요.”

모렐 부인은 얼굴을 붉혔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무지개』에서도 유사하게 반복된다. 이 소설은 여러 세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근대 문명 속 인간 존재의 위기를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주인공 어슐라는 전통적인 여성상과 가부장적 질서를 거부하고, 감정적·성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어슐라는 끊임없는 내면의 탐색과 저항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규범과 감정적 제한을 강요한다.

 

어슐라가 사춘기에서 숙녀기로 접어들면서 책임감이라는 구름이 서서히 몰려들었다. 어슐라는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고 분리되지 않은 희미한 혼돈 가운데서 자신은 분리된 실체이고, 어디론가 가야하고 무엇인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 겁이 났고 걱정스러웠다. 왜? 아, 왜 사람은 자라야 하고, 왜 미지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이 무겁고도 얼떨떨한 책임을 물려받아야 하는가? 그녀가 무에서부터 엇비슷한 대중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니! 그러나 무엇이 된단 말인가? 희미하고 길 하나 없는 이곳에서 방향을 잡으라니! 허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한 발짝이라도 어떻게 뗀단 말인가? 그렇지만 또 어떻게 가만히 서 있는단 말인가?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일을 떠맡는다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자기 인식과 내면의 감정적 진실을 통해 본능적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 과정은 단순한 개인적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새로운 존재 형식의 모색을 포함한다. 어슐라가 겪는 사랑의 갈등, 사회적 저항, 감정의 해방은 로런스가 말하는 ‘온전한 인간’으로의 갱신 과정이다. 그녀는 끊임없는 실천과 고뇌 속에서 자기 내면의 진실과 직면하며, 감정과 본능을 억압하는 문명적 조건과 상황을 넘어선 삶을 추구한다.

 

무지개는 대지 위에 떠 있었다. 어슐라는 잘 알고 있었다. 이 타락한 지상을 비늘처럼 딱딱한 몸으로 저마다 기어 다니는 인간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걸. 무지개가 그런 인간들의 핏속까지 흘러들어서 생명의 진동으로 그들의 정신을 일깨워 주고, 그러면 그들은 딱딱한 타락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새롭고 깨끗한 알몸뚱이가 새로운 싹을 내고 성장하며 하늘의 광명과 바람과 깨끗한 비에 자신들을 드러낼 것임을. 어슐라는 무지개 속에서 지상의 새로운 건축물을 보았다. 오래되어 부서지기 쉽고 오염된 가옥과 공장은 휩쓸려 사라졌고 ‘진실’이라는 살아 있는 자재로 건축된 세상이 들어섰다. 그것은 둥그런 하늘에 꼭 들어맞았다.

 

로런스는 그의 문학을 통하여 인간이 내면의 본능과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아들과 연인』은 그가 속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작가가 추구하는 인간관과 사회적 의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근대 산업사회가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고 감정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실을 그리며, 인간 존재의 회복을 위한 갈등을 드러낸다. 반면, 『무지개』는 전통사회, 근대사회,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사회 변화를 통해 전통적 인간관의 붕괴와 가치관의 혼란을 묘사한다. 특히 근대사회의 세속적 가치관과 타락성은 인간관의 위기를 심화시키며, 이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재구성을 제시한다.

그에게 자아의 회복은 단순한 개인적 성취나 사회적 성공을 넘어, 문명 전환의 핵심 과제였다. 그는 인간이 억눌린 감정과 본능을 회복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만이 비로소 온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관점은 『무지개』에서 주인공 어슐라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어슐라는 전통적 여성상과 가부장적 질서에 맞서며, 감정적이고 성적인 자율성을 추구한다. 그녀는 끊임없는 내면의 탐색과 저항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 하려고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규범과 감정적 제액을 강요한다. 그 속에서 그녀는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깊은 갈등을 겪는다. 이처럼, 로런스는 어슐라의 삶을 통해 인간 본성의 자유와 회복을 위한 과정을 그린다.

어슐라가 겪는 사랑과 자기 내면의 갈등은 단순한 욕망의 충족을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새로운 존재 형식의 모색을 포함한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본능적 자유를 추구하지만, 이 과정은 감정과 본능을 억압하는 문명적 조건을 넘어선 삶을 추구하는 고뇌와 실천의 연속이다. 이러한 갈등과 저항은 로런스가 말하는 ‘온전한 인간’으로의 갱신 과정이다.

 

  1. 소태산 박중빈 : 일원의 진리를 실현하는 존재

 

소태산의 인간관은 ‘일원의 진리’를 근거로 한 인간 존재의 본질적 회복과 자기실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인간을 단순한 개별적 존재로 보지 않고, 우주 만유와 본래적으로 하나 된 존재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은 후 제시한 ‘일원상(一圓相)의 진리’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는 인간이 이 진리를 자각하고 실현할 때 비로소 참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았다.

 

일원(一圓)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며, 대소 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 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로서 공적 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 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 명상이 완연하여 시방 삼계(十方三界)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 진공 묘유의 조화는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 자재(隱顯自在)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

 

소태산이 말하는 일원은 우주를 관통하여 두루 존재하는 본체이자, 일체 중생의 본성으로 작용하는 절대적 진리이다. 이 진리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곧 모든 언어와 명상이 끊어진 자리에서 신비로운 작용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이러한 본성의 자리를 ‘공적영지(空寂靈知)’라 하여, 텅 비어 고요한 가운데서 신령한 지혜의 광명이 작용함으로써 온갖 현상 세계가 전개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로써 인간의 본성은 단지 개인의 내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본원으로서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원이자 실재가 된다.

소태산은 본성의 작용 원리를 ‘동정(動靜)’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본성이 정(靜)할 때에는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지만, 본성이 동(動)할 때에는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은 본성의 작용을 바탕으로 모든 선과 악의 근원이 되며, 이 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한 존재가 될 수도, 악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마음은 모든 선악의 근본”이라고 하며, 인간은 자기 내면의 본성을 자각하고 올바로 운용함으로써 도덕적 실천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인간관은 원불교의 교리 가운데 ‘사은(四恩)’과 ‘삼학(三學)’를 통해 구체화된다. 사은(四恩)은 인간이 보은해야 할 존재로,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을 말하며, 이는 인간이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근원적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전제한다. 삼학(三學)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수행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닦고, 진리를 탐구하며, 일상생활 속 실천을 통해 본래의 나를 회복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소태산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이 단지 자기 수양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원의 진리와 합일하여 육근의 작용을 바르게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즉, 탐(貪), 진(瞋), 치(癡)와 같은 번뇌에 끌려 육근을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원의 진리와 하나 되어 육근을 자유롭고 조화롭게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본성에 깃든 도덕적 직관을 실천으로 이끌어내고, 세상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삼학은 결국, 인간이 본성을 깨닫고 그에 따라 도덕적 실천을 이어나가는 삶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일상의 모든 작용이 일원의 진리에 바탕 할 수 있도록 이끄는 수행의 강령이라 할 수 있다.

소태산은 인간의 본성을 ‘진리적 중심’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그것을 실현할 때, 비로소 자아실현을 넘어서 공동체적 삶으로 확장되는 도덕적 자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마음이 투철하게 열린 사람은 대중을 위하여 일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하며, 본성 자각을 통해 발현되는 이타심과 자비심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그의 인간관은 자아실현과 도덕적 실천, 나아가 공동체적 책임과 실천을 통합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소태산의 인간관은 근본적으로 ‘깨달음’과 ‘수행’을 통해 참 나를 발견하고 진리를 실현하는 인간상을 지향한다. 인간은 본래 일체 만물과 하나 된 존재이며, ‘진공묘유’의 본성을 자각함으로써 온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함은 단순히 정신적 자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육체의 건강, 그리고 사회적 삶 전반에 걸친 회복을 의미한다. 이는 곧 로런스의 ‘온전한 인간’의 의미와 접점을 형성한다. 이 점에서 소태산이 강조한 ‘영육쌍전법(靈肉雙全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과거 수행자들이 생활을 등한시하고 수도만을 고집한 결과, 개인·가정·사회·국가에 해독을 많이 미쳤음을 지적하며,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 즉 살아 있는 종교를 주장하였다. 이는 곧 정신적 수행과 물질적 삶을 조화롭게 병진시켜야 한다는 사상이며, ‘일원상의 진리’를 중심에 두고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을 통해 의식주의 삶을 영위함과 동시에, 그 삶을 통해 다시 진리를 구현해 나가는 구조로 나타난다. 인간은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을 닦고, 본성을 자각하는 가운데, 이타적인 실천을 통해 일원의 진리를 구현하는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

소태산은 인간을 ‘일원의 진리’를 구현하고 실현하는 주체로서 이해한다. 인간은 내면에 진리의 광명을 품은 존재이며, 그 본성을 자각하고 실천함으로써 자신을 온전히 실현하고, 우주와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는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 까지 서원함”이라 말하며, 인간이 일원의 체성과 합일하는 것을 수행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소태산이 제시한 인간관은 단순한 도덕적 윤리의 수행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가 우주의 본성과 하나 되는 절대적 경지를 지향한다. 원불교 교리에 비추어 볼 때, 이 절대적 경지는 ‘대소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는 자리’,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 ‘언어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 즉 모든 상대적 대립과 구분을 초월한 ‘절대’와 ‘무한’의 세계를 의미한다. 인간은 일원의 진리를 실현함으로써 바로 이 절대와 무한의 자리에서 자신의 본래적 존재를 회복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된다. 이러한 소태산의 인간관은 근대 산업사회의 흐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초월하여 본연의 진리적 근거 위에서 세계를 새롭게 조망하고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는 로런스가 근대 문명을 비판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할 수 있었던 힘이 인간이 시대정신을 넘어설 수 있는 절대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사상과 연결된다.

로런스의 경우, 소태산처럼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수행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본능과 생명의 직관적 회복을 통해 인간성을 구원하고자 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방법과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인간성 회복의 방향은 제시했지만, 이를 실천 가능한 사회적 체계로 조직하거나 제도화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소설은 인간 내면의 분열과 갈등을 직시하게 하고, 이를 ‘온전한 인간’으로 변화하여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문학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수행적 힘을 지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종교적인 수행 체계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인간 내면의 변화와 외적인 성숙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의의를 지닌다.

따라서 소태산은 인간이 일원의 진리와 합일하기 위한 구체적 수행 체계와 실천적 지침을 마련함으로써 보다 조직적이고 실천적인 인간관을 제시한 반면, 로런스는 인간의 가능성은 통찰했음에도 이를 체계화하거나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비교를 통해 볼 때, 소태산이 제시한 인간관은 인간 내면에 잠재한 절대성을 실현하여 시대를 구제하는 성불제중(成佛濟衆)과 제생의세(濟生利世)의 지향성을 담고 있으며, 일원의 진리를 실현하려는 구체적 방향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 동서양 개벽사상의 사회관 비교

 

  1. D.H.로런스 : 근대 산업사회 비판과 생명 회복

 

로런스는 근대 산업사회가 인간의 삶과 관계, 나아가 감정과 생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기계화된 체계 속에 편입시킴으로써 인간성의 본질을 파괴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의 물질적 풍요가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감각과 본능의 마비, 자연과의 단절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로런스의 전반적인 사회비판 사상의 핵심을 이루며, 백낙청이 “서양의 개벽사상가”라고 명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는 본직적으로 비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큰 격변이 일어났고 우리는 폐허 가운데 서 있다. 우리는 자그마한 보금자리를 새로 짓고 자그마한 희망을 새로 품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좀 어려운 일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순탄한 길이 이제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애물을 돌아가든지 기어 넘어가든지 한다. 아무리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로런스는 기계적 합리성과 산업체계의 비인간성을 비판하며, 그것이 인간 본연의 감성과 생명력을 잠식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는 현재의 문명이 이미 결정적인 전환점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폐허 위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 문명의 진정한 위기는 외형의 파괴가 아니라, 인간 내부의 감각 상실에 있었다.

로런스의 이러한 비판적 인식은 그의 대표작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문학적으로 구체화된다. 작품 속 인물 클리퍼드는 전쟁에서 하반신이 마비된 이후,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감정적 고립과 기술 의존으로 대체하려 한다. 그는 인간 관계보다는 산업경영과 기술적 발전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며, 로런스는 그를 “강철의 외골격을 지닌, 속은 물컹한 과육과도 같은 갑각류”로 묘사함으로써, 기계문명의 병리적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클리퍼드는 점차 인간다움을 상실한 존재로 전락하며, 이는 기계문명이 어떻게 인간의 신체와 감정을 도구화하고 기능화 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제 클리퍼드가 산업 활동이라는 또 다른 이 괴상한 형태에 빠져들어 효율적이고 단단한 겉껍질에 과육처럼 물컹한 속살을 지닌 하나의 생물 즉 현대의 산업 및 금융 세계의 굉장한 가재와 게 무리 중의 하나로서 기계처럼 강철로 된 껍질을 하고 안쪽의 몸은 부드러운 과육으로 된 갑각류 무척추동물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므로 정말이지 코니는 완전히 앞뒤가 가로막혀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로런스의 사회관은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사회 내부에서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는 문명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인간 본연의 감각과 생명성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는 곧, 근대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성의 병리현상, 감정과 본능의 억제와 타인과의 단절에 대한 저항이다. 로런스의 소설 속 인물들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억압된 감각과 본능을 되살리고,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그려진다. 예를 들어, 콘스턴스와 맬러스의 관계는 단순히 육체적 결합이나 불륜이 아니라, 감정적 교감과 신체적 접촉을 통해 억압당했던 생명력을 회복하려는 사회적 실천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벨라르가 말하기를, 엘로이즈와 사랑을 하던 시절에 두 사람은 정열의 모든 단계와 온갖 세련된 극치를 경험했다고 하는데, 그때 그가 한 말이 과연 무슨 뜻일까 하고 코니는 자주 궁금해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걸 알 것 같았다. 천 년 전이나, 만 년 전이나 똑같았던 것이다! 똑같은 것이 그리스의 항아리에도 있고, 세상 그 어디에나 있었다! 정열의 세련된 극치와 관능의 자유로운 넘침이! 게다가 그것은 바로, 잘못된 수치심을 모두 불태워 없애버리고 육체의 가장 무거운 광석까지 다 녹여내 그것을 순수한 상태로 제련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리고 영원히 필요한 것이었다. 순전한 관능의 불길로 태우기 위해서 말이다.

 

로런스는 이와 같은 생명의 회복을 통해 새로운 사회 질서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는 기존의 제도종교나 정치 체제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기계문명에 대한 단순한 체제 전복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백낙청에 따르면 로런스는 “새로운 영성과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회 구조의 변화보다 개인의 내면적 전환과 감각의 회복을 문명 재구성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는 로런스가 제시하는 ‘생명의 문명’이 기존의 물질 중심 문명과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명 비전임을 뜻한다.

 

코니는 아버지에게 사정을 다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그래요, 아버지. 그 사람은 클리퍼드의 사냥터지기예요. 하지만 그는 장교로 인도에서 군복무를 한 사람이기도 해요. 다만 그는 다시 사병이 되기를 택한 저 C.E.플로렌스 대령과 같이, 스스로 하층 계급이 되기를 택한 거예요.”

그렇지만 멜컴경은 아무런 공감도 느끼지 않았다. 겸허한 그 모든 행동의 뒤에는 자신을 선전하려는 측면이 지나치게 많이 감추어져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훈작인 그가 제일 혐오하는 종류의 자만, 즉 겸양을 표방하는 자만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래, 너의 그 사냥터지기란 사람은 어디 출신이냐?” 멜컴경은 좀 성이 난 어조로 물었다.

“테버셜 마을의 광부 아들이에요. 하지만 그는 누구한테도 절대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에요.”

예술가 훈작 나리는 더욱 화가 났다.

 

결국 로런스의 사회관은 근대 산업문명의 병리적 현실을 비판하면서, 인간 내면의 생명 감각과 감정 회복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질서를 가능케 하려는 사상적 기획이다. 그는 문명의 전환은 사회 체계의 변화로만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것은 감각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자각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그는 단지 사회 구조의 개혁을 말하는 사상가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회복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개벽사상가로 평가될 수 있다. 인간의 감각과 생명이 되살아날 때, 비로소 진정한 문명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사회관의 핵심이다.

 

  1. 소태산 박중빈 : 병든 사회 치유와 생명 회복

 

소태산은 20세기 초 근대문명이 겉으로는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심각한 병리적 문제가 내재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시대를 ‘문명한 시대’라고 명명하며, 그 문제의 뿌리를 물질문명에 대한 지나친 ‘도취(陶醉)’에서 찾았다. 물질적 풍요가 극대화된 문명사회, 이른바 과잉화된 사회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함과 장래의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가 말한 문명한 사회를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현실로 해석한다면, 소태산은 자본주의적 문명이 발전할수록 물질적인 풍요는 커질지라도, 그 이면의 병리적 문제는 더욱 심화되어 사회적․정치적 위기가 크게 발현될 것임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세상은 전에 없던 문명한 시대가 되었다 하나 우리는 한갓 그 밖으로 찬란하고 편리한 물질 문명에만 도취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에 따르는 결함과 장래의 영향이 어떠할 것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지금 세상은 밖으로 문명의 도수가 한층 나아갈수록 안으로 병맥(病脈)의 근원이 깊어져서 이것을 이대로 놓아 두다가는 장차 구하지 못할 위경에 빠지게 될지라, 세도(世道)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근심을 금하지 못하게 하는 바이니라.

 

소태산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근대 사회가 겉으로는 찬란하지만, 그 실상은 물질문명에 도취한 상태이며, 인간은 점차 물질의 주체가 아니라 물질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문명한 사회의 병든 상태’라고 규정하며, ‘돈의 병’, ‘원망의 병’, ‘의뢰의 병’, ‘배울 줄 모르는 병’, ‘가르칠 줄 모르는 병’, ‘공익심 없는 병’의 병리적 징후를 통해 사회적 해체 현상을 바라보았다. 이와 같은 사회적 병증은 구성원 간의 공공정신이 약화되고, 타인을 향한 연대와 책임이 실종된 상태를 말하며, 소태산은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둘 경우 사회 전체가 회복 불가능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보았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과거에는 배고픔이 일상적이었기에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면, 물질이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각자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맞는 영양섭취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사회는 단순히 물질을 소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선택하고 절제하며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주체적 역량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물질이 과도하게 공급되는 현실에서, 이를 다룰 수 있는 주체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각각의 개인은 올바른 판단과 실천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오히려 몸에 해를 입는 병적상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 치유 방법으로 소태산이 제시한 개념이 정신개벽(精神開闢)이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롤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병리를 치유하고자 하였다. 정신개벽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나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감정과 이성 전반을 실천적으로 변혁함으로써, 병든 사회 전체의 치유로 나아가는 근본 방법이었다.

소태산이 말하는 ‘정신’이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의미하며, 이러한 정신 상태를 기르는 과정을 ‘수양(修養)’이라 하였다. 분별심과 집착심을 줄이고, 외부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일심을 기르며, 고요한 내면을 실현하는 것이 정신 수양의 본질이다. 이러한 수양은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윤리적 회복을 위한 전제이다.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이요, 수양이라 함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이니라.

 

정신개벽의 실천적 구현을 위한 구체적 수행 체계로서 소태산은 사요(四要)를 제시하였다. 이는 일원의 진리를 사회 전반에서 실현하기 위한 네 가지 핵심 원칙으로, 개인의 덕성 함양을 넘어서 사회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천적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첫째는 자력양성(自力養成)이다. 자력양성은 사람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자력 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자력의 양성은 남녀나 장자와 차자의 서열을 차별하지 않으며 모두가 교육을 통해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 사회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자본위(知者本位)이다. 지자본위는 사회적 신분, 나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참된 지혜와 실력을 갖춘 이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는 태도를 말한다. 과거의 불합리한 반상·남녀·적서 차별을 지식 중심의 차별로 전환하여,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배울 것을 구할 때에는 오직 구하는 사람의 목적에만 달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타자녀 교육(他子女 敎育)이다. 타자녀 교육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자는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 사회 모두가 교육에서 소외의 대상이 없도록 해야 한다. 넷째는 공도자 숭배(公道者 崇拜)이다. 공도자는 인류사회를 위해 공헌한 사람을 말한다. 공도자를 극진히 숭배할수록 사회, 국가, 세계에는 공도자가 더 많이 나오며, 우리 각자도 그 공도 정신을 체 받아서 공도를 위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태산은 생명 회복을 단순히 개인의 구제나 영적인 성취로 보지 않았다. 그의 사회적 실천에서 생명회복은 사회적 차원의 문제 해결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는 ‘사요’라는 실천적 사회 운동을 통해 모든 인간이 자력을 갖추고, 배워서 알고, 가르쳐 나누며, 공익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만 비로소 세상이 고루 골라지고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사요의 실천이 인류 전체의 생활을 평등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이상사회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 보았다. 이러한 평등사회는 단지 정치적 평등에 그치지 않고, 정신·경제·교육·문화 전반에 걸쳐 조화로운 ‘전반세계’를 지향한다. 이 평등 사회는 소태산에게 유토피아적인 추상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평등과 생명회복을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광대무량한 낙원(樂園)이었다.

소태산은 과거의 불교가 출세간 생활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세속의 의무와 책임을 등한시하고, 개인의 해탈에만 전념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음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불교의 진정한 목적이 모든 생령을 구제하는 데 있음에도, 세간(世間)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출세간의 수행에만 집중함으로써 넓은 세상 속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불교의 진리는 세속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소태산의 주장은 불교가 진정으로 세계의 도움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세간의 삶과 의무를 포용하고, 모든 존재가 불은을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불교의 종교적 신앙과 사실적 수행은 자기도취적이고 내향적인 구도자의 차원을 넘어서, 시대적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요’의 사회운동으로 통합된다. 원불교 ‘교리도’(敎理圖) ‘인과보응의 신앙문’(因果報應의 信仰門) 상단과 중앙에 배치된 ‘사은’(天地恩․父母恩․同胞恩․法律恩)은 ‘사요’나 ‘보은즉불공’(報恩卽佛供)과 독립된 요소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 안에서 연결된 도식으로 표현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염승준 교수(1973~)는 사회적 측면에서 원불교는 그동안 사회적 실천을 통해 차별과 폭력의 교차점에서 완충제 역할을 해왔으며, 법과 도덕의 근본으로서 원불교의 사회참여와 실천은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는 방편이자, 이를 통합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충전재의 역할을 병행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하였다.

소태산의 사회관은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인류가 고르게 잘 사는 평등하고 조화로운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철학이자 실천 방법론이다. 그의 사상은 종교적 교의에 머무르지 않고, 교육, 경제, 윤리, 정치 등 사회 전 영역에 적용 가능한 통합적 사상 체계이며, 오늘날 물질문명의 위기를 진단하고 새로운 문명 전환을 모색하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와 비교해서 로런스는 근대 산업문명의 병리적 현실을 비판하면서, 인간 내면의 생명 감각과 감정 회복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질서를 가능케 하려는 사상적 기획을 제시했다. 그는 문명의 전환은 단지 사회 체계의 변화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감각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자각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단지 사회 구조의 개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회복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개벽사상으로 볼 수 있다. 로런스의 사상에서, 생명 회복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변화와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할 수 있다. 그는 인간 내면의 감각과 생명력이 되살아날 때, 비로소 진정한 문명 전환이 가능하다고 보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통합과 공동체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로런스는 이론적 구상에 비해 실천적인 사회적 참여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는 개인의 감각 회복을 통한 내적인 변화가 사회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지만,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데 있어 소태산의 사상과 비교할 때 그 실천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런스는 내면의 성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적 삶을 실현하려는 시도를 지속하였다. 그는 1915년경 블룸스베리 그룹의 인사들과 교류하며, 올더스 헉슬리, 버트런드 러셀 등과 사회 개혁을 주제로 한 연속 강연을 기획하는 등 사회적 참여의 방식을 모색하였다. 특히 러셀과의 교류는 단순한 철학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미국 플로리다에 이상적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구체적인 구상으로까지 나아갔으며, 반전 정당 창설까지도 계획하였다. 이처럼 로런스는 새로운 사회 질서와 공동체적 삶을 실현하려는 강한 열망을 품고 있었으며, 그의 문학과 사상은 이러한 실천적 기획의 일부였다. 비록 이러한 시도들이 실질적인 정치 운동이나 사회적 조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로런스가 새로운 문명을 상상하고자 했던 노력은 단지 개인 내면의 변화만이 아닌, 그것이 사회 질서 전반의 전환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실천적 사유의 흔적으로 읽힌다. 이는 구체적인 제도나 운동을 조직한 소태산과는 비교되지만,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 삶의 지향이라는 점에서 두 사상가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소태산의 사회관은 단순한 내면의 회복에 그치지 않고 자력양성과 지자본위라는 핵심 가르침을 통해 병든 사회를 치유하려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자력 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신분, 나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참된 지혜와 실력을 갖춘 이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조화롭고 평등한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로런스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새로운 관계를 탐색하며 감각과 생명의 회복을 통해 문명 전환을 사유한 것은 인간 내면의 변화를 통한 사회적 전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로런스의 사상은 감각과 생명력 회복이라는 내면적인 차원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소태산은 그 자각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사회 실천과 제도적 혁신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보다 종합적이고 실천적인 문명 전환의 모색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소태산은 인간의 내적 성장을 구체적인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내면의 자각에 머무르는 로런스의 사상보다 사회적 실천과 결합되어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 결론

 

로런스와 소태산은 나란히 20세기 초 산업문명 전환기의 격동 속에서 인간과 사회문명의 방향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공유하였다. 두 사상가 모두 병든 사회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새로운 문명 전환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공통된 철학적 문제의식을 가진 동시대적 사상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로런스는 문학적 사유와 감각적 사랑, 자연과의 일체감을 통해 주로 개인 차원의 생명감 회복을 지향한 반면, 소태산은 종교적 실천을 통해 사회적 구조와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는 정신개벽의 제도적 실현을 추구하였다.

로런스는 당시 서양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사회 개혁에 대한 구상을 시도했으나, 구체적 실천이나 제도화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이상적인 공동체 구상 역시 문학적 이상으로 남았고, 사회운동이나 정치적 실천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반면 소태산은 종교지도자로서 사상을 넘어서 실제 교단을 창립하였다. 그는 수행법과 교리 체계, 조직 운영 원칙 등을 통해 정신개벽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생활윤리와 실천체계를 마련하였다. 그는 낙원의 이상 또한 종교적 교의나 관념적 유토피아로 머물지 않고, 실제 공동체 안에서 실현 가능한 현실적 이상세계로 구상하였다.

로런스는 산업화된 근대 사회가 인간의 본능과 감정을 억압하며, 인간을 본래의 온전한 존재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인간이 감각과 본능을 회복하고, 억눌린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들과 연인』과 『무지개』 등 그의 작품은 근대 문명의 억압적 구조 속에서 인간 내면의 생명력을 회복하려는 갈등과 실천을 그리고 있다. 특히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는 기계문명에 의해 상실된 인간성과 생명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감각적 사랑과 감정적 교감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로런스는 문명 구조의 외적 개혁보다 인간 내면의 본질적 변화와 생명감의 회복을 통해 새로운 문명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 소태산은 인간을 본래 일원의 진리를 지닌 존재로 보았으며,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고 실현할 때 비로소 우주와 하나 된 온전한 존재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인간관은 개인의 자아실현을 넘어, 자각된 인간이 도덕적 실천과 공동체적 책임을 수행함으로써 일원의 진리를 구현해 가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을 내포하고 있다. 소태산은 산업 문명의 병리적 현상을 진단하며,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우려하였다. 그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정신개벽’을 제시하였으며, 정신개벽을 일상의 실천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삼학(三學)과 사요(四要)를 체계화하였다.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 교육, 공도자 숭배의 실천 원칙은 모두가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윤리적 수행이자 공동체적 변화를 위한 조직적 실천 방안이었다.

로런스와 소태산의 사상은 동서양 문명이 ‘개벽’되는 과정에서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상적 통찰을 제공하며, 이는 오늘날 여전히 기후위기, 환경오염, 인간 소외, 공동체 붕괴 등 산업사회가 초래한 다양한 병리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시대에 각각의 대안을 제공한다. 로런스의 문학은 인간 내면의 생명감 회복을 위한 감각적 성찰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소태산의 개벽사상은 인간 내면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실천을 통해 조화롭고 평등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제공하여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실천 윤리와 공동체 조직의 철학적 비전을 함께 갖춘 통합적 치유담론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가치는 단순히 서양의 문학가인 로런스와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의 비교 연구에 그치지 않는다. 로런스와 소태산의 인간관과 사회관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소태산의 대각(大覺)에 대한 현대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나아가 원불교가 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문명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특히 원불교 교단 4대 1회의 주요 과제인 ‘원불교 세계화’라는 목표를 이루는 방법으로서, 소태산의 깨달음에 근접한 서양의 문학가와의 비판적 비교 연구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연구처럼 소태산의 사상과 서양의 다양한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들과의 접점을 찾는 것은 원불교가 현대적 문명 전환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원불교 세계화’를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1. 원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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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학과

Wonkwang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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