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 『교리실천도해』해설서 개발
-좌산상사 해설 중심-
송종현(宋鍾現)
Ⅰ. 머릿말
Ⅱ. 대산 김대거의 『교리실천도해』 1. 『교리실천도해』구성과 의의 2.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변천과정
Ⅲ. 좌산 이광정의 『교리실천도해』 해설서 좌산의『교리실천도해』해설서의 개요 좌산의『교리실천도해』해설서의 내용과 방법
Ⅳ. 좌산의『교리실천도해』해설서의 특징과 방향성 1. 좌산의『교리실천도해』해설서의 특징 2. 좌산의『교리실천도해』출판과 교정의 방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부록(교리실천도해 해설서) |
Ⅰ. 머릿말
“성인이 나시기 전에는 도가 천지에 있고 성인이 나신 후에는 도가 성인에게 있고 성인이 가신 후에는 도가 경전에 있다.” 원불교 2대 종법사 정산종사는 「정산종사 법어」 무본편 52장 말씀이다. 경전은 도덕을 담는 그릇이요 심법을 받드는 신성한 고전이다. 경전에서 고대 성자의 도덕과 심법을 발견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자의 언행록이라는 면에서 경전은 평생 살다간 성자의 심법을 그 속에 남겨두고 있다.
원불교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少太山 朴重彬 大宗師, 1891~1943) (이하 소태산)의 대각을 통하여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樂園)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개교했다. 소태산은 28년의 제도사업을 마치고 1943년 6월 1일(원기28)에 열반의 반열에 올랐고 그의 정신을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종사(鼎山 宋奎 宗師, 1900~1962)(이하 정산종사)가 이어받아 3대 대산 김대거((大山 金大擧 宗師, 1914~1998)(이하 대산종사), 4대 좌산 이광정(左山 李廣淨 宗師, 1936~)(이하 좌산상사), 5대 경산 장응철, 6대 전산 김주원 종법사까지 그 법맥을 이어오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살아있었던 초기교단에서 6대 전산 종법사가 있는 현재의 교단까지 많은 교역자들이 혈심혈성으로 교화를 해오며, 4대종단 반열에 오르고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까지 소태산의 성불제중 제도사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과거불교에서 석가모니 재세 시 무량법문으로써 정법시대를 열었고, 석가모니의 입멸 후 상법, 말법시대를 맞이한 것처럼 원불교 또한 기존 과거 불교를 혁신함으로써 새로운 불교 생활불교로 변화를 시키고자 한 소태산의 정신이 과연 현 원불교까지 온전하게 이어져오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과거 전통종교의 역사를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개개인의 특기를 살려서 소태산이 주장한 교화, 교육, 자선의 3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고 있으나, 과연 교리에 대한 이해력과 그 실천력에 있어서 과연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 과거 불교사에서 석가 입멸 후 100년이 지나 수많은 분파불교가 형성되었듯이,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소태산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태산 재세 시 교법의 토대를 세우는 초창기와 소태산 입멸 후 정산종사 시대에는 교법의 줄기가 세워지는 시기였고, 3대 대산종사 시대에는 교법의 꽃을 피우는 시기이자 결실을 보는 시기였다. 현재 원불교를 보면, 대산종사 시대까지 부흥했던 원불교의 밝은 미래는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우리 교단 내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교리에 대한 이해와 그 실천력의 부재이다. 일찍이 대산종사는 소태산의 친견제자로써 『대종경』 초안할 때도 소태산에게 세 번 부촉을 받아 법설 수록을 하였고, 『정전대의』와 『교리실천도해』를 정산종사의 부촉을 받아 편술했다. 대산종사는 평생을 소태산이 제정한 원불교의 교리사상을 생활 속에서 활용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식화 작업을 통해 『교리실천도해』를 편저했다. 종법사를 재임하면서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많은 법문을 했을 것이나, 현재에 와서 이 교리실천도해로 현장 교화에서 교도들에게 교리를 지도하는 이가 얼마나 되며, 교화의 효과를 보고있는 교당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는 2015년 2월 부터 10월까지 좌산상사가 대산종사의 『교리실천도해』 해설한 것을 녹음한 99개의 자료를 기반으로 진행한다. 연구자는「좌산의 『교법원리도해』 해설서」가 나왔으나,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좌산상사의 해설 녹음파일은 있으나 녹취자료 조차 기록이 되어있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도해로써 도표화 된 자료가 눈으로 보기에는 편할지라도 결코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그것을 편저한 당사자, 혹은 먼저 배운이의 지도가 필요하며,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언어와 관점의 차이가 있으므로 대산종사의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본의가 왜곡될 수 있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대산종사를 모시고 살았던 좌산상사 해설 중심의 해설서의 필요성을 느꼈고, 좌산상사의 지도와 감정을 통하여 본 연구를 착수하게 되었다.
이 논문은 1장 머리말과 2장 대산 김대거의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구성과 의의, 변천과정에 대하여 알아보고 3장 좌산 이광정의 『교리실천도해』 해설서의 개요, 내용과 방법을 살펴본다. 추가로 해설서 작업에 대한 예시자료를 부록에 기술한다. 특히 2장의 변천과정을 원불교 자료실의 팜플셋 등의 다양한 자료를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 탐색하였다. 도식과 도표가 주는 언어적 제한성을 감안할 때, 변천과정의 통해 대산종사의 본의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자료수집 하는데 있어서도 초기 원본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에 박물관과 기록관리실의 도움을 받았으나 정확한 자료를 확보하는데 용이하지 않았다. 기록문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조사한 자료를 기반삼아서 좌산상사의 증언과 비교하며,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자는 이 논문이 단지 해설서 연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산종사, 정산종사를 이어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정신에 입각한 교재로써 향후 후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우리 정전에 대한 이해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해 대산종사의 『교리실천도해』 해설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Ⅱ. 대산 김대거의『교리실천도해』
현재 대산종사의 『교리실천도해』는 원불교출판사를 통해 1986년(원기71년) 6월 20일 초판 발행을 시작했으며, 2007년(원기92년) 2월 13일 재판이 진행되어 현재까지 출판이 이루어지고 있다.『교리실천도해』는 총 48장의 항목으로 1장에서 20장까지 정전의 내용이 그 주를 이루고 있으며, 21장부터 25장은 ‘최초법문(표)’로써 삼동윤리, 세게평화 삼대요소, 대종사의 십상, 불타의 팔상과 우리의 수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6장부터 37장까지는 ‘도해최초법어부연법문도해(표)’로써 최초법어, 대인군자 진퇴의 도, 세계평화의 사대운동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8장에서 48장까지 도해법문(표)로써 봉불의 뜻, 여래의 삼대원, 삼전법문, 일원화, 세계평화 삼대제언, 교단의 체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항목별로 보았을 때 여기에는 정전에 근거한 대종사님의 교법을 드러내고 과거 종교를 대표하는 기성종교들의 핵심사상과 원불교에서 유불선 핵심사상의 통합활용에 대한 내용을 나타내고 있으며, 나아가서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대한 내용을 도표화 시켜 그 실천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경전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문자로 기록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문자이전의 선사시대가 있었듯이 성자의 말씀이 곧 바로 인쇄매체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소태산이 제도사업을 활동할 때에는 기록문화는 일반화가 되어 있었고 인쇄기술이 발달이 되어있는 상태였으므로, 소태산이 대각한 바 모든 깨달음의 정수를 직접 정전에 담아 편찬을 하였으며, 교리의 대의와 핵심이 담긴 교리도를 제정하여 원불교 교리에 대한 원리와 맥락을 강령과 표어로써 쉽게 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식화 작업을 했다.
대산종사 같은 경우에도 대종사의 핵심 교리사상을 이어받아, 정전의 내용들을 한 눈에 보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 작업을 진행하여 교리실천도해를 편찬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좌산상사는 교리실천도해 취지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교리를 우리 실생활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도해를 했다.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의미가 없으므로 이 실천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교리실천도해라 했으며, 그에 따르는 표어를 실천의 종교, 세계의 광명이라 했다. 실천에서 나오는 힘이라야 위력이 있다고 늘 대산종사가 말씀을 해주시면서 실천에 강점을 두셨다.”회상하며 말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교리실천도해는 단순히 정전 해설집의 개념이 아니라, 실천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유도를 함으로써 소태산의 핵심 교리사상을 현실에서 실행시키고자 했음을 알 수 있으며, 법문의 도식화를 통하여 공부하는 대상이 출가교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가교도를 포함한 원불교 전 교도를 대상으로 발간이 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원불교 교리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고 병행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를 진행을 하면서 교리실천도해의 변천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변천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교리실천도해』를 편찬하면서 초기법문들과 현재의 최종본을 비교함으로써 저자의 본의를 알 수 있다는 점, 앞서 설명한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의의를 설명할 수 있는 뒷받침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원불교 『정전』 같은 경우도 『수양연구요론』 『육대요령』 『불교정전』 등을 통해 변천과정 거쳤고, 현재 원불교 『정전』으로써 존재를 하게 되었다. 『교리실천도해』도 원불교 교리 성립사에 있어 대산종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며 만든 자료로써,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을 통해 지금의 최종본이 나왔다. 연구자는 변천과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원불교 익산 중앙총부에 있는 기록관리실과 역사박물관에 방문하여 자료들을 수집하였고, 대산종사 재세시 시자생활을 하며 함께 법문제작과 공부를 해온 좌산상사를 찾아가 인터뷰하였다.
좌산상사는 변천과정에 대해서 “한번에 딱 안했다. 두고두고 몇 십년을 두고 수정하시고 보완을 하셨다. 그러한 얘기를 꼭 넣어야 한다. 초기에 프린트판이 있는데 내가 처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그랬다. 처음부터서 인쇄본으로 하지 않았다. 인쇄본은 교화부에 가서 A4용지로 인쇄본을 만들었다. 또 궤도종이(거치용) 로 만들어서 각 교당에도 보급을 했다. 현재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동산님이 도표로 그려서 일일이 써서 그것을 했는데, 나중에 내가 프린트판으로 만들어서 공부를 하다가 내가 교화부로 가서 인쇄본으로 만들기도 하고 또 인쇄본 만들때에 처음 (제)자 쓴 것이 경산종법사가 썼다. 내가 쓰라고 했다. 그리고 차트지에 인쇄해서 각 교당에 보급하고 했는데, 그 뒤에도 더 세밀하게 법문을 보완을 하셨더라, 내가 할 때에는 단순한 것 위주로 했었지 복잡하지 않았다.” 증언했다. 그 날 좌산상사와 함께 교리실천도해를 보면서 초기에는 단순한 도표법문만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래의 표를 예시로 보면 알 수 있다.
좌산상사가 주장한 초기법문 | ||
초기법문 이후 증보 되었다고 주장한 법문 | ||
이어서 좌산상사는 “교리실천도해는 제작은 법무실 식구들을 데리고 하셨고, 공부를 한 것은 처음에는 박제현, 김복환, 박제중, 신도형, 나(좌산상사) 그런정도였다. 혜타원 오시원님이 참석을 하시기도 했고, 그렇게 공부를 했다. 주로 한사람은 박제중, 박제현, 나(좌산상사), 김복환 그렇게 공부를 했다. 교화부에 있을 때 인쇄본으로 내가 만들어서 초판을 냈다. 초기자료는 우리 세대에 있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그 유품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초기 프린트판은 『교리실천도』라 적혀있다.” 라고 답을 했다.
①교리도해 수필 |
②최초법어부연법문 -동산종사 자필- |
③교리실천도 -프린트판- |
④차트지 교리도해 -박물관 전시- |
④인쇄본 초판 | ⑤인쇄본 재판 | ⑥2007년 인쇄본 | ⑦2019년 인쇄본 |
본 연구자는 좌산상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힌트를 얻고 총부 박물관과 기록관리실에 문의를 하여 대산종사관련 문서와 유품을 살펴보다가 좌산상사의 증언이 맞다는 근거자료를 찾게 되었다. 아래의 표를 보면 그 변천관정에 대해 알 수 있다.
표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①은 『교리실천도해』의 초기 원본인 『교리도해』로써 수필로 기록이 되었으며, 좌산 상사가 말했던 초기법문이 여기에 포함된다. ②자료는 최초법어부연법문으로 당시 대산종사가 신도안(현 삼동원)에 기거할 때 동산 종사가 자필로 법문을 내용을 받아 적은 자료이다. ③은 『교리실천도』 프린트판으로 좌산상사가 증언하대로 ‘교리실천도’라 적혀있다. ④자료가 2개인 이유는 바로 교화부에 있을 때 인쇄본 초판과 차트지 종이자료를 만들어 배급했다고 증언한 내용,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다는 증언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⑤은 ④번 인쇄본 초판과 마찬가지로 1986년(원기71년)에 재판 된 자료이다. ⑥과⑦은 각각 2007년, 2019년에 재판이 되었고, 현재까지는 2019년 인쇄본이 가장 최신본이다.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점은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변천과정이다. 일단 인쇄본은 초판부터서 현재의 최신본과 똑같은 항목수로 구성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총 48장의 항목이 서로 일치를 했으므로, 1986년부터 2019년까지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1986년부터 수정보완을 거치지 않은 최종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변화가 있었던 시기는 언제였는가?
좌산상사는 프린트판으로 공부를 할 때에 복잡한 도식보다는 단순한 도식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 증거를 찾을 방법을 생각하다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차트지를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래의 그림은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교리도해』차트지의 마지막 항목이다.
‘불타의 팔상과 우리의 수행’까지 공부하고 같이 제작을 했었다고 좌산상사가 증언한 것과 일치했다. 따라서 연구자는 변천과정에 있어서 『교리실천도』 프린트판과 초판 인쇄본 사이에 많은 법문들이 수정되고 보완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자료를 통하여 분명히 『교리실천도해』에도 변천과정이 존재했음을 증명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리실천도해』의 변천과정이 존재했다는 것은 중요한 연구자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원불교의 교리가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서 체계화 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 세밀히 알아보기 위해 기록관리실에서 관리하고 있는 ①,②,③자료를 열람하고 싶었으나, 자료의 보존 때문에 제한되어 열람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대산 김대거의 『교리실천도해』의 의의와 변천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를 통하여 대산종사가 『교리실천도해』를 편찬한 본의와 대종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실천’을 강조하며, 후대 사람들이 쉽고 접하기 편하게 도식화를 시켜서 공부의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평생을 연마하고 살아왔음을 의의와 변천과정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Ⅲ. 좌산 이광정의 『교리실천도해』 해설서
좌산상사가 『교리실천도해』 해설을 해준 시기는 2015년 2월부터 10월까지로, 총 99개의 녹음파일로 이루어져 있다. 해설은 주로 상사원에서 진행하는 아침좌선 시간이 끝나고 20분~30분 정도 진행했다. 연구자는 매일 아침마다 개인 녹음기로 좌산상사 해설을 녹음을 했으며, 추후 녹음파일마다 순번을 정하여 헷갈리지 않게 정리를 해두었고, 그 녹음파일을 상사원에 하나, 개인적으로 하나 소장하고 있다. 『교리시실천도해』는 대산종사가 정전의 내용을 간략히 표현하여 보기에는 쉬우나, 내용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좌산상사도 이에 대하여, 자신이 편저한 『교법원리도해』는 교리의 원리적인 내용을 도표화 시킨 것으로, 쉬우면서 핵심적인 것을 알려주고 있으나, 대산종사의 『교리실천도해』는 소태산이 쓰던 당시 단어들을 살려서 그 핵심 사상을 도표화 시킨 것으로 보기에는 쉽게 볼 수 있으나,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어렵기 때문에 『교법원리도해』를 먼저 공부하고 『교리실천도해』를 공부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 실질적으로 녹취작업을 끝낸 초고자료는 ‘6. 사요실천(2)’ 까지다. 연구를 진행하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좌산상사의 해설에 대한 녹취자료가 없었다는 점과 논문과 더불어 녹취작업을 함께 병행함으로써 완전한 법문의 형태가 아닌 점을 고려하여, ‘6. 사요실천(2)’ 항목까지 다루고자 한다.
『교리실천도해』 해설서의 내용 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대산종사가 제작한 『교리실천도해』 원문도표이고, 두 번째는 좌산상사가 해설하는 도표에 대한 해설 내용이다. 현재 단계에서는 녹음파일을 그대로 원문 그대로 녹취하고 있다. 문어체 작업이 완료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등의 접속사의 반복이 많고 좌산상사의 특유 사투리로 인하여 이해하지 못한 단어 등이 그대로 기술되어 문맥의 흐름에 어색함이 많이 느껴진다. 『교리실천도해』 해설서의 도표 예시는 아래와 같다.
1. 개교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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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교의 정신
오늘은 우리 정전의 제일 먼저 개교의 동기가 있으니까 개교의 정신에 대해서 먼저하고 교리도나 이런 것은 나중에 종합적으로 할게요
개교의 정신이라 그 말은 원래는 정전에는 개교의 동기 그 말씀이다. 동기라고 하는 말씀은 원불교를 열으신 취지를 일러서 개교의 동기라, 다시 말씀하면 원불교를 세우시게 된 기연의 취지를 말씀해서 개교의 동기라 한다. 그러니까 개교를 하게된 기연을 밝히신 것인데 그런데 여기에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개교하게 된 기연을 따라서 개교를 하셨지만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정신이 무엇이냐? 개교의 동기 속에 들어있는 철학이 무엇이냐? 철학적 정신, 근본 정신, 핵심 정신, 이념, 이 모두를 총칭해서 정신이라 했다. 하늘이 진리의 흐름이 흘러가는 이 방향이 기준이 짧게 잡을 수도 있고 길게 잡을 수도 있고 짧게 잡으면 하루고 길게 잡으면 일년이고, 또 더 길게 잡으면 60갑자라고 하거든 육십사계가 한 단위로 순환을 해 더 나아가면 일대겁만의 천지도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회상을 오만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회상이다. 그런 오만년만에 나타나는 정법회상이다 그런 말씀들을 늘 어른들께서 하시고 그랬다. 그래서 이 천운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돌아가고 있음에 따라서 현실적으로 어떤 변화가 오느냐 예를들면 봄이라는 천운이 왔을 때에 이 지상에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또 가을이라고 하는 천운이 왔을 때에 이 지상에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반드시 그런 변화가 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천개’는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를 하냐면 도덕문명을 의미를 하는 것이고 지벽은 과학문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문명은 삼학팔조로 마음을 개조하고 그리고 사은사요로 세상을 불은화시키고 이것을 이제 이 2가지가 핵심이여 천하없이도 삼학팔조와 사은사요와 이것이 들어가지 아니하고는 이제 세상전체가 도덕적으로 성숙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삼학팔조 사은사요 이것은 이 땅위에 도덕문명을 개벽시켜나가는 그 핵심강령 이것이 대종사님께서 지양하시는 정신이다. |
지상낙원이 실현될 수 있다하는 그런 것이 ‘개교의 정신이다.’ 하는 것을 천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나는 공부를 하면서 우리 교역자들은 세상을 진단해서 이것이 세상이 물질로 기울이면 정신을 다시 부추켜 세우고 정신으로 치닫기만 하고 물질문제는 무시하려고 하면 또 그것을 치켜 세우고 이렇게해서 물질관심과 정신관심을 이것이 똑같이 균형유지를 할 수 있도록 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어는 기관장이 되었다 기관장이 되었으면 마땅히 그 구성원들의 정신 상태도 어디로 흐르는지 예의주시하고 진단을 하고 그래가지고 그것이 잘못 흘러가고 있으면 그것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해야하고 또 그 구성원들이 그냥 정신적인 이념에만 취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경제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으면 또 그것을 부추켜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하고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자력이 타력의 근본이고 타력이 자력의 근본이다 말이여 그래서 내가 어떻게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타력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지 이제 그렇게 되면 이제 저렇게 계획대로 새로운 교당을 마련해서 교화 환경을 개선 해놓고나면 그다음에는 또 교화를 잘 해가지고 밤낮 타력에만 의지하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또 거기에서 교도들이 발심이 나가지고 자기 교당이 자립해갈 수 있도록 교도들을 발심을 유도를 해서 그래서 발전시키는 것을 자력으로 해보고 어디가든지 이 두가지 관점을 가지고 이어나가면서 그러면서 이제 교화를 할 때도 그래 교화를 할 때도 정신적으로 잘 지도를 해야 또 경제적인 문제도 수월해진다.
다시말하면 교화를 잘해야 경제적인 문제도 잘 풀려나가지 그 빚이 있는 교당들도 보면은 교화를 먼저 열심히 하는 교당이 빚을 수월하게 풀어간다. 교화를 않고 빚을 해결하려고하면 훨씬 더 힘들다. 그래서 이런 것이 일오의 오차가 없는 원리 원칙이다 그래서 그것을 천명을 해놓은 것이 개교의 정신이다. 내가 이 회상을 만들려고 수없는 세상을 드나들면서 준비를 했노라고 그러셨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거창한 일에 동참해서 이 땅위에 지상낙원이 건설되기 이전에 우리의 의무가 끝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지 우리가 들어서 지상낙원을 천개지벽을 이뤄가지고 물질개벽 정신개벽 이렇게해서 아주 도학과 과학이 참 성숙한 그런 세계를 만들어 나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고 정신이고 그런다 하는 말씀이다. |
1. 개교의 정신
오늘은 우리 정전의 제일 먼저 개교의 동기가 있으니까 개교의 정신에 대해서 먼저하고 교리도나 이런 것은 나중에 종합적으로 할게요
개교의 정신이라 그 말은 원래는 정전에는 개교의 동기 그 말씀이다. 동기라고 하는 말씀은 원불교를 열으신 취지를 일러서 개교의 동기라, 다시 말씀하면 원불교를 세우시게 된 기연의 취지를 말씀해서 개교의 동기라 한다. 그러니까 개교를 하게된 기연을 밝히신 것인데 그런데 여기에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개교하게 된 기연을 따라서 개교를 하셨지만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정신이 무엇이냐? 개교의 동기 속에 들어있는 철학이 무엇이냐? 철학적 정신, 근본 정신, 핵심 정신, 이념, 이 모두를 총칭해서 정신이라 했다. 하늘이 진리의 흐름이 흘러가는 이 방향이 기준이 짧게 잡을 수도 있고 길게 잡을 수도 있고 짧게 잡으면 하루고 길게 잡으면 일년이고, 또 더 길게 잡으면 60갑자라고 하거든 육십사계가 한 단위로 순환을 해 더 나아가면 일대겁만의 천지도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회상을 오만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회상이다. 그런 오만년만에 나타나는 정법회상이다 그런 말씀들을 늘 어른들께서 하시고 그랬다. 그래서 이 천운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돌아가고 있음에 따라서 현실적으로 어떤 변화가 오느냐 예를들면 봄이라는 천운이 왔을 때에 이 지상에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또 가을이라고 하는 천운이 왔을 때에 이 지상에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반드시 그런 변화가 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천개’는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를 하냐면 도덕문명을 의미를 하는 것이고 지벽은 과학문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문명은 삼학팔조로 마음을 개조하고 그리고 사은사요로 세상을 불은화시키고 이것을 이제 이 2가지가 핵심이여 천하없이도 삼학팔조와 사은사요와 이것이 들어가지 아니하고는 이제 세상전체가 도덕적으로 성숙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삼학팔조 사은사요 이것은 이 땅위에 도덕문명을 개벽시켜나가는 그 핵심강령 이것이 대종사님께서 지양하시는 정신이다. |
지상낙원이 실현될 수 있다하는 그런 것이 ‘개교의 정신이다.’ 하는 것을 천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나는 공부를 하면서 우리 교역자들은 세상을 진단해서 이것이 세상이 물질로 기울이면 정신을 다시 부추켜 세우고 정신으로 치닫기만 하고 물질문제는 무시하려고 하면 또 그것을 치켜 세우고 이렇게해서 물질관심과 정신관심을 이것이 똑같이 균형유지를 할 수 있도록 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어는 기관장이 되었다 기관장이 되었으면 마땅히 그 구성원들의 정신 상태도 어디로 흐르는지 예의주시하고 진단을 하고 그래가지고 그것이 잘못 흘러가고 있으면 그것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해야하고 또 그 구성원들이 그냥 정신적인 이념에만 취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경제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으면 또 그것을 부추켜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하고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자력이 타력의 근본이고 타력이 자력의 근본이다 말이여 그래서 내가 어떻게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타력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지 이제 그렇게 되면 이제 저렇게 계획대로 새로운 교당을 마련해서 교화 환경을 개선 해놓고나면 그다음에는 또 교화를 잘 해가지고 밤낮 타력에만 의지하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또 거기에서 교도들이 발심이 나가지고 자기 교당이 자립해갈 수 있도록 교도들을 발심을 유도를 해서 그래서 발전시키는 것을 자력으로 해보고 어디가든지 이 두가지 관점을 가지고 이어나가면서 그러면서 이제 교화를 할 때도 그래 교화를 할 때도 정신적으로 잘 지도를 해야 또 경제적인 문제도 수월해진다.
다시말하면 교화를 잘해야 경제적인 문제도 잘 풀려나가지 그 빚이 있는 교당들도 보면은 교화를 먼저 열심히 하는 교당이 빚을 수월하게 풀어간다. 교화를 않고 빚을 해결하려고하면 훨씬 더 힘들다. 그래서 이런 것이 일오의 오차가 없는 원리 원칙이다 그래서 그것을 천명을 해놓은 것이 개교의 정신이다. 내가 이 회상을 만들려고 수없는 세상을 드나들면서 준비를 했노라고 그러셨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거창한 일에 동참해서 이 땅위에 지상낙원이 건설되기 이전에 우리의 의무가 끝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지 우리가 들어서 지상낙원을 천개지벽을 이뤄가지고 물질개벽 정신개벽 이렇게해서 아주 도학과 과학이 참 성숙한 그런 세계를 만들어 나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고 정신이고 그런다 하는 말씀이다. |
위의 자료와 같이 도표와 해설로써 구성을 하여 『교리실천도해』해설서를 만들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녹취작업과 함께 좌산상사에게 문답을 통하여 검수과정을 받고 수정 보완작업을 계속 진행하고자 한다.
Ⅳ. 좌산의『교리실천도해』해설서의 특징과 방향성
『교리실천도해』는 소태산의 대각 후 열반에 이르기까지 일생의 경륜과 포부를 담은 『정전』의 내용을 도표화된 자료로써, 대산종사는 교리에 대한 체계를 도표로써 이해하고 분석하며, 원불교의 핵심 교법에 대한 체계성을 확립하고 교화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산종사가 평생을 연마하여 만든 『교리실천도해』의 구성과 변천과정을 통해 대산종사의 본의와 소태산의 교법정신을 체 받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시대에 들어옴에 있어서 도표화된 교재로써 교리이해를 하는데에 어려움이 존재하기에 좌산상사의『교리실천도해』 해설서는『교리실천도해』에 수록되어 있는 교리이해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대종사 당대부터 사용해온 단어를 그대로 이어서 사용함으로써 법문에 대한 원본성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산종사가 『교리실천도해』를 편저하여 가르치던 시기는 1970년에서 1990년대까지이나, 좌산상사가 『교리실천도해』해설을 하던 시기가 2010년대라는 점에서 비교적 현시점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에 근거하여 교리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으므로, 현시대에 맞는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좌산상사가 주장하는 교리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어떠한 언어와 관점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21세기의 학문탐구는 해석학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해석학이란 탐구의 대상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떠한 해법을 제시하느냐에 관심을 집중하는 연구방법론이다.그렇기에 『교리실천도해』를 해설한 좌산상사의 해설을 근거한 내용이나, 사용한 언어 등은 좌산상사가 교리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현대사회현상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특징들을 통해 향후 『교리실천도해』해설서의 출판 방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종이로 이루어진 1차자료의 출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적으로 좌산상사와 문답감정을 통해 녹취자료에 대한 검수작업이 이루어져 1차 자료로서 종이로 구성된 해설서가 나와야 한다. 후에 함께 공동작업을 하는 연구인들이 1차 자료를 통하여 좌산상사의 『교리실천도해』해설서에 대한 원본성 유지가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에 초점을 둔 온라인 e-book으로 『교리실천도해』해설서를 출판을 해야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첨단 기술들이 발전되어 있는 현시대에 맞게 『교리실천도해』해설서를 온라인으로 출판하여 접근성을 높여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쉽게 접하며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e-book으로써 준비가 되어야한다. 마지막으로 녹음파일과 결합한 온라인 컨텐츠로써 자료가 마련되어야 한다. 좌산상사가 『교리실천도해』를 직접 해설을 한 녹음파일은 그 자체로써 희소성이 높다. 후에 좌산상사 열반 후에도 녹음파일의 음성은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그 음성을 기반으로하여 e-book과 결합한 하나의 컨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글로써 있는 교리보다, 직접 해설을 한 좌산상사의 음성과 함게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생동감 있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서 AI 딥러닝 기술을 통하여 실제 좌산상사를 마주하며 공부하는 컨텐츠의 방향도 구상을 해보아야 한다.
반면에 본 연구를 통하여 바라본 교정에 대한 제한점은 다음과 같다.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좌산상사의 해설 녹음파일 중 ‘9.삼학공부2’~‘18. 팔조-2’ 사이의 녹음파일이 유실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는 추후에 상사원에 직접 찾아가 백업되어 있는 녹음파일을 찾아서 보충해야 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녹음파일 99개 중에서 녹취작업이 이뤄진 자료는 7개만 진행되었고, 나머지 녹취자료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머지 93개의 녹취작업은 추후 업문 분담을 통하여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으며, 자료가 일관성이 있게 준비될 수 있도록 좌산상사의 지도와 검수과정을 통해 진행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교리실천도해』에 대한 좌산상사의 해설을 녹취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듣는 느낌을 주기 위해 좌산상사의 본 말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녹취작업 진행한 관계로 문장의 흐름에 있어서 반복되는 단어와 특유의 사투리 사용으로 인한 문장이해의 어려움과 문단과 문단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에 있어서 최대한 좌산상사의 해설에 대한 본의는 살리면서 표준어에 기반한 문서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과거에 쓰이던 단어나, 문법이 현재에서는 쓰이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시대에 맞는 맞춤법과 문구, 문장으로 설명하는 변환작업이 필요하다. 다음으로『교리실천도해』에 대한 좌산상사의 녹음파일은 2015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해설서 작업에 있어서 좌산상사의 추가적인 수정과 보완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좌산상사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교법을 어떻게 현시대에 맞게 현실구현을 시킬 수 있는가?’ 이다. 2015년에 해설한 녹음파일이 가장 최신이라도 6년의 시간이 지난 만큼 사회도 그 시간을 따라 급변하기 때문에 그 시대상황에 맞는 해설에 대한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좌산상사의 나이와 건강을 고려했을 때, 그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녹음과 감수를 받는 과정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좌산상사의 나이는 86세로 이미 고령인 상황이다. 그 말은 온전하게 교정과 검수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리실천도해』해설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좌산상사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영원히 미완성의 상태에서 마무리가 될 수 있으므로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1차 자료제작이 이루어져야 한다.
좌산상사의 『교리실천도해』해설서는 분명 미완성적인 과도기적 성격을 띄고 있다. 이러한 연구 작업을 통하여 지속적인 시대변천상황을 통하여 그 시대에 알맞게 교리를 적용하여 사회현상에 대한 종교적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는 제 4차 산업혁명으로써 빅 데이터, 블록체인 등 단순한 정보수집이 아니라 거대한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체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을 발전으로 생활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고 다양한 신생 일자리가 생기고 누구나 정보나, 지식의 축적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인문학적 도덕적 지식에 대한 감소가 우려되고, 오히려 사이버 관련 범죄증가와 산업구조 개편 등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고용불안 등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맞춰서 『교리실천도해』해설서가 소태산이 주장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라는 개교정신을 구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하며, 그 방법으로는 종이로 이루어진 책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된 하나의 컨텐츠로써 활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더 많은 대중에게 우리 교법에 대한 폭넓은 접근성과 이해도를 높여 누구든지 생활속에서 교법을 실천하는 공부를 통해 소태산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Ⅴ. 맺음말
본 논문에서는 대산종사의 『교리실천도해』 해설서 연구를 해야하는 필요성과 목적, 그 구성에 대하여 살펴보고 좌산상사의 해설 중심으로 어떠한 내용과 방법으로 해설서 연구를 할 것인지? 알아보았다. 본 연구를 진행을 하는데 있어서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연구는 시작단계로써 완성본이 나온 상태가 아니다. 아주 기초적인 작업인 녹취작업부터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본 논문은 대산상사의 『교리실천도해』 본의를 드러내는 대장정의 시작을 드러내는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될 수 없다. 본 연구는 후대 법도반들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써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족한 부분들과 필요한 자료들을 계속 수집하고 정리하여 향후 대학원 졸업할 때 반드시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연구에 착수하기로 했다.
먼저, 이 연구가 완성본이 되기위해 본 논문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기본자료와 시간의 부족함이다. 가지고 있는 좌산상사의 녹음파일은 99개로써 그 중 녹취를 한 초고 자료는 총 7장에 불과하다. 이는 해설서를 만들기 위한 기본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녹취만 한 초고자료는 앞으로 계속 좌산상사와 문답을 통해 검수과정을 거쳐서 보완을 해야하므로, 녹취자료 하나 하나가 완벽한 법문이 되어 이 논문에 실리기까지 시간이 부족했다. 이에 대하여 본 연구자는 추후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졸업까지 계속 이 연구를 진행하여 녹취자료에 대한 수정보완 작업을 통해 법문으로써 역할을 할 수 있는 완성본을 만들 예정이다.
다음으로 인력의 부족함이다. 99개나 되는 녹음파일을 혼자서 녹취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이에 대하여, 본 연구자는 뜻을 함께하고자 하는 동지들과 분업을 통하여 녹취 작업 및 문어체 정리작업을 실행하고자 한다. 연구자만 혼자 이 업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명이 분업을 통해 진행하면서 보다 많은 도반들이 대산종사의 경륜을 이해하고 실천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결과적으로 소태산의 정신을 체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분업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분업 활동에도 제한점이 있다. 바로 해설을 한 당사자의 생각이 아니라 각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앞서 이달원 교무의 「좌산의 『교법원리도해』해설서 개발」에서도 나타난 문제이다. 당시 혼자서 모든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분업을 통하여 녹취를 한 결과, 일관성 있는 자료가 나오지 않아 수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본 연구자는 녹취담당과 문어체 정리 담당팀을 구성해서 본 연구자가 팀장으로써 좌산상사의 해설에 대한 원본성 유지와 교법에 대한 객관성을 지켜 일관된 자료화과정을 이루고자 한다. 이 방법은 추후에도 계속 좌산상사와 각 팀원들과 함께 피드백을 통하여 계속 개선을 해나가고자 한다.
이상의 한계에 대해서 기존에 상사원 자체에서든지 또는, 그 밑에서 간사나, 교무생활을 역임한 교무들이 법문 녹취하는 그 기초작업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점과 기초자료에 대한 준비가 없었고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분명 교단의 상사를 모시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법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는 의미이고, 법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은 그것을 법문화하는 작업이 진행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녹취작업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의무로써 진행하지 못하여 기초자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본 연구자도 그 당시에 차마 녹취를 해야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으며, 주변에서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 많은 아쉬움과 함께 반성을 하게 된다. 앞서 머리말에서도 [성인이 가신 후에는 그 도가 경전에 있다]라고 정산종사가 무본편 52장에서 밝힌 것처럼 역대 종법사를 역임한 분이나, 법위등급이 종사위 이상 되는 어른에 대해서는 그 수시법문이나, 일화 등이 항상 문서기록으로써 남겨야하는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있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든 종교는 신앙의 대상과 그를 향한 종교적 행위들에 대한 이야기와 기록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듬어지고 체계화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예비교무 시절부터 기록물에 대한 필요성과 실천성을 함양하는 교육시스템 체계가 구축이 되어야 한다. 원불교 교서에는 정전, 대종경, 불조요경, 예전, 정산종사법어, 교사, 성가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초창기 때부터 진행되어온 기록문화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원불교 교법이 있게 된 것이다. 법문 하나하나가 주옥같고 보물같이 여기며 수필로 기록하고 몸소 실행하면서 체득하는 공부를 해야한다. 초창기와 달리 현재의 기록문화는 글로써 남기는 것보다는 영상이나, 사진으로써 기록을 대체하고 있다. 물론 영상과 사진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좀 더 생생하고 접근성 있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글로써 기록하고 실지로 실천 공부를 하던 그 시절의 가치와 비교를 했을 때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반문해본다. 이토록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장비가 구축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리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은 그 때 그 때 기록된 자료에 한해서 만족하고 실지로 실천하는 공부가 연결되지 않는 지행불일치, 언행불일치, 내외불일치, 은현불일치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앎에서만 그친다면 그것은 지식일 뿐, 지혜 광명이 될 수 없다. 나보다 먼저 연마를 했던 선지자한테 문답을 통하여 그 지혜를 얻고 그것을 실천해보며, 다시금 후진에게 그 지혜를 연마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그러한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것을 통하여 깨달은 바를 글로써 정리하여 기록물로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나 혼자만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까지 변화의 길로 나아가 결국 소태산이 원불교를 개교한 동기처럼 파란고해 일체생령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방법이자, 전무출신들이 해야만 하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자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그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전무출신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참 고 문 헌
경전 및 사전류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대사전』, 원불교 출판사, 2014
원불교정화사 편, 「정전」, 『원불교전서』, 1994
원불교정화사 편, 「정산종사법어」, 『원불교전서』, 원불교출판사, 1994
대산종사법어 편, 『대산종사법어』, 원불교출판사, 2014
2. 국문 단행본
류성태, 『정전변천사』, 원불교 출판사, 2010,
고시용, 『원불교교리성립사』, 한국학술정보, 2012
3. 학위논문 및 연구논문
이재민, 『좌산의 「교법원리도해」 해설서 개발 – 2013년 이후 해설을 중심으로』,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0년
4. 녹음파일 및 녹취자료
녹음파일
『교리실천도해』 관련 좌산상사 문답내용, 2021년 4월 19일
0.교리실천도해에 대하여, 2015년
1.개교의 정신, 2015년
2.교법의 선언, 2015년
3.사중보은(1), 2015년
4.사중보은(2), 2015년
5.사요실천(1), 2015년
6.사요실천(2), 2015년
7.교리도-신앙,수행, 2015년
8.삼학공부, 2015년
9.삼학공부2, 2015년
18.팔조-2, 2015년
19.팔조-3, 2015년
- 교강9조-1~5, 2015년
- 교강9조-1~3복습, 2015년
- 교강9조-4, 2015년
- 교강9조-5~6, 2015년
- 교강9조-7~8, 2015년
- 교강9조-9, 2015년
- 교강9조 전체적 복습, 2015년
- 교강9조 전체적 복습2, 2015년
- 교강9조 전체적 복습3, 2015년
- 상시응용6조공부 1조, 2015년
- 상시응용6조공부 2~3조, 2015년
- 상시응용6조공부 4~5조, 2015년
- 상시응용6조공부 5~6조, 2015년
- 이대훈련법, 2015년
- 이대훈련법 정기훈련(~회화), 2015년
- 이대훈련법 정기훈련(~조행), 2015년
- 이대훈련법 상시훈련, 2015년
- 생활의 육대강령, 2015년
- 육대강령 보충설명, 2015년
- 법위-3급(초심, 발심, 대체), 2015년
- 법위-3위(세밀, 합덕, 만능), 2015년
- 법위-3위 복습, 2015년
- 법위-3급 끝까지(~특신급), 2015년
- 법위-3급 끝까지(~상전급), 2015년
- 법위-3위 끝까지(항마위), 2015년
- 법위-3위 끝까지(출가위), 2015년
- 법위-3위 끝까지(여래위), 2015년
- 신분검사, 2015년
- 신분검사(보충), 2015년
- 삼동윤리, 2015년
- 삼동윤리2, 2015년
- 세계평화의 삼대요소, 2015년
- 세계평황의 삼대요소(보충), 2015년
- 대종사님의 십상, 2015년
- 대종사님의 십상2, 2015년
- 대종사님의 십상3, 2015년
- 불타의 8상과 우리의 수행, 2015년
- 최초법어1, 2015년
- 최초법어2, 2015년
- 최초법어3, 2015년
- 최초법어4, 2015년
- 수신의 도, 2015년
- 재가의 도, 2015년
- 치국의 도1, 2015년
- 치국의 도2, 2015년
- 불법의 수신, 2015년
- 유교의 수신1, 2015년
- 유교의 수신2, 2015년
- 대인군자 진퇴의 도, 2015년
- 대인군자 진퇴의 도2, 2015년
- 각 종교의 수신, 2015년
- 각 종교의 수신2, 2015년
- 각 종교의 수신3, 2015년
- 원불교 유불선 원만, 신앙, 수행, 2015년
- 원불교 유불선 원만, 신앙, 수행2, 2015년
- 세계평화 삼대운동(기1-1), 2015년
- 세계평화 삼대운동(기1-2), 2015년
- 세계평화 삼대운동(기2), 2015년
- 봉불의 뜻, 2015년
- 여래의 삼대원, 2015년
- 삼전법문, 2015년
- 삼전법문 보충, 2015년
- 삼전법문 보충2, 2015년
- 육도 육학 육장, 2015년
- 육도 육학 육장2, 2015년
- 육도 육학 육장3, 2015년
- 육도 육학 육장4, 2015년
- 육도 육학 육장5, 2015년
- 육도 육학 육장6, 2015년
- 일원화, 2015년
- 인생의 좌표, 2015년
- 유아교육, 2015년
- 유아교육2, 2015년
- 인류흥망의 삼대원인, 2015년
- 인류흥망의 삼대원인2, 2015년
- 세계평화 삼대제언, 2015년
- 교단의 체제, 2015년
- 교단의 체제2, 2015년
녹취자료
0.교리실천도해에 대하여
- 개교의 정신, 2021
- 교법의 선언, 2021
- 사중보은(1), 2021
- 사중보은(2), 2021
- 사요실천(1), 2021
- 사요실천(2), 2021
교리실천도해에 대해서
이제 교법원리도를 마쳤으니까 교리실천도해 가지고 오늘부터 공부를 하는데 교법원리도는 우리 교법의 원리를 원리적으로 도해를 한 것이라면 교리실천도해는 교리를 우리 실생활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도해를 했다. 도식을 해서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내가 모실 때에 이 작업을 한참 하셨다. 그 때 이것을 하시면서 이 실천이라는 말을 기어이 넣으셨다. 이것을 압축적으로 하자고
‘교리도해’라 이렇게 말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것이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이 실천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교리실천도해라 이렇게 했다는 취지와 그에 따르는 표어를 실천의 종교, 세계의 광명 이렇게 해주셨다.
앞으로의 시대는 말만 가지고 되는 시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실천을 해서 언행일치가 되고 은현일치가 되고 내외일치가 되고 지행일치가 되고 이렇게 직접 실천을 하게 되면 자연히 세계인심이 그쪽으로 기울여져서 온 세계의 인류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에 [세계의 광명이다]
그리고 실천에서 나오는 힘이라야 이것이 위력이 있다 늘 그 말씀을 해주시면서 교리실천도해라 이렇게 그래서 실천에 강점을 두시고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이게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거 모든 종교의 교의도 총 망라해가지고 우리 원불교 교리정신하고 일맥상통하는 의미적으로 통하는 것들을 다 열거해서 다 여기다가 제시를 해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양식이 많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다 이렇게 한다기보다 조금 직접 교리하고 관계되는 단순한 것부터, 교리 순서대로 정전 목차대로 먼저 이렇게 하고 그리고 심화하는 것은 그 다음에 하는 방향으로 하기로 하겠다.
1. 개교의 정신
오늘은 우리 정전의 제일 먼저 개교의 동기가 있으니까 개교의 정신에 대해서 먼저하고 교리도나 이런 것은 나중에 종합적으로 할게요
개교의 정신이라 그 말은 원래는 정전에는 개교의 동기 그 말씀이다. 동기라고 하는 말씀은 원불교를 열으신 취지를 일러서 개교의 동기라, 다시 말씀하면 원불교를 세우시게 된 기연의 취지를 말씀해서 개교의 동기라 한다.
그러니까 개교를 하게된 기연을 밝히신 것인데 그런데 여기에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개교하게 된 기연을 따라서 개교를 하셨지만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정신이 무엇이냐? 개교의 동기 속에 들어있는 철학이 무엇이냐? 철학적 정신, 근본 정신, 핵심 정신, 이념, 이 모두를 총칭해서 정신이라 했다.
이념이나 철학이나 취지나 이런 것을 이제 총칭해서 정신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 개교하게 된 외적 개교가 아니고 개교를 하시게된 내적정신을 말한다.
그래서 여기에 개교의 정신에는 두가지 맥락이 있다. 하나는 물질개벽 하시려는 것과 하나는 정신개벽을 하시려고 하는 것 2가지이다. 그래서 물질개벽이다 하는 것은 여기에서 원래 천개지벽이다.
이 말씀이 근세에 각 종교사상에서 최수운 선생이나 강증산 선생이나 [앞으로 돌아오는 세상이 개벽이 된다] 하는 예시를 많이 하시면서 이 개벽사상을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이 개벽사상이 내용이 천개지벽이라, 하늘도 열리고 또 ‘벽’자도 ‘열릴 벽’ 자인데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천운이 열린다는 말씀이고 [지벽]이라고 하는 말씀은 현실이 그만큼 열려간다 그런데 천운이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시간적 성격이고 지벽이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공간적 상황을 지금 말하는데 그런데 이것이 이제 이것을 일러서 천지도수를 따라서 온다. 다시말하면 천지도수라는 것은 어렵게 생각을 하니까 어렵게 이해하려고 하는데 하늘도 밤과 낮이 있는 것 이것이 천지도수다.
하늘이 진리의 흐름이 흘러가는 이 방향이 기준이 짧게 잡을 수도 있고 길게 잡을 수도 있고 짧게 잡으면 하루고 길게 잡으면 일년이고, 또 더 길게 잡으면 60갑자라고 하거든 육십사계가 한 단위로 순환을 해 더 나아가면 일대겁만의 천지도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회상을 오만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회상이다. 그런 오만년만에 나타나는 정법회상이다 그런 말씀들을 늘 어른들께서 하시고 그랬다. 그래서 이 천운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돌아가고 있음에 따라서 현실적으로 어떤 변화가 오느냐 예를들면 봄이라는 천운이 왔을 때에 이 지상에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또 가을이라고 하는 천운이 왔을 때에 이 지상에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반드시 그런 변화가 온다는 말이다.
그런 변화가 오는데 이것이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천운이 열린다는 말씀이고 천운이 열림에 따라서 지상에 또 변화가 온다는 것을 이것을 천개지벽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천개는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를 하냐면 도덕문명을 의미를 하는 것이고 지벽은 과학문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문명은 삼학팔조로 마음을 개조하고 그리고 사은사요로 세상을 불은화시키고 이것을 이제 이 2가지가 핵심이여 천하없이도 삼학팔조와 사은사요와 이것이 들어가지 아니하고는 이제 세상전체가 도덕적으로 성숙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삼학팔조 사은사요 이것은 이 땅위에 도덕문명을 개벽시켜나가는 그 핵심강령 이것이 대종사님께서 지양하시는 정신이다.
그 말씀으로 그다음에 과학문명은 과학이 발달되면 기술이 발달되고 생산이 되고 그렇게해서 의식주 생활을 개선하고 그래가지고 빈곤 질병 무지를 물리치자! 그것을 의식주 생활을 개선하고 우리 생활 내용상에서는 가난이라든지 질병이라든지 무지라든지 이것이 현대사회의 삼대 불행이고 삼대 취약점이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지벽이 되지 않아서 과학문명이 발달되지 않아서 오는 불행 이것을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지금도 문명의 혜택이 미치지 못해서 가난하다. 가난하다 보니까 질병이 만연해졌다. 그런데다가 식민통치사회라서 가르치지 않아서 무지하다. 이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온갖 불행들이 구석구석 도사리고 있어서 이것은 과학문명으로서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과학문명을 발전시키고 또 도덕문명을 발전시키고 이것이 그래서 세상을 도덕적으로 참 은혜로운 세상을 만들고 또 과학을 발전시켜서 우리 현실생활을 풍요롭게 이렇게 해나가고 그래서 우리 생활문화를 발전시키고 이것을 이제 성격으로 따지면 이것은 천개는 내고 현실은 외적인 것이고 그리고 이제 내적인 것을 잘 다스리면 영생의 심낙원이고 밖으로는 일생의 신낙원이고 그래서 육신의 낙원과 마음의 낙원 이 2가지를 함께 지양하시고자 하는 것이 개교의 정신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엇으로 하려고 하셨는냐? 하나는 진리적인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하려고 하셨다. 이것이 큰 강령이다.
그래서 이제 대종사님께서 현실진단 또 앞으로 돌아오는 세상의 진단을 물질문명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둬도 과학에 맡겨버려도 나날이 발전해서 휘황찬란하게 발전이 되고 있는데에 비해서 우리의 정신세계는 그 과학의 위력 앞에 더 왜소해진단 말이다. 자꾸 더 왜소해져가지고 줄어들어가지고 물질세력에 굴복을 해버린다. 굴복을 해가지고 물질세력은 강성해지고 정신세력은 이것이 나날이 나약해져가지고 그것을 비유를 하기를 물질의 노예로 전락했다고 우리 정신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했다 이렇게 이제 대종사님께서는 진단을 하신거다.
진단을 하셔서 물질세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신세력을 확장시켜서 키워나가야 한다. 그 키우려면 무엇으로 해야하냐? 진리적종교의 신앙하고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이렇게해서 과학문명에 대응을 해서 균형발전을 도모하려고 하셨다. 정신문명과 과학문명 이 두가지를 균형발전 시키려고 하신 것이 그러므로서 거기에 지상낙원이 비로서 결과적으로는 이 땅에 실현이 될 수 있다.
지상낙원이 실현될 수 있다하는 그런 것이 ‘개교의 정신이다.’ 하는 것을 천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나는 공부를 하면서 우리 교역자들은 세상을 진단해서 이것이 세상이 물질로 기울이면 정신을 다시 부추켜 세우고 정신으로 치닫기만 하고 물질문제는 무시하려고 하면 또 그것을 치켜 세우고 이렇게해서 물질관심과 정신관심을 이것이 똑같이 균형유지를 할 수 있도록 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어는 기관장이 되었다 기관장이 되었으면 마땅히 그 구성원들의 정신 상태도 어디로 흐르는지 예의주시하고 진단을 하고 그래가지고 그것이 잘못 흘러가고 있으면 그것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해야하고 또 그 구성원들이 그냥 정신적인 이념에만 취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경제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으면 또 그것을 부추켜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하고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교당에 가서도 물론 교화 정신적인 작업을 한다. 하지만 그 교당에 있어서 경제적 자립을 어쩌든지 추구를 해야한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경제적 자립을 추구를 해야지, 이 두 가지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중에는 나머지 하나도 부실해질 수 있기 때문에 온전한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 육신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해야 육신건강도 지탱할 수도 있다고 하는 이 대전제를 이것을 개인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을 다스리던지 기관을 다스리던지 사회구조속에서 이것을 둘을 아울러서 어디에 기르냐 해서 이것을 밸런스 유지를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 나를 그렇게 길러가야 한다.
지금 교당이 어려운 실정에 있어가지고 참 어렵게 어렵게 출발을 했는데 가서 이제 노력을 해가지고 또 그 자리에서 교화 환경으로서 너무 열악하니까 그것을 개선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많은 타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자력이 없을 때에는 별 수 없다. 타력을 이끌어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도 이제 내가 마음가운데 하려고하는 강한 자력이 있어야 충만된 자력이 있어야 타력도 이끌어 낼 수 있지,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고 앉아있으면 타력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자력이 타력의 근본이고 타력이 자력의 근본이다 말이여 그래서 내가 어떻게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타력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지 이제 그렇게 되면 이제 저렇게 계획대로 새로운 교당을 마련해서 교화 환경을 개선 해놓고나면 그다음에는 또 교화를 잘 해가지고 밤낮 타력에만 의지하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또 거기에서 교도들이 발심이 나가지고 자기 교당이 자립해갈 수 있도록 교도들을 발심을 유도를 해서 그래서 발전시키는 것을 자력으로 해보고 어디가든지 이 두가지 관점을 가지고 이어나가면서 그러면서 이제 교화를 할 때도 그래 교화를 할 때도 정신적으로 잘 지도를 해야 또 경제적인 문제도 수월해진다.
다시말하면 교화를 잘해야 경제적인 문제도 잘 풀려나가지 그 빚이 있는 교당들도 보면은 교화를 먼저 열심히 하는 교당이 빚을 수월하게 풀어간다. 교화를 않고 빚을 해결하려고하면 훨씬 더 힘들다. 그래서 이런 것이 일오의 오차가 없는 원리 원칙이다 그래서 그것을 천명을 해놓은 것이 개교의 정신이다.
이것이 이제 대종사님께서 추구하시는 지상낙원 이 지상낙원을 이 땅에 건설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간절히 주세불의 자비경륜의 원력을 세우고 당신 한 생에 준비해가지고 오셨다 그러지 않으셨다.
내가 이 회상을 만들려고 수없는 세상을 드나들면서 준비를 했노라고 그러셨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거창한 일에 동참해서 이 땅위에 지상낙원이 건설되기 이전에 우리의 의무가 끝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지 우리가 들어서 지상낙원을 천개지벽을 이뤄가지고 물질개벽 정신개벽 이렇게해서 아주 도학과 과학이 참 성숙한 그런 세계를 만들어 나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고 정신이고 그런다 하는 말씀이다.
2. 교법의 선언
오늘은 교법의 총설에 대한 내용이다.
교법의 총설에 대해서는 아주 대산상사님께서도 이것을 중요시하고 교법을 선언할 때에 3차 중임을 하시고 교법의 선언이라고 해서 발표를 하시고 그랬다.
그런데 이것을 교법의 총설이라고 하셨는데 교법의 총설이 일종의 이 세상에 ‘우리 교법이 이러한 것이다.’ 선언을 하는 성격이 그 말씀이다.
단순히 발표한다는 정도가 아니고 ‘앞으로 우리의 교법은 이러한 것이다.’ 하고 천하에 공시한 그러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 교법은 어떻게 생겼느냐 일원의 원만한 진리에 입각해서 일원의 진리는 그 체성 자체가 원만구족 지공무사다. 그래서 원만이라고 하는 것이 포인트다 그 원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속에 모든 내용이 함축적으로 다 갖추어 있는 것을 원만이라고 그래!
어느곳 하나에도 하자가 있질 않어 하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조금 미흡하다 하는 것이 없어 그래서 그러한 것을 원만이라고 하고 어디에 일그러진 것도 없어 그래서 순수한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고 그것이 원만한 모습이고 또 원만하게는 모든 것이 갖추어 있는 모습이고 그런 모습인데 그 일원상의 진리가 진리적 체성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 일원상의 원만한 진리에 근거해가지고 삼학팔조와 사은사요의 교리체계를 형성하셨다
다시 말씀하면 삼학팔조와 사은사요를 실행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원의 체성에 합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삼학팔조와 사은사요는 천하의 대도요 만고의 대법이다. 천하모든 사람들이 다 거닐어 가야 할 것이고 언제나 거닐어 갈 것이다.
그래서 이 ‘대도’라 하는 말과 ‘대법이다’ 하는 말과 이것이 내용상에서는 같은 말이기는 하지마는 약간 좀 그 차이를 밝힌다고 하면 대도라고 하는 것은 다녀야 할 길을 밝힌 것이고 여기에 대법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고 여기는 길을 다듬어 놓은 것이고 이점에서 조금 차이는 있으나 방법이라고 하는 것도 나아갈 길이고 대도라고 하는 것도 또한 일 위해서 해결해야 방법적 요소가 다 거기에 있단 말이야 서울로 가려면 그 길로 가야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서울가는 사람이 서울가는 길을 택하지 않으면 서울가는 방법을 바르게 선택한게 아닌 것이다 그래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는 길을 다듬었다는 말이고 법은 방법적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해하면 좋다.
그래가지고 ‘삼학팔조는 만생령 부활의 원리요 대도이다’ 이 말은
삼학팔조가 부실하면 만생령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삼학팔조가 부실하면 만생령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다. 때에 따라서는 죽음에 직면하기도 하고 죽음이라는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유념을 해야하는데 삼학팔조 속에서는 유념을 압축적으로 포함하면 유념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런데 우리가 불을 다루는 마음에서 유념이 부족했다 불을 다루는데에 있어서 지혜가 부족했다 그렇게 되면 당장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재앙을 자초한단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학팔조가 들지 아니하고 우리의 앞길이 삶의 앞길이 열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삼학팔조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조심하거든 조심하고 거기에 신경을 곤두세워서 어떻게든 지혜를 찾아보고 그 방법일 무엇이냐? 이렇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삼학팔조는 만생령이 그냥 잘못되어가고 있을 때 다시 살려내는 원리가 있고 그것이 큰 길이다 하는 말씀이여 이것이 절실한 말씀이여 한치도 오차가 없는 말씀이여 그래서 삼학팔조의 원만한 수행이다. 삼학팔조는 그러한 것이기 떄문에 삼학팔조를 잘 다듬어 놓으면 자타간에 복락의 문을 열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삼학팔조를 해서 어떤 구김이 없이 부족함이 없이 수행을 잘 해야한다. 밝힌 말씀이다 이게
‘사은 보은은 세계평화의 원리요 대도이다’
사은에 배은을 하면서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요새 자연보호운동을 하는데 자연보호라 하는 것은 일종의 천지보은에 대해 해당이 되는 것인데 자연을 망가뜨려 놓고 사람이 재앙이 없을 수 없는 것이란 말이다.
물을 오염시켜놓고 내가 건강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배은을 하면서 이 땅에 평화가 있을 수 없어 반드시 배은한 대가가 엄습해 오니까 인과관계로 그래서 이 사은사요 공부의 요도(인생의 요도 맞다 생각함) 는 인과보응의 신앙문이다. 사은을 통해서 인과가 여실하게 실현이 되기 때문에 내가 법을 어겼다. 범법을 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편안해 도망가는 것이지 동시에 이 사은의 정신은 서로의 관계를 상극의 관계가 아니라 상생의 관계 은의 관계 재정립을 해나가려고 하는 크나큰 뜻이 거기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세계모든 인류와 기관가 이 관계가 서로 은혜의 관계로 형성이 되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평화는 그속에서 이루어지지마는 반대로 너를 죽여야 내가 살고 내가 죽어야 너가 살고 이런 관계로 형성이 되어지면, 어떻게 평화를 지탱할 수 있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은이 평화를 구호로 외쳐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사은 이것을 제대로 실현을 하면 평화가 자동적으로 온다. 그런 무서운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은교리의 정신이란 말이다. 그저 우리가 [좋은 일잉게 사은보은을 해야한다.] 하는 차원이 아니다. 세상이 아주 편안하려면 사은보은을 어떻게든 이 땅에 실현을 해야하는 문제지. 그저 조금 좋고 나쁘고 하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개인 차원의 문제도 아니고 이건 온 세상이 정말로 편안하게 사냐 아니면 아주 그냥 불안하고 전쟁하고 살 것이냐 마냐 하는 문제가 사은보은에 담겨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사은보은은 세계평화의 원리요 대도다 사은의 원만한 신앙과 봉공을 해야한다. 보은불공을 해야한다는 말이여 그렇기 때문에 사은에 대해 사은이라는 것은 이런 원리요 대도고 그것을 방치해놓고 바라만 보면 안된다. 바로 우리가 사은 신앙을 철저히 해나가고 보은불공을 철저히 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아니하고는 그 결과가 올 수가 없어다. 이것을 해야 세계평화의 결과가 올 수 있다.
사요실천은 세계평등의 원리요 대도이다.
사요 실천이라고 하는 것은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력 교육, 공도자 숭배, 이러한 것을 하게 되면 이것이 어떻게 평등해지냐? 자력양성을 하면 인권평등이 이루어지고 지자본위를 하면 지식평등이 이루어지고 타자녀 교육을 하면 교육평등이 이루어지고 공도자 숭배를 하면 그렇게 하면 이 세상에 생활평등이 이루어지고 이렇게 해서 그것이 결국이 평등이 수평적 평등이 아니라 이것은 발전적 평등이다.
지금말하면 약한 부분을 끌어올려가지고 평등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발전한 것을 깎아다가 낮은데에 매꾸는 그런 평등이 아니라 이것을 어디에 미흡한 곳이 있으면 발전을 시켜서 보충을 해가지고 오게 하는 평등이다. 그래서 평등이 모두가 다 잘사게하는 평등이다 말이다!
거기에 불행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하는 평등이다. 그런 평등한 세상이 말만 평등이다 해가지고 평등 이념을 구호로 외친다고해서 절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요를 실천하다보면 이것이 평등세상 그가운데에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무위이화로 이루져버린다. 그래서 사요실천은 세계평등의 원리요 대도이다.
그러므로 사요의 원만한 치국 치평 치국평천화를 이제 치우 치평이라고 그래 치평은 다스려서 천하를 평정한다 그것이 치평이여 그래서 평천하의 준말이 치평이여 그러니까 그 사요의 정신으로 다스리다 보면 국민들 모두 하나하나가 다 자력생활을 하게하고 국민들 모두가 지자본위로 배우려고 하고 국민들 모두가 니자녀 내자녀 구별없이 모두가 다 배우게끔 하는 체제로 만들어가고 국민들 모두가 국가 사회를 위해서 봉공을 하고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것을 누가 해야하느냐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해야하고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하고 또 모두다 구성원 전체들이 여기에 동참을 하고 이러 해나가면 그것이 그냥 자연스럽게 평등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사요정신으로 나라도 다스리고 천하도 다스리고 해야한다.’ 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삼학팔조와 사은사요는 천하의 대도요 만고의 대법이다.
천하의 대도라 하는 것은 천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거닐어 가야 할 것이고 어느 세상이 되었든지 이 법으로 다스려 가야한다. 그래서 만고의 대법이다.
뭐 한 천년정도는 이 법이 맞고 천년 후에는 이 법이 맞지않고 그러지 안해 만고라 하는 말은 영원한 세상을 만고라 그래 영원한 세상에 어느 때도 이것이 필요치 안해 근데 유교의 삼강령 팔조목은 맞은 경우가 있고 안맞을 경우가 더러 있다. 삼강령이라고 하는 것은 군신유의는 임금하고 관계있는 것이니까 다른데에가면 필요가 없는 것이고 부자유친도 부자관계만 그것이 맞는 것이고 다른데에 가면 의미가 없는 것이고 삼강오륜이라는 것이 다 그래!
그러나 우리 삼학팔조는 순간도 떠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순간도 떠나지 아니하고 맞춰서 하면 발전인 것이고 만약 이것이 부실하면 퇴보하는 것이고 누구나 필요할 때는 이것을 가지고 활용을 해요 공부심 없이 하니까 문제지 그러니까 이와같이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가 이 땅에서 실현이 되고 나면 이것이야말로 일원화가 된 세상이다.
일원의 진리가 충만하고 일원의 은혜가 충만하고 그래서 일원의 원리가 이 땅에서 꽃피운 세상을 일원화라 하는 것이여 미심적인 것이 있으면 물어. 그래서 이 실천도해에서 제시 해주신 것은 바로 우리 교법만 가지고 그 원리적으로 총명을 해주신 것이라면 교법원리도에서는 전통신앙에다가 맥을 대고 그런 것을 종합해서 우리 교법속에 모두다 담아주신 내용을 핵심으로 해서 도표로 그렇게 특징화 했어 여기에는(교리실천도해) 완전히 우리 교리 정신을 그대로 총명한 내용이고 여기에는(교법원리도) 과거 종교와 전통적 신앙에 맥을 대서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신자가 되자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한 것이다.
사중보은
오늘은 사중보은을 이 사은이라고 하는 것은 삼라만상이 있고 우리 삼라만상을 윤리적 비중에 의해서 사분한 것이다 이 말이여. 이 세상에 있는 현실적 존재 현상적 존재 이 존재를 일러서 만유라고 그러지 현상세계에 전개된 내용들 모두를 만유라고 그래 일만가지 있는 것 일만 ‘만’ 있을 ‘유’ 일만가지 있다는 것은 전체라는 것이여 그래서 현상세계 모든 것을 이것을 윤리적 기준에 의해서 4가지로 분류했다는 말이여 그러니까 우주자연현상 분류하는 법이 이것이 분류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죠
이제 우리 부처님께서는 지수화풍으로 분류를 해주셨고 서재중심으로 해가지고 분류를 해주셨고 또 이제 생물학적 관점에서 분류를 할 수 있어 동물 식물 광물 이렇게 한다든가 이렇게 분류를 할 수 있어 또 지리학적 관점에서 분류를 하면 이게 동양 서양 오대양 육대륙으로 분류를 할 수 있어 그런데 그 기준이 여기에는 그러한 기준이 아니고 여는 어디까지나 우리하고 각작 우리 생령들이 각자 삶에 따라서 거기에 윤리적 비중을 가지고 한 것이다 말이여
그래서 여기에 부모은하고 천지은을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티끌하나 정도밖에 안되야 천지하고 물리적 비중으로 따지면 비교가 안되는 것이여 티끌만도밖에 안되야 그런데 천지반열에 놓았다 이 말은 윤리적 비중이 그렇다는 말이여 윤리적 비중이 내가 천지에게서 이룬 은혜나 은혜가 소중한 만큼 우리가 부모에게서 입은 은혜도 부모가 아니면 당장 태어나지 못하니까 천지가 없어도 태어나지 못하는 비중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 없어도 태어나지 못하는 비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지와 부모와 동포와 법률 이 관계가 똑같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있어서 윤리적 비중이 네가지로 분류할만 하셔서 4가지로 분류를 해주신 것이여
그러니까 이 뒤에 듣는 사람들에게 그 말을 잘해주어야 혀 그런데 이것이 이제 사은장을 읽어보면 실제로 우리가 은혜를 입고있는 점을 윤리적으로 나열을 다 해주셨어 나열을 다 해주셨음뿐만 아니라 피은 보은 배은 이런 관점에서 해주셨거든 그래서 여기에서는 이제 피은의 내역과 보은의 강령과 그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주시기 좋게 하게 해주셨단 말이여. 그래서 이 사은정신의 핵심에는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다. 하는 말씀이 중심이여 그래서 곳곳에 부처님이 있어 어디에나 부처님이 다 있다. 우리 법신불 일원상은 천지에도 있고 부모에도 있고 동포에도 있고 법률에도 있고 모두가 다 그 속에 일원상의 진리의 속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무슨 무단히 과장하고 포장하는 말씀이 아니여!
사실그대로 하는 말씀이여 이 부처님은 우리 삼신불 사상의 부처 사상이여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 법신 보신 화신이 바로 곳곳에 있지 어디에는 있고 어디에는 없는 것이 아니여 다시 말씀하면 일원상 진리의 실상이 구석구석에 스며계시면서 그러면서 진리적 작용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여 그러니까 처처불상이여 처처불상이기 때문에 그런 부처님의 진리 실상자리는 일오의 오차가 없어 철저해!
어제 저 하섬 교무가 와서 얘기를 하는데 쓸물 날물이 얘기를 하는데 매년 1월달 보름 그믐 2월달 보름 그름 3월달 보름 그름 그것이 거년 1월달 보름 그름하고 금년 1월달 보름 그름하고 다르지 않데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모른데요. 그것이 여름에는 밤에 물이 많이 빠지고 낮에는 물이 적게 빠지고 겨울에는 낮에 물이 많이 빠지고 밤에 물이 적게 빠지고 한치의 오차도 없데 매년 똑같데 그것이 그렇게 정확할 수가 없다고 그러더라고 그만큼 우리 일원상 진리가 하는 일은 일오의 오차가 없어 티끌만큼도 오차가 없어 인과의 이치를 굴리시는 것이나 천지를 운행하시는 이치나 이것이 실수 한번이 없어 그래서 천지는 성의 덩치다.
그렇게 철저하단 말이여 그러니까 계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계시면서 우주만유 속에 확산 관통되어 있으면서 일원상 진리가 지니고 있는 원리 원칙에 따라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운행도 하시고 인과로 보은도 하시고 그 역할을 다 하시고 있단 말이여 일사분란하게 그 원리원칙에 입각해서 역할을 하고 계셔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맞추어서 우리는 불공을 해야한다
사사불공이라는 말은 그일 그일에 잘 맞추어 주어야 진리가 감응을 해주시고 좋은 결과를 주시지 우리가 조금만 방심을 해가지고 그런 원리에 맞춰주지 못한다.
그러면 그것이 역으로 오지 봄이 왔는데 겨울 원리로 살려고 한다든지 밤이 왔는데 낮의 원리로 살려고 한다든지 그러게 되면 역으로 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재앙이 자기에게 돌아와 그러니까 사사불공을 안할 수가 없어 불공을 하되 일원상의 진리에 맞추어서 불공을 해야한다 그 불공을 해야되는 원리가 사은속에 담겨있다. 사은 보은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천지가 우리에게 이제 은혜를 주시고 부모와 동포와 법률이 각각 은혜를 주시는데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천지는 대시주 은혜시고 부모는 대자비의 은혜시고 동포은은 대협동의 은혜여 법률은 우리를 대보호를 해주시고 이것이 서로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주신단 말이여 우리가 먹고 입고 쓰고하는 것이 다 천지가 만들어 주신 것들이여! 1차 상품은 다 천지가 만들어주신 것이지 누가 만들 것이여 2차 상품이 있다고 하나 이것은 1차 상품을 인공적으로 가공을 한 것 뿐이고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것은 천지에서 주지않는 것이 없어 그래서 대시주 천지은이여!
절에 가면은 시주가 있어 시주는 절이 먹고 살게끔 늘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절에서 필요한 것을 늘 제공해주는 것을 대시주라고 그래 그것을 조금만 주는 사람은 소시주고 중간만큼 주는 사람은 중시주이고 전체를 맡아서 크게 늘 해주는 사람을 대시주 라고 그래 공이 제일 많은 사람을 ‘대’자를 놓아 그래서 그 베풀어주는 주인공이다.
시주라는 말은 베풀 ‘시’자 주인‘주’자 그것도 크게 베풀어 준다는 말이여 그러니까 천지는 무한대의 시주여 한량이 없는 시주여 내가 태어나서부터 죽어갈 때가지 다 대주시는 시주란 말이여 그래서 대시주은이시다.
부모님은 대자비은이시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은 그 정성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어 부처님이 일체중생에게 큰 자비를 베풀어주시는데 부모는 자식에게 그 자비를 베풀어 주셔 그래서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부처님이여 부모는 자식이 잘되고 못되는 것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 자녀가 잘되면 부모가 마음가운데 행복하고 보람을 느껴 그런데 자녀가 잘못되면 부모는 세상사는 맛이 안나버려 그만큼 끝없이 자비를 베풀어주고 계시니까 그 자비의 크심이 무한대라 말이여 잘할땐 잘하는대로 못할 땐 못하는대로 걱정하시고 염려하시고 어떻게든 잘되게 이끌어주시려는 마음이 끝이 없어!
그래서 대자비라 천지도 그런 감성이 있어서 자비가 있는 것이 아니거든 그러나 부모는 우리에게 감성으로부터서 지성으로부터 온통 받쳐주셔 그래서 대자비은이여
동포은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서로서로 협동이 되어 있어 그래가지고 세상 살아나가려면 여러 가지 영역이 필요하거든 정치도 필요하고 문화도 필요하고 목수도 필요하고 옷만드는 사람도 필요하고 한데 한사람이 그것을 다 할 것이여 못하지 그러니까 서로 하나씩 전문성을 맡아가지고는 서로서로 공급을 해줘 서로서로 필요한 것을 조달을 해줘 그래서 이것을 대협동이라고 그래!
대보호는 만약에 이 세상에 법이 없다고하면 어떠한 기준이 없으니까 마음대로 행동해버려! 남의 것을 빼앗아도 괜찮고 남을 죽여도 괜찮고 그러나 그런 법이 이 땅에 질서유지를 하는 법이 있기 때문에 그 법이 나를 보호해서 누구에게 빼앗기지도 않고 누구한테 부당하게 구타를 당하지 않고 불쌍하게 대우도 안받고 그렇게 살게끔 해주시니까 이것이 대보호은이란 말이여 어마어마한 보호은이야 이것이 법이라고 하는 것은 실정법과 도덕법으로 두가지로 나눠져 도덕법은 성현들께서 도덕적인 법을 만드셔가지고 사람사람이 도덕적으로 성숙해서 끝없이 살아가게끔 해주셨고 또 그 가르치심을 가지고 우리 인간들이 살게 해주셨단 말이여
그러니까 그 도덕법의 은혜와 아울러서 실정법, 도덕법만 있고 실정법이 없으면 안되거든 도덕법에 입각해가지고 더 세밀한, 도덕법은 큰 덩치라고 하면 세세한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해야 할 당위 규칙을 설정한 것이 실정법이란 말이여 그래서 그 실정법과 도덕법이 들어서 우리 자신들을 우리 세상에 살아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보호를 해주셨어 그래서 대보호은이다.
그다음에 그렇게 되면 그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마땅히 보은을 해야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 내가 은혜를 입었으면 이것을 갚아야한다.
무념보시
갚음으로써 더 큰 은혜를 또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지 배은을 하면 더 큰 은혜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망가뜨리는 것이여. 그래서 보은을 하려면 여러 가지 보은 조항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요령을 잡겠끔 해주신 것이 무념보시다 천지는 우리에게 끝없이 베풀어주시니까
보시여!
보시인데 해줘놓고 해줬다는 것이 없으셔 관념과 상이 없어 천지가 우리에게 공기 줘 놓고 ‘내가 너한테 공기 줬는데 니가 그렇게 하고…’ 그런 일이 없어 그것을 해놓고도 언제 줬냐는 듯이 그런다 말이여 그래서 이 천지의 보시공덕이란 끝이 없으시다 참 기가 막힌 것이여 알고보면 이것을 감상을 않고 아무 생각없이 사니까 그렇지 이것을 세곡세곡 따져보고 새겨보면은 감상이 나와도 가슴속에서 뭉클해지는 눈물을 죽 흘릴 수밖에 없는 은혜를 천지로부터 받고 있다는 말이여 주고주고 또 줘도 끝도 없이 주고 계시니 그 참 얼마나 감사해?
약자보호
그다음에 ‘약자보호’ 내가 약할 때에 자력이 없을 때 부모가 안고 기르고 이렇게 해주신 그것이 이제 했기 때문에 그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나도 마땅히 약자를 보호를 해야한다. 그런데 이 강이 강자가 약자 보호하는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이 참 당연한 일인데 그것이 참 쉽지 않다 말이여 요새는 부모도 자식을 그렇게 학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참 알 수 없는 일이나 그러나 우리가 약자가 하는 것은 강자의 입장에서 헤아려서는 안돼 이것은 약자의 입장으로 돌아가가지고 해야된다 말이여 애기를 다루면서 지는 커가지고 기운이 강한데 지 기운으로 하려고 한다. 그것이 강자가 강자의 입장에서 애기를 다루는 것이라 그것을 그것이 아니라 약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가지고 항상 약자를 보살피고 보호하고 하는 것이 이것이 약자로 있을 때 입은 은혜를 이제 나도 어느 약자가 되었든지 노약하던지 유약하던지 약이라는 것은 두 가지가 크게 나뉘어서 노약과 유약 또는 여러 가지 병약도 있고 경제적 약자도 있고 그런 약자를 항상 보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부상조
그다음에 협동의 상부상조여 목수가 있기 때문에 내가 이런 집에 살고 옷을 만드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 그래서 내가 이런 세상에 필요로 하는 그 무엇하나라도 해서 서로서로 도움이 되겠끔 해야한다. 나로 인해서 저 사람이 도움을 받겠끔 저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도움을 받겠끔 그래서 모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가 은의 관계로 형성이 되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너를 해코지 하고 너는 나를 해코지하고 계층간에 해코지를 하고 그러면 아비지옥이지 이 땅이 평화롭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부상조는 나는 너를 필요로 하고 너는 나를 필요로 하고 이런 관계 설정을 해나가는 것이 큰 요령이고 큰 보은이다.
제2인자 제3인자 하고도 상대방과 상대방의 관계도 내가 조정을 해줘 그래서 서로 사이가 좋게 만들어줘 그것이 동포보은이라 말이여 그런데 이것을 속없는 사람들은 상대방 사이를 자꾸 이간질 시키려고 하거든 이것은 보은하는 사람은 아니여 국민과 국민사이 정치인들도 이것을 잘 못하는 사람은 지역간에 갈등을 부추겨 그래가지고 좋을 일이 무엇이냐 말이여 계층간에 갈등도 부추겨 이것은 안될일이여 그것은 보은이 아니라 배은이지 그래서 서로의 관계를 상부상조의 관계로 형성해주는 주체가 되어야 보은한다.
준법지계
그다음에 법률은 대보호인데 대보호이기 때문에 나도 법을 따라야한다. 준법이라는 말은 법을 따른다는 말이여 법을 거슬리는 것이 아니고 소소한 법이라도 내가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지계는 계문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해 계문을 갖고 사는 것이여 안해야 한다는 것들을 절대로 안하려고 하는 마음을 간직한 것을 지계라고 그래 가질 ‘지’자 거든 계문을 가지고 산다는 말이여 계문을 가지고 사는 것은 계문을 가슴에 딱 새기고 살아 새겨서 다시는 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살아 그것을 지계라고 그래 법을 거슬리고 꾀로 살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 법률 배은이여 오늘은 거기까지 하자
여기 보시라고 하는 말이 우리가 일반 통념상에서는 먹을 거리나 먹을 물건이나 재물을 가지고 다른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라 하는데 보시의 본 뜻은 안이비설신의 육근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요 육근을 총동원해서 남을 위해서 베풀어주는 것 일체를 말해서 보시라 하는 것이여!
그래서 물건만 가지고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음으로도 남을 위해서 빌어준다든지 보는 것으로 남이 무엇을 참 잘하면 잘하는 것을 보아줘가지고 격려를 해준다든지 그래서 일체의 육근동작 모두가 이기주의 사적기준에 의해서 나한테 이롭냐 안이롭냐 하는 관점에서 육근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육근을 어떻게든지 남에게 유익을 주려고 하는 관점에서 육근을 쓰는 사람이 있단 말이여 또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 육근동작을 하는 기준이 있어 그래서 이런 것을 넘어서가지고 보시라고 하는 것은 일체 중생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그 육근동작 하나하나를 유익이 되게 해요
피가 되게 하는 말도 행동도 안해 그래서 보시라고 하는 것은 그것인데 보시라고 하는 개념을 우리가 이렇게 전반에 걸쳐서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소유 일체를 통해서 보시를 한다 하는 그것을 여기서 유의를 해야되고
그래서 이제 이와같이 해가지고 보은의 강령이 이와 같은 무념보시 약자보호 상부상조 준법지계 이렇게 해나가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이것은 덕화만방이 되고 또 삼세보본이 되고 공생공영이 되고 자유세계에서 사는 은혜를 입는다.
덕화만방
덕화만방이라고 하는 것은 무념보시를 하기 때문에 당하는 곳 모두가 다 은혜로 작용이 되 덕으로 작용이 되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행동을 하더라도 마음씀씀이 하나를 하더라도 모두가 남을 위해서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나가 공을 위해서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나가 이것이 전부다 바뀌기 때문에 당하는 곳마다 덕이 입혀져 그래서 그 덕이 온세상에 한량없이 미쳐나가기 때문에 이것을 덕화 만방이라고 그래 만방에 덕으로 화해진다. 만방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크게 나누어서 4방이고 더 나누어서 8방이고 8방이 번져가다가 보면 이것이 16방 32방 이렇게 해서 더 번져나가면 만방이여 그러니까 이 세상 일체를 만방이라고 그래 그래서 일체세상에 그 은혜가 미쳐나간다는 말이여!
예를 들어서 우리 대종사님께서 이 교법을 하나 만들어 놓으셔서, 만드실 때에 그 마음과 행동 모두가 오직 일체중생을 어떻게 이롭게 할까 하는 관점에서 법을 만드시기도 하고 회상을 만드시기도 하고 법문을 해주시기도 하고 전부다 그래 놓으니까 그것이 장차 온세상 사람들이 그 법문을 듣고 은혜를 입고 깨달음을 얻고 마음이 선량해지고 모든 것이 다 좋아진다 말이여 그러니까 그것이 덕화만방이다.
그 덕이라고 하는 것이 만방으로 다 미쳐간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법문해주신 것이 지금도 쟁쟁하게 온 세상을 울리고 있어 그래서 그만큼 덕화가 무념보시를 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그 행동 하나하나가 일체중생에게 이익이 되겠끔 해나가기 때문에 그것을 덕화만방이다.
삼세보본
약자보호를 하면 삼세보본이라는 말은 삼세는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해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내역 근본뿌리는 직접적으로는 부모님이고 또 이차 근본은 할아버지고 이렇게 해서 끝없이 그 근본 뿌리의 은혜를 입고 있단 말이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만드시지 않으셨으면 내가 없을 것이고 증조할아버지가 아니면 할아버지가 없을 것이고 또 내가 없을 것이고 그래서 연속의 그 보본의 은혜가 끝없이 밑으로 밑으로 이렇게 흘러가면서 한 없는 세월에 미쳐가게 되고 또 부모가 금생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부모가 수없는 생을 드나들면서 있는 그 부모 근본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 은혜를 다 갚는 것이 되 약자를 보호를 하게 되면. 그래서 삼세의 보본이다.
삼세의 모든 은혜를 근본 은헤를 갚아가는 것이 된다.
공생공영
그다음에 상부상조를 하게 되면 공생공영 공생이라고 하는 말은 너도 생존할 수 있고 생존의 은혜를 입는 것이고 또 나도 생존하는 은혜를 입는 것이고 도 저 사람도 제3자도 생존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이 공생이고 공영은 같이 함께 번영한다는 말이여 나도 번영하고 너도 번영하고 또 제3자도 번영하고 그래서 서로서로 어울려가지고 번영하는 탄력을 받아 그래서 이것을 일러서 전체가 다 은혜로 다 무릅쓰게 된다는 말이여 그래서 이것이 공생공영 결과다.
자유세계
자유세계다 준법지계를 하게 되면 누가 나를 제재하는 것이 없어 천지가 나를 제재하지를 아니하고 동포가 나를 제지하지 아니하고 진리가 나를 제재하지를 않고 누구도 나를 제재하지를 않아 왜? 내가 살인을 해야 누가 나를 제재를 해서 쇠고랑을 차지 내가 살인을 하지를 않는데 누가 나를 제재해서 쇠고랑을 찰 사람이 누가 있냐 말이여? 없어.
그래서 이 제재를 우리 대종사님께서는 법문을 이제 스스로 제재하는 법과 타인의 제재를 받는 것과 진리의 제재를 받는 이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 자유 준법지계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통제를 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를 않기 때문에 준법지계를 하면 누구에게도 피해를 안줘!
피해를 안주기에 피해를 받은 사람이 없고 피해를 받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피해를 받았으니까 내가 저 사람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것도 없고 제재를 해야겠다는 것도 없고 법망에도 안걸리고 그렇다 말이야. 남하고 원수만 되어도 그 원수가 와서 복수를 하려고 나를 제재를 하거든.
그런데 그런사람이 없어 그래서 자유세계에서 살게 된다. 여기로 가든지 저기로 가든지 누가 나를 해코지를 안해! 그런데 이 해코지 하지 않는 모습이 현실속에서 직접적으로 해코지 않는 모습도 있지만 내가 가만히 보면 업이 두터운 사람은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제재가 가해져! 결국은 그렇데 되버리더라고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 이것은 조작으로 이루어지는 세계가 아니여! 옛날에 6.25 동란 때에 피란을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하는데 어떤 사람은 꽤나 안전한데 있는데 더 안전한 곳으로 간다고 가면 사지로 간단 말이야. 이게 업장이 두터운 사람이거든 결국 그렇게 제재를 받아.
그런데 어떤 사람은 꽤나 안전하다고 있었는데 다른쪽으로 갈란다. 하고는 조심스러운데를 또 가. 갔는데 그 다음날 거기에 있었던 자리가 폭격을 하고 엄습해 와가지고 전쟁이 거기에서 일어나가지고 그래가지고 재앙을 입고 고역을 치른단 말이야. 이런 일들이 이 항상 준법지계를 해서 내가 피해를 준 일이 없게 되면 활로가 열려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활로가 열려 그래서 자유가 온다 이 말이에요. 제재가 없어 그래서 자유세계에서 활보를 하고 다녀도 누군가 해코지 하려고 않는다. 벌써 누가 나에게 해코지하는 제재가 가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다 하는 이야기 말이에요.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것은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그대로 요약해서 내용을 설명을 한거에요.
그러니까 한번만 그것을 읽어보는 것으로 설명을 안해도 지금까지 설명으로 얘기를 한 것이고, 그래서 이 사은의 신앙자체가 원인과 결과가 분명혀! 그래서 인과보응의 신앙문이여! 신앙행위를 하면 그것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원인으로 작용하면 반드시 그 결과를 보장하게 하고 그래서 원불교 신앙은 원인과 결과를 보장하는 신앙이고 또 과거 모든 신앙들이 혹은 유일자에게 국한을 했다거나 또 특별한 신이나 하나의 대상으로 했다던가, 유교같은데에는 조상을 중요시 했다든가 이렇게 해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어떤 특수존재를 중심으로 한 신앙체계라고 하면 우리 원불교 신앙의 체계는 전체 신앙이에요.
뿌리로부터서 현상에 이르기까지 현상으로부터서 뿌리로 이르기까지 현상세계도 어떤 특별한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유를 총 망라한 각각 거기에 맞는 신앙체계 그리고 인과보응의 원리에 맞춘 것이다 그 말이야.
여기에 굉장한 특징이 있어 종교신앙세계의 대혁명을 이룬신 것이여!
그래서 이것이 이렇게 해가지고 우리가 사은보은하는 모습으로 우리 신앙이 이어가야지 신앙의 대상 앞에서 그저 빌기만하고 기복적인 비는 것만으로 신앙행위가 되는 것을 크게 이것을 깨우쳐주신 것이고 바루어주신 것이고 그래서 일체 행위 자체가 신앙과 생활이 둘이 아니게 만들고 그 결과가 또한 한량없이 은혜로움으로 작용이 될 수 있도록 이렇게 해주신 것이다. 이 말이여!
이것이 어마어마한 신앙체계여 지금 말은 몇 마디로 간단히 표현을 했지만 내용상에서는 이 우주만유 전체를 전부다 불은화 그래서 여기에 정의의 세계라고 하는 말씀은 서로 은혜를 주고 받을 때에, 우리가 선물 하나를 주고 받을 때에도 저 사람과 정의?(전기?)가 통하잖아 잉? 좋은 선물하나만 받아도 저 사람하고 참 의기소통하게 되고 고맙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가 사은보은을 하게되면 온 세상이 아주 정의가 넘치는 너와나의 정의가 넘치는 넘쳐 범람하는 그런 세계로 화해버린단 말이여! 그저 우리가 미국에 가면 미국이 정의가 넘치고 아프리카면 아프리카가 정의가 넘치고 온 세상이 아주 정의가 넘치는 이런 세계로 화해버린다. 이거야말로 세계가 참 평화로워지고 세계가 진급을 하고 세계가 참 휘황찬란하게 될 수 있는 길이여!
그저 원불교 안에서만 신봉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여! 그래서 한량없는 뜻이 어마어마한 대자대비가 이 속에 담겨있고 이 세상을 한량없이 좋게 하려고하는 그 경륜이 그 주세불의 경륜이 여기에 담겨있다. 오늘은 거기까지
사요실천
(연실교무 사중보은 설명중)
상사님
정의의 세상이 된다는 것은 바로 정이 넘치기 때문에 서로서로 행복하게 해주는 세상이야!
그래서 이 사은교리가 세상을건지는 구제하는 세상의 구조적으로 서로 잘못된 것이 있어가지고 우리들을 서로 함정을 빠뜨리고 불행에 빠뜨리고 하는데 사은만 그래도 우리 사회현실속에 정착을 하면 모두가 다 잘 살기도 하고 그렇게 행복하기도 하고 이렇게해서 번영도 하고 모든 것이 보장이 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이것이 이것을 세상 건지는 법이다. 아주 절묘하게 당신의 경륜 세상을 건지고 세상을 좋게 하시려고 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경륜을 아주 이 사은교리 속에다가 절묘하게 담아주셨어. 이것만 제대로 하면 세상이 안꼬이고 모든 문제가 스스로 잘 풀려가게 그렇게 되어있는 사은교리여.
그런데 이것을 이제 우리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 신앙도표에다가 말하기를 진리 실상에 대한 신앙, 사물현상에 대한 믿음 이 두가지 맥락으로 이렇게 되었다. 라고 말을 했는데, 그런데 이 진리실상에 대한 믿음이란 우리가 법신불 일원상을 향해서 하는 신앙행위를 진리실상이다. 진리 실상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 믿음을 받쳐야 한다. 사물현상에 대한 믿음은 상대적 믿음을 받쳐야 한다.
거기는 거기에 맞는 길이 따로 있고 그러니까 그런 것을 간추려서 찾아서 맞게 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맥락이니까, 이 사은을 보면서 항상 법신불하고 연계하는 생각을 해야해! 법신불 속에 사은이 있고 사은 속에 법신불 있어서 둘이 아니지마는 그러나 그 원리적 세계는 법신불이 함축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 사은교리는 사물현상을 신앙화 한 것이다.
다시말하면 인과보응의 원리에 맞추어서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신앙은 생활과 신앙을 일치화 시켰단 말이여! 또 현실문제와 진리실상에 대한 문제를 일치화 시켰어. 현실과 신앙을 일치화 시켰고, 사람이 일상생활하는 것 자체를 신앙화 시켰고 그래서 이른바 과거의 부실했던 믿음세계를 거의 완전 무결하게 완성시켜주신 것이 우리 교리체계다. 거기까지 풀이를 하고
오늘은 사요에 대해서…
이 사요라 하는 것은 네 가지 요제다 라는 준말이여. 요제라 말은 말씀은 법이라고 하는 뜻이랑 거의 같은 것이여. 여기는 아주 요긴한 엑기스 법을 요제라 그래! 거기에는 너그러운 것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그것을 총섭하고 그것의 핵심이 되는 내용을 일러서 요제다 그래! 핵심이 되는 내용! 엑기스와 같다는 말이여. 그것을 요제다 그러는데 여기에는 그러한 요제를 일러서 사요다 그러는데, 무엇을 하는 요제냐?
이것은 세상을 발전시키는 세상을 고르게 하는 법이다 라고 해주셨는데, 세상을 고르게 한다는 것은 세상의 부족한 면을 모두다 채워서 고르게한다는 말이여. 다시말하면 세상을 업그레이드 시켜가지고 그러니까 번영을 시켜가지고 고르게 한다. 고른다는 말은 그 혜택이 고루 미쳐가게 한다는 말이여. 그러니까 사요는 세상을 발전시키게 하는 업그레이드 하는 요법이다. 그것이 사요다 그 말씀이여.
그래서 이 세상을 발전시키려고 하면 자력양성과 지자본위와 타자녀교육과 공도자숭배 이 네 가지를 하다가 보면 저절로 세상이 발전될 수 있다는 말이여. 그러면 여기에서 자력양성을 못하면 세상 발전을 못한다 요런 관점에서 우리가 들여다 봐야해!
여기 이제 오늘도 내 힘으로 살았느냐? 빚지고 살았는가? 이렇게 점검하라고 하셨고 지자본위는 오늘도 모르는 것을 배워서 알고 살았는가? 오늘은 아는 것을 가르쳐 주고 살았느냐?
오늘도 사회에 유익을 주고 살았느냐? 아니면 손해를 주고 살았느냐? 이것을 점검하라는 뜻은 자기 스스로가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녁 교육 공도자 숭배의 정신을 찾아서 실지 행동에 옮겨가라 라는 그런 말씀이란 말이여. 그렇게 하라는 말씀인데, 자력양성을 안하면 세상 발전이 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세상을 점검해보면, 예를 들어서 여기에 우리의 정전에 밝혀주시기를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력생활을 못하는 병폐를 들어서 이제 누구라도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의지하고 살려고 했다.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녀에게 이렇게 의지하고 살려고했다 등등 이런 병폐를 얘기를 해주셨어.
그런데, 우리나라가 5천만 인구가 생산하려는 사람은 적고, 밤낮 의뢰생활만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놀고 먹으려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발전을 해?
그러니까 내가 먹고 살 것은 내가 철저히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려고 해야한다. 그래서 우리 대산종사님께서는 직업교육을 시켜서 그 기술 하나씩을 가지고 잘 살겄게 다시말해서 자력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력생활을 해서 그 자력이 넘쳐가지고 남에게 베풀수 있을 정도까지 이렇게 국민들을 만들어가면 그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그래서 누구나 자기 힘으로 사니까 떳떳하게 일을 해서 그 총체가 집합이 되면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창출할 수 있는데 뭐든 일을 안하려고 한단 말이야. 먹고 놀려고만 하고 남에게 얻어가지고
자꾸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넘기려고 해!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발전이 되냐? 발전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여! 물론 이제 역량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 벌어서 몇 만명도 가르치는 예를 들면 오늘날 삼성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30만 사람을 다 먹여 살린다. 30만명만 되가니? 그 가족까지 합친다면 몇 백만이 될려나 알 수가 없는 일이여! 그래서 먹여 살린다.
그런 기업하나를 운여을 해서 그 혜택이 널리 밀려나가게 하는 그런 역량가도 있어요. 그런 자력이 넘치다 못해 어마어마한 그리고 또 알고보면 그분이 자력생활하는 역량이 출중해서 그런 역할을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지. 동시에 내가 30만이라고 했는데 30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삼성에 가서 일을 하고 자기 역할을 하고 해서 어느분야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기여를 해서 자기가 벌여간다면 모르지만 만약에 삼성에 아무것도 안하고 먹고 살려고 한다. 이렇게되면 어떻게 되겠냐 말이여! 오늘날 삼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자력양성이여!
자력양성이 안되고는 세상이 도저히 발전을 할 수가 없어, 풍요로워질 수가 없어! 그래서 모든 분야에 다 그런다 말이여! 하다 못해 문화에 기여를 하든지 아니면 체육에 기여를 하든지 어느 한 분야에라도 기여를 하는 모습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 기본적으로 자기가 해야될 일이 있어 예를 들어서 쓰레기도 자기가 처리를 해야하는 것이지 않고 내던지려고만 하면 안된다. 자기가 기본적으로 해야될 그 역할을 자기가 하는 것을 비롯해서 또 자기가 세상과 남을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역할을 하는 쉽게 얘기를 하면 일을 해야한다는 말이야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일을 하면 일을하는 것을 꾀로 슬슬 빠지고 먹을 것이 있으면 탐있게 들어가려고 하는, 세상에 그런 일이 많거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이 자력양성 의식이 확산되어야 해! 모든 국민 하나하나가 자력양성 의식이 확산되어있고 전체적으로도 모든 사람이 자력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 인식을 교육시켜나가야 한다.
이것도 중요한 인성의 한 부분이지 인성의 한 축이야!
지자본위
그다음에는 지자본위라고 하는 것이 없어도 안된다 말이야
내가 항상 얘기하지마는 지자가 지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게끔 해주는 사회가 발전을 보장을 해! 이순신 장군을 수군통제사로 앉혀서 역할을 하게끔 해주면 바다가 안심이 되지!
이순신 장군을 잠깐 백의종군 하는데에다가 방치를 해버린다면 바다가 안심이 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모든 인사라고 하는 것은 나는 항상 얘기하고 그래!
교단도 인사라고 하는 것을 지자본위로 해야한다. 지자본위가 되면 우자에게도 은혜가 미쳐! 만약에 원균이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역할을 하게끔 했다면 이순신 장군(원균)이 저렇게 불행하게 역사속에서 지탄받는 인물로 낙이 안되었을 것이여!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일을 하게 했다면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서 마땅히 전공도 세웠을 것이여! 그런데 이것이 이순신장군 휘하가 넣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장군 위에다가 놓으니까 나라도 불행하고 이순신장군(원균) 본인도 만고의 죄를 지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이렇게 되어버려!
그러니까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제치고 지가 윗자리 가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어리석은 것이여! 나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그러면 어찌든지 그 사람 지도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 지자본위의 정신이야
그러니까 내가 현재 어떤위치에 있다해서 설령 내가 높은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조금 밑에 제도적으로 어쩔 수 없이 공사가 나서 윗자리에 있더라도 저 밑자리에 있는 사람이 지혜로우면 그 사람의 지혜를 활용하고 배워야한다. 늘 배워서 활용해주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지혜이다. 그러니까 지혜가 있는 사람은 남의 지혜를 내 지혜 부려쓰는 것처럼 써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남이 지혜로우면 시기부터 해! 꼼짝못하게 막으려고 해! 그것이 참 어리석은 것이여! 그래서 (악막대업 투연질능?)말이 있다. 살도음을 범하는 것이 큰 악이 아니라 어진사람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것이 제일 큰 악이다.
지자를 미워하는 것보다 큰 악이 없어 살도음이라는 것은 한 때에 저지른 실수밖에 안되지마는 어진이를 미워하고 질투하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큰 악이다.
이순신 장군을 백의종군에서 다시 수군통제사로 끌어올려서 망정이지 이순신 장군을 더 미워해가지고 사형을 처해버렸다든지 다시 끄집어 올리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율돌목 전승을 이끌어 냈을까? 바다를 제압해버렸으면 육지를 제압해버리고 그러면 우리나라는 망해버렸어! 그래도 이순신장군을 그나마 마지막에라도 활용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런것이야.
그만큼 이 지자본위라고 하는 것은 사회 구조속에서나 또는 우리 개인수행 차원에서나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타자녀교육
그 다음에 타자녀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자기자녀만 가르치려고 했다는 것에서 아주 크게 비판을 하셨다. 타자녀는 불행하게 되든지 나쁘게 되든지 사회구조가 나 몰라라 하고 냅두면 어떻게 되느냐? 잘못된 타자녀가 결국 내 자녀에게 피해를 준다. 내 자녀에게 와가지고 강도짓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칼로 찌르면 죽음당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내 자녀를 무사하게 만들려면 타자녀가 나쁜자녀가 없도록 해야한다. 뿐만아니라 타자녀가 잘된다. 다시말하면 이순신 장군같은 선지자같은 이런 지도자로써 타자녀가 잘된다면 결국은 내 자녀가 은혜를 입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타자녀를 교육을 하고 가르치기도 해서 일반적으로 인성들도 발라지고 또는 지성적으로도 달라지고 그래서 합리적 지혜도 높은 수준에 이르고 그렇게 될 때에 이 세상이 서로 상승효과! 그것을 뭐라하면? 시너지효과! 나 때문에 너도 살고 너 때문에 나도 잘 살고 서로 피차가 잘 산다는 말이다.
그런데 타자녀는 가르치지 않으려고 해버린다 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요, 세상이 불행하게 되어버린다. 라는 말씀이다.
그 이순신 장군이 거기 할 때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상놈이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네?
아주 기술이 뛰어나! 보통 기술이 아니야! 칼 만들고 폭탄 만들고 하는 것이 뛰어나! 모르는 사람은 천출이라고 배척하려고 했는데, 이순신 장군은 딱 알아가지고 키워서 휘하에 아주 요직으로 앉혀서 얼마나 그 사람의 도움을 받는지 몰라! 천출이지만 기술이 뛰어나고 보니까, 아마 그 분이 없었으면 임진왜란 승기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폭탄이니 뭐니 다 만들어서 일본사람에게 없는 대포를 가지고 있어서 대포로 막 쏘아대니까 꼼짝 못했지 그 사람이 없었으면 승기를 못잡았을 것이다.
상놈도 기술을 잘 가르쳐서 활용해주니까 이렇게 좋은데 그런데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 자녀들을 다 가르쳐서 다 훌륭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 얼마나 세상이 좋아지며, 그 은혜가 우리 집에 넘쳐 흐를 것이냐? 그 말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사요를 볼 때 이것이 어떻게 세상을 좋게하는 무엇이다냐? 사소하게 타자녀교육을 하는 것이 이렇게 다 이해를 할 수 있는데, 알고보면 근본적인 문제를 터치를 해주신 것이다.
공도자숭배
공도자 숭배하자는 제 1차적 의미는 공도자 시기 질투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것이 절실한 문제이다. 공을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 방해 좀 하지 말라! 공도자가 무엇을 하면 합력을 잘하라! 제 1차적 의미이다.
그전에 대종사님께서 그러셨다. [공을 위해서 말 한마디라도 더 해라!] [우리 회상 창립사에 알씸있는 밤 하나만 구워주어도 큰 복을 받는다.]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고 해요.
그만큼 공을 위해서 참으로 알뜰하게 어째든지 공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인데, 그렇게 열심히 공을 위해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수위공덕이라도 해야되지 그런데 무단히 방해만 하려고만 그런다. 현실속에서 많다. 이런 일이!
좋은 일을 하려면 방해하려는 무리들이 많다.
지금도 나는 여야가 그래! 야당이 여당하는 일을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 방해, 물론 감시를 해서 나쁜일을 못하게 하는 기능도 야당이 해야하지마는 잘한 일을 자꾸 합력해서 술술 잘하게끔 하는 합력정신도 있어야하지! 잘하나 못하나 방해만 하고 앉아있으면 그런 야당은 힘을 실어주어서도 안돼!
그렇게 심법그러면 안된다. 그러니까 여기에 공도자 숭배라고 하는 것은 제 1차적 뜻은 공도자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지 말라는 것이 제 차적 의미이다.
두 번째 의미는 나도 그 공도자 정신을 숭배한다. 본받으라는 의미이다. 그 공도자의 정신을 본받아가지고 어떻게든 공도자가 일 하도록 합력도 하기도 하고 또 내가 주역이 되어서 공도에 헌신도 하고 이것이 공도자숭배의 정신이다.
동시에 여기에 공도자 이부사지라 옛날 말씀으로 그렇게 하셨다. 공도자를 내 아버지 섬기듯이 섬겨라! 그 말씀이다. 공도에 헌신한 사람은 자기 사리사욕을 취하려고 하지 않고 공을 위해서 내바쳐버렸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성자의 행이다. 그런 사람을 자꾸 받들고 사회분위기가 그래야 공도자가 자꾸 많이 나오려고 하는데, 무슨 좋은 일만하려고하면 구렁텅이에다가 몰아넣으려고 한다. 그럼 그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공도에 헌신을 하려고하지 않지! 이기주의로 적당히 먹고 살려고 하지 그 누가 나가서 애쓰고 살려고 하는가? 안하지!
그러니까 공도자를 숭배하는 사회풍토, 사회의 미풍양속을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도자 숭배하는 것이, 그런데 그것이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도 이순신 장군 동상도 만들어놓고 하지! 그러니까 결과를 보고 후래 사람들이 그렇게는 많이 한다. 장하다고….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당장 현실 상황속에서는 공도자를 방해하고 아주 곤혹스럽게 하고 하는 경향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 사요의 정신이 지금 그것부터서 이해를 하고 이제 이 내용에 들어가야 지금 사요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지! 그것을 이해안하고 내용만 가지고 얘기를 하게 되면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
사요를 대조
오늘을 내 힘으로 살았는가? 빚지고 살았는가?
내가 내힘으로 살았으면 무엇이든지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은혜를 입었더라도 내가 무엇인가 세상을 위해서 일하는 공덕이 있어야 한다. 결과가 있어야 그 빚을 탕감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위해서 일할 역할이 없고 은혜만 입는다면 빚 짓는 삶이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소한 해내야 한다.
오늘은 모르는 것을 배워서 알고 살았는가?
이것은 자기에게 늘 물으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누가 좀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아는 것을어떻게든지 배워서 나도 그만큼 알아가려고 하는 자세이고
오늘은 아는 것을 가르쳐주고 살았는가?
나는 알고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빚 짓는 것이다. 안가르쳐 주는 것 때문에 우리나라에 손해나는 일이 많다. 옛날에 비방같은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죽어버려 그러면 발전이 안된다. 그래서 어찌든지 그것을 아는 것이 있으면 남에게 가르쳐 주려고 해야한다. 그래서 배우고 가르치는 문제가 옛날에 공자님께서도 ‘학이불염말며, 회인불권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학이불염은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회인불권은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고 가르치는 여기에서 이제 성자의 자질도 자라는 것이고, 그래서 늘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맨날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다.
오늘도 사회에 유익을 주고 살았는가 손해를 주고 살았는가?
이것이 지금말하면 각자 생활에 있어서 대조를 해라! 실천이라는 말씀이다.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끊임없이 대조하는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이고 이것이 생활에 없으면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말씀이다.
사요를 해나가는 방향
그것을 해나가는 방향을 다음에 해주셨다.
자력양성
자력이라고 하는 것은 3가지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 이 세가지를 자력의 종류로 분류를 해주셨다.
정신의 자주력
정신의 자주력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일체 경계에 먹힘을 당하지 아니하고 어떠한 천변만만가 와도 자기의 본래 모습, 자기주체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심신을 잘 지키려고하는 정신력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외부경계에 휩쓸려서 늘 끌려다닌다, 또 그 노예로 전락했다. 지금 요새 세상을 물질의 노예로 전락됬다고 진단을 해주셨는데, 물질만 보면 물질의 요구에 따라서 행동을 하면 내 주체를 잃어버린다. 물질이 하라는대로 도둑질을 하라하면 도둑질을 하고, 나라를 팔아먹으라고 하면 나라를 팔아먹어버리고, 부모에게 함부로 하라고하면 함부로하고
그래서 물질이 명령하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주체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밖으로 위력이 있는 것이 와도 내가 내 스스로를 싹 지키고 있는 것을 자주력이라고 한다.
육신의 자활력
육신의 자활력은 내가 내 일을 감당해낼 수 있을만한 활동력을 말한다. 병약하면 그것을 못하는 것이다. 설령 육신이 멀쩡하다해도 밤낮 자기가 할 일을 남한테 미룬다면 그것은 육신의 자활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 앞길을 개척해 나갈만한 활동력, 건강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자립력
경제의 자립력은 이것도 또한 자력의 개념에서 중요한 영역이다. 경제의 자립력이 없는 사람은 밤낮 남한테 빚 짓는 생활만 한다는 얘기다. 경제의 자립력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 유익까지 주고 해나간다. 그러니까 경제의 자립도 본인이 무엇인가 세상을 위해서 일을 하고 그 일한 대가를 받아 먹고 사는 것이 경제의 자립력이다. 여기에 부부간에도 경제는 자립해라! 똑같이 재산을 아내는 아내대로 경제활동을 하고 바깥(남편)은 바깥대로 경제활동을 하도록 유도를 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자력양성이라고 하는 것이 정신과 육신과 물질의 세가지 방향에서 얘기를 해주신 것이다.
지자본위
도덕의 스승, 정사의 스승, 학술의 스승, 생활의 스승, 상식의 스승 이것을 정전의 내용에서 밝혀주신 것인데 그것을 요약을 해서 말씀을 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지자가 우리가 얘기하면 막연히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 이렇게 구체적으로 분류를 해주셨다. 도덕적으로 스승 또 정사를 해나가는데 통치스승, 정사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정사라 한다. 그리고 학술이라고 하는 것은 학문과 기술에 관련된 것이고,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 대한 지혜, 상식에 관계 된 것
그러나, 이것도 영역이 전문영역이 많다. 그래서 정사에도 여기 이제 경제적 지도 역량이 있는사람이 있는가하면 인사영역에 역량이 있는가하면 그러한 여러 가지가 있다.
학술도 학술에 대한 영역이 많고, 생활에 대해서도 생활의 전영역으로 분류를 한다고 하면 끝이 없는 것이고 상식도 끝이 없는 것이고 그런데 이 모든 영역중에서 어떠한 것이 되었든지 간에 자기가 자기보다 더 잘 알면 그 분에게 나아가서 배우도록 하는 문제가 중요하지마는 사회 구조적으로는 항상 인사를 지자본위! 그런 사람을 앞세워서 어느 분야든지 전문분야에 있어서 우수한 사람이 우수한 자리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가 그렇게 되어야 하고,
또 여기 자력문제도 자력문제도 민주주의가 우수하다 하는 말은 전체주의하고 민주주의하고 아주 큰 차이가 오게 되는 것은 전체주의는 중앙통제체제여서 모든 것을 중앙에서 시키는 것만 하고 못하게 하고 그러니까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역량, 자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사장시키는 제도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이것이 한사람 한사람이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역량을 사장시키지 않는다. 그 역량을 무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도 여기에 큰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들의 마인드를 가져야한다. 이 지자본위에서도 그렇고
타자녀교육
타자녀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 개인도 어찌든지 장학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누구나 가르치고, 장학사업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더 알고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있을 때 다가올 때 가르쳐줘야 한다. 그런데 공부가 또 배우는데에서 공부가 느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주는 것에서 공부가 완전히 내 것이 된다. 그러니까 자꾸 가르쳐줘야 해야 한다.
개인에 있어서는 장학과 가르쳐주려고 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겠지마는, 이 사회구조상에서는 한 사람도 교육받지 못한 백성이나 구성원이 없도록 사회구조가 그렇게 나가야 한다. 어떠한 방식으로 하든지, 그것이 지금 동남아같은데 가보면 고등학교때까지 의무교육을 하고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중학교 때까지 밖에 의무교육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때까지만 의무교육이였다. 이제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되어있는데 앞으로 배워야할 사람들은 철저하게 배워갈 수 있게 사회제도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배우고 싶은 사람이 배울 길이 없어!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직장에 다니면서도 공부할 수 있도록 사이버 대학 같은 것이 생기고 사회가 이런 분야에 엄청 발달을 했다. 그런데 지금 사회구조가 제일 잘못된 것을 진단해낸다고 하면 잘못하고 인성이 부족한 사람은 학교나 직장에서 퇴출해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 것, 그리고 교도소에 들어가도 교도소 말이 그렇다. 작은 도둑이 들어가면 큰 도둑이 되어서 나온다. 거기서 도둑질 하는 기법을 더 배워서 나와! 그러한 것이 사회의 맹점이다. 교도소라고 하는 취지는 가르쳐서 바르게 인도한다 해가지고 옛날에 형무소라고 했다. 형무소는 죄 지은 사람 벌준다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죄 지은 사람 벌 준다는 개념에서 가르쳐서 바로 인도한다는 개념으로 한 것만 해도 엄청 발전한 것인데, 실상 내용상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어찌든지 접촉을 해서 잘 가르쳐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또 우리 대한학교에서는 우리 원불교가 그래도 그런 제도권 학교에서 퇴출된 학생들을 데려다가 바로 지도한다. 길거리를 내놓으면 범죄 지을 일밖에 없어서 그 놈들 데려다가 바르게 되도록 지도를 했는데
이러한 제도가 심도있게 성숙되면 이것이 사회구조적으로 배움에 사각지대가 없어져서 모든 사람들이 인증을,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도 염원하셨던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떨어뜨린 물건도 주워가지 않는 이러한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이어서 이 문제를 바로 접착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을 바로하기 위해서
그래서 이 타자녀 교육의 문제가 우리 개인개인이 늘 장학사업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마는 우리가 가르침의 사각지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이다.
공도자숭배
공을위해서 헌신한 사람을 항상 숭배를 해서 이부사지하면 부모와같이 받들라고 했는데, 그 봉공! 봉공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정신으로 봉공한 사람도 있고 육신으로 봉공한 사람도 있고 물질로 봉공한 사람도 있고 물질희사를 많이 하면 물질로 봉공한 것이고 육신으로 봉공하는 사람은 요새 복지기관에 가서 노인들을 보살펴주고 하는데 그러한 사람이란 말이다. 우리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쓰레기를 줍는 것도 육신의 봉공이고, 아프리카에 가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도 봉공이란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 길이 있어서 공도자숭배를 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도 그 정신을 이어받아서 스스로도 봉공을 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그 봉공이라는 것은 어디에 봉공이 되어지느냐?
빈곤, 질병, 무지가 있는 곳에 봉공의 초점이 이어지는 문제여서, 제일 봉공의 아쉬움점이 봉공의 사각지대가 거기란 말이다. 빈곤, 질병, 무지가 그곳
이 오늘날 세상의 3대 불행이다.
그래서 그러한 곳에 봉공을 하는 인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러한 사람들도 혜택을 입어서… 민주주의 가장 큰 병폐가 무엇이냐? 민주주의의 장점이면서 단점인 것이 경쟁사회란 말이다. 서로서로 늘 경쟁을 한다. 무한경쟁 사회인데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경쟁을 하다보면 그 경쟁에서 낙온된 사람은 죽어버리라는 말이냐? 그래서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이 소외될 위험이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큰 맹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그것을 보완을 하려면 경쟁에서 밀리.. 어떻게 장애인이 경쟁에서 이겨? 못이기지.. 또 역량이 아주 없는 사람이 경쟁에서 이기냐 말이다. 그러면 경쟁에서 졌으니까 너는 죽어버려라~ 아무렇게나 되버려라~
이것은 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자세이다.
그러니까 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그러한 것을 이 공도자숭배의 정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방향에서는 4번째 단락(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숭배 포함)에서 방향을 잘 일러주신다.
다함께 읽어보라!
2월 13일 녹취자료
[이대종교무가 전날에 배운 내용 설명]
[좌산상사님]
이제 네 가지 사요 내용에서 아주 유의해야할 내용을 보충을 하자면
자력양성
자력을 양성을 해야하는데, 자력을 양성하지 못해서 자력이 약하면 있는 자력도 빼앗긴다. 있는 자력도 남한테 다 빼앗기고 도둑맞고 그것이 우리 나라가 한말에 우리나라가 주권이 미약했다. 국력이 약해서 일본사람들이 점령하고 빼앗아 가버렸다.
사회속에서도 그렇다. 내가 자력이 없으면 내 재산도 못지킨다. 결국 재산을 가지고 놀음을 하던지 사업에 실패하든지 그래가지고 다 망해버린다. 거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내 자력을 기르지 못하면 있는 자력도 놓친다. 그러나 자력을 길러놓으면 타력도 자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6.25 동란 이후에 민족자본이 없었다. 그러니까 남의 나라 차관을 빌려다가 우리나라 기관산업 육성을 하니까 우리나라도 이만큼 자력이 세워졌다.
그뿐만아니라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내 개인적인 것이나, 단체적인 것이나 막론하고 자력이 없으면 있는 자력도 빼앗기고 자력이 있으면 타력도 자력이 되고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지자본위
그다음에 지자본위에서는 지자를 본위롤 해서 사회구조가 지자본위의 체제가 잘 정착이 되면 지자도 우자도 함께 은혜를 입는다. 그러나 지자본위가 안되면 지자고 우자고 함께 곤욕을 치른다. 사회발전이 불가능한 것이니까…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이 수군통제사의 역할, 그 위치에 올라서 그 역할을 하게끔 이순신장군한테 그렇게 하면 그 휘하에 원균을 놓았더라면 원균도 오늘날 이순신 장군을 모시고 임진왜란에 때에 공을 세웠다. 아마 칭송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장군은 백의종군을 시켜버리고, 원균이 수군통제사가 되어버리니까, 이순신 장군은 그동안 핍박은 받았지만 본인(원균)은 어떻게 되었냐 말이냐? 만고의 실패한 장군으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게 해주면 지자도 우자도 함께 은혜를 입고 세상도 번영을 하는데 지자가 우자의 위치로 끌어내려지고 우자가 지자의 위치로 올라가버리고 사회구조가 그래버리면 지자도 우자도 함께 다 망해버리고 불행해져버린다.
거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타자녀교육
타자녀교육을 하게 되면 내 자녀, 네 자녀가 모두가 다 은혜로워진다. 우리가 저기 대안학교에서 처음에 학교에서 퇴출되고 가정에서도 버림받은 학생들을 데려다가 가르쳐서 대안교육정책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놈들이 배우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나쁜짓하고 다니며 내 자녀들이 언제 그 피해를 받을지 모른다. 내 자식 뿐만아니라 남의 자녀들도 언제 피해를 받을지 모른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우리가 잘 가르쳐 놓아야지 잘 못가르쳐 놓으니까 나와서 더 큰 범죄를 저지른다 말이다. 그럼 사회가 항상 그렇다. 그러니까 요새 하여간 인성교육촉진법이 나온 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가르쳐 놓으면 사회가 좋아지는 것이고 가르치지 않으면 그 피해가 너, 나에게 미친다.
공도자숭배
공도자 숭배를 잘하면 공도자가 많이 나와서 구석구석 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를 비롯해서 이 사회 전체가 다 좋아지는데, 공도자를 숭배는커녕 피박이라고 안하면 좋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인재들은 참 다 가져다가 죽여버린다. 조금 똑똑하다 싶으면 죽여버려! 그게 역사적으로 너무 많다. 내가 여행을 아프리카 가는데 전부다 빅토리아 폭포 등등 지명들이 다 영국 왕들 이름이여! 그래서 왜그런가 물으니
그 탐험가들에게 왕이 돈을 주었어. 돈을 주어가지고 맘대로 탐험을 해보라! 그래 놓으니까 왕이 고마우니까 폭포이름을 빅토리아 폭포라 이름을 지었어!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앞서서 장보고는 신라시대니까 영국이 탐험사를 가꾸기 전보다 훨씬 앞섰다! 아랍까지 갔던 흔적도 있으니까, 얼마나 잘했냐? 오히려 조정에서는 돈을 주면서 저기를 하라고 했으면, 그때야말로 참으로 더 미개하고 열악하고 인류생활이 그러니까 우리문화도 전해주고 우리말도 가르쳐주고, 우리 한글도 가르쳐주고… 우리한글은 그 때 없었지.(웃음)
그렇게 했더라면 우리도 영국처럼 해지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됬을지 모른다. 그런데 죽여버렸다. 그렇게 못할지언정 가져다 죽여버렸다. 그래서 공도자가 핍박받는 사회는 싹수가 없다. 나라고, 그 사회도 결국은 그 피해가 너, 너, 모두에게 온다. 그래서 공도자가 이것이 숭배하자는 것, 그러니까 이것은 어떻게보면 내 개인 수양 차원에서도 해야하는 것이고 내 인격 차원에서도 해야하는 것이고, 마음공부 차원에서도 해야하는 문제고, 또 이 사회구조속에서도 정착해야하는 문제다.
자력양성 하자, 배우자, 가르치자, 공심으로 살자, 공익을 위해서 살자, 이런 말로 표현한 것은 일상수행에 표현한 것은 그것은 우리 수행차원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할 때에는 세상이 자력양성을 하도록 하고, 지자본위를 하도록 하고, 타자녀 교육을 하도록 하고, 공도자 숭배를 하도록 하고 이것은 사회차원에서 사회국가 차원에서 이것을 해내야 하는 문제다.
그래서 옛날에 수행차원에서 해당이 되고 사회국가 차원에서도 해당이 되고 이것이 인생의 요도에 안들어가 있었다. 우리 교리도에, 초기교서의 교리도에서는 사요가 빠져있었다.
사은만 있었다.
사은만 있었다는 그 취지는 신앙문이라고 하는 것은 타력의 가필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고 신앙이고,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내 자력을 무한신장 시키려고 하는 것이 수행이고,
내 안의 가능성을 개발을 해가지고 내 이것을 내 역량을 무한 신장시키는 것은 수행이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게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밖에 다른 사람에게 있는 힘을 빌려서 내가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 신앙의 취지다. 밖으로부터서 내가 타력의 힘을 빌리는 것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 그 외 말고는 없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가 힘만 빌리면 법신불 비롯해서 천지 부모 동포 법률만 하면 그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요를 [굳이 거기다 안넣어도 되겠다.] 생각하셔서 안넣으셨는데, 그 뒤에 재차 정리를 하시면서 사요를 사요가 원래에 인생의 요도니까 그래서 신앙문과 인생의 요도를 일치 시켰고, 수행문과 공부를 일치 시켰고 그래서 인생의 요도 개념속에 들어가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불공 사회발전을 위한 불공 개념 차원에서 이것도 인생의 요도에, 이미 인생의 요도에 밝혀는 주셨고,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타력도 이끌어내고 그런 관점에서 사회불공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다.
역시 불공은 불공이다. 불공차원에서 인생의 요도에다 넣었다. 이것을 가지고 자꾸 질문하고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말을 얘기를 해서 전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