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학과

Wonkwang University

원불교 법위등급의 수행론적 고찰(조진광)

교학대학 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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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법위등급의 수행론적 고찰(조진광)

원불교 법위등급의 수행론적 고찰

-『大乘起信論』의 一心二門, 始覺四位와 비교를 중심으로-

 

(원불교학과 4학년, 20110129) 조 진 광

 

 

. 서론

1.연구동기

2.연구방법

大乘起信論을 연구하는가?

 

. 원불교의 법위등급

1.원불교 법위등급 성립과정

2.원불교 법위등급

3.법위등급 유시와 대의

4.법위등급의 각급 해의

 

. 大乘起信論覺理論

1.一心 二門

2.不覺 을 위주로

3.心生滅門始覺四位

 

. 결론

1.始覺四位와 법위등급 비교도표

2.일원상과 법위등급.

 

 

. 서론

 

1.연구의 동기

원불교의 가장 행심되는 宗旨는 一圓相이다. 그리고 「正典」에 一圓相의 眞理章을 보면 「一圓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성품이요.」로 문장의 구조가 우주만유의 본원과 제불제성의 심인과 일체중생의 성품 모두가 일원의 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즉, 원불교의 宗旨인 一圓은 절대적인 존재, 깨달음을 얻은 성인, 일체의 모든 중생에 상관없이 이미 평등하게 있다는 것을 이 문장의 구조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미 一圓은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宗旨를 두었는데 대종사는 법위등급을 내시며 다시 수행의 경지를 나누고 법위에 차별성을 제시하였다. 이에 우리는 이미 일원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가지고 있는데 대체 왜 공부와 수행의 정도를 다시 나누어 법위를 설정하셨는지에 대한 모순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 모순점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대종사님의 법에 대한 애매모호를 만들 수도 있고 이는 원불교의 宗旨인 일원의 진리를 체득하기 위해 더 질 높은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법위등급을 만들었는데 도리어 이 애매모호를 이용하여 법위에 지니고 있는 명예와 이익을 소유하는 當爲性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정산종사께서 「군자는 외식에 힘쓰니 아니하고 내수를 철저히 하며, 항상 그 실력을 충실히 기르기에 힘쓰나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세간의 명예나 이익 또는 남에게 공경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실 있게 그 법위의 경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애매모호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 원불교 정전의 법위등급을 보면 그 법위의 위상에 대하여 적절한 설명과 표준이 있으며 절대 법위등급 내용이 잘못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正典」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편과 절로 구분되어 있고 그 각각의 편과 절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개인의 오랜 수행과 연마를 통해 알 수밖에 없다. 즉, 그 법위등급 각위에 있는 참된 의미는 실제로 그 법위가 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가 있다.

『大乘起信論』에서는 이러한 법문과 법문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이론이 있고 대표적으로 一心 二門, 始覺四位 이론을 보면 앞에 언급했던 일원의 진리의 평등성과 법위등급에 다시 차별성을 두는 모순점을 破하고 일원진리와 법위등급의 연관성을 파악하여 참된 법위를 얻을 수 있는 수행론적 이론을 만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원불교 「正典」의 법위등급을 『大乘起信論』의 一心 二門과 始覺四位를 비교함으로써 조금 더 자세하게 그 의미를 풀어내어 일원진리와 법위등급의 연관성을 알아 그 법위가 되지 않았더라도 그 법위의 경지를 이해하여 외식을 위한 법위등급이 아닌 내수를 위한 법위 등급 이론을 논하자는 것이 이 연구의 동기이다.

 

2.연구방법

먼저 이 연구는 원불교의 법위등급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경지에 대한 연구를 같이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대종사님께서 대승의 핵심 경전인 금강경을 보시고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보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바가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하시고 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원불교 법은 대승의 경전을 보고 불법을 주체로 삼았다는 것을 보면 대승과 원불교는 서로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원불교 법위등급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기 78년 법위 사정의 해에 대산종사님께서 법위사정에 대한 유시를 내리시며 각 법위의 구체적인 해설은 물론이며 법위의 대의, 법위의 표준까지 설하신 내용을 중점으로 다룰 것이며 대승불교의 경지에 대한 연구는 대승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경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大乘起信論』중 一心 二門과 始覺四位를 중점으로 다룰 것이다.

 

1) 大乘起信論을 연구하는가?

첫째, 『大乘起信論』의 동기가 외식이 아닌 참된 내수를 하는 것이 목적하는 바이기 때문이다.『大乘起信論』의 因緣分을 보면 『大乘起信論』을 저술한 동기로 총 8가지 동기가 있다. 그 중 첫 번째 동기를 보면, 「첫째는 총체적 동기인데, 이른바 중생이 일체의 고통을 여의고 궁극의 즐거움을 얻게 하고자 해서이지, 세간의 명예나 이익 또는 공경을 구하게 하고자 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저술한다. 『大乘起信論』 또한 그 동기가 앞의 정산종사님께서 말씀하신 외식에 힘쓰지 아니하고 내수를 철저히 하는 것’과 부합이 되고 『大乘起信論』에 설명한 깨달음의 경지도 단순히 중생과 부처를 나누기 위한 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고 참된 내적 수행과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大乘起信論』의 인연분 두 번째 동기를 보면 「둘째는 如來의 근본 의미를 해석하여 모든 중생이 바르게 이해하고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如來의 근본의미를 해석을 하는 과정에 모든 중생이 바르게 이해하고 오류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룰 심생멸문을 보면 一心을 깨닫는 과정을 四位로 나누어서 설명하였지만 이는 ‘중생심이 곧 一心이라는 것’을 믿기 위해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면에 이질적인 부분을 제거시켜 의심을 없애기 위한 방편일 뿐이지 절대로 본인이 不覺의 경지에 있다고 생각하여도 如來의 본성이 먼 곳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기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각각 근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여 모든 근기에 말하기 위하여 『大乘起信論』을 지었기 때문이다. 인연분 중 『大乘起信論』의 특징에 「경전에 비록 이런 법이 있긴 하지만, 중생의 근기와 수행이 같지 않고 또 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와 「이와 같이 이 논은 如來의 광대하고 깊은 법의 무한한 의미를 총괄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이 때문에 마땅히 이 논을 말해야한다.」라고 말하였고 이 특징은 모든 근기에 두루 맞는 법을 제시한 원불교의 특징과 부합이 된다.

정리하자면, 『大乘起信論』은 외식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닌 內修를 철저히 하는 內實性, 如來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여 오류에 빠지지 않는 具體性, 모든 근기를 대상으로 삼은 廣大性을 전제로 한 이론이니 이는 우리 원불교의 교리를 해석하는 특징과 부합이 되므로 법위등급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大乘起信論』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 원불교의 법위등급

 

1.원불교 법위등급 성립과정

현재 정전에 법위등급이 성립되는 과정을 살펴보자면 1932년(원기17년) 4월 1일에 ‘보배경전’이라는 의미로 소태산의 친찬으로『보경육대요령』을 국한문판으로 발행했고 총 6장으로 인생의 요도, 공부의 요도, 훈련쳔, 학력고시편, 학위등급편, 사업고시편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학위등급편을 보면 보통부, 특신부, 법마상전부, 법강항마부, 출가부, 대각여래부가 있었고 이를 근거로 하여『불교정전』에서 법위등급으로 되며 현재 『정전』의 법위등급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즉, 원불교 법위등급은『보경육대요령』에서 시작이 되었고 사은 사요 삼학 팔조의 틀이 잡히고 이를 훈련하기 위해 상세한 설명을 하며 더 나아가 법위등급과 공부·사업고시법을 두어 소태산의 제도이념이 단순히 이론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하여 현실화 하기위한 법임을 알 수이다. 그리고 소태산은 수행만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도사업을 얼마나 실행했는지를 중요시 하였으며 법위등급의 설정에서도 수행과 사업을 모두 고려하여 설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 이 논문은 법위등급의 수행적인 측면을 위주로 논한다.

 

2.원불교 법위등급

원불교 『정전』 일원상의 진리장은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성품이요.’라고 하고 일원상 서원문은 ‘일원은 ······· 유무초월의 생사문 인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이요.’라고 말한다. 이는 『大乘起信論』에서 ‘一心은 세간, 출세간법을 모두 포섭하는 것’과 같이 일원 또한 절대적인 존재로 보는 관점, 성인의 심체로 보는 관점, 일체중생의 관점을 모두 포섭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원문 서두에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라고 하여 일원은 입정처이다는 이 말마저 하나의 실체로 보이지 않기 위하여 언어의 길이 끊어진 자리라고 설명을 한다. 또 대종사님께서 한 제자의 질문에 답한 것을 보면 「그러하오면 圖形으로 그려진 저 일원상 자체에 그러한 진리와 위력과 공부법이 그대로 갊아 있다는 것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저 원상은 참 일원을 알리기 위한 한 표본이라, 비하건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손가락이 참 달은 아닌 것과 같나니라. 그런즉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저 표본의 일원상으로 인하여 참 일원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며, 일원의 참된 성품을 지키고, 일원의 원만한 마음을 실행하여야 일원상의 진리와 우리의 생활이 완전히 합치되리라.」라고 하여 일원상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그 진리를 담아내고 있지만 참 일원은 아니고 그 가리킴이 또한 하나의 실체가 있다고 하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참 달이 아닌 손가락에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불교의 가장 핵심 되는 존재는 일원이고 원불교에 불심을 내어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원을 위력을 얻고 체성에 합하는 것을 서원하고 있다. 이에 원기 28년 원불교 회상 최초교서의 집대성판이며 대종사 최후의 遺著인 「불교정전」에 법위등급에 대한 내용을 정립하였고 그 법위등급에 대한 해의를 「신자의 수행 次序로써 보통급, 특신급, 법마상전급, 법강항마위,출가위․ 대각여래위 등 3급 3위의 법위를 정하였는 바」 라고 하였고 여기서 법위등급은 원불교를 믿는 신자들에게 더 깊은 경지를 이루기 위해 수행을 순서 있게 구분하여 수행의 단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일원과 합일한 대각여래위의 경지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법위등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일원은 모든 법에 평등하게 이미 있으며 일체의 모든 것을 포섭하나 그 실체가 있냐고 하면 없으나 그렇다고 존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인식작용과 언어를 초월한 상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일원은 이미 모든 중생에게 있지만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 중생이 여래와 같다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법위등급을 나누어 순차적으로 수행을 하여 대각여래위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서 일원과 일치하여 스스로 그 의심을 걷어내는 것이 원불교 법위등급의 수행론적 관점이다.

원불교는 법위를 3급 3위로 정하였고 급과 위의 구분은 견성을 못 한 사람으로서 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급은 견성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고 3위는 견성을 얻고 난 이후의 사람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원기 78년 법위사정의 해에 대산종사님께서 법위등급에 관련한 법문을 설하신 것을 중점으로 한다.

 

3.법위사정의 유시와 대의

1)법위사정의 유시

원기 78년 법위사정에 즈음하여 대산종사님께서 법위사정에 대한 유시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먼저, 대종사님의 일원대도 회상에 귀의한 우리는 세 가지 큰 은혜를 입고 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천불만성을 발아시키게 된 일이요. 그 둘은, 우리가 억조창생의 복문을 활짝 열어 주어 福路를 개척해 주는 일이요. 그 셋은, 우리가 일대겁의 묵은 업을 청산시키고 새 一大劫을 열어주는 일로써 永劫大佛事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위사정으로 법기를 배출하여 대종사님을 集群聖而大成하신 圓覺聖尊 새 주세불로 높이 받드는 대 보은자가 되는 것,

「탄생 백주년 성업봉찬 대불사에 대보은을 하고 삼대의 기초를 튼튼히 만들어 주는 일은 도가의 明白인 慧命을 온전히 받아 온전히 전해 주어 이 만대에 끊어짐이 없게 하고 약해지는 일이 업게 하는 데 있다.」고 천불만성이 발아되게 하자는 것,

「제불제성의 본의를 받드는 원만한 종교인이 되도록 일원의 진리에 바탕한 신앙과 수행을 통하여 완전히 一圓化가 되도록 교리와 제도를 제정하시었다. 그러므로 법있는 그러한 인물이 속속 배출 되어야 한다.」고 千如來 萬菩薩을 배출하는 聖事를 차근차근 작업해야하는 것,

「법위 사정은 대종사님과 선종법사님과 삼세 제불제성님들의 혜명을 크게 밝혀서 수 만겁에 佛日을 더욱 빛내게 하고 법륜을 쉬지 않게 다시 굴리는」 불사중의 큰 불사를 하자는 것,

교단의 생명은 법위향상이니 「法燈을 끊임없이 밝혀 잇는 것은 佛日增輝 法輪常轉하며 師傅道德 宣揚無窮하여 濟生醫世의 使命을 다하는 것」으로 모두가 법위향상을 하자는 것,

마지막으로 「모든 天地公事가 公으로 되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公의 心境으로 임하여 一大劫만의 새 회상을 法治敎團으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를 실천하기 위해 大精進 大積功을 하자는 것이 있다.

결론적으로 대산종사님께서 말씀하신 법위사정의 유시는 원불교인 모두가 법위를 향상시켜 천여래 만보살과 같이 많은 출가위와 대각여래위를 배출시키는 것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두가 대정진 대적공을 하자는 것이다.

 

2)법위의 대의

총 14가지 법위의 대의가 있으나. 이 논문주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만 다루겠다.

「천여래 만보살을 배출 할 원본이요」 대종사께서 “과거 회상은 일여래 천보살 시대 였으나 앞으로는 천여래 만보살이 출현하리라라고 말씀하셨듯이 과거의 시대보다 더 큰 시대를 열수 있는 것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일원은 모든 것을 포섭하고 중생에게도 그 일원이 있으니 그 어떠한 중생도 일원을 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속 법로로서 도력과 법력을 알아보는 틀.」 최고속의 법로인 이유는 일원의 진리를 깨달은 여래가 만든 법위로 상대적인 인식과 언어에 벗어난 그 길로를 명확히 알고 있으니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향해 일원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여래를 손에 쥐어주고 먹여주는 틀이요, 밥이다.」 각급과 각위에 제시한 과제가 여래에 이르는 것에 틀림이 없음을 말하고 그 과제만 해결하려는 신심과 서원만 있다면 반드시 여래에 도달할 수 있음을 말한다. 틀림이 없는 이유는 법위는 일원진리를 근원으로 하였고 일원은 일체의 모든 법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대는 천권시대이나 앞으로의 시대는 인권시대이다. 신, 불, 하느님이 지상에서, 집에서 대중과 함께 활동한다.과거의 시대는 하늘이 정해준 운명에 따라 살 수밖에 없지만 인권시대에는 이 일원이 일체의 것을 포섭하고 있음을 알고 어리석은 중생 또한 일원이 포섭하므로 다만 일원에 대한 의심만 거둬진다면 일원 진리와 중생이 함께 하는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이 원불교 법위의 대의는 일원에 근원하여 만들어진 법인 것을 알 수 있고 일원에 근원을 두어 만들어졌으므로 일체의 모든 것에 할 수 있고 법위도 그 사실 실체가 없긴 하나 단지 중생이 일원에 합일하지 못했다는 의심이 있기 때문에 순서 있게 구분하여 현실적으로도 여래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 그 의심을 거두도록 하는 것이 원불교의 법위등급이다.

 

4.법위등급의 각급 解義

앞서 말했듯이 3급과 3위의 차이는 3급은 견성하지 못한 중생의 등급을 의미하고 3위는 견성을 얻은 성자의 등급을 의미한다.

먼저 3급은 보통급, 특신급, 법마상전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보통급

보통급은 입문, 불지출발, 초발심이 있습니다.

입문은 처음으로 진리 공부를 하려고 불문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뜻이고 불지출발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부처가 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 초발심은 진리를 깨닫겠다고, 부처가 되어 보겠다고 첫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2)특신급

특신급은 정법정신, 입지, 탁근, 마음공부, 심신귀의, 전신전수가 있다.

정법정신은 바른법을 바르게 믿는 의미이며 대도정법을 성불제중하기 위해서 믿는 것이다.

입지는 뜻을 세웠다는 뜻입니다. 이 법이 없어지고 스승이 없어진다고 해도 자신은 변하지 않을 마음을 세우는 것이니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탁근은 뿌리는 내렸다는 뜻으로 몸과 마음을 모두 원불교에 귀의한 것을 말한다.

마음공부는 성불제중의 큰 뜻을 세우고 속 깊은 공부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심신귀의는 몸과 마음을 온통 바쳐도 여한이 없다는 확신이 서지는 것을 말한다.

전신전수는 모두를 바치면 모두를 받게 된다는 뜻이며 이것은 큰 신심이기 때문에 월반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특신급에서 단번에 항마에 오르기도 하고, 출가에 오르기도 할 수 있는 길이다.

 

3)법마상전급

법마상전급은 苦戰, 心裏工夫, 大體이 있다.

고전은 힘겨운 싸움이라는 뜻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貪心, 嗔心, 癡心에 넘어가지 않으려고자신의 온갖 힘을 쏟아 전쟁을 치루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심리공부는 속 깊은 마음공부가 필요로 하는 때이고 속 깊은 공부를 하는 것이 법마상전급이라는 뜻이다.

대체는 진리와 법에 대해서 근본 되는 큰 줄기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며 교전이나 각 교서의 대의를 잡아 알고 있으며, 성리에 바탕하여 삼학공부에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4)법강항마위

법강항마위는 六正六法, 마음調伏, 細密로

육정육법은 육근이 모두 발라서 모든 것이 법으로 나타납니다. 육근이 진리에 귀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조복은 마음에 순경 역경 공경을 당해도 진리에 의거하여 모두 물리치고, 골라버리고, 돌리고, 항복받아 버리는 말합니다. 마군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쉽게 조복 받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세밀은 지혜를 이루었기 때문에 일과 이치를 걸림 없이 알아서 아주 세밀한 데까지 파고 든다. 마군이 숨지를 못하는 때이다.

법강항마위는 마음의 조복을 받아 어떠한 경계를 당해도 진리에 의거하여 머무는 상이 없어지고 그 경계에 이길 수 있으나 아직 마군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다. 「법강항마위부터는 첫 성위에 오르는지라, 법에 얽매이고 계문에 붙잡히는 공부는 아니하나, 안으로는 또한 심계가 있나니, 그 하나는 자신의 수도와 안일만 취하여 소승에 흐를까 조심함이요, 둘은 부귀 향락에 빠져서 본원이 매각될까 조심함이요, 셋은 혹 신통이 나타나 함부로 중생의 눈에 띄어 정법에 방해될까 조심함이라, 이밖에도 수양, 연구, 취사의 삼학을 공부하여 위로 불지를 더 갖추고 아래로 자비를 더 길러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 공을 쌓아야 하나니라.」라고 대종사님 말씀하신 것을 보면 법강항마위가 하는 수행은 수행의 범위가 사에서 공으로 넓어지고 중생을 제도함으로 아상에 벗어나는 공부를 한다.

 

5)출가위

출가위는 十方吾家 四生一身, 制法主, 不退轉, 生死自由이다.

시방오가 사생일신은 우주를 자신의 집으로 알고 일체 생령을 자신의 권속으로 아는 것이다.

제법주는 이미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단계이니 법을 만들어 중생들과 세상의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다.

불퇴전은 항마의 경우는 재색명리에 끌려 타락하는 수가 있지만 출가는 퇴전할 경우 스스로 다시 거두어 향상시킬 능력이 있고 끊임없이 수도 정진하기에 퇴전이 없는 것이다.

생사자유는 항마의 경우는 해탈하는 정도이지만 출가위는 가고자 하면 가고 오고자 하면 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6)대각여래위

대각여래위는 能動 能靜, 能小 能大, 能明 能暗, 能生 能殺

능동 능정은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면 움직이고 멈추고자 하면 멈추는 능력을 말한다.

능소 능대는 마음을 키우고 싶으면 키우고 작게 하고프면 작게하여 그일 그일을 따라 마음을 쓴다는 것이다.

능명 능암은 마음을 밝게 하고자 한다면 밝게 하고 어둡게 하고자하면 어둡게 한다는 것이다.

능생 능살은 어떤 대상이 되었든 살리고자하면 살리고 죽이고자 하면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출가위에 생사의 자유를 얻었고 깨달음의 경지로 보면 최상의 경지로 볼 수 있으나 대각여래위는 생사의 자유를 얻고 그 활용에 있어서도 능하다.

 

원불교 법위등급은 그 경지에 대한 위상과 오랜 수행을 통해 현실에 드러나는 결과에 대한 설명은 잘 되어 있으나. 그 각 위마다 내관의 깊이에 대해 얼마나 깊은 성찰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과 원불교의 종지인 일원상과의 연관성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大乘起信論』을 보면 一心 二門과 始覺四位가 있는데 이는 깨달음의 경지를 4가지로 나뉘어 설명하고 극 각위에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적인 내용보다 내면의 성찰에 대한 깊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경지를 나누었지만 그 실체는 실존하지 않으며 결국 모든 것은 일심으로 귀결함으로 원불교의 법위등급 각위에 대한 성찰에 대한 깊이를 알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원불교의 종지인 법신불 일원상으로 귀결할 수 있는 이론을 얻을 수 있으므로 대승기신론을 원불교 법위등급과 비교하여 탐구를 하겠다.

 

.大乘起信論覺 理論

 

1. 一心 二門

『大乘起信論』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立法章」에 드러난다. 「이른바 법은 중생심을 말한다. 이 마음은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포섭한다.」 여기서 법은 대승의 법 또는 如來의 법을 의미하고 그 법이 지시하는 것은 바로 중생의 마음이다. 현상세계 너머 절대적인 존재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현상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중생심이라고 하고 이를 一心이라 한다.

여기서 한 번 더 짚어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중생과 부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나누지 않기 위해 一心을 말하지만 이 一心이라는 말마저 하나의 실체가 되어 다시 구분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이 존재한다. 이는 다음의 원효의 『大乘起信論疏』를 통하여 보면 그 근거가 될 수 있다.

「무엇을 一心이라 하는가? 이른바 더럽고 깨끗한 모든 현상이 그 性이 둘이 없으며 眞과 妄의 二門도 다른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하나라고 이름 한다. 이 둘이 없는 자가 모든 것 가운데서 실다운 것이어서, 허공과 같지 않으며, 그 性이 스스로 神解하니 心이라 이름한다. 그러나 이미 둘이 없다고 했으니 어찌 하나이랴? 하나도 있을 수가 없으니 무엇을 가지고 心이라 하나? 이 같은 진리는 말을 벗어난 것이요, 생각이 끊어진 자리여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알 수 없으나 억지로 一心이라고 불러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大乘起信論』의 핵심내용 중 하나인 一心은 如來심이며 곧 중생심을 말하지만 ‘중생심이 곧 一心이다’라고 말하는 것마저도 억지로 표현한 것이며 그 실체는 언어와 인식작용을 여읜 자리인 것이다.

이 언어를 초월한 一心을 전제로 하고 다시 대승의 의미를 바르게 밝히기 위해 一心을 다시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언어로 표현한다. 첫째는 心眞如門이고, 둘째는 心生滅門이다.

 

1)心眞如門

「심진여는 곧 일법계의 대총상이며 법문의 체이다. 이른바 심성은 불생불멸이다. 일체 제법은 오직 ‘허망한 생각’에 의거하여 차별이 있는 것이니, 만약 망념을 여의면 일체 경계의 모습은 없다. 그러므로 일체법은 본래부터 말을 여의고 이름을 여의고 표상을 여의어서 결국 평등하며 변화가 없고 파괴될 수 없다. 오직 一心일 뿐이기 때문에 ‘진여’라고 이름 한다.」

『大乘起信論』의 심진여라는 것은 一心의 체를 의미하며 곧 생멸이 없다. 생멸이 없으니 일체의 모든 법은 망념에 의해 차별이 생겨 만들어진 것이며 이 망념을 여의게 되면 결국 그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모든 경계의 실체는 無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법은 말로 된 것이 아니며 언어와 문자와 인식작용을 떠난 존재이니 평등한 것이고 파괴될 수 없다.

 

2)心生滅門

一心은 곧 불생불멸이며 그 실체는 언어와 차별상을 떠난 자리이다. 그러나 다시 一心은 존재 하지 않는가? 라고하면 그 실체가 없는 것을 인식하는 존재가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하는가 하면 다시 생과 멸이 있다는 것에 의존하여 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를 『大乘起信論』에서는 「심의 생멸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장에 의거하기 때문에 생멸심이 있는 것이다. 이른바 불생불멸과 생멸이 화합하여 하나이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니 이것을 아리야식이라고 이름 한다.」 라고 불생불멸과 생멸의 관계가 서로 의존하고 있는 관계인 것과 그 둘이 사실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식이 바로 아리야식이라고 정의한다.

『大乘起信論』에서 표현한 如來장과 아리야식은 전통적인 여래장사상의 여래장과 유식의 아뢰야식과 조금 다른 의미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여래장의 구조는 『自性淸淨心 · 客塵煩惱染』인 반면에 『大乘起信論』은 「여래장에 의지하는 까닭에 생멸심이 있다」는 근거아래에 自性淸淨心과 客塵煩惱染을 의미하는 生滅心이 서로 의지하는 「不生不滅의 自性淸淨心과 生滅心」의 구조를 보인다. 그리고 唯識의 阿賴耶識은 곧 妄識이라는 구조를 보이는 반면에 『大乘起信論』의 阿梨耶識은 「不生不滅이 生滅과 和合하여 非一非異이다」 라고 하여 「不生不滅心 · 生滅心」의 구조를 나타내는 眞妄和合識이다. 유식의 阿賴耶識은 여래장처럼 깨달음에 향하는 心의 자발성이 없는 결점을 보완하여 여래장과 화합한 모습으로 阿梨耶識이라는 새로운 여래장의 다른 이름으로서 나타난다. 이와 같이 『大乘起信論』에서 제시하는 여래장은 깨달음에 대한 믿음의 영역, 그리고 아리야식은 수행상의 과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면서 각의 논리를 전개 하고 있다.

2. 不覺 을 위주로

『大乘起信論』은 아리야식을 「이 식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일체법을 포섭할 수도 있고 일체법을 생성할 수도 있다. 무엇이 그 두 가지 인가? 첫째는 각의 의미이고, 둘째는 不覺의 의미이다.」로 각과 不覺의 두 가지 의미를 제시하면서 세간법, 출세간법 모두를 말하는 일체법을 포섭한다. 『大乘起信論』에서 일체법을 포섭하는 것은 일체법의 심체인 一心을 의미한다. 覺은 바로 일체의 법에 차별상을 떠나고 一心을 인식하는 아리야식을 통해 각하는 것이고 반면 이 一心을 자각하지 못하면 아리야식은 분별과 차별상을 형성하여 표층의식에 三細六麤의 상으로 나타나고 그 상을 따라 일체를 분별하여 알아 포괄하여 아는 방식이 不覺의 방식이다. 이하에서는 주로 각의 의미에 대해 상세히 풀어본다.

이른바 각의 의미는 심체가 念을 여의었음을 뜻한다. 念을 여읜 모습은 허공계와 같아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어 ‘법계의 하나 된 모습’이 되니, 이것이 곧 如來의 평등한 법신이다. 이 법신에 의거하여 ‘본래적 깨달음’이라고 이름한다. 여기에 각이라는 것은 심체가 念을 여의었다는 것이며 이 의미는 심체를 의미하는 아리야식안에 어떠한 분별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어떠한 분별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여 의식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허공계와 같아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어 일체의 법계에 하나가 된다. 즉, 어떠한 분별도 없는 자리이되 깨어있어 속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으로 원불교의 공적 영지와 같다. 이 각은 곧 如來의 평등한 법신이고 이 법신에 의해 일체 중생이 스스로 분별을 일으키기 전에 이미 一心에 대한 깨달음이 존재한다. 그래서 『大乘起信論』은 이를 본래적 깨달음인 본각이라고 한다.

『大乘起信論』의 각이론은 이 본각이 핵심이고 본각이 곧 一心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런데 왜 본각이라고 표현을 하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생멸문 안에서 설명하기 위한 一心과 구별되는 방편적인 언어로 사용했기 때문이다.후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본각의 의미는 시각의 의미에 대비해서 말한 것이니, 시각은 곧 본각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시각의 의미는 본각에 의거하기 때문에 불각이 있고, 불각에 의거하기 때문에 시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보면 본각, 시각, 불각은 서로 대비하고 의지함으로 생멸문의 각 이론이 성립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大乘起信論』의 心生滅門 에 각을 이해할 때 본각은 본각대로, 시각은 시각대로, 불각은 불각대로 구분된 객체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유념하며 본각과 의지하며 동일한 각인 시각에 대해서 알아보자.

 

3.심생멸문의 始覺四位

1)始覺

『大乘起信論』의 각은 중생심이 곧 진여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이는 모든 법을 포섭한다지만 현실적으로는 미혹의 번뇌가 남아있어 일치가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大乘起信論』은 이 대승의 참 의미를 믿기 위해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시각이란 실제 현재에 내를 보면 번뇌로 더럽혀졌다고 생각하는 不覺의 상태를 인정하고 정확히 어떠한 번뇌가 남아 있어서 미혹의 상태인지 알고 그것에 벗어나면서 점점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시각에서부터 『大乘起信論』은 수행의 이론이 나오고 수행에 따른 깨달음의 지혜가 不覺에서부터 점점 발전하는 과정을 제시하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원효는 「이 마음의 체가 무명이라는 조건을 따라 움직여서 망념을 일으킨다. 그러나 본각의 마음에는 그 자신을 훈습시키는 힘이 있어서 점점 깨달음의 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이 작용이 구극에 이르면 본각으로 돌아가 일치하게 되니 이것을 시각이라고 한다.」 라고 말한다. 시각을 자신을 훈습시켜 깨달음에 다다르지만 그 극한으로 가면 본각과 일치 되는 것을 말한다. 즉 不覺의 상태에 본각으로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이미 중생은 누구나 본각이 존재하나 현실적인 모습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각에 의해서 본각을 회복할 수 있다는 신念을 가질 것을 말한다.

그리고 『大乘起信論』은 궁극적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불각, 상사각, 수분각, 구경각의 네가지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이 단계를 보면 망념을 멸하면 본각을 얻고 반대로 망념에 훈습되면 불각이라고 하면서 시각은 불각과 본각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는 네 가지 단계를 이해하기 편하게 하려고 구분한 것이지 각각의 단계가 실체하는 것은 아니다. 즉, 망념만 멸하면 그대로 본각이다.

알서 말했듯이 始覺四位는 그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며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편의상 구분하여 드러낸 것을 유념하면서 그 각각의 위에 대해 알아보자.

 

2)不覺

시각의 첫 번째 단계로 『大乘起信論』에서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범부와 같은 사람들은 앞의 생각이 악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아 알기 때문에 뒤의 생각을 멈춰 그것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비록 다시 각이라고 이름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곧 불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매 순간 순간 계속 생각을 일으킨다. 그 생각의 흐름을 전념, 후념으로 나누어 보고 전념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후념이 생겨난다. 이 과정에 전념은 업을 이끌어 오고 후념은 그 전념에 따라 업을 짓는다. 범부와 같은 사람은 이 과정에 전념이 멸하는 순간을 주목하고 있으면, 그 주목하는 의식 때문에 의식에는 더 이상 전념으로부터 일어나는 후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즉, 불각은 아무런 깨달음 이 없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안에 이미 念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 것과 자신이 불각의 상태임을 깨닫는 것이다.

불각은 자신의 그릇된 전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 그 그릇된 생각에 끌려 계속 그릇된 업을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 또한 깨달음이 아니지 않으나 이는 『大乘起信論』에 말한 진정한 깨달음은 아니다. 그러나 불각은 이전의 그릇된 망념을 제거하는 측면으로 시각의 토대를 만들어 주며 『大乘起信論』의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첫 출발점이다.

 

3)相似覺

不覺의 다음단계로 상사각은 수행이 조금 진전된 사람들의 단계로 『大乘起信論』에서는 이와 같이 설명한다. ‘관하는 지혜’를 가진 이승과 초발의보상과 같은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으면 생각에 이상이 없게 된다. 거칠게 분별하는 집착의 모습을 버리기 때문에 근접한 깨달음이라고 이름한다. 불각에서는 이전의 그릇된 생각이 일어난 것을 깨닫는 것이라 하면 상사각은 생각이 바뀌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생각의 바뀜에 분별하는 것을 異相이라하고 그 異相을 발견하지 못하면 집착을 낳는다. 유식의 관점으로 설명하자면 제 7식 말나식에 생긴 생각들이 제 육식의 표면으로 드러나고 나와 상대를 구분하여 상대하려는 분별을 하고 그에 따라서 집착을 일으킨다. 원효는 이 異相, , , , , 여섯 가지로 나타내고 무명과 이 이상과 화합하여 머무르는 성질을 가지고 의식은 내외를 분별하고 아와 아소를 계탁한다. 그러므로 아과 아소가 공한 것을 깨닫는다면 대상지향적인 생각과 집착인 麤分別執着相은 자연히 없어지게 되는데 이 경지가 상사각이다.

 

4)隨分覺

세 번째 단계인 수분각은 상사각에서 수행이 더 전진한 단계로 이경지의 사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신보살과 같은 사람들은 생각이 머무는 것을 깨달으면 생각에 주상이 없게 된다. ‘분별의 거친 생각의 모습’을 여의기 때문에 ‘분에 따르는 깨달음’이라고 이름 한다.」 머무르는 생각은 바로 제 7식인 말나식의 자아의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 7식에서는 외부의 대상은 없지만 생각은 주관과 객관 중심으로 형성 되어 있다. 여기서 자아와 자아를 구성하는 것이 모두 공함을 알게 되면 형성된 의식 이전의 단계의 망념을 없앨 수 있게 된다.이는 分別麤念相을 잘 파악하면 사물에 대한 개념적 인식인 주상이 있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을 쉽사리 소멸할 수 있다. 이러한 추분별상을 원효는 我癡, 我見, 我愛, 我慢으로 제 7식의 지위에 있는 住相들로 말하고 이러한 住相을 없앤다는 것은 곧 나라는 생각인 我相을 없애는 것이다.

이는 인식하고 있는 세계를 넘어 그 세계를 보고 있는 나마저도 없는 아공과 법공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있는 사람은 법신보살이라 하며, 그들은 자신의 인과나 지위 등 분수에 맞는 깨달음을 갖기에, 이 단계의 깨달음을 분에 따른 각이란 의미에서 ‘수분각’이라고 한다.

 

5)究竟覺

다음은 최종적인 단계로 구경각이다. 이 경지는 수분각의 단계를 넘어 진여의 실상에 도달한 자이다. 『大乘起信論』에서는 구경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살지가 다한 경우에는 방편을 충만하게 갖추어 일념이 상응해서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달음으로 마음에 초상이 없게 된다. 미세한 念을 멀리 여의기 때문에 마음의 성을 볼 수 있어 마음이 곧 상주하므로 ‘궁극적 깨달음’이라고 이름한다.」 이는 제7식의 말나식을 넘어 제 8식인 아리야식에 念의 생상을 깨닫고 최초의 분별마저 없어지며 마음에 어떠한 念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곧 무념의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무념의 상태가 되면 念을 따라 마음에 흔들림이 없이 상주하게 되고 이른 더 이상 나아갈 바 없이 궁극에 이른 것이므로 구경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경전에서 ‘만약 무념을 관찰할 수 있는 중생이 있다면, 그는 곧 부처의 지혜에 근접한 것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를 보면 무념을 관찰할 수 있는 구경각을 얻으면 중생에서 벗어나 부처의 지혜를 얻는 결과를 얻는다.

구경각은 그 마음의 생성을 깨닫고 그 초상을 없애는 것이라 한다.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念이 생성이 된 것이다. 念이 생성하면 그 생성에 가리어 더 이상 그 초상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 초상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초상을 안다는 시점에 이미 念이 생성이 된다는 뜻인데 어떻게 그 초상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大乘起信論』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또 마음이 일어나면 알 수 있는 초상이 없다. 그런데도 초상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곧 무념이라는 뜻이다.」 이전과 같은 의문으로 계속 이어가면 제 8식이상의 9식이 있어야 하는 이론으로만 설명이 가능하고 9식을 또 설명하기 위해서는 또 그 이상의 10식이 나와야 하며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에 초상을 알 수 있는 8식 이후의 존재는 전부 다 같은 것으로 무념으로 정의를 내린 것이다. 즉, 마음이 생성되는 최초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곧 스스로 사라지게 되는 念이니 더 이상 念이라 할 수 없으니 無念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 중생을 깨달았다고 부르지 않는 것은 본래부터 생각마다 상속하여 일찍이 念을 여읜 적이 없기 때문이니, ‘시작이 없는 무명’이라고 하며 중생은 생주이멸로 표층의식에 드러나는 念만 바라볼 뿐 마음 근원은 알지 못하고 이를 무명이라고 하는데 무명 또한 무명 이래로 念을 여읜 적이 없어 無始無明이고. 이 無始無明은 곧 중생심의 본래적 각성인 본각을 가리는 무명이며, 마음 바탕을 가리는 근본 무명이다. 중생을 부처라 부르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이 무념을 알지 못하여 念의 생성을 일찍이 여읜 적이 없어서 무명에 가리어 스스로 부처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만약 무념을 얻게 되면 곧 심상의 생성으로부터 멸함에 이르기 까지를 알게 되고 그 시각의 네 가지에도 차이가 있지 않은 것을 알고, 생주이멸의 네 상이 따로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찰나로 동시적으로 존재하니 각위의 깨달음은 본래 평등하여 동인한 하나의 깨달음인 것」을 말하며 시각을 다시 본각으로 돌아와 두 각을 같다는 것을 설명하며 始覺四位를 마무리 한다.

 

. 결론

 

1.大乘起信論始覺四位와 원불교 법위등급 비교 도표

 

앞에 언급한 원불교 법위등급과 『大乘起信論』 始覺四位와 비교한 것을 도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법위등급 3급/3위 보통급 예비

특신급

특신급 예비

법마상전급

법마

상전급

예비

법강항마위

법강

항마위

예비

출가위

출가위 예비대각여래위 대각여래위
의미 불문초입 심신귀의 심신교전 심신조복 심신출가 심신자유
과제 초발심, 中惡習 입지 고전, 貪瞋癡 심계, 공심 시방오가 사생일신
始覺四位 4위 불각 상사각 수분각 구경각 시각사위초월
의미 시각의 첫 단계, 망념의 나쁨을 알아 다시는 나쁜 마음을 갖지 아니함. 생각하되 다르다는 상이 없어 추분별,집착상을 떠난다. 생각하되 머무는 상이 없어 무분별지를 얻었으나 아직 업의 허망으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함 마음에 초상이 없어서 미세념을 떠나서 마음을 얻어 보고 마음이 항상 상주한다. 無念
과제 칠지악업, 멸상 이상, 貪瞋癡慢疑見 주상, 아상 생상 본각 회귀

 

2.원불교 법위 등급은 일원진리를 근거로 둔 법위등급.

원불교의 법위등급을 수행론적인 관점에서 『大乘起信論』과 비교를 중점으로 고찰을 했다.

연구의 동기에 말했던 것처럼 원불교 법위등급은 단순히 단계별로 법위를 올리는 것을 위한법문이 아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우주적 근본진리에 근거함이 없이 세워진 종교는 사교하고 하셨듯이. 법위등급은 법신불 우주적 근본진리인 일원을 근거로 하여 짜진 법문이고 일원을 떠나고 법위를 수행표준으로 삼는 것은 성인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그 진리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위를 이용하여 세간의 명예나 이익 또는 남에게 공경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大乘起信論』에서 一心을 세간 출세간을 모두 포함하며 상대적인 인식과 언어를 벗어나 오직 중생심이 진여라고 하나 단지 중생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면에 그 一心을 믿지 못하게 하는 번뇌들이 있으니 始覺四位로 나누어 그 의심을 내게 하는 번뇌의 근원들인 生主異滅相을 알아 없앰으로서 현실적으로도 중생모습과 여래의 모습을 일치시킴으로 一心에 대한 의심을 남기지 않는 것과 같이 원불교도 또한 일원이라는 절대적인 존재, 성인의 심인, 일체 중생의 성품으로 모두 일원이고 일체 법을 포섭하고 어리석은 중생도 여래와 같은 깨달음이 존재하지만 이는 여래의 입장에서만 알 수 있으므로 현실적인 부분에서 실제로 중생이 여래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믿지 못하니 그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3급 3위의 법위등급을 제시하고 수행인으로 하여금 이 구분된 단계를 올라 궁극의 깨달음인 대각여래위를 내실 있게 도달하여 일원에 참 진리와 현실의 나와 일치시켜 스스로 여래임을 믿도록 하는 것이 원불교 법위등급이다. 즉, 원불교 법위등급은 일원을 근거로 하여 현실적으로도 일원진리와 일치시키는 것으로 일원진리를 현실화 하는 방편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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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학과

Wonkwang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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