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 진리에 대한 고찰
– 원효 일심사상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박원진
Ⅰ. 서론
Ⅱ. 일원상 진리 1. 일원상 진리의 논리적 구조 2. 법신불 일원상의 의의
Ⅲ. 원효의 일심사상 1. 일심사상의 논리적 구조 2. 원효 일심사상의 의의
Ⅳ. 일원상 진리와 일심사상의 비교 1. 두 사상의 논리적 구조 비교 2. 일원상 진리와 일심사상의 의의 비교
Ⅲ. 결론 |
Ⅰ. 서론
본 논문은 1916년 소태산 대종사(본명 박중빈, 1891-1943)의 대각에서 비롯된 원불교 교리의 핵심인「일원상 진리」에 관한 논문이다. 이「일원상 진리」는 법신불 일원상이라 표현하며, 이는 삼신불 중의 하나인 법신불이 아닌 보신불과 화신불의 의미를 포함한 법신불로 이는 대승불교에서 발전되어온 다양한 진리관을 조화하는 넓은 의미의 법신불을 의미한다. 이는 만법의 근원인 진리를 부처로 보는 것으로, 이를 통해 원불교의 법신불은 진리의 본체뿐만이 아니라 그 작용도 동시에 포함하여 우주만유의 본원과 제불제성의 심인, 일체중생의 본성을 나누어서 보지 않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불교 교법의 정수를 담고 있는「일원상 진리」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하여 밝혀진 궁극적 진리의 상징임과 동시에 원불교의 최고 종지이며,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이다. 이러한 일원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자료인「일원상의 진리」는 소태산 대종사께서 일원상 진리를 대중들이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설명을 언어적 표현으로 친히 저술한 것으로, 그 간결하고 함축적인 글 속에는 일원상의 진리와 원불교 사상의 전반적인 핵심을 담아내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깨달음 이전까지 불교와 인연이 없었지만, 대각 후『금강경』을 보고, 「서가모니불은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고 하며 부처님께 연원을 정하고,「불법은 천하의 큰 도라」고 하며 불법을 주체삼아 회상을 건립할 것을 주장한다. 이후 전통불교의 폐단인 종파불교로의 별립, 출세간 생활의 본위 등을 비판하면서, 생활불교 그리고 대중의 불교로 개혁함으로써 「모든 종교의 교지도 이를 통합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소태산 대종사의 통종교적 회통정신과 대중불교 및 생활불교운동은 1350여년 전, 원효의 통불교 이념과 민중불교운동에 상통되는 바가 많다고 본다.
삼국통일 후, 당시의 불교는 사상적 대립과 갈등이 있었고, 세간과 출세간의 조화 문제도 있었다. 그중 불교계의 두 가지 큰 흐름인 中觀思想와 唯識思想간의 교리적 대립과 출세간과 세간과의 대립의 문제는 당시의 신라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에서도 핵심 문제로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제를 원효(618-686)는『대승기신론』이 「一心二門三大」로 전개하는 일심사상에 바탕하여 中觀학파나 瑜伽唯識학파처럼 空思想이나 有思想의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사상의 치우친 견해를 극복하여 잘 조화를 이룬 논서임을 밝히고, 이 논서야말로 모든 논들의 근본이며 모든 諍論을 평정시키는 주인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원효의 관점은 통불교적 입장에서 모든 대승불교 사상의 조화를 중요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효는『대승기신론』에 바탕한 ‘一心思想’을 중심사상으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원상 진리」에 대한 연구의 비교 대상으로써 원효의 일심사상을 선정한 이유는 두 사상이 역사적 연결 관계는 없지만,「일원상 진리」와 일심사상이 한마음을 밝혀가고자 한다는 목적과 논리구조의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것과 당시 불교 교파간의 갈등과 교리적 분립을 종합회통한 사상과 현대시대에 다양한 종교의 교리를 종합회통을 주장하는 점이 유사하다 생각하여서이다. 본 논문에서는「일원상 진리」의 특성과 의의를 살펴보며, 이해를 돕기 위해 兩面的(眞空·妙有) 그리고 三面的(空·圓·正) 논리구조에 대해 분석하고 정리를 하며, 동시에 원효 일심사상의 특성과 의의를 살피고 핵심내용인 一心과 兩面的(眞如·生滅) 그리고 三面的(體·相·用) 논리구조를 분석하여, 두 사상의 진리관과 구조를 비교분석함으로써「일원상 진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확장에 도움이 되고자 하며, 과거 원효의 통불교적 이념을 실현할 수 있었던 사상적 기반인 일심사상을 살펴봄으로써 소태산 대종사의 통종교적 이념이 막연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닌 일원상 진리에 바탕하였으며, 이러한 바탕으로 인해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종교의 진리를 연구하고 비교하는 것은 모든 가르침 가운데 근원이 되는 가르침을 연구, 비교하는 것과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논리와 이해를 초월한 진리를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시도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Ⅱ. 일원상 진리
원불교 교법의 정수를 담고 있는「일원상 진리」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하여 밝혀진 궁극적 진리의 상징임과 동시에 원불교의 최고 종지이며,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이다. 이러한 일원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자료인「일원상의 진리」는 소태산 대종사께서 일원상 진리를 대중들이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설명을 언어적 표현으로 친히 저술한 것으로, 그 간결하고 함축적인 글 속에는 일원상의 진리와 원불교 사상의 전반적인 핵심을 담아내고 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일원상의 진리」를 참조하여 일원상 진리를 양면적, 삼면적 논리적 구조로서 살펴보고 분석하며, 법신불 일원상의 특징에 대해 분석해본다.
- 一圓相眞理의 논리적 구조
본 절은 일원상 진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논리적 구조를 살펴본다. 종교의 진리를 분석하는 것은 모든 가르침에 대한 근원을 살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논리와 이해를 초월한 진리의 내용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일원상 진리를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행논문들을 보았을 때, 이러한 작업의 시도로서 「불생불멸의 도와 인과보응의 이치」,「변과 불변」,「유상과 무상」,「진공과 묘유」,「진공과 묘유와 인과」,「공과 원과 정」,「체와 용」,「동과 정」,「이와 사」,「도와 덕」,「영과 기와 질」등 다양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각각의 설명법은 다양한 특성과 경향성을 지님으로서, 일원상 진리의 의미를 이해해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작업이라 볼 수 있다. 그 중「眞空과 妙有」라는 兩面觀과, 空·圓·正의 3대 속성을 중심으로 그 진리적 구조를 살펴본다.
1) 兩面的 논리구조
「일원상 진리」는 크게 眞空(體)과 妙有(用)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이는 本體과 現象으로 구분하는 것으로,「일원상의 진리」에서는,「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이 돈공한 자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일원상 서원문」에서는「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진공은 상대성과 차별성을 넘어선 절대적인 진공이며 근본인 체성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일원의 체성은 일체의 차별을 넘어섰지만, 우리가 아는 비어있기만 하는 진공이나 無記의 공이 아니다. 진공은 그 안에 신령스러운 앎인 묘유와 함께하고 있다. 묘유의 작용은「일원상의 진리」본문에서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가 장중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
라 밝히고 있다. 이는 공적한 가운데 靈知가 있어 묘유의 작용으로 현상을 전개해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한다는 표현을 통해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는 무한히 넓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일원상 진리를 진공의 체성과 묘유의 작용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진공과 묘유는 하나의 진리에 대한 본체론적 또는 현상론적인 양면관찰에 불과하므로, 眞空(體)와 妙有(用) 중에 어느 한쪽이 주가 되고 종이 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상즉의 관계임을 유의해야 한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정전』교의편「게송」에서,「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역시 구족이라」고 함으로서 진공과 묘유가 둘이 아님을 당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三面的 논리구조
일원상의 진리를 空·圓·正의 三面的 논리구조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기도 한 일원상의 진리에 갖추어 있는 세 가지의 속성을 파악하는 것으로,「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하고 그 진리를 체 받아서 자기의 인격을 양성하는」원불교의 수행강령인 養性(情神修養), 見性(事理硏究), 率性(作業取捨)의 三學 또한 空·圓·正의 三屬性에 표준한 것으로, 소태산 대종사는 이를 우리의 본성이기도 한 일원상 진리의 삼속성인 공·원·정으로 밝혔으며, 이를 바탕으로 원불교의 수행강령인 三學을 알리었다.
이러한 공·원·정을 구분하여 살펴보면, 空이란 사전적의미로는 텅 비었음을 뜻하며, 완전히 비워져 있다는 속성을 가지는 진리는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일체의 상대적 차별과 관념을 넘어선 근본의 체성을 의미한다. 圓이란 두루 모자람이 없이 갖추었다는 뜻이다. 비록 텅 비었지만 그 가운데 공적영지가 갊아 있어서 막힘이 없이 다 통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진리는 갖추지 않은 바가 없고 포용하지 못할 바가 없는 원만구족성을 드러내 보여주기 위해 圓이라 하였으며, 正이란 바르다는 뜻으로 텅 빈 가운데 신령스러운 암이 본유하여 무한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는 가운데, 그 조화작용이 나타날 때에는 인과의 법칙에 호리도 틀림없이 바르게 나툰다는 것이다. 그 진리의 작용이 광대무량하되 현상세계의 모든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正이라 표현한 것이다.
또한 空은 성품의 체성이 텅 비어 있으면서 만유를 총섭하는 기능으로, 圓은 일체 만법을 종합하고 분별하는 것으로, 正은 원만구족 지공무사하게 기의 작용을 통하여 만유의 변화를 말한다. 위에서는 세 가지의 속성으로 구분하였지만, 이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표현한 것이지 각각 별개인 것이 아니며, 眞空과 妙有의 兩面觀과, 空·圓·正의 三屬性으로 파악한다고 하여 이 둘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원상 진리에 대한 설명의 차이인 것이다. 兩面觀과 三屬性의 관계에 대해서는 三屬性의 空은 兩面觀의 眞空과 거의 같은 의미로 이해됨에 따라 空은 眞空에, 圓·正은 妙有에 두어서 그 관계를 파악하기도 한다.
- 법신불 일원상의 의의
일원상은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하여 밝혀진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 원불교 최고의 종지이다. 원불교 교리의 진수를 총체적으로 집약하여 도식화한「교리도」에서는 최고 종지로서 일원상을 그려 놓고 그 아래,「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다.」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또 『정전』 교의편 「일원상의 진리」의 첫 줄에도 같은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들을 보았을 때, 원불교 일원상 진리의 법신불은 法身佛·報身佛·化身佛 三身佛 중의 하나인 법신불이 아닌 보신불과 화신불의 의미를 포함한 법신불로, 대승불교에서 발전되어온 다양한 진리관을 조화하는 넓은 의미의 법신불을 의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만법의 근원인 진리를 부처로 보는 것으로, 원불교의 법신불은 진리의 본체뿐만이 아니라 그 작용도 동시에 포함하여 우주만유의 본원과 불보살의 심인, 일체중생의 본성을 나누어서 보지 않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일원상 진리를 원불교에서는 궁극적 진리이자 최고의 종지로 보고 있다. 그리고 우주만유의 본원, 제불제성의 심인 그리고, 일체중생의 본성이라는 표현으로 보았을 때, 일원상 진리의 특성을 알아볼 수 있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라는 명제를 통해 만유의 근원을 상징함으로써 진리의 전체성, 근원성, 절대성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우주만유란 나 자신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뿐만 아니라 그들이 생성하고 존재하고 변화하는 작용들과 시간과 공간을 모두 포함하여 부른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은 일체의 진리관을 포함한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또한「일원상 서원문」에서는 「天地·父母·同胞·法律의 本原」이라고 하였다. 이는 우주만유를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四恩으로 크게 나눈 것으로, 이는 우주만유에는 은이 갊아있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사은은 일원상의 구체적 내용으로 세상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표현을 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제불제성의 심인」으로, 정산종사의「법신불은 우주만유의 근본이시오 제불제성의 본성이신 바, 제불 제성께서는 또한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신 어른들」이라는 표현에서 일원의 진리가 갊아 있다는 것은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차이가 없지만, 본성을 깨달아 그 자성을 떠나지 않은 자를 제불제성이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제불제성의 심인」이라는 명제는 모든 성자들이 밝힌 다양한 종교의 진리관들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진리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일원상은「일체중생의 본성」으로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본성에 일원의 진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진리를 깨달은 제불제성이나 깨닫지 못한 범부중생의 본성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정산종사는「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이며, 자기의 성품이 곧 법」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든 인간의 본성에는 일원의 진리가 내재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명제를 통해 일원상의 진리는 우주만유를 통해 존재함과 동시에 모든 성자들의 깨달음에도 있으며, 우리의 마음 안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원효의 일심사상
삼국통일 후, 당시의 불교는 사상적 대립과 갈등이 있었고, 세간과 출세간의 조화의 문제도 있었다. 그중에서 中觀思想과 唯識思想간의 대립과 出世間과 世間의 대립의 문제는 당시의 신라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에서도 핵심 문제로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제를 원효는『大乘起信論』의「一心二門三大」로 전개하는 一心思想에 바탕하여 해결하였으며, 현실의 삶에서 실천해나갔다.『起信論』은 원시불교 이래, 인도불교 교리사 전반의 중심문제였던 唯心思想을 총결하였을 뿐 아니라, 인도대승사상의 양대 산맥인 용수계의 중관사상과 무착·세친계의 유식사상의 대립을 一心思想으로 종합회통시킨 그야말로 불교 유심사상의 인도적 총결론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기신론』제1「立義分」에는 다음과 같이 대승의 법과 의를 설명하고 있다.
「마하연(大乘)을 총체적으로 말하면 2종이 있으니, 하나는 법이요, 둘은 의이다. 이른바 법이란 중생의 마음으로서, 이 마음이 일체 세간·출세간의 법을 총섭하나니, 이 마음에 의하여 마하연의 의를 나타낸다.」
즉 대승의 대상은 중생심으로서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총섭한 이 마음에 의하여 대승의 목적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처럼 중생심을 근거로 하여 대승의 진리와 의의를 설명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범접할 수 없는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닌 바로 중생의 마음 안에 본래의 자성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 일심사상의 논리적 구조
一心은 개체적인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이 발하기 이전의 초월적인 一心이며, 궁극적인 실재로서 그 자체는 만유의 본원이면서도 동시에 만유에 각각 갊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일심을 세계 내의 모든 존재자들의 근원으로 상정할 수 있다
1) 兩面的 논리구조
그 본원적 차원의 세계를 심진여문(心眞如門)으로, 현상적 차원의 세계를 心生滅門으로 파악하는 (一心二門의 세계관은『大乘起信論』의 기본 논리를 구성하는 체계이다. 원효는 일심이문의 체계를 “적멸(寂滅)이란 이름하여 일심이며, 일심란 이름하여 如來藏이다.”라고 한 『入楞伽經』에 근거하여, 심진여문은 경전의 “적멸이란 이름하여 일심이다”라는 구절을, 심생멸문은 “일심이란 이름하여 여래장이다”라는 구절을 해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체법은 생멸이 없으며 본래적으로 寂定하여 오직 일심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심진여문의 世界像이며, 그러므로 ‘적멸이란 이름하여 일심이다’라고 말한다.『기신론』 제3「해석분」에서는,
「一心의 法에 의하여 2종의 문이 있으니 하나는 心眞如門이요, 둘은 心生滅門이다. 이들 2종문은 각각 일체법을 총섭하나니 무엇 때문인가? 二門이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여 一心에 眞如· 生滅의 二門을 개설함과 동시에, 이들 眞如· 生滅의 二門은 결국 일심의 양면관에 불과한 것으로서 나누려 해도 나눌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한다. 즉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의 이문을 일심을 여의지 않고 총섭한다는 것이다. 원효는 ‘그렇다면 두 문이 어떻게 일심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현상 세계에서 染法과 淨法으로 구분되는 모든 법은 그 본성에 있어서 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진여문과 생멸문 역시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므로 ‘一’이라 말한다. 이와 같은 이분화를 초월한 세계가 모든 존재자의 으로서, 이는 虛空과 같은 순수한 무의 상태가 아니며, 본성에 자체적으로 신해의 작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心이’이라고 말한다. 이 논리에는 언어적인 모순이 있다. 이미 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가 존재할 것이며, 하나 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가리켜 마음이라 할 것인가? 이 모순어법은 그대로 인정된다. 말을 떠나고 사유가 닿지 않는 의언진여의 영역이지만, 원효는 老子가 道때를 표현했던 수사법을 빌려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억지로 일컬어 일심이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진여문과 생멸문은 중관과 유식의 사상체계에 대한 『기신론』 나름의 재구성이라 볼 수 있다. 즉 모든 대승의 종교적 대상이 一心이라면 중관과 유식 또한 대승의 법주에 있는 이상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립관계로 보아왔던 중관과 유식은 一心에서 만남으로서 각각 양면적인 특성을 뜻하고 있음을 알아 진정한 대승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오랫동안 대립관계에 있던 중관과 유식이 드디어 『기신론』의 一心二門의 논리에 의하여 한 마음으로 합해지는 바, 원효는 『기신론』의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서 「열면 무량무변의 뜻이 있으나, 합하면 일문일심의 법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여 중관과 유식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립적 쟁론들을 一心二門에 합하고자 한다.
진여문에서는 심진여를 일체법의 상을 여의어서 평등불변하는 절대유일의 실체로 본다. 이는 바로 진리 그 자체로써 어떻게 말로써 가히 형용할 수 없으며 초인식적인 직관으로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상을 여윈 자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깨칠 정도의 근기가 안되는 중생들을 위하여 依言眞如로써 강연히 그 진체의 자리를 말로써 표현한다. 말에 의지하여 분별하니 두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표현할 수 있으니, 진여는 여실공하며, 여실불공하다.
‘여실공’은 말로써 진여의 실상이 ‘空’임을 말하는 것이다. 말로써 보여줄 수는 없지만 말로써 굳이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그 진리의 경지를 깨닫도록 말로 인도하는 것이다. ‘여실불공’은 실상이 空함에 의해 자연 드러난 것으로 더 이상 상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 또한 무량한 덕성이 구족하다는 뜻이 된다. 일심진여를 통하여 만유의 실상을 여러 방면으로 설한 것이 진여문이라면, 그 염정을 초월한 심진여에서 어떻게 무한하게 생멸변화하는 현상계가 전개되는가에 대하여 설한 것이 심생멸문이다. 생멸문에서는 생멸현상의 근원을 여래장에 두고, 진망화합의 阿賴耶識이라는 중간개념을 설정하여 염정제법의 연기를 설명하고 있다. 여래장이라 함은 중생의 마음속에 여래의 씨앗이 含藏되어 있다는 뜻으로, 진여의 실상을 각하지 못한 중생이 모든 망심을 여의면 본연의 자성청정심이 바로 여래이다. 결국 진여문과 생멸문의 이문은 일심의 양면성이며 나누려 해도 나눌 수가 없는 관계이며, 일심이 양면 모두를 총섭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다.
2) 三面的 논리구조
원효는 이처럼 『기신론』의 一心二門에 대한 논의에만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러한 二門의 화합을 통하여 전개되는 體·相·用 三大가 나투어져 있는 一心本原의 세계를 대승의 종교적 목적과 의의를 다한 경지라고 본다.
「이른바 (대승의) 義(목적, 이상)란 3종이 있으니 어떠한 것인가? 하나는 體大이니 일체법에 있어 진여는 평등하여 증감치 않기 때문이다. 둘은 相大이니 이 여래장에는 무량한 성공덕이 구족하기 때문이다. 셋은 用大이니 일체 세간·출세간의 선한 인과를 능히 생하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들이 본래 탄 바이며, 일체 보살들이 모두 이 法을 타고 여래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體大, 만유의 존재의 바탕이 되는 이 형상 이전의 본원자리는 증감이 없으므로 티끌 하나조차 생기기 이전이며, 그 경지는 바로 불생불멸하여 시간적으로는 무시광겁하고, 공간적으로는 무량광대하여 생의 바탕자리가 되는 것으로 곧, 부처님의 여여한 바탕인 것이다. 相大, 모든 존재가 제각기 역할과 기능이 있는 것은 각 근기에 따라 부처님의 자비로운 지혜공덕이 비추어서, 스스로 적절하게 제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는 오직 가장 큰 부처님의 지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用大, 세간·출세간의 모든 존재는 부처님의 위력을 위지하지 않고서는 생길 수 없는 것이며, 모두가 절대적 견지에서는 선한 원인과 결과로써 生한다. 제법의 本産은 부처님의 무량한 德用에 의해 존재한다. 대승의 법인 일심의 이문인 진여와 생멸을 근본하여, 의를 드러내는 體·相·用 三大가 설명된다. 삼대란 대승의 법인 중생심, 곧 일심의 체성과 性德과 德用을 말하는 것으로, 첫째 중생심의 체성은 불생불멸하고 부증불감하며 평등무차별하고 무애무변한 것이므로 이를 ‘體大’라 한다. 둘째 그 불변한 心體에는 또한 무한한 性德을 갖추고 있어서 佛·衆生·貴賤·山河·大地 등 일체 제법이 모두 一心性德의 현현으로서, 이처럼 심체에 본래 갖추어 있는 無量性德을 ‘相大’라 한다. 셋째 이러한 심체의 무량성덕은 因果의 이법에 따라 무한한 業用을 나타내고 있으니, 세간·출세간, 유위·무위의 일체 善法은 모두 이 심체상의 업용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불상용을 ‘用大’라 한다.
이처럼 二門이 일심본원에서 화합하여 體·相·用 三大의 경지를 이룬다면 그 이문과 삼대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에 대해 원효는 생멸문에도 체대를 인정하고 있으나, 주로 진여문에는 체대를 생멸문에는 相·用의 이대를 배대시키고 있다. 이는 원효가 중관과 유식의 대립을 일심이문에 의하여 화합시킴과 동시에 나아가 그들 이문의 화합에 의해 발휘되는 대승의 궁극적 경지인 삼대를 드러내려는데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원효는 일심삼대의 세계야말로 진여·생멸의 이문이 비일비이하게 화합하여 진·속의 차별을 넘어선 대승의 묘체를 이룬 경지로서, 거기에는 무량 성공덕이 원용무애하여 다 함이 없고 불가사의한 무한 업용이 활활자재한 경지로서, 그것은 바로 일심본원 그 자체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라 한다.
즉 이문과 삼대는 일심을 각기 다른 차원에서 여래의 속성에 일종의 분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미한 중생의 여래심은 부처의 것과 같아서 體·相·用 三大를 통하여 존재하지만 중생의 매한 경지에서는 이를 짐작하지 못할 뿐이다.
- 원효의 일심사상의 의의
『기신론』에서는 마음을 중생심(衆生心)이라고도 하고 일심(一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을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심이라 하는 것은 언어와 사유로 설명이 불가능한 진여(眞如)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일심을 인식하기 위하여 이문(二門)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파악하는데, 두 가지 측면 중 하나는 마음을 진여의 측면으로 보는 심진여문(心眞如門)이며, 둘은 진여로서의 마음을 생멸하고 있는 측면에서 보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이러한 이문의 측면을 비롯해「一心二門三大四信五行」의 5단계의 기본구조로 구성되어있으며, 이 가운데「一心二門三大」는 만유의 근본을 중생심이라는 일심에 두고, 이 일심을 다시 본체와 현상의 양면관과 체·상·용의 삼면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렇게 구분을 하지만 이는 결국 일심의 전개를 설명한 것이며, 이를 통해 기신론의 핵심은 一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진리 그 자체를 뜻하며, 오직 진리의 실상은 일심뿐이니 의혹을 버리고 바른 믿음을 일으키라는 뜻으로 기신론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원효는 “여러 경전의 핵심을 하나로 꿰뚫은 것은 오직 기신론뿐이며, 여래의 광대하고 싶은 법의 한량없는 뜻을 총섭하려고하기 때문에 이 기신론을 설해야한다”고 평하였다.
일심란 모든 대립되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의 마음을 뜻 한다고 볼 수 있다. 무명이란 바로 오직 실상은 일심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이로인해 미혹하여 육도를 헤매이는데, 諸法은 일심을 체로 삼기 때문에 중생의 마음도 미혹한 것을 깨치면 부처의 마음과 같다고 알려준다. 무명이란 만유의 체가 일심임을 모르고서, 상대심을 짓고 경계에 미혹하여 이러한 일심과 일치하지 못하므로, 생멸문에 들어가서 육도를 유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一念未生前의 마음이 바로 일심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원효는 『기신론소』에서 일심에 대하여
「어떠한 것이 일심인가? 染淨諸法이 그 性은 無二요 眞妄의 二門이 다를 수 없으므로 一이라 하는 것이요, 諸法의 中實함이 虛空과는 같지 않아 性이 이미 스스로 神解를 가지고 있으므로 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二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一이 있다고 하겠는가? 一이 있을 수 없다면 一心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처럼 道理가 離言絶慮하여 무엇이라 할 수 없는 것을 강연히 이름하여 一心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즉 일심의 一은 염정의 모든 법은 그 본성이 둘이 없어, 진망의 이문이 다름이 없기 때문에, 그 一은 상대적이지 않은 一이며, 心 또한 이 둘이 없는 곳이 모든 법 중의 실체인지라 허공과 같지 아니하여 본성이 스스로 신해하기 때문에 ‘心’이라고 이름하였다는 풀이에서 이 뜻을 더욱 명확하게 짐작해볼 수 있으며, 일심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과 어떤 다른 것에 의해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일심은 스스로 무한할뿐 아니라, 일체 만법을 평등하게 포섭하며, 평등하게 포섭하는 것을 넘어서 만법 그 자체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원효를 비롯한 수많은 불교의 수행자들이 깨닫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일심이요, 그 깨달음의 내용 또한 일심인 것이다. 따라서 일심을 깨닫게 하는 것도 일심이고 그 깨달음의 결과도 또한 일심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원효는 『기신론별기』에 「이미 名字의 상과 言語를 초월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초월하며 무엇에 돌아가리요.」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일심이 된 바에는 깨달음이라고 다시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문제는 일심을 되찾아 일심이 되는 문제이다.
Ⅳ. 일원상 진리와 일심사상의 비교
위의 내용을 통해 앞서 밝힌 일원상 진리와 일심사상은 진리관과 논리적 구조가 많이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일심사상의 ‘一心, 眞如·生滅의 二門, 體·相·用 三大의 구조는 ’一圓, 眞空·妙有, 空·圓·正의 구조와 유사하다. 절대유일심의 경지는「일원상 진리」에 나타난 절대유일한 진리의 경지와 통한다. 이 두 사상을 비교하고 분석해보고자 한다.
- 두 사상의 논리적 구조 비교
일원상 진리는 만유의 본원이며 우리의 본성인 일원을 본체와 현상의 양면으로 관찰한다. 나아가 이 일원을 다시 일체 상대를 여읜 空과, 원만구족하여 다 함이 없는 圓과, 지공무사하여 불편불의하고 무과불급한 正의 三屬性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한편 원효는『기신론』에 바탕하여 一心을 본체와 현상의 양면으로 관찰하여 만유의 본체, 중생의 실체로서 불생불멸한 心眞如門과 제법의 현상으로서 천차만별한 心生滅門의 二門을 열어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心眞如門의 일심의 體를, 心生滅門은 일심의 相과 用을 나타낸다.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眞空·妙有와 空·圓·正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진공에 공을 그리고 묘유에 원과 정을 배대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 또한 둘의 구조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二門의 心眞如의 依言眞如는「일원상 진리」에서 표현하는 言語道斷의 入定處이다. 『기신론』에서는 依言眞如를 여실공과 여실불공으로 진여를 설명하는데, 「일원상 진리」에서 依言眞如의 如實空를「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이 돈공한 자리」로 설명한다. 二門의 진여는 일체 현상을 초월하고 있으며, 동시에 법신과 더불어 둘이 아닌 자리다. 「일원상 진리」의 본체 역시 일체의 분별과 변화가 없으며, 언어와 명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여실공임과 동시에 여실불공이라는 묘유의 측면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다. 이를 「일원 상진리」는 ‘공적 영지의 광명’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心生滅은 「일원상 진리」에서 설명하는 분별과 차별 그리고 언어명상으로 드러난 세계의 설명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일원상 서원문의」에서의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사생의 심신작용에 따라 변화」 하는 무상의 세계가 심생멸의 현상세계와 같은 것이다.「一心思想」과 「일원상 진리」의 현상세계는 假有로서 체성이 없는 세계다. 그 또한 진여의 드러남이되 진여의 본체가 중생의 무명 때문에 끊임없이 바뀌는 고락과 유무가 변하는 세계인 것이다.
공·원·정은 일원상 진리의 요약인 동시에 모든 진리적 행위의 평가기준이 되기도 한다. 또한, 중생에게 갊아 있는 진리의 속성을 수행으로 닦아간다는 관점으로 볼 때, 이 세 가지 속성 중에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신앙과 수행의 형태가 다양해 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일체 중생의 본성이라 하였듯이, 어리석은 중생이 본래부터가지고 있는 성품인 법신불 일원상을 「일원상 서원문」에서 서설한 진리적 설명을 통해서 스스로 깨쳐 얻어서, 삼학 공부를 지성으로 하는 것이 바로 진리의 삼요소를 수행하는 것임을 보이고 있다.
一心思想의 체·상·용 삼대는 진여의 三屬性을 의미한다. 삼대의 설명은「일원상 진리」에서 밝힌 공·원·정이 명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공원정의 해석에 있어 신앙과 수행의 측면에서 확장하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 2. 일원상 진리와 일심사상의 의의 비교
원불교는 모든 존재와 진리의 근원으로서 法身佛一圓을 제시하고 이를 근거로 모든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즉 一圓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근본 성품인과 동시에 현상과 본체, 유와 무, 유상과 무상 등 일체의 상대적인 진리를 총섭하되 그를 넘어선 절대의 체인 것이다. 동시에 이 일원은 그 體性과 光明과 作用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여 무한한 진리성과 은혜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원효는『기신론』의 一心二門三大에 바탕하여 空(중관)·有(유식)의 사상적 대립과 眞·俗의 가치적 갈등을 조화적으로 회통시킨다. 특히 衆生心 그 자체에서 대승의 진리를 구하고 종교적 의의를 드러내는데 주력하는 바, 心眞如를 중생의 실체로 볼 뿐 아니라 이를 만법의 근본이라 한다. 이처럼 중생심의 실체이자 만유의 본원이며 총상으로서의 一心은 무한한 體性과 德相과 作用을 지닌 것이다. 이 일심은 본래 그 체성이 불생불멸하고 부증불감하여 평등무차별하고 광대무변한 것이며, 동시에 세간·출세간, 유위·무위 등 염정제법과 佛·衆生·鬼畜·山河·天地 등 내외 제법이 모두 나타난 것이며 작용인 것이다. 즉 일체의 상대를 넘어서면서도 그들을 표용하여 다 함이 없는 절대유일심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원불교의 一圓과 원효의 一心은 동일한 진리에 대한 서로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一圓과 一心은 모두 절대유일의 진리를 표현한 것으로서, 양쪽은 모든 존재의 근원임과 동시에 우리 마음의 본성이며, 근원적 진리의 추구에 있어 양 사상 모두 自我本性에서 출발하여, 점차 법계 전체로 확산하여 일원 그리고 일심의 경지에 귀의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원효가 통불교적 입장에서 원시불교 이래 대승불교 전반의 중심과제였던 諸心思想의 종합회통에 초점을 둔 『기신론』에 바탕 했다면,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一圓을 모든 종교의 본원이라 보고,
「儒家에서는 이를 일어 太極 혹은 無極이라 하고, 仙家에서는 이를 일어 自然 혹은 道라 하고, 佛家에서는 이를 일어 淸淨法身佛이라 하였으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로서, 비록 어떠한 방면 어떠한 길을 통한다 할지라도 최후 구경에 들어가서는 다 一圓의 眞理에 돌아가나니, 만일 종교라 이름하여 이러한 근원을 세운 바가 없다면 그것은 곧 邪道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원불교는 종교적 입장에서 불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근원적인 회통성을 강조한 점을 알 수 있다. 근본적인 진리관에 있어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一圓과 一心의 논리구조를 보았을 때, 一圓相眞理의 논리구조인 眞空과 妙有의 양면관과 空·圓·正의 3속성의 구조라면, 원효 역시 一心을 眞如와 生滅의 二門과 體·相·用의 三大의 구조로 전개하고 있음을 보아 그 설명의 논리전개에 있어서도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Ⅴ. 결론
원불교에서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해 천명된 일원상 진리를 중심으로 하여 신앙과 수행의 교리적 체계를 형성하였다. 이 일원상의 진리는 우주 만유의 근원이며, 총체적인 진리 자체로 모든 종교의 원천임과 동시에 그 궁극적 지향점이 우주로부터 우리 인간 각자에까지 이르는 진리의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일원상 진리의 眞空·妙有, 空·圓·正과一心思想의 二門(心眞如門, 心生滅門), 三大(體·相·用)은 근원진리의 관계이며, 논리적 구조까지도 긴밀하게 상통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러 종교의 제도와 방편이 상이하여 서로 분쟁과 갈등이 생기는 이 시기에 모든 종교의 교지를 통합활용하자는 소태산 대종사의 주장과 포부는 과거 여러 교파로 나누어 져서 분립하고 쟁론을 벌이던 불교 시대를 총섭한 일심사상의 종합회통 정신이 확장되어 모든 종교를 회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주장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하여 밝혀진 일원상 진리에 바탕하였으며, 이는 원효의 중심사상인 『대승기신론』에 바탕한 일심사상과 진리관에서 뿐 아니라 논리적 구조체계에서 조차 크게 상통하고 있음을 살펴봄으로써, 당시 교학적 과제였던 중관과 유식의 대립 및 출세간과 세간의 갈등 문제를 조화적으로 회통했던 통불교적 입장에서 중생심의 양면관인 진여·생명 이문의 화합을 통해 양측의 갈등을 해소시키고, 나아가 이러한 이문의 화합에 의하여 나타나는 一心本源의 세계가 대승의 종교적 이상을 다한 경지라 보듯,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우리의 본성인 「일원」이야말로 眞如와 生滅 또는 眞空과 妙有는 물론, 體·相·用 또는 空·圓·正 마저 넘어선, 法身佛이므로 이러한 진리에 바탕한 통종교의 회통사상이 가능하다 생각한다. 이를 통해 현 시대에 여러 종교의 교지를 통합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과 서로 다른 종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을 통해 「일원상 진리」와 일심사상이 한 마음을 밝혀간다고 하는 목적과 논리구조의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으며, 당시 불교 교파간의 갈등과 교리적 분립을 종합회통한 사상이 어떠한 근거에 의해 가능했으며, 현대시대에 다양한 종교의 교리의 종합회통을 주장하는 소태산 대종사의 주장이「일원상 진리」에 바탕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일원상 진리」의 인식에 대해서 너무 해석적이거나 논리적인 요소만으로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지만, 교리 이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자세로서 그리고 소태산 대종사의 본의와 바람직한 원불교 신앙과 수행의 정립을 위해 원효의 ‘일심사상’과의 비교를 초점으로 고찰해보았다. 이러한 학문적 노력뿐만 아니라, 대종사의 본의인 근원적 진리관이 잘 전달되고 경륜과 포부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일원상 진리」에 바탕한 수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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