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교서에서의 낙원의 의미에 대한 연구
원진희(元眞熙)
Ⅰ. 머리말
Ⅱ. 원불교 개교의 동기와 낙원 개교의 동기 낙원 낙원에 대한 현실적 인식의 중요성
Ⅲ. 원불교 교전을 중심으로 낙원의 의미 분석 분석방법 분석결과 내면의 낙원(심낙원(心樂園)) 건설방법 건설결과 외형의 낙원(신낙원(身樂園)) 건설방법 건설결과
Ⅳ. 맺음말 |
Ⅰ. 머리말
사람들은 저마다의 유토피아나 무릉도원을 꿈꾼다. 삶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혹은 문득 알게 되는, 혹은 죽기 전까지도 알아채지 못하는 다양한 욕망과 불안, 그리고 고통들에 대한 영원한 대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희·로·애·락의 발생과 소멸 속에서 살아가고, 행복보다는 고통을 더욱 강하게 받아들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의 크기에 무뎌지기도 된다. 강력한 고통만이 이전의 것을 잊게 만들지만, 인간의 고통은 끊임없이 쌓여가고, 그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는다. 또한 현실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아서 결코 우리들이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는 희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괴로움만 줄 뿐이다. 그것들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현실과는 멀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형이상학적인 희망이나 기대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상상속의 이상향을 꿈꾸게 만든다.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의 유한성과 생(生)의 본질로서의 불만스러운 현실을 의식하고 이에 대치할 영원하고 지락지치(至樂至治)한 그 어떤 절대적 세계를 관념하게 됨으로써, … 근원적으로 인류에게 <유토피아>의 지향이 내재하게 되었던 것, 그러므로 인간의 자기의식과 밀착된 유토피아는 바로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세계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의 이상향은 존재의 본질로서의 불만족으로부터 생겨났으며 이는 곧 인간이 존재의 본질로서 만족을 얻게 되었을 때,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물질적 만족과 더불어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충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갈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한 인간들의 정신적·물질적 희생과 도의심에 힘입어 발전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은 보람차게 되어간다. 살기 좋은 낙원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을 위해 많은 희생을 치룬 사람들의 공덕이다. 모든 보람차고 살기 좋은 낙원은 공도 헌신 자와 선한 인간들의 헌신의 공덕이다. 그중에도 성인의 교화는 어리석은 인류를 각성시켜 서로 잘사는 길을 열어 주며 고통 받는 모든 생령에게 차별 없이 낙원의 길을 찾도록 인도하는데 본질적이다. 막힘없는 교법은 모든 생령들에게 어느 곳에 살거나 어느 시간에 처했거나 구애 없이 은혜를 주고 고통을 감소시킨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인간이 절대적 힘을 갈망하며 만든 종교는 어떤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는가에 중점을 맞추었다. 그 중에서도 종교의 시대화와 생활화, 대중화를 제창하며 개교한 원불교는 어떠한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자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불교를 개교한 동기로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함이 그 동기니라.”라고 하였다. 원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광대무량한 낙원’이며, 이는 곧 원불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상향인 것이다. 덧붙여 소태산 대종사는 인간만이 누리는 낙원이 아닌 일체 생령이 누리는 지상 낙원을 제시하였으며, 특히 현실적으로 건설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광대무량한 낙원’에 대한 의미 분석을 통해, 새 주세불이자 구세성자로 불리는 소태산 대종사가 천명하는 낙원에 대한 현실에서의 구체적 실현에 관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면 모든 문명이 다 낙원을 건설하는 데 보조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요” 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낙원이란 지금 세상의 모든 문명이 보조하여 이룩해 나아가야 할 목적지임을 알 수 있다. 원불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낙원’은 저 너머의 또 다른 세계가 아니며,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세계가 아니며, 이상적인 시공간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세계가 아닌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낙원은 멀리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갈 수 있는 현실로 끌고 내려온 것이다. 그러니 현실이 희망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낙원의 건설자임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불교의 핵심교서를 통해 낙원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를 설정하고,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을 파악하는데 필수적이다. 도착지가 없는 내비게이션과 같이 목적지가 없는 삶 또한 방황의 연속일 뿐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통해 각자가 내면의 낙원 건설을 통해 외형의 낙원을 건설할 수 있음을 말하고,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더욱 느끼며, 각자가 세상의 공도 헌신 자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구성원으로 성장해야 함을 밝히고자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낙원 건설의 주재자는 우리 자신임을 말한다. 낙원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도달처라면, 우리는 더 이상 꿈을 꾼다거나 덧없는 세월을 보낸다는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본 연구에서는 『원불교전서』중 「정전」, 「대종경」에서 ‘낙원’이라는 의미가 담긴 표현들을 분석하여 소태산 대종사가 말하는 광대무량한 낙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건설할 수 있는가, 건설된 낙원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광대무량한 낙원’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결과를 아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고통의 문제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본질적 만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는 더 이상 낙원이 이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서 건설함으로써 영원한 낙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Ⅱ. 원불교 개교의 동기와 낙원
개교의 동기
원불교는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본명 박중빈, 1891-1943)가 스스로 구도한 끝에 얻은 깨달음을 기반으로 근대시대의 한국에서 개창된 종교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구원 겁래에 세운 구도의 서원으로 마침내 크게 깨닫고 나서 교문을 열어 중생 구제의 의지를 밝힌 것이 ‘개교의 동기’이다. 그러므로 개교의 동기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 이루어진 ‘대각개교’의 의지가 밝혀진 법문이다. 아울러 대각한 안목으로 시국을 관찰하고 나서 돌아오는 무한한 세상을 밝힌 큰 경륜이다. 개교의 동기에서 소태산 대종사는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했던 자신의 서원을 밝히고 있다. 세상을 고통의 파도가 끊이지 않는 파란고해로 비유하였으며, 고해 속의 중생 나아가 일체 생령을 구하고자 원불교를 개교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세계는 세계질서의 재편에 따라 1·2차에 걸친 대전으로 인한 인류사회의 혼란과 불안이 고조되었다. 국내적으로는 갑오동란 이후 기성질서와 모든 윤리가 파괴되고 외국의 내침으로 인한 불안이 격심해짐에 따라 구세주인 ‘정도령’ 등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법구생폐(法久生弊)로 인한 기성종교와 도덕이 무력화되었다. 특히 조선조 후기와 일제치하의 식민지시기의 극심한 혼란과 해방 후 남북분단시기의 이데올로기 및 정치적 대치상황에서 기성 종교도 아니고 전래종교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났다. 1860년대 수운 최제우의 동학을 비롯한 이운규의 남학, 1900년대 초기 증산 강일순의 상제 신앙운동, 홍암 나철의 대종교를 비롯한 다양한 단군신앙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소태산 박중빈의 원불교가 대표적인 민족종교로서의 신종교운동이 전개되었다.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는「정전」개교에 동기에서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 고해가 없으리요.” 라고 언급하였다. 이를 통해 과학의 발달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영향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인간적으로 과학의 정수인 분석적 사고방식과 물질로 얻어낸 기계적 고속화, 생활의 다양성, 편리함은 인간의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과학문명의 발달은 물질에 의한 인권타락과 기계문명에 의하여 분업화, 조직의 부속화를 만들어내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성행했으며 이는 인간소외를 불러오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상적으로는 과학의 발달에 따라 기성종교의 교리와 기성철학 내지 모든 사상의 근본적 수정으로 인한 새로운 인생관·세계관·우주관의 개척과 새로운 윤리의 요청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종교들은 활력을 잃고 타락하여 어지러운 환경에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소태산은 이러한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위한 과도기적 상황으로 바라보았다. 새로운 사회, 새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혼란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원불교 출현의 필연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불교를 개교한 동기로 “… 그러므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樂園)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 고 하였다. 원불교의 출현은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으로 시작된 새 시대의 새 종교 운동임을 알 수 있다. 미래 문명의 흐름에 관해 후천 개벽 시대의 도래라는 독특한 시대인식을 제시한 것이다. 어느 경계에서나 국한 없이 열려진 이른바 트인 세계, 개방된 세계가 세상에 건설되자면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소태산 대종사는 밝히고 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란 진실한 종교인이 되는 길이다. 근본적 원리에 입각하여 일원의 진리를 신앙하는 것이다. 자성에 대한 신앙으로 깨쳐 삼대력을 얻어 성불하자는 것이다. 누구든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안심입명을 얻고 영원한 혜복의 문로가 열릴 수 있으며 사회·국가·세계에 실다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신앙이다. 이는 합리주의적 사고의 염증에 대한 대안으로 종교가 주가 되어왔으나, 그동안 종교는 이러한 본질적 목적을 저버리고 종교 자체만을 앞세우는 종교적 진리의 신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란 일원의 진리에 근거하여 심신작용과 모든 생활을 그 진리에 어긋남이 없이 훈련하는 것으로 누구든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바로 인도정의를 실천할 수 있고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도덕이다. 근본적 인격 양성을 위한 수행이자, 곧 시대의 상황에 맞고 대중의 생활에 맞는 도덕의 훈련으로써 보은과 감사생활을 하여 영원한 혜복의 길이 열리며 사회·국가·세계에 실다운 복지가 향상될 수 있다. 정리하면,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파란고해의 생활을 청산하고 비로소 광대무량한 낙원에 인도되어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는 광대무량한 낙원이 되는 것이다.
낙원
소태산 대종사는 현실을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이해하고 현대사회를 ‘병든 사회’로 단정한다. 대사회의 병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 개인의 물질적 욕구의 증대와 이에 따라 이기주의화 하는 현상으로 설명하고 나아가 집단·국가·민족 간의 불화도 이러한 바탕위에서 설명하였다.
“… 한 사회가 병들어가는 증거를 대강 들어 말하자면 각자가 서로 자기 잘못은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하는 것만 많이 드러내는 것이며, 또는 부정당한 의뢰 생활을 하는 것이며, 또는 지도 받을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잘 받지 아니하는 것이며, 또는 지도할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로써 교화할 줄을 모르는 것이며, 또는 착한 사람은 찬성하고 악한 사람은 불쌍히 여기며, 이로운 것은 저 사람에게 주고 해로운 것은 내가 가지며, 편안한 것은 저 사람을 주고 괴로운 것은 내가 가지는 등의 공익심이 없는 연고이니, …”
위와 같이 소태산은 매우 소박하지만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언어를 써서 병든 사회를 정의하였다. 그 다음에 아래와 같이 사회가 병들어 간 증거를 드는 것으로써 그 증상과 발생 원인을 밝혔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회가 병들어 가는 상태를 깊이 주시하고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였다.
“그러면, 지금 세상은 어떠한 병이 들었는가. 첫째는 돈의 병이니, 인생의 온갖 향락과 욕망을 달성함에는 돈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의리나 염치보다 오직 돈이 중하게 되어 이로 인하여 모든 윤기(倫氣)가 쇠해지고 정의(情誼)가 상하는 현상이라 이것이 곧 큰 병이며, 둘째는 원망의 병이니, 개인·가정·사회·국가가 서로 자기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저 편의 잘못만 살피며, 남에게 은혜 입은 것은 알지 못하고 나의 은혜 입힌 것만을 생각하여, 서로서로 미워하고 원망함으로써 크고 작은 싸움이 그칠 날이 없나니, 이것이 곧 큰 병이며, 세째는 의뢰의 병이니, 이 병은 수 백년 문약(文弱)의 폐를 입어 이 나라 사람에게 더욱 심한 바로서 부유한 집안 자녀들은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으려 하며, 자기의 친척이나 벗 가운데에라도 혹 넉넉하게 사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의세하려 하여 한 사람이 벌면 열 사람이 먹으려 하는 현상이라 이것이 곧 큰 병이며, 네째는 배울 줄 모르는 병이니, 사람의 인격이 그 구분(九分)은 배우는 것으로 이루어지는지라 마치 벌이 꿀을 모으는 것과 같이 어느 방면 어느 계급의 사람에게라도 나에게 필요한 지식이 있다면 반드시 몸을 굽혀 그것을 배워야 할 것이어늘 세상 사람들 중에는 제 각기 되지 못한 아만심에 사로잡혀 그 배울 기회를 놓치고 마는 수가 허다하나니, 이것이 곧 큰 병이며, 다섯째는 가르칠 줄 모르는 병이니,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 지식을 사물에 활용할 줄 모르거나, 그것을 펴서 후진에게 가르칠 줄을 모른다면 그것은 알지 못함과 다름이 없는 것이어늘 세상 사람들 중에는 혹 좀 아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자만(自慢)하고 자긍(自矜)하여 모르는 사람과는 상대도 아니하려 하는 수가 허다하나니, 이것이 곧 큰 병이며, 여섯째는 공익심이 없는 병이니, 과거 수 천년 동안 내려온 개인 주의가 은산 철벽같이 굳어져서 남을 위하여 일하려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드물 뿐 아니라 일시적 어떠한 명예에 끌려서 공중사를 표방하고 무엇을 하다가도 다시 사심의 발동으로 그 일을 실패 중지하여 이로 말미암아 모든 공익 기관이 거의 피폐하는 현상이라 이것이 곧 큰 병이니라.”
위 내용으로 현실의 파란 고해는 어떠한 상황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의 고이다. 물질의 노예화된 인간과 생명적 존재의 모든 고를 들 수 있다. 인간의 四苦 八苦 등 윤회의 수레바퀴에 얽매이는 고가 이에 해당된다. 즉, 돈이라는 물질에 노예화된 현상이다. 둘째는, 사회 혼란이다. 서로가 싸우는 사회 혼란을 말한다. 쟁탈과 패륜, 탈법과 살육의 세상이 이에 해당된다.
“언제 어디를 물론하고 현실의 국토와 인생은 불만족과 고뇌로 충만 되어 있어 생명의 의욕을 현실계에서 충족하게 할 수 없으므로, 허다한 국민과 사상가들이 다투어 이상사회를 만들어내는 우선 위안을 얻고 또 희망을 거는 일도 많았다.” 현실은 결코 우리의 희망에 부합하지 않으며, 기대를 저버리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충족되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각자의 이상향으로 만들어낸 도피처나 의지처는 인간에게 있어서 상상 속에서나마 안식을 줄 수 있는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인간의 원초적이고 다양한 욕구와 희망 그리고 불안과 고통 등은 인지와 문명의 발달이나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게 다양한 염원처와 의지처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사회의 염원에 대해 각 종교는 나름대로의 이상향을 설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교, 불교, 도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상향을 살펴보면, 먼저 유가적 낙원표상에서 원래 인간은 현실적 존재인 동시에 미래를 지향하는 존재로 제시한다. 현실과 가상의 미래는 늘 인간에게 공존한다. 공자의 낙원관은 <天>의 의식에서 출발하여, <大道>를 시간상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지속하여 갈 뿐만 아니라, 또한 이를 공간상으로 物에서 心으로, 心에서 身으로, 身에서 家에로, 家에서 國으로, 國에서 천하로 확충해 간다면 마침내 대동 세계(大同世界)에 이르러 안심입명(安心立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적 낙원표상은 최고의 불교 이상향으로 알려진 <극락(極樂)>이다. 이는 아미타불의 국토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행복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극락의 위치는 서방십만억의 불토를 지니고 있는바, 그 표상을 보면 물과 나무가 주는 부단한 생생력의 이미지는 낙원에 대한 일체적 표상의 요소로 나타난다. 또한, 대승불교에서 인정하는 국토인 정토란 현실의 속세와는 대조적인 세계로 관념되어, 현세와 같은 예악잡염(穢惡雜染)의 상이 없고 미묘엄정(微妙嚴淨)의 장엄이 국토에 충만하여 광대심심(廣大甚深)한 법락을 길이 향수할 수 있는 땅이 있음을 가리킨다. 선가적 낙원표상인 도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우주의 본체인 도(道)에 합함을 이상으로 하는 사상‧철학‧종교로서, 도달한 도의 세계는 순전한 정신적 세계로서 이상향이다. 무위자연에 입각한 정치를 베풀 때, 백성들은 인간본심인 자연을 얻게 된다. 이 경지에 이르는 것이 노장이 추구한 이상세계였다. 인간의 욕망을 환상의 영역에서 극한화한 것이 도선사상이다. 이렇듯, 각 종교는 저마다의 이상향을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원불교의 이상향은 무엇인가? 원불교 개교의 동기에서 소태산 대종사은 ‘광대무량한 낙원’이라는 이상향이자 현실의 도달처를 설정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원불교의 개교동기에 나타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하는 사상 또한 이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인식하며, 원불교적 독창적 이상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이 원불교 개교의 동기라고 설한다. 또한 소태산 대종사는 낙원을 내면의 낙원과 외형의 낙원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세상에 낙원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외형의 낙원이요, 둘은 내면의 낙원이다. 외형의 낙원은 과학이 발달되는 머리에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요, 내면의 낙원은 도학이 발달되어 사람사람이 마음 낙으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요순 시대에는 내면의 낙원은 되었으나 외형의 낙원이 없었고, 현세에는 외형의 낙원은 되었으나 내면의 낙원이 적으니, 우리는 내외 겸전한 좋은 낙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적인 무량 낙원은 첫째, 삼대력을 얻어 몸과 마음을 자유 자재하게 쓰는 자성극락이라는 마음의 낙원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내면의 낙원으로, 생사해탈과 고락 초월의 자유자재, 죄복을 임의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절대의 본분에 합일하는데서 성취되는 영원의 낙(樂)이다. 이것은 성품을 깨달아 이에 일치하는데서 성취되는 무형세계의 낙원이다. 물질에도 걸리지 않고 시간과 장소에도 걸림이 없으며 동정과 순역경계에 또한 걸림이 없으되 이를 버리지도 아니하는 거래가 자재한 영원의 낙원을 말한다. 이른바 유와 무에 걸리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는 대해탈 대수용의 세계라 볼 수 있다. 모든 것에 초월한 법락이므로 이를 광대무량한 낙원이라 말할 수 있고 이것을 건립하려는 것이 원불교의 낙원 건설의 한 방향이 된다.
둘째, 서로가 잘사는 사회 낙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외형의 낙원이다. 서로의 무한한 베풂과 자비, 서로의 협동과 보호의 세상이 이룩될 때 가능하다. 소태산 대종사는 “자리(自利) 주의를 버리고 이타주의로 나아가면 그 치료가 잘 될 것이며 따라서 그 병이 완쾌되는 동시에 건전하고 평화한 사회가 될 것이니라.”고 하며, 서로에 대한 의미를 강조했다. 다시 말해 외형의 낙원은 수용 상에 성취되는 낙원이다. 앞에서 물질이나 시간, 장소, 동정, 순역경계 등에 걸림이 없는 건설을 말하였고, 근본적으로는 일원의 체성에 합일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상대적인 것을 잘 수용하고 또 이를 적절하게 살려쓰는데서 성취되는 낙원이다. 종래에는 상대적인 세계가 종교적인 의미에서 인류의 진정한 낙원을 성취하는데 유익할 것인가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었다. 따라서 내세나 현실도피에 치중했으나 내세와 현실 성속에 관계없이 막힘없이 초월하면서 또한 잘 활용하여 자유자재 함에 진정한 수용이 있다.
이러한 내면의 낙원과 외형의 낙원을 건설하면 ‘광대무량한 낙원 건설’이 되는 것이고 이것을 소태산은 ‘평화 사회’라고 표현하였다. 즉, 그 사회의 병이 완쾌되는 동시에 건전하고 평화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광대무량한 낙원이라는 원불교의 이상향은 어느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세계를 떠나 멀리 아득한 지평선을 넘어 서방에 있다고 생각하는 정토극락이 아니다. 원불교는 구원의 주체가 모두 개체적 존재 자체에 있음을 강조한다. 각자의 내면세계에 불성(佛性)의 존재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이 개인구원의 길이며 심낙원(心樂園)의 실현이다. 또한 원불교에서 지향하는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는 해원상생(蟹寃相生)의 은(恩)세계이며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조화된 새 문명세계이다. 대산 김대거 종사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물질개벽: 지벽(地闢) = 과학문명 = 빈곤 . 질병 . 무지를 물리치고 의식주의 생활을 개선하자 = 일생의 신낙원(身樂園) = 종(從) 또는 외(外)
정신개벽: 천개(天開) = 도학문명 = 삼학팔조로 마음을 개조하고 사은사요로 세상을 건지자 = 영생의 심낙원(心樂園) = 주(主) 또는 내(內)”
위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정신개벽은 개인구원의 차원이자 곧 내면의 낙원 건설이고 물질개벽은 사회구원의 차원이자 곧 외형의 낙원 건설로, 내면의 낙원 건설이 되었을 때, 삶의 개선과 더불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병폐를 알아서 스스로 떳떳한 주체자로서 만인 앞에 설 수 있는 인격혁명, 자기인격을 함양한 의식혁명을 통해 조직 활동으로 자기가 소속하고 있는 집단사회를 쇄신시키는 것이 병든 사회를 치료하고 내면과 외형의 낙원을 건설하는 방법이 된다.
주객이 전도되어 가는 상태를 정상화시켜 물질 개벽과 아울러 정신개벽을 시켜서 양대 문명을 발전시켜야지 어느 한편에 기울어진다면 진정한 문명 세계를 이룰 수 없다. 또한 물질문명만 되고 정신문명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개벽을 주장하신 것이요, 근본 목적은 양대 문명을 똑같이 발전시켜 전 인류가 다 같이 영원히 잘 살 수 있는 낙원의 세계를 건설함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낙원세계란 과학과 종교, 물질과 정신이 아우러져 낙원을 이룬 세계이다. 우리는 낙원이라는 것이 결코 이상적인 시공간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파란고해로부터 벗어난 정신과 육신의 자유자재임을 알아야 한다.
의‧식‧주의 등의 공유제도와 더불어 종교적인 유대를 강조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고 말한 토마스 모어조차도 물질적인 공산주의는 정신적인 유대에 의해서만 성공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정신개벽의 측면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 각자 내면의 낙원 건설로 귀결되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은 물질적인 평등을 넘어선 정신적인 이상실현이 전제로 되어 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혼자서만 사는 세상이 아니고, 평화 안락한 낙원세상을 만들어가는 평화 안락한 인간의 정신이다. 낙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실현가능한 세계임을 알아야 한다.
낙원에 대한 현실적 인식의 중요성
오늘날에는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였다. 전에는 애욕에의 집착이 중심이 되었다면, 지금은 고도로 발달된 과학 문명에 끌려가는 정신의 방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든지 물질에 끌려가는 정신을 강한 정신으로 키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의 파란고해는 물질에 끌려서 정신이 쇠약한 상태이다. 오늘날이 훨씬 심각하다. 과학 문명을 수용함으로써 생활에 혜택을 보고 있으나 과학 문명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힘이 약화되어 간다. 물질에 끌려가고 있는 인간의 정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고도의 과학문명이 발달된다고 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공허함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외부 현실세계의 환경이 개선된다 해도 개개인에게 근본적인 만족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실은 차별세계를 떠나 존재할 수 없으니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소태산 대종사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설명하고 그 극복방안으로 정신개벽을 주장하였다. 정신의 방황을 극복하는 것은 곧 정신개벽이 되며 내면의 낙원을 건설하는 단초가 된다. 본 연구에서는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내면의 낙원을 스스로 건설하는 것은 인간 각자가 가장 근본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본질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해결책임을 말하고자 한다. 이점을 통해 낙원의 현실적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낙원이란 삶의 방향이자 궁극적으로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삶의 본질적 만족을 충족시키기 못하는 것은 도착점이 없는 방황의 마라톤일 뿐이고,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과 같다. 낙원이란 머릿속에서만 그린 이상향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목표로써 우리의 삶에 내려왔을 때, 더 이상 꿈꾸기만 하는, 입맛만 다시는, 환상만 만들어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소태산은 “현세에는 외형의 낙원은 되었으나 내면의 낙원이 적으니, 우리는 내외 겸전한 좋은 낙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한 것이다.” 라고 말하며, 정신개벽을 통해 영생의 심낙원(내면의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른 일생의 신낙원(외형의 낙원)을 온전하게 낙원으로써 살아가게 한다고 밝혔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낙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렇기에 낙원이 곧 현실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꿈꿔왔던 것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마음낙원과 물질낙원의 어느 하나도 경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더욱 완전한 낙원이 되려면 근원되는 낙원은 마음세계를 통한 종교와 도덕의 낙원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낙원도 의식주 생활을 개선하고 빈곤‧무지‧질병을 퇴치하는 등의 이러한 신낙원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한량이 없으나, 몸의 뜻을 받아 주면 끝이 없어서 결국 광대무량한 낙원이 되지 못한다. 몸 낙원은 결국 100년 안에 무너지는 일생의 낙원이지만, 마음 낙원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영생의 낙원이다. 종교적 입장에서의 낙원은 영의 방향에 치중되겠지만 그렇다고 육신생활이 반드시 부정되어질 필요는 없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에 대해 불법의 생활화를 제시하며, 도리어 잘 포섭되고 살려 써져야 한다고 말한다.
“안으로 정신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 그러나 만일 현대와 같이 물질문명에만 치우치고 정신문명을 등한시하면 마치 철모르는 아이에게 칼을 들려 준 것과 같아서 어느 날 어느 때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를 것이니, 이는 육신은 완전하나 정신에 병이 든 불구자와 같고, 정신문명만 있고 물질문명이 없는 세상은 정신은 완전하나 육신에 병이 든 불구자와 같나니, 그 하나가 충실하지 못하고 어찌 완전한 세상이라 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내외 문명이 병진되는 시대라야 비로소 결함 없는 평화 안락한 세계가 될 것이니라.”
물질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요 기술문명에 대하여도 또한 그러하다. 즉 본체의 낙에 상대적 세계를 포용하고 이를 유익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현실세계를 더욱 잘되게 하면서 절대적인 방향과 상대적인 방향을 아울러 나가면 일체의 국집에서 자유롭게 된다. 정신적 도덕적인 생활이거나 또는 의·식·주의 현실적 물질적 생활이거나 상대적인 세계를 국한 없이 유익하게 활용해 나가는데 광대무량한 낙원이 있다.
Ⅲ. 원불교 교전을 중심으로 낙원의 의미 분석
원불교가 지향하는 세계는 ‘광대무량한 낙원’ 세계라고 소태산 대종사는 개교의 동기에서 밝히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가장 궁극적인 동기인 동시에 원불교 교법이 지향하는 목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태산 대종사는 세상의 낙원을 두 가지로 말하며, 내외 겸전한 좋은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개교표어를 내세웠다. 물질 개벽과 더불어 정신개벽을 통해 과학과 종교, 물질과 정신이 아우러진 낙원 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소태산 대종사가 원불교를 개교한 동기이자 원불교의 사명이자 궁극적 목적지인 ‘광대무량한 낙원’을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낙원으로 나누어 「정전」과 「대종경」에서 관련 표현을 찾아 낙원의 의미를 정리하였다. 과연 원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낙원은 어떠한 모습인가.
분석 방법
분석 기준에 사용된 교서는 「정전」과「대종경」이다. 개교의 동기에서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광대무량한 낙원’을 중심으로 하여, 소태산이 설명한 “세상에 낙원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외형의 낙원이요, 둘은 내면의 낙원이다.” 에 따라 내면의 낙원(심낙원)과 외형의 낙원(신낙원)의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하였다. 1단계로는 내면의 낙원과 외형의 낙원에 해당되는 교서의 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2단계에 걸쳐 내용을 분류하였다. 1단계로는 ‘건설방법과 결과’로 분류하였으며, 2단계로는 방법과 결과에서 비슷한 집단끼리 묶어서 세분화 하였다. 발췌에 있어서 내면의 낙원은 “삼대력을 얻어 몸과 마음을 자유 자재하게 쓰는 자성극락이라는 마음의 낙원이다. 생사해탈과 고락 초월의 자유자재, 죄복을 임의로 할 수 있는 능력이 가능한 것이다.”, 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외형의 낙원은 “의식주 생활을 개선하고 빈곤‧무지‧질병을 물리치고, 도덕문명이 열려서 사람의 마음을 개조하고 세상을 건져서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 “서로가 잘 사는 사회 낙원을 꼽을 수 있다. 서로의 무한한 베풀음과 자비, 서로의 협동과 보호의 세상이 이룩될 때 가능하다.”을 기준으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내면의 낙원은 「정전」에서 12개, 「대종경」에서 108개, 외형의 낙원은 「정전」에서 4개, 「대종경」에서 40개의 법문을 발췌하였다. 발췌된 내용을 가지고 1단계로는 방법과 결과를 중심으로 분류하였으며, 2단계로는 중복되는 단어와 내용을 중심으로 분류하였다. 이 중 단어의 중복이나 비슷한 문장은 하나로 엮어서 정리하였다.
분석 결과
내면의 낙원(심낙원)
내면의 낙원은 위에서 언급한 기준에 따라 발췌하였다. 발췌된 내용을 중심으로 먼저 건설방법과 결과로 분류하였으며, 다음으로 방법과 결과 각각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묶어서 정리하였다. 분석 결과, 건설방법에서는 삼학의 차원으로 수양, 연구, 취사의 세 가지 측면으로 분류되었다. 건설결과에는 크게 마음의 상태와 능력의 차원으로 분류되었는데, 이 중 능력의 차원은 다시 비슷한 내용들끼리 묶어서 안심입명, 극락수용, 생사자유와 윤회해탈, 죄복주재의 총 4가지 범주로 더욱 세분화되었다.
아래 표를 통해 교서에서 발췌한 내용과 분류 결과를 제시하였다. 마지막 도식에서는 방법으로서 삼학을 통해 결과로서 얻어지는 마음의 상태와 능력을 정리하였다.
건설방법
좌선의 방법은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아무라도 행할 수 있나니, 오래오래 계속하면 (수행편 제4장 좌선법) | 수양 |
선을 할 때에는 선을 하고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수행편 제4장 좌선법) | |
염불을 오래하면 (수행편 제3장 염불법) | |
오래오래 선을 계속하여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 |
공부인이 성심으로 참회 수도하여 (수행편 제8장 참회문) | |
선정에 들든지 염불과 송경을 하든지 혹은 주문 등을 외워 (교의 16) | |
외정정은 내정정의 근본이 되고 내정정은 외정정의 근본이 되어 (수행 19) | |
오직 천만 경계 가운데에 마음을 길들여야 할 것이니 (수행 50) | |
한 마음을 밝히는 일 (인도 35) | |
도덕을 신봉하면서 염불이나 주송(呪誦)을 (변의 29) | |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 그와 같이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성리 7) | |
마음을 깨쳐 알고 (천도 26) | |
이 이치를 깨달아 (교단 36) |
이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교의편 제1장 일원상 제4절 일원상서원문) | 연구 |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수행편 제4장 좌선법) | |
각자의 마음 근본을 알고 (교의 19) | |
용심법을 부지런히 배워서 (교의 30) | |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 따라 (수행 41) | |
심전 계발의 공부가 아니면 이 욕심을 항복 받을 수 없고 (수행 60) | |
공부하는 사람이 이 도리를 알고 이 마음을 응용하여야 (인도 17) | |
지금 받고 있는 모든 가난과 고통이 장래에 복락으로 변하여질 것을 아는 까닭 (인도 28) | |
이것도 또한 인과의 이치에 따른 자연의 변화라, 이 이치를 아는 사람 (인과 6) | |
수도인이 이 사상만 완전히 떨어지면 (변의 19) | |
공부심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변의 39) | |
마음을 알아서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죄복의 이치를 알아서 (요훈 2) | |
괴로운 경계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삼대력을 얻어 나가야 (교단 8) |
천지 만물 허공 법계를 다 부처님으로 숭배하며 (교의 14) | 취사 |
지성스러운 마음으로 꾸준히 그 서원을 계속하며 (교의 17) | |
또 대조하며 챙기고 또 챙겨서 (수행 1) | |
전문 입선하는 것이 (수행 4) | |
계속하는 까닭에 법대로 꾸준히만 계속하면 (수행 11) | |
바른 공부를 부지런히 잘 행한다면 (수행 13) | |
내와 외를 아울러 진행하여야만 (수행 19) | |
항상 정당한 도리만 밟아 행하여 (수행 20) | |
희·로·애·락에 편착하지 아니하고 (수행 26) | |
작은 욕심을 큰 서원으로 돌려 (수행 36) | |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수행 37) | |
작은 데에 들이던 그 공력을 다시 큰 데로 돌리라는 것이니 (수행 37) | |
세간 가운데서 공부를 잘 하여 나아가라. (수행 41) | |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 오래오래 쉬지 않고 반복 수행하면 (수행 58) | |
듣고 또 들으며 행하고 또 행하면 (수행 61) | |
증애(憎愛)에 … 이 두 가지에 끌리지 않는 공부를 계속하면 (인도 18) | |
모든 경계를 당하여 나팔을 불 때에, 항상 좋은 곡조로 (인도 21) | |
서원과 마음 공부에 끊임 없는 공을 쌓아야 (천도 17) | |
안 뒤에는 맑게 키우고 사(邪)와 정(正)을 구분하여 행을 바르게 하면 (천도 26) | |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아니하는 공부를 하여야 (요훈 5) | |
한 생 동안만 재·색·명리를 놓고 세상과 교단을 위하여 고결하고 오롯하게 활동하고 가더라도 (교단 17) |
건설결과
마음의 상태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수행편 제4장 좌선법) |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체득 (수행편 제4장 좌선법) |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
모든 번뇌를 끊고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
적적 성성한 자성불을 깨쳐 (수행편 제8장 참회문) |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수행편 제8장 참회문) |
영원히 너의 참되고 떳떳한 본성을 여의지 아니하리라 (수행 20) |
마음 작용이 항상 진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인도 28) |
성품의 본래 이치를 오득하여 마음이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면 (변의 10) |
능력(안심입명, 극락수용, 생사자유와 윤회해탈, 죄복주재)
안심입명 (교의 14) |
안심입명
|
순역 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것 (수행 16) | |
참다운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리라 (수행 19) | |
그래야만 천만 경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큰 힘을 얻으리라 (수행 50) | |
마음 난리에 편할 날이 없는 이 세상을 평정하는 훌륭한 도원수 (수행 58) | |
곧 원만한 마음을 얻게 되리라 (인도 18) | |
수양의 마음이 여여하여 천지와 같이 심상 (인과 6) | |
그 악이 드러날 것을 겁내어 떨 일이 없으며 항상 그 마음이 편안하나니라 (인과 22) |
자성 극락에 돌아가기를 목적하나니 (수행편 제3장 염불법) | 극락수용 |
극락을 수용(受用)할 수 있나니 (수행편 제3장 염불법) | |
길이 극락 생활을 하게 되고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변의 10) | |
어느 세계에 들어가 색신을 받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길이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곧 극락이니라 (불지 16) |
시방 세계 너른 국토에 능히 고락을 초월하고 거래에 자유하며 모든 복락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할 수 있나니 (수행 56) | 죄복주재 |
아무리 큰 복이라도 그 복을 영원히 지니느니라 (인과 19) | |
죄복을 임의로 하자는 것 (요훈 2) |
불이문(不二門)이라 생사 자유와 윤회 해탈과 정토 극락이 다 이 문으로부터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
생사자유 윤회해탈 |
생·로·병·사를 해탈하여 영생의 길을 얻고 인과의 이치를 알아 혜복을 구하게 될 것 (교의 19) | |
불생 불멸의 이치와 인과 보응의 이치까지도 다 해결되느니라 (교의 27) | |
불생 불멸의 진리를 요달하여 나고 죽는 데에 끌리지 않는다 (변의 37) | |
어느 세계에 들어가 색신을 받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길이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곧 극락이니라 (불지 16) | |
육도와 사생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하나 (천도 5) | |
생사에 편안할 것이요 (천도 6) | |
윤회를 자유 하는 방법 (천도 11) | |
다생의 업보가 멸도 된다 (천도 28) | |
이 지경에 이르면 생사 업보가 완전히 멸도 되었다 하리라 (천도 28) | |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 (요훈 2) | |
생사거래에 매하지 아니하고 자유하시며 (부촉 14) |
시방 세계 너른 국토에 능히 고락을 초월하고 거래에 자유하며 모든 복락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할 수 있나니 (수행 56) | 죄복주재 |
아무리 큰 복이라도 그 복을 영원히 지니느니라 (인과 19) | |
죄복을 임의로 하자는 것 (요훈 2) |
불이문(不二門)이라 생사 자유와 윤회 해탈과 정토 극락이 다 이 문으로부터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
생사자유 윤회해탈 |
생·로·병·사를 해탈하여 영생의 길을 얻고 인과의 이치를 알아 혜복을 구하게 될 것 (교의 19) | |
불생 불멸의 이치와 인과 보응의 이치까지도 다 해결되느니라 (교의 27) | |
불생 불멸의 진리를 요달하여 나고 죽는 데에 끌리지 않는다 (변의 37) | |
어느 세계에 들어가 색신을 받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길이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곧 극락이니라 (불지 16) | |
육도와 사생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하나 (천도 5) | |
생사에 편안할 것이요 (천도 6) | |
윤회를 자유 하는 방법 (천도 11) | |
다생의 업보가 멸도 된다 (천도 28) | |
이 지경에 이르면 생사 업보가 완전히 멸도 되었다 하리라 (천도 28) | |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 (요훈 2) | |
생사거래에 매하지 아니하고 자유하시며 (부촉 14) |
건설방법 | 건설결과 | |||
삼학 | → | 마음의 상태 | 능력 | |
수양 연구 취사 |
원적무별 적적성성 |
안심입명 극락수용 생사자유 윤회해탈 죄복주재 |
위의 분석 결과를 통해 내면의 낙원을 건설하는 방법인 삼학의 차원에서의 수양, 연구, 취사를 통해 원적 무별하고 적적 성성한 마음상태와, 안심입명‧극락수용‧생사자유와 윤회해탈‧죄복주재의 능력을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설방법에 있어서 삼학은 세 가지의 측면으로 분류하였으나, 분류된 내용을 보면 한 가지에만 집중적 치우쳐있지 않고 서로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용을 분류하는 차원에서 세 가지로 정리하였으나, 수양, 연구, 취사는 세 가지가 모두 실행되었을 때, 삼학이라는 하나의 차원에서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분석 중에 분류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성불함을 얻으리라.”, “초범(超凡) 입성(入聖)의 큰일을 성취”, “점점 성불의 문이 열리는 것이니라.”, “반드시 큰 인격을 완성할 것이라.”, “대원 정각(大圓正覺)을 얻으리라.”, “범부의 잡철이 떨어지고 정금(精金) 같은 불보살을 이룰 것”, “결국 성불의 대과(大果)”와 같은 성불의 차원으로 볼 수 있었다. 결국 내면의 낙원은 삼학을 통해 성불을 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위와 같은 마음의 상태와 능력을 수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외형의 낙원(신낙원)
건설방법
외면의 낙원 또한 위에서 언급한 기준으로 분석하였다. 발췌된 내용을 중심으로 1단계로 건설방법과 결과로 분류하였으며, 2단계로 방법과 결과의 내용 중 비슷한 내용들을 묶어서 정리하였다. 결과를 살펴보면, 먼저 건설방법에서는 불법 활용, 문명의 내‧외 병진, 자리이타와 이해화합, 도덕을 갖춘 인물의 네 가지 차원으로 분류되었다. 건설결과는 결함 없는 세계, 참 문명세계, 참 도덕세계, 평화세계, 안락세계, 불국토, 밝은 세상으로 분류되었으며, 이 중 성격이 비슷한 결함 없는 세계와 참 문명‧참 도덕 세계, 평화세계‧안락세계, 불국토‧밝은 세상은 의미가 유사하므로 하나로 묶어서 정리하였다.
아래 표를 통해 분류 결과를 제시하였다. 마지막 도식에서는 방법으로서 건설방법의 4가지 차원을 통해 결과로서 얻어지는 낙원의 모습을 크게 3가지 범주로 묶어서 정리하였다.
미래의 불법 (서품 15) | 불법 활용 |
인생의 요도인 사은 사요와 삼학 팔조라, 이 법이 널리 세상에 보급된다면 (교의 35) | |
우리는 먼저 우리의 교의를 충분히 알아야 할 것이요, 안 후에는 이 교의를 세상에 널리 베풀어서 (교의 36) |
|
곧 처처 불상(處處佛像) 사사 불공(事事佛供)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니라 (전망 16) |
법을 제정할 때에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서품 8) |
문명의 내·외 병진 |
안으로 정신 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 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교의 31) |
|
내외 문명이 병진되는 시대라야 (교외 31) |
자리(自利) 주의를 버리고 이타 주의로 나아가면 (수행편 제15장 병든사회와 그 치료법) |
자리이타 이해화합 |
곧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법이니, 이와 같이 오래오래 공부하면 (인도 12) | |
큰 재주 있는 사람은 남의 재주를 자기 재주 삼을 줄 아나니 (인도 13) | |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인도 13) | |
강자와 약자가 서로 마음을 화합하여 각각 그 도를 다 하면 (인도 24) | |
먼저 나를 바루고 먼저 내가 배우고 먼저 내가 은혜를 베풀라 (요훈 14) | |
사람마다 특성이 있음을 잘 이해하여야만 (교단 4) |
제일 큰 덕으로 말하면 곧 대도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인도 2) | 도덕을 갖춘 인물 |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인도 2) | |
순리로 구하는 도와 사실로 구하는 도가 밝아질 때에는 (인도 10) | |
일체중생의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여 고해에서 낙원으로 제도하는 (인도 40) | |
여러 사람이 다 각각 세상을 지도한다고 하나 그 중에 가장 덕이 많고 자비(慈悲)가 너른 인물 (불지 1) | |
본래의 양심만 잘 지켜서 끝까지 목적 달성에 매진한다면 (교단 27) | |
한 세상을 주장할 만한 법을 가진 구세 성자(救世聖者)가 출현하여 (전망 1) | |
오직 그 회상에서 미륵불의 참 뜻을 먼저 깨닫고 미륵불이 하는 일만 하고 있으면 (전망 17) | |
음부에서 불보살들이 미리 회의를 열고 각각 책임을 가지고 나오는 법 (전망 29) |
법을 제정할 때에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서품 8) |
문명의 내·외 병진 |
안으로 정신 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 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교의 31) |
|
내외 문명이 병진되는 시대라야 (교외 31) |
자리(自利) 주의를 버리고 이타 주의로 나아가면 (수행편 제15장 병든사회와 그 치료법) |
자리이타 이해화합 |
곧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법이니, 이와 같이 오래오래 공부하면 (인도 12) | |
큰 재주 있는 사람은 남의 재주를 자기 재주 삼을 줄 아나니 (인도 13) | |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인도 13) | |
강자와 약자가 서로 마음을 화합하여 각각 그 도를 다 하면 (인도 24) | |
먼저 나를 바루고 먼저 내가 배우고 먼저 내가 은혜를 베풀라 (요훈 14) | |
사람마다 특성이 있음을 잘 이해하여야만 (교단 4) |
제일 큰 덕으로 말하면 곧 대도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인도 2) | 도덕을 갖춘 인물 |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인도 2) | |
순리로 구하는 도와 사실로 구하는 도가 밝아질 때에는 (인도 10) | |
일체중생의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여 고해에서 낙원으로 제도하는 (인도 40) | |
여러 사람이 다 각각 세상을 지도한다고 하나 그 중에 가장 덕이 많고 자비(慈悲)가 너른 인물 (불지 1) | |
본래의 양심만 잘 지켜서 끝까지 목적 달성에 매진한다면 (교단 27) | |
한 세상을 주장할 만한 법을 가진 구세 성자(救世聖者)가 출현하여 (전망 1) | |
오직 그 회상에서 미륵불의 참 뜻을 먼저 깨닫고 미륵불이 하는 일만 하고 있으면 (전망 17) | |
음부에서 불보살들이 미리 회의를 열고 각각 책임을 가지고 나오는 법 (전망 29) |
법을 제정할 때에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서품 8) |
문명의 내·외 병진 |
안으로 정신 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 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교의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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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 문명이 병진되는 시대라야 (교외 31) |
자리(自利) 주의를 버리고 이타 주의로 나아가면 (수행편 제15장 병든사회와 그 치료법) |
자리이타 이해화합 |
곧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법이니, 이와 같이 오래오래 공부하면 (인도 12) | |
큰 재주 있는 사람은 남의 재주를 자기 재주 삼을 줄 아나니 (인도 13) | |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인도 13) | |
강자와 약자가 서로 마음을 화합하여 각각 그 도를 다 하면 (인도 24) | |
먼저 나를 바루고 먼저 내가 배우고 먼저 내가 은혜를 베풀라 (요훈 14) | |
사람마다 특성이 있음을 잘 이해하여야만 (교단 4) |
제일 큰 덕으로 말하면 곧 대도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인도 2) | 도덕을 갖춘 인물 |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인도 2) | |
순리로 구하는 도와 사실로 구하는 도가 밝아질 때에는 (인도 10) | |
일체중생의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여 고해에서 낙원으로 제도하는 (인도 40) | |
여러 사람이 다 각각 세상을 지도한다고 하나 그 중에 가장 덕이 많고 자비(慈悲)가 너른 인물 (불지 1) | |
본래의 양심만 잘 지켜서 끝까지 목적 달성에 매진한다면 (교단 27) | |
한 세상을 주장할 만한 법을 가진 구세 성자(救世聖者)가 출현하여 (전망 1) | |
오직 그 회상에서 미륵불의 참 뜻을 먼저 깨닫고 미륵불이 하는 일만 하고 있으면 (전망 17) | |
음부에서 불보살들이 미리 회의를 열고 각각 책임을 가지고 나오는 법 (전망 29) |
건설결과
완전 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 (서품 2) |
결함없는 세계 |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 (교의 31) | |
세상은 자연 결함 없는 세계가 될 것이요 (교의 35) | |
참으로 크게 문명한 도덕 세계 (전망 19) |
참문명세계 참도덕세계 |
위없는 도덕이 굉장히 발전되어 인류의 정신을 문명시키고 물질 문명을 지배할 것이며 물질 문명은 도덕 발전의 도움이 될 것이니 (전망 20) | |
입신양명할 기회와 권리가 돌아와서 수양할 여가를 얻지 못할까 걱정일 것이며 (전망 20) | |
산에는 도둑이 없고 길에서는 흘린 것을 줍지 않는 참 문명 세계를 보게 되리라 (전망 20) | |
그 때야말로 큰 도덕 세계요 참 문명 세계니라 (전망 21) |
결국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세계가 될 것이니라 (교의편 제2장 사은 제3절 동포은) |
평화세계 안락세계 |
세상도 질서가 정연하고 사·농·공·상이 더욱 발달하여 다시 없는 안락세계(安樂世界)가 될 것이며 (교의편 제4장 사은 제4절 법률은) | |
건전하고 평화한 사회가 될 것이니라 (수행편 제15장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 | |
자타의 간격이 없이 서로 감화를 얻으리라 (인도 12) | |
세상은 영원한 평화를 이루려니와 (인도 24) | |
그에 따라 천지 허공 법계가 다 청정하고 평화하여질 것 (변의 29) | |
자타가 고루 화함을 얻으리라 (요훈 14) | |
동지와 동지 사이에 서로 촉되지 아니하고 널리 포섭하는 덕이 화하게 되리라 (교단 4) | |
오는 세상에는 남에게 주지 못하여 한이요, 남에게 지지 못하여 걱정이요, 남을 위해 주지 못하여 근심이 되리라 (전망 20) | |
오는 세상에는 공중사(公衆事)를 못 하여서 한이요 (전망 20) | |
오는 세상에는 죄 짓기를 싫어할 것이며, 개인·가정·사회·국가가 국한을 터서 서로 융통하리라 (전망 20) | |
장차에는 시방 삼계 육도 사생이 고루 함께 즐기게 되리라 (전망 29) |
이리 된다면 법당과 부처가 없는 곳이 없게 되며, 부처의 은혜가 화피초목(化被草木) 뇌급만방(賴及萬方)하여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불국토가 되리라 (서품 15) | 불국토 |
삼계화택(三界火宅)에 헤매이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한 가지 극락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니 (인도 2) | |
모든 중생이 고루 불은(佛恩)을 깨닫고 불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게 되나니라 (전망 15) | |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들어나는 것 (전망 16) | |
서로서로 생불(生佛)이 되어 서로 제도하며, 서로서로 부처의 권능 가진 줄을 알고 집집마다 부처가 살게 되며 (전망 18) | |
돌아오는 밝은 세상 (변의 33) | 밝은 세상 |
대명천지(大明天地) (전망 9) | |
용화 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 (전망 16) |
첫째, 결함없는 참문명세계·도덕세계이다. 이는 정신과 물질, 도학과 과학이 모두 겸전하여 병진된 세계를 말한다. 돌아오는 세상에는 발달된 물질문명과 더불어 발달된 정신문명으로 사람들이 물질문명의 지배자가 되어, 물질에 끌려 정신을 잃어 탐욕에 눈이 먼 부도덕한 시대가 아닌, 먼저 도덕을 실천하는 참문명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한다. 문명의 병진과 겸전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 없는 무결함의 시대를 도래한다. 둘째, 평화 안락한 세계이다. 이는 세상의 평화를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자타가 화(和)하여 서로 국한이 없이 융통한 세계를 말한다. 서로가 사랑하고 위해주는 평화 안락한 세계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미륵불이 출현하는 용화 회상으로 모든 곳에 부처가 사는 부처의 세계이다. 이는 크게 깨달은 자들이 모여 밝은 세상이 되는 세계를 일컫는다. 부처는 중생을 제도하며, 범부가 깨쳐 또 부처가 되어, 곳곳에 부처가 사는 佛국토이다. 막힘이 없는 성자의 교법은 은혜와 복락이 생령에게 고루 미쳐 큰 법락을 얻게 하므로 그런 방향에서 광대무량한 낙원이 된다. 이것은 道의 사회적 실현을 통해서 도달되는 낙원이요 스스로의 감사 보은생활을 통해서 그것은 무한히 광대해진다.
건설방법 | 건설결과 | |
불법 활용 | → | 결함 없는 세계 |
참 문명 세계 | ||
문명의 내‧외 병진 | ||
참 도덕 세계 | ||
자리이타 | ||
평화안락 세계 | ||
이해화합 | ||
불국토(佛國土) | ||
도덕을 갖춘 인물 | ||
밝은 세상 |
전체적으로는 내면의 낙원과 외형의 낙원은 그 모습이 다를 수 있지만, 내면의 낙원이 이루어졌을 때 외형의 낙원세계가 건설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분류 당시 개수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내면의 낙원에 대한 분류 개수는 외형의 낙원의 2배가 넘는 법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는 외형의 낙원을 건설하는 방법에서 불법 활용, 문명병진, 자리이타, 이해화합, 도덕겸비 등의 내용은 각자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의 측면이다. 즉, 이는 곧 각자가 이러한 방법을 활용했을 때, 비로소 외형의 낙원 또한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이다.
Ⅳ. 맺음말
본 연구에서는 원불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상향이자 모든 종교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는 ‘광대무량한 낙원’에 대한 분석연구를 진행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낙원을 내면의 낙원(심낙원)과 외형의 낙원(신낙원) 두 가지 차원으로 보았으며, 「정전」과 「대종경」에서 관련 표현을 찾아 분석하고 정리하였다. 원불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상향을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차원으로 설명한 소태산 대종사의 표현을 찾아 분석하였으며, 구체적인 현실 실현 방법과 나타나는 결과를 표와 도식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였다. 단순히 이상세계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우리 삶으로 끌고 내려와서 도달해야하는 목적지로 설정하고 실현 가능하도록 방법을 나타냈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낙원세계는 개인과 사회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으나, 사회구조적인 모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정신개벽에 바탕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적 변화와 수용이 이루어진 후에야 사회적인 변화와 수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아실현도 사회구조적 개혁 즉 물질개벽을 동반하지 않고는 완벽하게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개벽 곧 외형의 낙원 건설과 정신개벽 곧 내면의 낙원 건설이라는 두 가지의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광대무량한 낙원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목적이 된다.
종교적 입장에서 낙원은 영의 방향에 치중될 수밖에 없지만, 육신의 생활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분석한 바로는 그 방법이 영적인 성장에 초점이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으나,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방법은 영과 육의 쌍전이고, 물질과 정신의 조화이다. 구체적인 육신의 활용 방안은 추후 연구에서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각자에게 낙원을 건설할 수 있는 주재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희망적인 일인가. 단순한 이상향이 아닌 현실에서 건설 가능한 대해탈과 대수용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낙원이 곧 현실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꿈꿔왔던 것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며, 그것을 궁극적 도달처로 설정했을 때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낙원(심낙원)과 외형의 낙원(신낙원)은 현실의 지상 낙원을 초점으로 한다. 그러나 지상 낙원은 영원의 세계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순간에서 영원을 실현하는 것이다. 죽은 후에 극락이나 천국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위에서 극락이나 천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순간에서 영원을 보는 것이다. 지상 낙원은 현실의 순간에서 영원을 찾으면서 영원한 낙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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