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좌선법 연구
-단전주선을 중심으로-
Ⅰ. 서론
Ⅱ.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과 방법 1. 좌선의 형성과정 1)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 2) 초기교서에 나타난 좌선법 2. 좌선의 방법 1) 조신 2) 조식 3) 조심
Ⅲ. 단전의 개념과 연원 1. 단전의 개념 2. 원불교 단전주선의 연원
Ⅳ. 단전주선법의 원리와 특징 1. 단전주선법의 원리 2. 좌선의 특징 1) 단전주법 2) 병행선법
Ⅴ. 결론 |
Ⅰ. 서론
현대 과학 문명이 급속도록 발달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인간의 정신문명은 갈수록 황폐되어 가고 있다.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대종사는 일찍이 이러한 시대를 내다보고 “물질(物質)이 개벽(開闢)되니 정신(精神)을 개벽(開闢)하자”라는 개교표어를 내걸고 원불교를 창건하였다.
21세기 개벽의 전환기에 들어선 지금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현대인들은 정신의 영역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의 과학 문명과 물질 만능주의가 더 이상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개인 스스로가 자기 내면에 있는 본래존재에 대한 자각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바라봐야한다. 현대인들은 바쁜 직장생활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힐링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명상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마음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종교단체의 명상센터 뿐만 아니라 종교와 관련이 없는 명상센터라든지 선요가 등 많은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만큼 우리 종교단체에서도 명상과 마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그것을 지도해줄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야 함이 현실이다. 그러나 본 논자는 불법에 귀의하여 불문에 들어와 선 수행을 한지가 벌써 4년을 헤아리지만 원불교 수행의 기본 과목인 좌선조차 체를 확실히 잡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내 스스로의 노력과 정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좌선에 대해 체계적으로 심도 있는 이론과 실습을 배웠다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하고자 하는 특별한 마음을 내지 않고서야 좌선에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없었을 뿐더러 좌산상사님께서 지으신「정전 좌선의 방법 해설」외에는 특별히 이렇다 할 교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원불교 예비교무 학부과정을 이제 막 시작하거나 좌선에 흥미와 취미가 생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본 논문은 크게 서론, 원불교 좌선법, 단전의 개념과 유래, 단전주선법의 원리와 특징, 결론의 5단락으로 나누어서 정리하고자 하는데, 원불교 좌선법은 좌선법의 형성과정을 알아봄으로써 소태산 대종사의 선사상에 대해 이해하고 좌선의 방법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그리고 원불교 좌선의 특징 중 하나인 단전주선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단전의 개념과 유래를 알아보고 단전주선법의 원리와 특징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 논문을 준비하면서 논자 자신이 좀 더 선에 대한 흥미를 갖고 실천해 보고 좌선법에 대하여 앞으로 더욱 정진, 적공 할 것을 다짐해 보며 정전을 비롯한 경전과 아울러 선행 논문을 통해 원불교 좌선법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
Ⅱ.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과 방법
원불교 좌선법은 『원불교교전』 정전 제 3 수행편 제 4장에 편성되어 있으며, 11과목 가운데의 하나로서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삼학 중 정신수양 과목에 속하며 원불교 수행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며 대표적인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좌선법의 등장배경을 간략하게 알아보면 좌선은 인도의 요가와 우파니샤드의 영향을 받은 구차제정의 선법과 비상비비상처정, 나아가 바라문 계통의 수정주의와 불타 전후의 고행주의가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다. 좌선은 중국에서 조식법과 도인법에 영향을 받았던 바,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 선종이 좌선을 강조하면서 묵조선과 간화선이 전개되어 왔고, 이것이 한일 불교의 좌선법에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원불교는 이러한 불교의 좌선법과 도교 수련법의 영향을 받아 수승화강의 단전주 선법으로 이어온 것이다.
이에 본 논자는 원불교 좌선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자 한다. 첫째로 좌선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둘째 좌선법의 방법 셋째 좌선법의 특징순서로 좌선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 좌선의 형성과정
좌선법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기 전에 소태산 대종사(1981~1943)가 활동했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해당한다. 19세기 이후 서구 자본주의는 식민지 쟁탈이 본격화되면서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갔고, 그 결과 제3세계는 식민지 지배구조에 신음하게 된다. 이러한 세계사의 변화는 제국주의 본국이나 식민지 모두 사회 · 경제적인 모순과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구한말 · 일제 식민지로 이어지는 한국사회 역시 그러한 세계사의 모순과 질곡이 그대로 반영되어 드러나고 있었다.
원불교 좌선법을 알아가는데 있어서 선의 사상적 배경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이 살았던 생애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시대적·역사적으로 억압받던 시대에 고민하고 구도했던 삶 속에서 부터가 원불교 선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의 과정을 고찰해봄으로써 기본적인 선사상의 이해를 하고 초기교서에 나타난 좌선법의 변천과정을 알아보겠다.
1) 소태산의 구도와 대각
소태산 대종사의 7세부터 시작된 하늘과 구름에 대한 의심은 점차 모든 것에 대한 의심, 이 세상 모든 이치와 만사에 대한 의심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한번 의심머리가 시작됨을 따라 일백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나를 생각한즉 내가 스스로 의심되고 물건을 생각한즉 물건이 또한 의심되어 이 의심 저 의심이 한 가지 대종사의 가슴을 긴장케 하였고 이러한 상황은 ’세상에서 이 모든 이치를 아는 자‘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친척들과 선산 시향제에 참석했다가 듣게 된 산신을 만나 그 의심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산신의 능력이 탁월하므로 대종사의 의심을 해결하여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4년간(11세-15세)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와 정성을 바쳤으나 산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중략)
이러한 외적인 스승의 추구도 한계에 부딪히게 된 대종사는 22세부터 ‘장차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한 생각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24세가 되던 해부터는 그 생각마저도 잊어버리게 되어 점점 혼수상태와 같은 입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략)
이 기간 동안에는 한 번 입정에 들었다하면 밥을 먹는 것도, 시장을 가는 것도 잊고 그대로 침잠해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모든 생각을 잊고 그대로 침잠에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모든 생각을 잊고 대입정의 상태에 들기도 하는 공안 대종사의 정신이 어떤 대에는 혹 분별이 있기도 하다가 도로 혼돈해지고 혹 기억이 나타나는듯 하다가도 도로 망각하기도 하는 등 가슴 속은 점점 더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26세 3월 이른 새벽 대종사 묵묵히 앉아 있는데 우연히 정신이 쇄락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기분이 들어 밖으로 나와 사면을 살펴보니 천기가 청량하고 별들이 교교하여 그 공기를 호흡하며 장내를 두루 배회하더니 문득 이 생각 저 생각이 심두에 나타나서 사리가 환히 밝아지게 되었다. 날이 밝자 청결하는 도구를 찾으니 이것이 출정의 초보였다.
이때 대종사는 구도과정에서 간화선적인 과정과 묵조선적인 과정을 다 체험한 것이다. 이러한 대종사의 체험은 후에 친히 저술한 정전의 선법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아진다.
그 날 조반 후, 이웃에 사는 몇 몇 마을 사람이 동학의 [동경대전(東經大全)]을 가지고 서로 언론(言論)하는 중, 특히 [오유영부 기명선약 기형태극 우형궁궁(吾有靈符其名仙藥其形太極又形弓弓)]이란 귀절로 논란함을 들으시매, 문득 그 뜻이 해석되는지라, 대종사 내심에 대단히 신기하게 여기시었다. 얼마 후, 또한 유학자 두 사람이 지나다가 뜰 앞에 잠간 쉬어 가는 중, [주역]에 [대인 여천지합기덕 여일월합기명 여사시합기서 여귀신합기길흉(大人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이라는 귀절을 가지고 서로 언론함을 들으시매, 그 뜻이 또한 환히 해석 되시었다. 이에 더욱 이상히 여기시어 [이것이 아마 마음 밝아지는 증거가 아닌가]하시고, 전 날에 생각하시던 모든 의두를 차례로 연마해 보신즉, 모두 한 생각에 넘지 아니하여, 드디어 대각을 이루시었다.
대종사, 이에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하시었다. 이로부터 대종사의 심경은 날이 갈수록 명랑해지고, 야위던 얼굴과 몸에 기혈이 충만하여, 그간의 모든 병증도 차차 저절로 회복되니, 보는 이들 누구나 정신이 황홀하지 않을 수 없었다.
7세부터 의문이 시작되어 26세 까지 긴 고통과 시련의 구도역정이 끝나고 출정과 함께 대각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20년간의 행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태산 대종사는 어린시절 우주의 이치에 대한 의심(7세)을 시작으로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이를 더함에 따라 인생의 문제로 확대(9세)되었다. 그러다가 이 의문을 기필코 해결하고자 하는 강렬한 원을 발하여 산신을 만나 의심을 해결케 하고자 기도정성을 4년간 노력(11-15세)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자 산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품었고, 도사를 만나서 공부하여 내 스스로가 해결하고자(16-22) 하였다. 이 또한 결실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이 일을 장차 어찌할고’ 하는 일념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 한 생각마저 놓아버린 후 입정의 상태에 빠져들고, 1916년 3월 26일 모든 의문을 해결하고, 몸의 원기를 회복하면서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라는 대각 일성과 함께 진리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소태산 박중빈의 구도과정을 시작으로 대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보면 다음 표1과 같다.
구도역정 | 비고 | |
7세 | 우주의 이치에 대한 의문을 시작 | 의문제기 |
9세 | 인생의 문제에 대한 의문으로 확대 | 의문의 확장 |
11세-15세 | 의심을 해결해 줄 산신을 만나기 위한 기도 | 외적 전지자를 추구 |
16세-22세 | 도사를 만나 의심을 해결하고자 함 | 求師의 苦行 |
22세-24세 |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의심 | 화두에 몰입 |
24세-26세 | 화두마저 잊고 돈망의 大入定 상태로 침잠 | 화두마저 놓고 대입정 |
26세 | 대각 |
<표1. 소태산의 구도과정과 대각 연표>
이러한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의 과정을 통해 원불교 좌선법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첫째는 당시 한국에서 유행되던 유교나 불교나 도교 등 다른 종교의 수행시스템에 의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대종사도 술회하고 있듯이 무사자오(無師自悟)의 수행은 너무도 더디고 건강쇠약 등의 후유증을 낳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성종교의 다른 선법과의 연계성도 중요하지만, 그 대오분상에서 밝힌 교리사상에 입각한 원불교 선의 정체성을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초기교서에 나타난 좌선법
다음은 원불교에서 수행법으로 선이 차지하는 비중을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교단 초기 교서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초기교서의 범주는 1962년(원기47) 《원불교교전》이 발행되기 이전에 사용하던 소태산대종사가 친히 찬술하거나 재세 시에 발행한 교단 초기의 각종 교서를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교단 초기의 각종 교서와 더불어《월말통신》,《월보》,《회보》 등 여러 가지 정기간행물들을 총괄하여 초기교서의 범주에 포함하기도 한다.
원불교의 교리가 처음으로 활자로 인쇄발행된 것은 1924년(원기9) 6월 1일 전북 익산 보광사에서 개최된 불법연구회창립총회에서였다. 새 회상을 열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도모하기 위해 제안된 초안은 한 조목 한 조목씩 차례로 좇아 통과되었고 그에 따라 《불법연구회규약》(초판, 1924)의 효력이 발생되었다. 이것이 원불교의 첫 번째 공식교서이며 이후 1943년(원기28) 소태산대종사의 열반을 즈음하기까지 10여 권에 이르는 다양한 초기교서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초기교서는 《불법연구회규약》을 비롯한 헌규, 주요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수록한《보경육대요령》(1932)과 같은 교서, 《회원수지》(1936)와 같이 창립취지와 주요한 핵심교리와 제도를 간략히 정리하여 소개하는 홍보물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소태산은 대각이후 구인제자를 비롯한 창립인연들을 규합하고 방언공사와 법인기도를 통해서 교단 창립의 경제적ㆍ정신적 기틀을 다졌다.
『원불교교전』이전의 초기교서 형성과정 정리하면 [표2]와 같다
.
원기 | 서기 | 월 | 교서명 | 원기 | 서기 | 월 | 교서명 |
1 | 1916 | 5 | 최초법어 설함 | 17 | 1932 | 4 | 보경육대요령 |
5 | 1920 | 4 | 변산실상사 교강초안 | 18 | 1934 | 5 | 불법연구회통치조단
규약 개정 |
12 | 1927 | 3 | 불법연구회규약 | 20 | 1935 | 4 | 조선불교혁신론 |
12 | 1927 | 5 | 수양연구요론 | 28 | 1943 | 3 | 불교정전 |
16 | 1931 | 7 |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 |
<표2. 초기교서 형성과정>
원불교대사전에서는 초기교서를 헌규, 교서, 홍보물 세 유형으로 나누었는데, 본 논자는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을 교서를 기반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정식교서가 출간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좌선법에 대한 내용이 나온 때는 원기 13년(1928) 5월에 주산 송도성 주간으로 창간된 월말통신에서 볼 수 있다. 월말통신 제 1호에 의하면 단원성적조사법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매월 16일에 1회씩 단원의 성적을 단장이나 중앙이 조사하여 매년 음 12월 26일에 교무부에 보고하는 표준 양식이 나와 있다. 초기에는 일단 염불과 좌선을 행한 날짜로써 등급을 매기었고 제2호에 구체적 등급내역이 제시되었다.
그 후 원기 14년 월말통신 21호에 대종사께서 친히 체험에 바탕한 [좌선의 방법과 그 필요에 대하여]라는 법설을 볼 수 있다.
「(법설) 좌선과 그 필요에 대하여.」
종사주 좌선의 요의를 설하옵시니 가라사대, 좌선의 방법으로 말하면 극히 간단하고 수월하야 아무라도 능히 행할수 있는 것이다. 제일 첫째, 반좌를 단정하 핝은 뒤에 허리와 머리를 곧게 하고 전신의 힘을 툭부리어 아랫배(丹田)를 약간 불니난득 하고 상부의 기운을 순순히 아랫배로 나리우며 마음으로난 아랫배에 기운 주해 잇난 것만 대종 잡고 잇스면 자연히 드리쉬난 숨을 길고 강할것이요. (중략) 이-좌선의 요지난 오즉 육근의 기관을 돈연히 쉬어서 화기를 알로 나리우고 수기를 우으로 올니어서 안심안정이 되도록 함이라, 전신에 수기가 충만하면 정신이 자연 맑아지고 희노애낙의 경계를 대해도 망동함이 적으리라」하시더라.
라고 한 대종사의 좌선에 대한 법설을 고찰해 볼 때 앞서 원불교의 좌선법에는 대종사의 대각에 이르는 구도과정에서의 체험이 중심이 되고 있는 근거를 여기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설사 문장중에 ( )안에 단전이나 수·화기에 대한 표현이 있다 해도 문장 전반의 흐름으로 보아 어떤 글을 보고 인용함이 아니며 대종사 체험상의 법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원불교 첫 정식교서로 나온 보경 육대요령에서 좌선법에 대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1932년(원기 17)에 간행된 『보경육대요령』에서는「좌선법」이라는 장이 따로 분장되지 않고,「정신수양 정기훈련과목의 해석」에서 간단하게 그 요지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단전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坐禪이라 함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과 기운을 아래 丹田(배꼽아래)에 住하고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圓寂無別한 眞境에 그쳐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純然한 根本精神을 養成하난 방법이니라.
이는 오늘날 정전 정기훈련법 좌선에 대한 설명과 일치한다. 이를 통해 단전주를 핵심으로 하는 원불교 좌선법의 틀이 초기교단의 첫 번째 정식교서라 할 수 있는 보경육대요령에서부터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원기 19년『불법연구회규약』이나『보경삼대요령』에서도 큰 틀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지속되고, 원기 20년 원불교 좌선법 변천과정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좌선에 대한 법문」이라는 이공주 수필의 법문이 회보에 등장한다.
한때에 익산교당에서 종사님 새벽좌선 시간에 선방에 출석하시사 대중을 향하야 말삼하야 가라사대 「… 과연 좌선이라 하난 것은 모든 번뢰를 떼이고 오직 무심적적한 지경에 근처 사람의 순연난 근본정신을 차저 양성식힘이니 곳 언어가 도단하고 심행처가 멸한 것을 드러 보내는 것으로서 비유들어 말한다면 달이 금옴에 아조어두어 버려야 초생달이 다시 나오듯 이사람의 마음도 그와같이 온전하고 적적한 자리를 차저 근처야만 성리의 진면목을 본것이며 따라서 지혜광명을 얻게 되나니라. (중략) 그런다면 차차 정신의 수양력을 얻어서 온전한 정신이 회복되난 머리에 일과 이치에도 분석이 밝게 나며 자주력 정신을 엇게 되리라.」하시드라.
위 법설을 보면 원불교 좌선법은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여 자주의 정신을 얻게 하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 또 불기운을 오르게 하는 화두를 들고 선을 하는 것이 아닌 좌선을 할 때는 오롯이 좌선을 하고 좌선 후 온전한 정신으로 화두를 들도록 따로 나누어 병행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원기 23년에 회보 44호에 이공주 수필의 ‘좌선의 필요’가 나오는데 이는 현행 원불교 정전에 나와 있는 좌선법에 좌선의 공덕 10가지를 언급하고 그 내역까지 아주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가 좌선을 많이 하야 그 힘을 얻고보면
일. 경거망동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는 것, 그 내역 – 보통 사람이란 사심에 끌려서 자주력이 서지 못하여 어떠한 일에나 경거망동하기 쉬운것이다. 그러나 좌선을 많이하는 사람은 항상 그 마음을 직혀서 사심은 제거하고 정심을 양성함으로 자연히 정중한 태도가 표면에 까지 나타나서 경거망동하는 것이 감소되여 지나니라. (중략) 상술한 바와 같이 좌선은 우리 인생에게 그와같이 필요한 공부나 그도 과도히한즉 상기가 되고 그 하는 방식을 모르고 한즉 도로혀 병을 얻게 되야 혹은 정신에도 고장이나서 페인되는 예도 적지 않나니 제군은 과불급이없이 도에 맞게 또는 그 방식을 알고 좌선을 하야 좋은 효과를 얻게 하기 바라노라 하시더라.
좌선의 필요를 밝히기 위하여 좌선의 공덕을 내역까지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좌선을 과도히 하게 되면 상기가 되고 하는 방식을 모르고 하면 병을 얻게 되니 과불급이 없이 도에 맞게 하도록 당부 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조선 후기에서 성행 하던 한국불교 선종의 간화선의 부작용에 대한 대안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 원불교 좌선법의 특징과 성격이 들어난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1943년(원기28년) [불교정전]이 발간되는데, 시창25년도 사업보고서를 통해 불교정전에 좌선법이 추가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원기 25년 9월부터 소태산은 본회 교과서를 통일 수정하기 위하여 교리에 능숙한 제자 이공주, 송도성, 서대원에게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동파서류(東派西流)를 종합한 대성적(大成的) 종전(宗典정전)을 편찬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때 이루어진 편차는 제1편에는 육대요령을 다소 수정하였고 그 외에 권두표어, 일원상서원문 병든 세상 치료법, 좌선법, 단전주의 필요, 무시선법, 참회문이 추가되었다.
이는 불법을 주체로 하되 합리적이면서도 혁신적이고 원만한 불법의 재건하고자하는 의지를 반영하는 자료이다. 그리고 [불교정전]의 [좌선법]의 내용에서도 [단전주의 필요] 장을 통해 단전주를 선택하는 이유를 선정상의 이유 뿐 아니라 위생상의 필요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정전은 원기 47년에 완성되었다. 여기서는 불교정전 [단전주의 필요] 장이 크게 축약되었다.
- 좌선의 방법
원불교 좌선법 첫 문장에는 「좌선의 방법은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아무라도 행할 수 있나니」라고 밝히고 있다. 아무라도 행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간결한 선법이나 지금까지 연구되어진 여러 가지 수련법들의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다. 본 논자 또한 지금까지 좌선을 해온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여러 교무님들의 가르치는 방법이 각자 다르다 보니 혼란을 겪기도 했다. 결국 좌선법에 나와 있는 원문 그대로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바른 방법임을 느꼈다. 좌선의 방법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참고하여 다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원불교 좌선의 성격은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의 일반적인 선종의 방법에 의하나 결가부좌를 강조하지 않고 반가부좌를 일반으로 한다.좌선의 방법에서 조신에 해당되는 조항은 1조, 4조, 5조이고, 조식에 해당하는 조항은 2조, 3조, 8조이고, 조심에 해당하는 조항은 6조, 7조, 9조를 차례로 설명하겠다.
1) 조신(調身)
➀ 좌복을 펴고 반좌(盤坐)로 편안히 앉은 후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라.
좌복 자체가 좌선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체는 좌복을 필요로 한다. 오랜 시간 앉아 있다 보면 무게 중심을 받는 돌출된 뼈 부분에 상당한 부담이 와서 신체적 고통이 따른다. 좌복은 너무 두터운 것도 너무 얇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반좌란 소반을 평탄한 곳에 놓은 것과 같이 반반하고 편안하게 앉는 것. 쉽게 말하면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법이다. 반좌에는 양쪽 다리를 다 포개고 앉는 결가부좌(結跏趺坐)와 한쪽 다리만 포개고 앉는 반가부좌(反跏趺坐)가 있다.
즉 안정된 자세를 말하는데 앉을 때에 양쪽 무릎이 땅에 닿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다리를 어느 한쪽으로만 포개어 좌선을 하게 되면 습관으로 굳어져서 골반이 틀어지게 되고 척추까지 틀어져서 허리통증이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반좌로 앉되 반드시 다리를 고르게 바꾸어 가며 앉아야 한다. 날로 바꾸어도 되고 시간대로 바꾸어도 된다.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는 것은 머리와 허리 그리고 아래 척추에 까지 반드시 앉는 것을 이름이다 앉은 자세부터 일호의 나태나 해이함이 침노할 구멍이 없이 긴장이 감돌면서도 편안한 자세로 해야 한다.
➁ 눈은 항상 뜨는 것이 수마(睡魔)를 제거하는 데 필요하나 정신 기운이 상쾌하여 눈을 감아도 수마의 침노를 받을 염려가 없는 때에는 혹 감고도 하여 보라.
이제 막 선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의 가장 큰 적이 수마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침에 일어나 다리를 틀고 앉아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는 초입자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많은 선지식과 스승님께서 선을 하는데 있어 가장 크게 경계해 주신 것이 있다면 바로 “수마(睡魔)”이다“ 수마에 빠지면 그것은 죽은 선 이라고 경고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각 선방에서는 경책까지 내세워 단도리한 것을 보면 수마의 해로움을 잘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초심자는 의도적으로 눈을 반쯤 뜨는 것이 좋다. 눈을 감으면 망념이 많아지거나 졸리기 때문이다. 논자도 선을 해본 결과 눈을 감고 선을 하게 되면 십중팔구는 수마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초입자는 아예 처음 좌선을 시작할 때부터 눈을 뜨는 습관을 길들여야 한다.
아직 좌선의 기초도 잡히지 않은 초입자가 선의 고준한 진경에 들고자 하는 욕심으로 좌선의 초입 단계를 뛰어 넘어 눈을 감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허망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➂ 입은 항상 다물지며 공부를 오래하여 수승 화강(水昇火降)이 잘 되면 맑고 윤활한 침이 혀 줄기와 이 사이로부터 계속하여 나올지니, 그 침을 입에 가득히 모아 가끔 삼켜 내리라.
좌선을 하는데 입을 다물라는 의미는 입을 통해 흘러나가는 기운을 모으고 입이 아닌 코로 숨을 쉬라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좌선을 하기에 앞서 입을 다물고 혀끝을 올려서 앞니와 입천장 사이에 댄다. 그리고 좌선을 하면서는 잊으면 적당한 모습이 된다.
2) 조식(調息)
➀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지나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
단전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배꼽아래 삼촌이라고 한다. 논자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배워왔다. 원불교 4대 종법사를 역임한 좌산 이광정 교무는 단전의 위치를 「단전 초점은 배꼽과 최하복부 횡골(橫骨)선과의 중간 지점을 말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이 곳에 마음과 기운을 온전히 정하고 기운주한 대중으로 방심하지 않고 온전한 기운을 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생각 단전에 온전하고 한 기운 단전에 조절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방심되지 아니하고 온전한 마음올 그동안 잡념이 생기는 것을 이 단전에 집주함이니, 집주하는 가운데 한 마음의 대중을 풀지 아니하여 항상 챙기는 마음을 가지고 단전에 집주하자는 것이다.
➁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하라.
호흡은 곧 정신과 육신과 기운을 조절하게 하는 방법으로 이 숨을 통해 이루어진다. 선을 하는데 있어서 자세보다도 호흡이 더 중요하다. 자세가 호흡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자세를 고쳐야 한다. 호흡을 잘못하면 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기운을 버릴 수도 있다. 또 기가 뭉친다거나 기운이 머리 위로 올라가서 두통을 일으킨다. 원불교의 호흡법은 흡장호단의 호흡이다. 호란 내쉬는 숨인 날숨이고, 흡이란 들이쉬는 들숨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억지로 흡장호단의 호흡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병을 만들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단전에 마음이 머물러 고요하고 평온하여 숨이 길어지면 저절로 되는 것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➂ 처음으로 좌선을 하면 얼굴과 몸이 개미 기어다니는 것과 같이 가려워지는 수가 혹 있나니, 이것은 혈맥이 관통되는 증거라 삼가 긁고 만지지 말라.
「정전 좌선의 방법 해설」에서는 가려움증에 대한 두 가지 이유를 말했다. 「하나는 피부에 염증이 생기거나 상처가 나을 때 생기는 가려움증이고, 또 하나는 혈액의 통로가 막혀 있거나 윤활하게 통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막힌 것이 터지면서 혈액이 윤활하게 통하는 계기가 올 때이다. 전자의 경우는 병적 현상이요, 후자의 경우는 좌선상에서 나타나는 경우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염증으로 인한 가려움이라면 당연히 치료를 해야 하지만 「좌선 과정상 나타나는 경우는 견디기 어려운 정도는 아닌 만큼 구태여 만지고 긁고 하는 들 신경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좌선시(坐禪時)에 몸이 편안치 않거나 좀 신경이 쓰여지는 곳이 있어도 이를 초월(超越)하고 오직 신(身), 식(息), 심(心) 조화(調和)를 이뤄나가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고 합일(合一)토록 해야 한다. 좀 이상한 감각이 있다 하여 그 곳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좌선(坐禪)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 경계한 교시(敎示)라 하겠다.
3) 조심(調心)
➀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질지니, 만일 혼침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으로 돌이켜서 무위자연의 본래 면목 자리에 그쳐 있으라.
적적성성(寂寂惺惺), 성성적적(惺惺寂寂) 이것은 예로부터 선가의 참 기준이 되어 왔다. “적적”이란 말은 고요하다는 뜻이요. “성성”이란 말은 초롱초롱하다는 뜻이다.
적적 성성은 곧 정신이 능히 살아 있는 상태를 찾아 공부함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을 갖는 것이라 하고, 정시공부를 대중 삼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갖는 공부로 능히 천만 경계에 일하는 것이니, 이것은 곧 성성한 마음가운데 적적한 심경을 가지고 마음 대중을 하게 되면 자연히 공부심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적적한 가운데 성성하게 되는 것은 곧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마음의 본연심을 갖는 것으로, 마음의 본래 면목에 안정된 것을 이름 한다. 또한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은 곧 도거(掉擧)나 망념(妄念)이 없는 성성심을 갖는 것으로, 이것이 곧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의미한다.
➁ 처음으로 좌선을 하는 사람은 흔히 다리가 아프고 망상이 침노하는 데에 괴로와하나니, 다리가 아프면 잠깐 바꾸어 놓는 것도 좋으며,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
초입자가 처음으로 앉아서 명상을 하게 되면 다리가 아프기 마련이다. 또한 끝도 없이 망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좌선을 하는데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공부삼아 관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다리가 아플 때 억지로 참기만 하려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여석압초(如石壓草)식의 억누름이요 무지일 뿐이다.
하지만 가끔 다리가 아파도 참고 견디려는 경향이 보일 때가 있다. 좌선의 공덕에 5조에 보면 “인내력이 생겨나는 것이요.”라고 나와 있다. 참고 견디다 보면 인내심이 길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내심은 좌선상에서 부차적으로 얻어지는 소득은 될지언정 주목적은 아니다.” 라고 하며 좌산 이광정 교무는 인내심은 부차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좌선이란 괴로움과의 대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좌선의 방법에 나와 있는 대로 다리가 아프면 잠깐 바꾸어 놓는 것이다. “다리가 아플 때마다 좌우 다리의 상하 위치를 잠깐 바꾸어 놓음으로써 아픔으로 인한 정신 분산을 빨리 청산하고 바로 좌선의 진경에 들어야 한다.”
좌선을 할 때에는 일어나는 모든 생각도 다 망념이다.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나거나 교리의 새로운 해석이 떠오른다는 등 그 어떤 것도 망념이 된다. “만일 여기서 망념을 성가시게 여기면 이것은 또 다른 마음을 내는 것이며, 그 마음을 따라 기운이 동하게 되어 필요 없는 곳에 기운을 소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망념에다가 ‘괴로운 망념’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이 되는 까닭이 되는 것이다.
➂ 좌선을 하는 가운데 절대로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구하지 말며, 혹 그러한 경계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요망한 일로 생각하여 조금도 마음에 걸지 말고 심상히 간과하라.
단전에 기운을 모으면 마음이 맑고 힘이 생겨서 신기한 기틀이나 자취가 나타난다. 대단한 것을 얻은 기분이라 재미를 붙여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솟아오른다. 하지만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현상을 크게 경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러한 경계가 오면 그것을 무슨 도통이라도 한 것처럼 착각하고 오만불손해져서 결국 혹세무민하다가 무간 지옥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Ⅲ. 단전의 개념과 연원
단전주선법은 원불교 좌선법의 특징 중 하나임을 위에서 말하였다. 이 단전주선에 대해 좀 더 심도 깊은 이해를 하고자 단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단전이라는 용어의 개념과 단전의 시초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사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불교에 단전주선이 들어오게 된 유래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 단전의 개념
단(丹)이란 어원은 도교 중국 연금술의 단사(丹砂)의 단에서 유래된다. 즉 단(丹)자는 파군 남월에서 나는 붉은 돌을 가리킨 것으로 원래의 자형은 대를 쪼개어 그 안에 담아둔 단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또한 단(丹) 자(字)는 붉다는 뜻인데 본래 뜻은 음양이 조화된 원기를 의미하며, 기에는 영지가 갊아 있어 영령한 기를 단이라 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이러한 단은 바로 단전이며 단전에는 상·중·하 3단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하단전을 가리키며, 배꼽 아래 세 치(臍下三寸) 정도되는 곳이다. 양생(養生)의 내단술(內丹術)에서는 상단전은 이마의 양미간(兩眉間)으로 이환(泥丸)ㆍ건정(乾頂)ㆍ천곡(天谷)ㆍ내원(內院)이라 부르며 신(神)의 본거, 중단전은 가슴의 심장 아래 한 치 들어간 곳으로 강궁(絳宮)ㆍ황당(黃堂)ㆍ토부(土府)ㆍ현규(玄竅)ㆍ단중(膻中)이라 부르며 기(氣)의 본거, 하단전은 배꼽 아래 하복부로 기해(氣海)ㆍ신로(神爐)ㆍ천근(天根)ㆍ곤로(坤爐)ㆍ토부(土釜)라 부르며 정(精)의 본거로 본다. 원불교에서 단전은 하단전을 가리키며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원리로 설명한다. 단전주법에 의한 좌선을 통하여 신장의 물기운을 끌어올리고 심장의 불기운을 내림으로써 심신의 조화를 꾀한다.
단전이란 말의 최초의 문헌적 출현을 살펴보면 『황제내경』의 「神은 上丹田에서 머문다」는 표현이 처음이다. 그러면 이러한 단전이란 최초의 문헌적 표현상의 출현 과정은 어떠한 영향들속에서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겠다.
『도덕경』『참동계』『황정경』『음부경』『오진편』 등은 도교 내단수련의 원리를 밝힌 책인데 특히 『도덕경』에 대한 내단적 주석서인 하상공주(河上公注)는 治身의 원리와 治國의 원리가 결국 같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고수하는 통상적 해석에 따르면『도덕경』의「一을 품어라」「도에서 一이 생한다」등의「一」은 음과 양의 종합으로 이러한 「一」의 출발처를 인체내에서는 어디로 정하고 수련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또한「谷神은 죽지 않는다」「極」「虛極」에 이르라」하였는데 수련하는 수행인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谷)神」「허극」도 인체에서는 어디로 정하고 수련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一」이나「谷神」「허극」자리는 인체중에서 배꼽아래 단전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노장사상 중심의 초기 도가의 견해는 아니며 도교라는 하나의 종교 단체가 성립 되면서 그 소의경인 『도덕경』을 하상공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련서로 인식하고 중시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과 영향 속에서 『황제내경』은 단전과 연계되기 시작하며 최초의 문헌적 표현으로서의 「단전」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단전 개념의 연원으로는 의서인 「難經」을 들 수 있는데 『난경』에서는 「십이경맥은 모두 생기지원(生氣之原)에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생기지원이란 십이경의 근본을 말하며 신장 사이의 동기(動氣)이다. 이는 오장 육부의 근본이며 십이경맥의 뿌리이며 호흡의 문이며 삼초의 근원이다.」「배꼽 아래 신장 사이의 동기가 인간의 생명이며 십이경의 근본이므로 근원이라고 이름한 것이다.」라고 하여 단전에 대한 설명과 명칭이 나타나게 되며, 이는 곳 요즘 이해되는 단전의 개념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도교에서 보이는 단전에 대한 설명으로는 삼국시대 갈현(葛玄)(164-244)의『노자절해(老子莭解)』와 갈홍(葛洪)(253?-333?)의 『포박자(抱朴子)』를 들 수 있다. 갈현은 『도덕경』제7장의 「天長地久」에 주석하기를 「천장이란 이환(罹患)을 말하며 지구란 단전이다」고 하였으며 그의 손자인 갈흥에 이르러서는 「제하 두 치 네 푼에 있는 것은 하단전, 심장 아래 강궁·금궐에 있는 것은 중단전, 사람의 두 눈썹 사이의 한 치가 명당 두 치가 동방 세치가 상단전」이라 하여 드디어 상중하 삼단전에 대한 명확한 지적이 보인다. 이후 도교 외단의 부작용과 내단의 부상이 본격화 되는 수(隋)·당(唐)시대에 이르면 단전은 인체내에서 영기신의 수련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기본적 거점이 된다는 이해의 바탕 하에서 수련가들이 가장 중시하는 신체부위로 인식하게 된다.
- 원불교 단전주선의 연원
원불교 정신수양의 대표적인 방법으로서 염불과 좌선을 들 수 있는데,「좌선」은 원불교 『정전』제 3 수행편「정기훈련법」의 11개 과목 중 정신수양 훈련과목에 속해 있다. 원불교에서 중시하는 단전주선은 좌선의 한 방법으로서 「좌선법」에 「단전주의 필요」라는 조목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단전주를 중요시하는 원불교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들어오게 되었는지 도교적 연원과 불교적 연원을 아울러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의 좌선은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마음의 수련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몸의 수련에 중요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도교의 수련을 대표하는 내단사상 에서는 몸과 마음을 아울러 닦는 방법을 중시한다. 원불교의 소태산 박중빈은 전통 좌선법에 단전주를 접맥하여 단전주선을 창안하였다. 그의 최초 수양서인 『수양연구요론』에는 단전이라는 용어와 함께 도교적 용어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나의 한 점 신령한 빗을 운전한 즉 화하야 남창상궁에 불 방울이 되야 우로 이환현궁을 뚫어셔 이마 문이 미미하게 움지기나니 인하야 정성으로 행한즉 이마 문이 활연하야 처음에는 일만 개암이가 모이고 모이난 형상과 갓터서 심히 가렵고 가려워지나니 삼가히 글고 만지지 말고 정신과 정신을 이마 우에 뫼인 즉 홀연히 맑은 우뢰한 소래에 이마 문이 큰 돌이 벌어진 것과 갓터서 한 몸에 일만신령이 다 이 문으로 출입하면 형모의 광명이 보름달과 갓고 삼계천진이 구름갓치 이환에 모여서 깁버하고 질거함이 한 몸 지친과 갓나니 … 이것은 이에 묵묵히 상제님께 조회하난 법으로 실상한 이치니라.
이 법을 행하난 자는 맛당히 먼저 뜻을 아래 단전에 머무르고 담연히 오래 안지매 물과 불이 사괴여 통하야 옥지에 물이 나서 가득히 생켜 나리면 정령이 이에 올나셔 우로 이환 이마 문에 조회하나니라. 만약 옥지에 물을 생켜나리지 안이한즉 다만 불이 올나와셔 육신과 정신을 태우나니라. 이런 고로 행하고 수련하난 선배가 매일 밤 반 맑은 새벽에 항상 안으로 수련함을 행하야 마음에 불은 나리고 물은 오르난 형상을 생각하고 뜻에 감과 이가 사괴여 통함을 둔즉 자연히 물과 불이 셔로 순환하야 생각을 오래 궁글려 온전히 익히면 정신이 이환에 모이고 불 방울이 이마 문에 발하나니 이것은 이에 도 전하난 비밀함이요 도 닥는 요긴함이요 도 깨닷는 참 비결이니라.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단전주선과 적접적으로 관련된 용어는 남창상궁, 니환현궁, 이마문, 니환, 아랫단전 등이다. 남창상군, 니환현궁, 이마문, 니환 등은 상단전을 의미하는 말이며, 아랫단전은 하단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미『수양연구요론』에 도교적 영향을 받은 단전수행의 요소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정전』에서는 불교의 여러 선사나 조사의 말을 인용하여 단전주선의 불교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백은선사(白隱禪師)의 『원라천부(遠羅天釜)』의 “나의 기해단전(氣海丹田)은 조주(趙州) 무자(無字)며 본래(本來) 면목(面目)이며 유심(唯心)의 정토(淨土)며 자신(自身)의 미타(彌陀)며 本來의 가향(家鄕)이라”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즉 기해단전이 불교의 본래면목과 근본자리이고, 불교의 이상적 서방정토이며, 자기 자신의 미타이고, 본래의 고향이라는 내용을 통해 단전을 참다운 불교의 궁극적 완성의 세계로 주장하고 있다.
도원선사(道元禪師)의 『만암법어(卍庵法語)』중 “단정(端正)히 앉아 숨을 고르는 것인 조식(調息)이 좌선의 요술(要術)이니, 조식의 방법은 몸을 좌정(坐定)한 후에 심기(心氣)를 기해단전(氣海丹田)에 양(養)함이라. 이같이 오래 계속한즉 원기(元氣)가 자연 충실하여 아랫배가 표주박이나 공(球) 같이 둥글어 지나니라.라는 부분 또한 『불교정전』에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 『선문구결(禪門口訣)』과 『영평광록(永平廣錄)』 등에도 단전주를 많이 역설하였나니, 이로써 볼지라도 이 단전주가 좌선상 가장 요긴한 법임을 가히 알지니라. 라는 내용을 제시함으로써 단전주가 좌선에 아주 적절하고 필요한 방법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Ⅳ. 단전주법의 원리와 특징
- 단전주선의 원리
단전주선은 기본적으로 정전 좌선법을 응용하였고, 알려져 있는 각종 수행법을 수행적으로 참고하여,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선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한 새로운 단전주선법(丹田住禪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전 좌선의 방법에 단전주 선법을 밝혀놓았고, 단전주의 필요에서 “이 법은 선정(禪定)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실로 일거양득하는 법”이라고 한다.
단전주선의 원리는 ‘몸과 마음의 긴장과 집착을 놓고 바르게 앉아서, 깊은 단전주호흡을 하면서 단전에 일심을 집중(丹田住觀)시켜, 몸과 마음과 호흡이 조화되고 하나로 통일되게 하는 선’이다.
일반적으로 선의 원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비우자는 것이므로 몸과 마음의 긴장과 집착을 놓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가짐을 비운다는 뜻이며, 긴장을 풀고 바르게 앉아서 선을 하면 기혈이 잘 소통되어 심신이 편안해진다. 단전주는 몸과 마음의 기운을 단전에 둔다는 의미로, 마음과 기운은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마음을 단전에 집중하여 관(觀)한다는 뜻이다. 단전주호흡은 일반적으로 하는 단전호흡과 다르게, 단전주한 상태에서 단전까지 가늘고 길게 깊은 호흡으로 한다. 들이쉬는 숨은 유념으로 하고 내쉬는 숨은 무념으로 하되 단전에 대한 마음은 늘 유념이다. 숨을 들이쉴 때 좁쌀만 한 영단이 쌓인다는 심정으로 하고, 내쉴 때도 내쉰다는 마음을 놓고 자연스럽게 놔두면 저절로 내쉬게 된다. 숨을 놓을 때 유념을 해도 단전에 담긴 영단이 따라 나갈 수 있으니 단전기운을 잘 두호해야 한다. 단전은 들숨과 날숨 간에 늘 유념이지만 날숨에서 잘 챙기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챙기고 또 챙기다보면 마침내 몸과 마음과 호흡까지 놓아버리고 누구나 쉽게 명상삼매에 몰입하게 될 수 있다.
- 좌선법의 특징
좌선의 방법이 그동안 모든 선가의 가풍에 따라 그 나름의 특유한 가풍이 있다. 원불교 좌선의 방법에도 특유한 가풍이 있다. 특히 원불교에서는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쉽게 행할 수 있는 공부이니, 이것이 곧 선수행의 일차적인 공부길이다.
원불교 좌선법의 기본적인 특징을 밝힌다면, 원불교 좌선법은 종래 선법에 비하여 그 특징은 첫째, 좌선을 단전주법으로 행하게 했다는 것과 둘째, 단전주법을 수행시 호흡법에 특징이 있으며, 셋째, 종래의 간화선과 묵조선을 병행하게 했으며 넷째, 무시선의 생활을 하게 한 것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원불교 좌선법의 특징을 단전주법과 병행선법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단전주법
수식법(數息法)은 마음에 수를 세는데 정신을 모으고, 수식법(隨息法)은 호흡에 정신을 둔다. 간화선(看話禪)은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하는데 주(住)하고, 묵조선(黙照禪)은 대체(大體) 적으로 적적성성(寂寂惺惺)한 마음 즉, 묵조심(黙照心)에 주한다. 그러나 원불교의 단전주법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수화의 기운을 조절해서 심신의 안정을 얻고 심단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소태산 박중빈은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하고 화두 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하시며 단전주법을 수용하시었다.
원불교 『정전』 좌선의 방법 2조에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지나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말라.’ 고 되어있다. 이 단전주법은 단전에 전신의 기운과 마음을 오롯하게 집주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단전에 기운을 모으고 마음을 주해야 하지마는 차차 공부가 깊어질수록 기운을 집주하되, 주한다는 일념마저도 놓아 버리고 그대로 주하거나 놓을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초기에는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기운을 주하고 보면 곧 다시 풀어지게 되고, 마음을 멈추고 보면 곧 다시 방심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때에는 곧 다시 챙겨서 기운을 집주해야 되고 마음은 기운 주하는 데에 대중만 잡도록 해야 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기가 따라가고, 기가 가는 곳에 혈액이 따라가고, 혈액이 가는 곳에 림프가 따라가고, 림프가 가는 곳에 근육이 따라가고, 근육이 가는 곳에 힘줄이 따라가고, 힘줄이 가는 곳에 뼈가 따라간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모든 것이 흘러가도록 되어 있다.
원불교 단전주법과 수승화강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불교 좌선법에는「단전주는 좌선에만 긴요할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극히 긴요한 법이라, 마음을 단전에 주하고 옥지(玉池)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리면 수화가 잘 조화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心丹)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하나니,」라며 수승화강이 되는 원리가 단전주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대산 김대거는 「불은 위로 오르기를 좋아하고 물을 밑으로 내려가기를 좋아하는데 그렇게 되면 몸에 병이 생기고 정신이 탁해지게 된다. 그러나 물이 오르고 불이 내리면 건강도 좋아지고 정신도 맑아진다. 그러므로 항상 물 기운이 위로 오르게 하여야 하는데 그 방법이 단전주선법(丹田住禪法)이다.」라고 하며 수승화강이 되는 원리가 단전주선법 임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전주법은 기운과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마을이 바르게 골라짐을 따라 심단을 얻고 보면 심신이 골라져서 수승화강이 이루어지는 선법으로 건강에 매우 이로움과 동시에 선정력도 함께 얻을 수 있는 수행법이다.
2) 병행선법
원불교 좌선법의 특징 중 하나는 기존의 한국불교에서 당시 한국불교에서 유행하던 간화선과 묵조선을 병행했다는 점이다.
간화선이란 중국 송대의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 제창된 선풍으로 화두를 통한 선수행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스승이 화두를 제기하여 제자로 하여금 화두를 보게끔 하는 선수행이다. 반면 제자가 스승에게 화두를 들어 질문하는 형식을 통하여 그 답변행위에서 스스로 어떤 의미와 행위를 터득하는 선수행이다.
묵조선은 중국 송나라때의 굉지정각에 의해서 제창된 선법이다. 좌선을 할 때에 공안이나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오직 묵묵히 관조하여 분별없는 가운데 성성하고 적적한 본연지를 깨닫는 선법이다.
소태산 박중빈은 「좌선이라 함은 마음을 일경에 주하여 모든 생각을 제거함이 예로부터의 통례이니,」좌선의 의미를 간단하게 설명한 후 이어서 「마음을 머리나 외경에 주한즉 생각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안정이 잘 되지 아니하고」라고 말하며 위에서 말한 간화선법의 폐단을 말하고 있다. 안정이 잘 되지 아니한 이유를 들어보자면 마음 작용이 대개 경계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외경에 주하면 잘 동하게 되고, 신경을 쓰면 기운이 따라 오르기 쉽고 머리나 외경에 주하면 자연 신경이 작용되기 쉬운 연고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소태산 박중빈은 단전주선법을 수용하여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생각을 동하지 않게 하고 기운도 잘 내리게 하여 안정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서 소태산 박중빈은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의 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화두(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하나니라.」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간화선법이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없는 선법임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소태산 박중빈은 간화선의 병폐를 지적하면서도 온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간화선(看話禪)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혹 이 단전주법을 무기(無記)의 사선(死禪)에 빠진다 하여 비난을 하기도 하나」라는 부분에서 잘 알 수 있다. 원불교의 단전주선법은 묵조선적인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간화선을 주장하는 측에서 비방하는 묵조선의 병폐는 무위자연한 본성을 기르는데 중점을 주어, 연구하는 시간을 따로 정한 바 없이 종일토록 묵묵히 앉아있는 것만을 주장하였으므로 혹 적묵에 치우쳐 무기의 사선에 흐를 염려가 많다는 이유이다.
이러한 두 선법의 병폐를 통해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선법이 필요함을 느끼고 소태산 박중빈은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 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에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이와 같이 하면 공적(空寂)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분별에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체득할 수 있나니라.」하여 단전주선을 통해 간화선과 묵조선의 두 선법을 모두 수용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었다.
이러한 원불교의 선법은 분명 종래 중국선가에서 문제되었던 과거 선법의 양대맥을 그 장점을 살려 활용해 나감과 동시에 그 기본을 단전주법으로 삼는 혁신적 선법이요, 이상적인 선법인 것이다.
Ⅴ. 결론
이상과 같이 『정전』을 비롯한 경전과 아울러 선행된 논문을 통하여 원불교 좌선법을 연구해 보았다. 본 논문의 서론에서는 21세기 개벽의 전환기에 들어선 지금 사람들은 물질만능 주의가 결코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으며 그에 따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본래존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밝혔고, 종교단체에서 그에 따른 지도자가 발굴되어야 하며 원불교에서도 수행의 기본인 좌선을 좀 더 심도 있게 알아야 함을 말했다.
2장에선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을 연구함에 있어서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의 과정에서 원불교 좌선의 사상적 이해와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간화선과 묵조선적인 과정을 경험한 것으로 볼 수 있었으며, 이후 대각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선법을 주장하였음을 초기 교단의 교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좌선의 방법을 조신, 조식, 조심의 세 가지로 나누어 연구를 하였다. 각각 세부적으로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좌산 이광정 교무가 쓴 「정전 좌선의 방법 해설」과 길도훈 교무의 「단전주선」책과 선행 논문을 참고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몰랐던 단어나 속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좌선에 대해 흥미와 취미를 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다.
3장에 들어서는 원불교 좌선의 가장 큰 특징인 단전주선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단전주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전의 유래와 개념을 파악하였다. 단(丹)이란 어원은 도교 중국 연금술의 단사(丹砂)의 단에서 유래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단전이라는 용어는 황제내경이라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학서에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원불교에 처음으로 단전주선법이라는 개념이 들어오게 된 연원을 도교와 불교적 두 측면에서 아울러 살펴보았다.
4장에서는 단전주선법의 원리와 특징에 대해 서술하였는데 아울러 좌선의 특징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하였다. 단전주선법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선의 원리와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단전에 마음을 주함으로 몸과 마음과 호흡이 조화가 되고 하나가 통일되는 것을 의미한다.
좌선의 특징으로는 크게 단전주선법과 병행선법을 얘기하였다. 단전주선법을 통해 수화의 기운을 조절해서 심단을 얻고, 불교의 간화선과 묵조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병행선법으로 모두가 할 수 있는 원만한 수행법을 내놓으셨다.
이번 논고는 원불교 좌선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수준으로 끝이 났다. 여러 가지로 더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개벽의 전환기에 들어서고 앞으로 물질문명은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는 상황에서 정신세계의 확장을 위해 선 열풍이 불어올 것임을 논자는 믿어 의심치 않다. 그래서 선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지금까지 좌선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앞으로 더욱 더 창의적이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끊임없는 교리의 재해석으로 나날이 진급하는 교단이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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