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가례 의미에 대한 연구
김유진
Ⅰ. 서론
Ⅱ. 가례 1. 한국 사회 가례의 성립 2. 원불교 가례의 성립 과정
Ⅲ. 원불교 가례의 의식 절차와 의미 1. 출생 2. 성년 3. 혼인 4. 회갑 5. 상장 6. 재(제사)
Ⅳ. 결론 |
Ⅰ. 서론
자녀의 출생을 시작으로 성년 · 혼인 · 회갑 · 상장 · 재 · 제사와 같이 가정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례를 일러 가례라 한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주희의 저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를 토대로 유교적 예법을 시행하였다. 주자가례에서 말하는 가례 실천의 일차적인 목적은 가족 내의 윤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가족구성원 간의 결속을 굳건히 함으로써 가족공동체적 삶을 원만하게 영위하는 것을 지향하는 유교적 가족주의 질서에 부합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점차 그 의미가 변질되어 번거로운 절차와 허례허식에 치중되어 의식의 본질은 잊혀 진 채 경제적 낭비가 심해졌다. 이에 원불교에서는 그 폐단을 방지하고자 신정의례를 발표하였고, 후에 통례와 교례까지 아울러 예의 근본을 밝힌 예전이 편찬되었다.
원불교 『예전』에 의하면, 가례가 바르면 사회 · 국가의 예가 따라서 바르게 되고, 가례가 바르지 못하면 사회 · 국가의 예가 따라서 바르지 못하게 된다며 가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유교 가정에서의 교육적 측면이 중시되어 온 가례지만 종교에서 주체적으로 진행하는 의식은 종교적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가정 구성원을 고루 교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예법이 많이 사라진 지금 가정에서의 의례는 특히나 그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물론 시대와 생활이 변함에 따라 전통적 의례양상은 현대에 맞게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말 할 수 있으나 변화와 새로움 이전에 과거에 대한 바른 이해가 이루어져야 함은 모두가 동감할 것이다. 이 전의 의례가 어떠한 이유에서 만들어지고 행해졌는지 선명한 이해가 있어야 바른 시야를 가지고 더욱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면 가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행사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양상은 지역별로, 종교별로 각각 다르지만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례가 가진 참 뜻을 알아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의례가 아닌 근본 의미를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각 의식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관혼상제로 대표되는 일반적 의미의 가례와 원불교 가례의 의미를 알아보고 원불교 예전에 근거하여 원불교 가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것이다. 또한, 원불교와 함께 4대 종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를 중심으로 불교는 대한 불교 조계종을 표준으로, 개신교는 기독교장로회를 표준으로 조사할 것이다. 이 조사를 통해 4대종단의 가례의식을 비교하여 원불교 가례가 가진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에 논자는 4대종단의 가례의식의 의미를 알아봄으로써 앞으로 원불교 가례의식을 행하는 모든 이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가례의식을 행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Ⅱ. 가례
- 한국 사회 가례의 성립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가정의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과거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예(禮)’로써 국가의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다. 공자는 정해진 기준에 입각하여 질서가 잘 세워진, 혼동과 마찰이 생기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인 소강사회(小康社會)를 만들고자 하였고, 만물의 관계에는 상하좌우·선후주종이라는 차등이 존재하기에 소강사회는 예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고려 말 불교의 부패, 승려들의 세속화 등으로 혼란한 사회를 이끌어갈 정신적 이념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이에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수용하고 신왕조 개창의 정신적인 지주로써 조선 사회에 유교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태조는 ‘관혼상제는 나라의 대법이며 인륜을 두텁게 하고 풍속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유교 의례를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
가정의례는 그 사회의 생활양식임과 동시에 가치관을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 중국의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예법의 중요성이 인식되었고, 『주자가례』가 전래되면서 민간 예법이 급격히 활성화 되었다. 당시 조선의 학자들은 우리의 생활과 정서에 맞게 『주자가례』를 수정 보완하여 조선의 생활윤리와 전통예법으로 정착시켰다. 『주자가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전통 가정의례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먼저 관례는 성인됨을 행하는 특별한 의례로서 남성이 행하는 관(冠)례와 여성이 행하는 계(笄)례로 나누어 행하였으며 남성과 여성의 차이 외에 특별히 절차상의 차이는 없었다.
혼례는 『주자가례』에서 “두 성(姓)간의 우호를 결합시켜 위로는 종묘를 섬기고 아래로는 후세를 이어가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으며 혼례의 절차는 혼인을 의논하는 의혼(議婚), 신랑이 청혼 한 후 결혼이 허락되면 신부 집으로 예물을 보내는 납채(納采),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폐백(幣帛)과 혼서(婚書)를 보내는 납폐(納幣), 신부를 맞이하는 친영(親迎), 친영 다음날 신부가 시부모에게 인사드리는 부현구고(婦現舅姑), 친영 이후 사흘째 되는 날 신랑 집 사당을 알현하는 묘현(廟見), 신랑이 신부의 부모를 찾아 예를 올리는 서현부지부모(壻見婦之父母)의 일곱 가지 절차가 있다.
세 번째 상례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부터 장의(葬儀)절차를 치루고 탈상을 마칠 때까지의 각종 의식 절차를 이르며 상례는 『주자가례』의 절반의 분량을 차지할 정도로 『주자가례』에서 말하는 가정의례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절차로는 초종(初終) 고복(皐復) 부고(訃告) 영좌(靈坐) 성복(成服) 조상(弔喪) 발인(發靷) 우제(虞祭) 졸곡(卒哭) 등의 순서가 있으며 사망일로부터 1년, 2년, 27개월째 되는 날 올리는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사(禫祀)가 있다. 네 번째 제례는 사시제(四時祭) 시조제(始祖祭) 묘제(墓祭) 기제(忌祭) 등의 종류가 있다. 제례의 각 절차는 총 열 두번의 순서를 가진다.
『주자가례』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유교적 의례의 본래 뜻은 바른 예법을 교육함으로써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예를 지키고 조상님께 예를 지켜서 나아가 사회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함이 그 목적이었으나 점차 그 형식만 남아 관계적 질서를 확립하여 누구나 평등할 것을 원했던 목적이 관계간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누어 사대주의를 지키기 위한 기득권층의 행사로 변질되었다.
조선시대 그렇게 가정의례는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실시되었지만, 20세기 초 조선의 전통 가정의례는 차츰 변화를 겪게 된다. 1935년 조선총독부에서 『의례준칙』을 발표, 과거의 가정의례 관습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복잡한 가정의례를 간소화하자며 빚을 내서라도 혼례와 상례를 치르는 조선의 현실을 계몽하고자 함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자주성이 결여되어있는 유교를 사대주의로 간주하고 폄하하며 오랜 시간 지배해온 조선의 사회를 무너트리고자함이 그 목표였다.
그렇게 『의례준칙』에 의해 변화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례준칙』에는 관례의 내용은 없었고 사회적 특성으로는 남성들은 상투를 틀고 여성들은 비녀를 꽂았지만 단발령으로 인해 상투를 틀고 비녀를 꽂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머리모양으로 기혼자와 미혼자를 구분하곤 했지만 그 구별이 모호하게 되며 관례의 의미가 점점 쇠퇴하게 된 것이다.
혼례는 『의례준칙』에서도 역시 중요하다 강조되며 그 풍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어린나이에 결혼하는 조혼의 관습을 바꾸고자 하였다. 상례의 절차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자 하였는데 기존의 절차와 격식은 갖추고 슬픔은 충분히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여러 가지 제안들이 당시 큰 실효를 얻지는 못했으나 간소화를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제례도 마찬가지로 그 간소화를 주장하였다.
과도한 낭비와 허례허식에 치중된 가정의례를 방지하기 위해 1969년 박정의 정권은 가정의례준칙을 공포하였다. 제2경제실천운동의 명분을 내걸고 도입한 가정의례준칙은 한국 사회에서 그 당시까지도 강하게 내려오던 전통적 가정의례 풍습을 서양의식의 신식 가정의례로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박정희정권이 도입한 가정의례준칙은 국민들의 사생활 영역에 깊이 개입하여 이를 통제하려는 국가주의적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일반 대중들로부터 일정한 공감과 호응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던 가정의례 준칙은 결과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사회적 저항에 부딪쳐 약화, 변용되어 갔다. 그 원인은 주요하게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통해 성장한 상위계층이 박정희 정권과 일반 대중사이의 갈등관계를 활용하면서 박정희정권의 통제를 무력화 시키고 ‘구별짓기’를 통해 계급적 상승에의 기대감, 상층계급문화에의 동화의 표현으로서 가정의례를 재구성 하는 이른바 ‘상징자본’을 구축해 나갔기 때문이다.
가정의례준칙은 한국인의 전통적 혼상제례문화 요소를 빠르게 해체하여 근대적 일상성의 형태로 재구성하는데 기여하였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형식과 일상생활을 통자하고자 한다는 비판에 1999년 폐지되었다가 2008년 개정, 2015년 전면 개정되었다.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는 가정의례(家庭儀禮)의 의식(儀式) 절차를 합리화하고 건전한 가정의례의 보급·정착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조장하여 허례허식(虛禮虛飾)을 없애고 건전한 사회 기풍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에서 “가정의례”란 가정의 의례로서 행하는 성년례(成年禮), 혼례(婚禮), 상례(喪禮),제례(祭禮),회갑연(回甲宴)등을 말한다. 그 내용과 보급 및 실천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 제26774호 건전가정의례준칙으로 정하여져 있다.
과거의 관례는 오늘날 ‘성년의 날’로 그 명칭이 바뀌었으며 정해진 식순은 있으나 성년을 맞는 사람마다 간소하게 그 의의만 살려 의식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단체가 모여 성년의 날을 축하해 주는 자리가 아니면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혼례는 과거의 식순을 벗어나 결혼 이라는 현대화된 예법이 실행되고 있으며 상례, 제례도 현대화된 가정의례준칙에 준한 식을 거행하고 있다.
예법문화는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왔다. 고려 말 보급된『주자가례』는 오랜 시간 전통예법의 이론화와 생활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전통 예법문화는 일제의 조선 문화 말살정책으로 그 근간이 뿌리 채 흔들리게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서양 문화의 도래로 급속한 산업화와 서구화로 서구지향의 문화로 변형되어 갔고 ‘가정의례준칙’이 발포된 이후에는 더욱 더 전통 예법은 편의주의와 개인주의로 간소화 되어가고 있다.
- 원불교 가례의 성립 과정
소태산 대종사는 번잡한 불교의 형식적 불공법을 다 준행할 것이 아니라 사실 불공을 주로 하여 세간생활에 적절하고 유익한 예법을 더 밝히자며 혁신 예법으로 신정의례와 4기념예법을 발표하였다. 사실적 불공법과 형식의 간소화를 통해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금전적 낭비를 방지하고 때와 장소에 맞아 과불급이 없는 중도를 잡아 실천해 나가고자 하였다. 1926년 발표된 신정의례와 4기념예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출생의 예로는 입태 전후에 산모와 가권이 주의하는 법과, 산아 명명하고 출생 표기 세우는 법과, 축의 등을 저축하여 교육비에 충용하는 법 등을 정하시고, ② 성년의 예로는 성년식 거행하는 법과, 성인으로 대우하는 법을 정하시고, ③ 혼인의 예로는 혼인 소개소 두는 법과, 약혼하는 법과, 새 식순에 의하여 결혼하는 법과, 절약된 금액으로 공익사업 하는 법 등을 정하시었다. ④ 상장(喪葬)의 예로는 간략한 복표로 최고 49일 착복하는 법과, 새 식순에 의하여 출상(出喪)하는 법과, 절약된 금액으로 공익사업 하는 법과, 풍수 명당설을 타파하고 공원 묘각(廟閣) 건설하는 법 등을 정하시고, ⑤ 제사의 예로는 장차 자녀와 은법 자녀가 동일한 기념주 되는 법과, 새 식순으로 기념하는 법과, 절약된 금액으로 공익 사업하는 법 등을 정하시어, 이해 있는 이들 부터 먼저 실행하라 하시었다.
① 공동 생일 기념은, 회상의 생일과 교도들의 공동 생일을 한 날로 합동 기념하자는 것이요, ② 명절 기념은 재래의 수많은 명절들을 한 날로 교당에서 합동 기념하자는 것이요, ③ 공동 선조 기념은 부모 이상 선대의 모든 제사를 한 날로 공동 기념하자는 것이요, ④ 환세 기념은 새 해를 교당에서 공동 기념하자는 것인 바, 이 모든 법을 실행함으로써 절약된 금액으로 공익사업을 하는 동시에 각자의 생활에도 도움을 얻자는 것으로, 이해 있는 이들 부터 먼저 실행하라 하시었다.
위의 내용을 통해 원불교가 본의를 중심으로 한 실제적이고 공익적인 예법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신정의례는 사람의 출생으로부터 사후의 제례에 이르기까지 인간생활의 전반에 걸쳐 번거롭고 미신적인 풍속을 타파하고 실질과 공익에 바탕을 둘 것을 주된 이념으로 삼고 있다. 더불어 원불교 의례를 구성하는 통례와 가례와 교례의 실천은 모두 효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례는 특히 효의 실행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의례이다.
원불교 가례는 부모 보은의 강령인 ‘무자력자 보호의 도’를 실현하는 의례로 볼 수 있다. 원불교의 신정의례에는 효의 근본이념과 실천, 사상들이 담겨져 있다. 원불교 예법을 바로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며 널리 보급하는 것이 원불교 효사상의 실천이 된다.
원불교 의례는 1926년 (원기 11년) 신정의례와 4기념예법을 처음 발표한 이후, 1935년(원기 20년) 「예전」을 발행하였고, 1967년 (원기 52년) 현재의 「원불교 예전」을 발행하였다.
신정예법에 이어 1935년 발행된 예전에는 총론, 성년례, 유공인 상제례, 사기념례, 학위승급례, 설법례가 추가되었고 각 예에 해당하는 세부사항이 추가되었으며 1967년 발행된 현 예전은 예의 근본을 밝힌 총서편, 조신의 예를 밝힌 통례편, 가정생활 의례인 가례편, 종교의식과 관련된 교례편으로 구성되었다.
『원불교 예전』의 총서편에서는 예의 근본을 널리 공경함, 매양 겸양함, 계교하지 않음으로 정의하며 차별법이 주가 된 예법이 아니라 외경에 나타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찾고, 차별법이 없는 자리에 주(住)하여 다시 차별법을 쓰는 것이 곧 예의의 전체를 닦는 것이라며 예를 공부하는 이의 주의할 바를 말하고 있다. 신구간 필요한 예법을 가리고 시대에 맞게 모든 절차를 차례로 밝혀 잘 실행한다면 능히 예의 본말(本末)을 아울러 얻는 동시에 세상의 발전 향상에 도움을 얻으리라는 총서편의 구절을 통해 원불교 예법은 시대에 맞게 새로이 나온 예법이며 단순 상하 사이의 차별을 통해 질서 확립을 하는 예법이 아닌 세상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함이었다.
그 중에서도 원불교는 허례허식이 심했던 재래의 가례에서 공익성과 예법의 혁신을 강조하였다. 재래 풍속에서의 가례는 힘 미치는 대로 장엄과 음식을 성대히 차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 졌기에 절약된 금액을 불전에 바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부처님을 빙자하여 금전을 취하는 것으로 오인될 것을 걱정하는 제자의 물음에 정산종사는 장엄과 음식을 성대히 차리는 것은 한때의 소비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정도에 맞게 간소 절약하여 교화·교육·자선 등 공익사업에 이용한다면 이것은 영원한 복이 되는 동시에 당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 하였으며 비싼 옷감으로 새로 지었던 열반인의 수의도 깨끗한 묵은 옷으로 하여 재래 예법에 행해지던 정신을 돌려 마음으로 기원하고 물질희사로써 명복을 비는 것이 참다운 방법이라 하셨다.
관혼상제 중 관례의 변화는 1895년 단발령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혼례는 1930년 경부터 예식장에서 거행되는 혼례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상례는 1912년에 반포된 화장장과 공동묘지 제도의 규정으로 변화가 왔으며 1934년 반포된 『의례준칙』으로 인하여 전통적 가례 전반에 큰 변화가 있게 되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원불교는 신정의례는 제시하고 원불교 「예전」을 편찬하여 출생으로부터 사후의 제례에 이르기까지 인간생활의 전반에 걸쳐 번거롭고 미신적인 풍속을 타파하고 실질과 공익에 바탕을 둘 것을 주된 이념으로 삼고 있다.
Ⅲ. 원불교 가례의 의식 절차와 의미
의례수행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의례자체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근본목적, 둘째는 각 의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수행목적 셋째는 의례 속에서 절차가 지니고 있는 과정목적이다. 원불교 의례가 가지는 근본목적은 예의 본말(本末)을 얻어 세상의 발전 향상에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원불교 가례 속에서 어떻게 그 목적이 나타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 출생
원불교에서는 정산종사 법어 제 1부 세전에 「태교의 법」을 밝혀놓은 바 몸을 삼가고 마음을 깨끗이 하며 행실을 더욱 바르게 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명명식과 출생7주기원식의 주된 내용은 자녀가 심신이 고루 발육되어 올바른 지도인을 만나 국한 없는 공도사업에 헌성 활동하기를 바라며 부모로서 사랑과 정성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명명식의 식순을 살펴보면 개식, 명첩 봉헌 및 헌배, 입정, 영주, 기원문 및 독경, 법어봉독, 성가,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며 폐식 후에는 출생표기를 걸도록 하였다. 명명식은 유아의 이름을 지어 올린다는 수행목적을 가지며 법신불전에 명첩(名帖)을 봉헌(奉獻)하거나 출생표기를 걸어두는 절차를 통해 유아의 출생을 축하하고 알리는 과정목적을 가진다.
출생7주기원식은 개식, 입정, 불전 헌공 및 부모 헌배, 독경, 출생7주 기원문 및 일동 불전헌배, 성가, 폐식의 순으로 하며 식을 마친 후에는 출생표기를 거두고 불전 헌공을 통해 공익사업에 사용할 것을 권한다. 출생7주기원식은 유아의 장래 혜복을 기원하는 수행목적을 가지며 유아의 출생 7주를 축하함과 더불어 불전헌공 및 부모 헌배를 통해 유아가 자력을 갖출 때까지 부모 도리를 다하여 바르게 키우겠다는 부모의 다짐을 위한 과정목적을 가진다.
과거풍속에서는 금줄을 치고 부정 장소에 출입을 기피하며 외부와 단절을 하는 곳이 많았다. 산모와 유아에 대한 죄복이 삼신(三神)에 있는 줄 알아 일동일정을 삼신의 위력에 눌리어 산모와 유아의 위행은 도리어 등한시 한 바가 많았다. 과거의 그런 맹목적 미신을 없애고 위생부분도 신경 쓰게 하였으며 미신에 의하여 소모되는 비용을 줄여 유아의 장래 혜복에 사용 될 수 있도록 예법을 혁신하였다.
명명식은 당시 호적에 유아의 이름을 올리고 나서 따로 법명을 받아 생기는 번거로움과 복잡함을 없애고 본명과 법명을 같이하여 세속 이름과 수도하는 이름을 하나로 하여 생활과 공부가 둘이 아니게 하고자 함이었고, 출생7주기원식은 열반 후 열반 표기를 영구실 앞에 7주 동안 걸어 놓듯 중음기에 있던 영혼이 사람의 몸을 받아 새로이 태아가 적응 하도록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도 유아의 출생 기념식이 있지만 이는 출생 후 100일이나 돌이 지났을 때에 축하하기 위한 식으로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중에서 출생을 축하하기 위한 식은 명명식과 출생7주기원식이 유일하다. 원불교에서는 명명식과 출생7주기원식을 통해 과거 금줄을 거는 등의 번거한 형식을 없애고 유아의 출생을 축하하는 의례의 본질을 밝혔고 비용을 줄여 불전헌공을 한다든가 유아가 장차 이 회상의 큰 일꾼으로 자라 공도 사업에 헌신하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등 세상의 발전 향상을 바라고 있다.
- 성년
원불교 성년식은 성년을 축하함과 동시에 인간사회의 모든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며 자력생활과 이타적 보은행을 격려하는 의식으로 진행된다. 부모에 대한 절과 친척과 동지에 대한 상견례를 통해 사회성을 일깨우고 심고를 통해 자신이 성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성년식의 순서는 개식, 입정, 심고, 설법, 부모전 헌배, 친족 상견례, 동지 상견례, 축사와 답사, 성가,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며 성년식은 당인의 성년을 축하하는 수행목적을 가지며 부모에 대한 절과 친척과 동지에 대한 상견례를 통해 사회성을 일깨우고 심고를 통해 스스로 성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의미의 과정목적을 가진다.
과거 관례식에서는 남성은 상투를 틀고 여성은 쪽을 지는 등 외적인 변화와 함께 성인이 되었음을 인증하곤 했으나, 시대가 변경되고 의관이 개량됨을 따라 착관으로는 그 법을 시행하지 못하게 되어 과거와 같은 돌변착관(突辯着冠)의 예로 관례를 시행할 것이 아니라 성년식을 거행해 재래의 관례자와 같이 대우하게 하였다.
정산종사는 합동 성년식에서 나이만 먹고 백발만 난다고 어른이 아니라 말하며 외적인 변화에 상관없이 남을 잘 용납하고 덕을 입히는 것이 올바른 성년이라 하며 새로운 복을 짓고 부드러운 처세를 할 것을 당부하였다. 성년에 이르러 육체적인 성숙과 더불어 본인의 새로운 자각을 일깨워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과 사회적 성인으로서의 의무화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한다. 원불교 성년식은 유교적 성년식이 가지는 의미와 거의 같지만 사회에 대한 개인의 의무와 책임뿐만 아니라 공익을 위해 힘쓰는 것에 더욱 강조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 혼인
원불교에서 혼인은 남녀 양성이 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이로 인하여 자녀가 출생되고 마을이 구성되어 나아가 사회, 국가가 조직되므로 혼인을 가정·사회·국가의 근원으로 여긴다. 혼인을 할 때에는 각자의 성격과 상대방의 건강문제 등을 자세히 파악하고 처지와 형편에 따라 끝까지 신의를 지킬 굳은 약속과 정중한 의식으로 성립되도록 하였다.
혼인은 다른 가례보다도 법신불전에 고하는 의미가 가장 크다. 부부간의 화목을 약속하고 신의를 다지고 근실하며 공익에 힘쓸 것을 다짐하는 결혼식은 단순히 부부간의 약속이 아닌 부부가 함께 법신불 전에 고하며 약속하는 의식이다. 재래와 같이 미신에 의하여 사주·궁합을 보고 택일하는 예는 폐지하며, 결혼 일자는 양방의 사정에 따라 적당히 결정하도록 하였다. 정산종사는 부부의 도를 화합, 신의, 근실, 공익이라 말하며 가정의 비롯인 부부에서부터 그 도를 잘 지켜 서로 협력할 것을 이야기 하였다.
원불교에서는 약혼과 결혼식을 나누어 식을 진행하며 약혼식은 개식, 약력소개, 신물(信物)교환, 심고, 친족 인사소개, 훈화, 폐식의 순으로 거행되며 두 남녀의 혼인을 약속하는 수행목적과 양방 당사자와 부모, 증참인이 회합하여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목적이 담겨있다.
결혼식은 개식, 불전 헌공 및 고유문, 심고, 결혼증서 교환 및 배례, 설법 또느 주례사, 축사, 성가, 신랑 신부 및 가족 대표 인사, 폐식 및 신랑 신부 퇴장의 순으로 진행되며 남녀가 상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수행목적을 가지며 서로의 신의를 지켜 사회·국가의 근원이 되는 가정을 잘 꾸려 나가고자 하는 과정목적을 가진다.
결혼증서에는 인륜을 존중히 하고 신의를 견고히 하여 영원한 고락을 함께할 것, 정당한 신앙과 공부, 사업 하는 데에 서로 권면하고 부조하여 구속과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 양방이 같이 부모에게 효성하고 형제간에 우애할 것, 인격을 서로 존중하고 경애하여 세상에 드러난 대악 외에는 어떠한 과실과 불평이 있어도 이를 관용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근본이 바로 서있는 가정을 이룸으로써 사회, 국가에 도움 되는 가정이 되고자 함이며 재래와 같이 미신에 의한 택일이나 궁합 등의 예는 폐지 할 것을 당부하며 번거한 절차를 없애고자 하였다.
과거의 혼인은 대개 집안끼리의 의논을 통해 결정되었으므로 혼인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충분지 못한 바가 있었고 혼례에는 특히 더 많이 허례에 집착하여 많은 금전이 소비되므로 빈약한 사람은 우려 중에서 행하게 되며, 심한 경우에 빚을 내서라도 혼인을 거행하게 되었으니 이에 원불교에서는 혼인 소개소를 두어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알게 하였으며 재래와 다른 식순을 두어 필요없이 소모되는 비용을 줄여 공익사업에 희사하도록 하였다.
현재 불교혼례는 대개 안진호의 『석문의범』(1935)을 참조하되 사찰마다 다양하게 치르고 있다. 안진호의 『석문의범』에 실린 화혼의식의 순서는 개식, 내빈 착석, 주례법사 등단, 신랑, 신부입장 및 소개, 삼귀의, 신랑, 신부경례, 고유문 낭독, 상견례, 헌화, 신물(信物)교환, 유고(諭告) 및 선서, 찬불게(讚佛偈), 내빈축사, 축전낭독, 사홍서원, 폐식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독교 혼례는 약혼식과 결혼식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약혼식은 목사가 주례를 담당하여 당사자의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하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결혼의 약속을 선포한다. 대체로 순서는 개식사, 기원 또는 묵도, 찬송, 성서봉독, 기 도, 주례 사, 약혼서약, 선물교환, 기도, 선언, 찬송, 축도들로 이루어져 있고 당사자의 소개, 피로연들이 더 들어갈 수 있다.
개신교 결혼식의 식순은 다음과 같다. 주례자언 목사가 등단하면 신랑이 입장하고 다음에 신부가 보호자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한다. 기다리던 신랑이 보호자로부터 신부를 맞는다. 신부는 주례자 앞 왼쪽에 선다. 주례자는 개식사를 통하여 혼인의 신성함과 하느님의 축복을 설명 하고 기원한다.
천주교에서는 교회법에 따라 혼인성사를 통해 혼인을 인정한다. 성사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감각적, 상징적으로 표현한 종교의식이다. 교회법 제1055조는 혼인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법조항은 여기에서 혼인과 성사의 관계에 대해 반복하며, 성사로서의 혼인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혼인은 그 자체로 성사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성사가 아닌 유효한 혼인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당사자들의 사회법적 형식의 계약(契約)만으로는 혼인이 성립할 수가 없으며, 반드시 성사로서 교회가 인정하는 일정한 형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공인된 예식서에 의해 진행된다. 천주교 혼인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단일성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즉 일부일처제를 뜻하며 불가해소성이란 부부의 유대가 배우자 중 한명이 죽을 때 까지 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 회갑
출생 후 60년을 기념하는 회갑은 공부와 사업에 결실을 회고하는 뜻깊은 시기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지중한 은혜에 감사함과 동시에 공익에 어떤 이익을 주었는가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주변인들은 회갑의 기쁨을 축하하는 동시에 당인의 공덕을 찬양하고 격려하자는 것이다.
정산종사는 윤석인의 회갑식에서 회갑 기념도 한갓 무의미한 외화로 하루를 지내지 아니하고 우리 예법을 이용하여 세상에 새 법을 세우며 새 복을 지으면 세상에서 무의미하게 수 만의 금전을 소비하는 것보다 그 영광이 몇 배나 더하며, 자손들의 부모에 대한 보은도 또한 몇 배나 더 하나니라. 하며 회갑식이 단지 당인의 축하뿐만 아니라 공익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냈고, 본인의 회갑식에서는 그 성금으로 법은재단을 설립하여 공익사업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회갑식은 개식, 입정, 약력보고, 설법, 축사, 답사, 가족 대표 인사, 성가,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며 이는 출생 후 60주년을 기념하는 수행목적을 가지면서 당인의 지내온 세월에 감사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과정 목적을 가진다.
가례예문의 회갑식 감사문과 심고문의 내용을 보면 사은의 주신 바 이 몸 그리고 주위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미래의 정신을 분발하여 무상대도를 깨치며 무궁한 세월에 보은자가 되기를 다짐한다. 회갑의 예는 신정예법이나 1935년 발행된 예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1967년 발행된 현행 예전에서부터 그 내용이 실려 있다.
대산종사는 회갑식대 대공심(大空心) 대공심(大公心)법문을 써서 회갑을 맞은 제자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대공심(大空心)은 지혜를 뜻하며 대공심(大公心)은 덕을 뜻하는 말로써 회갑을 맞은 제자들이 지혜와 덕을 쌓기를 뜻하는 법문이었다. 이처럼 원불교에서는 회갑식을 통해 공도에 헌신한 회갑인을 공도자 숭배의 정신으로 축하하며 더욱 공익사업에 힘써 회갑인의 영원한 기념으로 남게 하며 호화스런 회갑을 통한 낭비를 줄여 세상의 발전 향상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불교에서는 회갑과 비슷한 축수의례가 있으며 축수의례는 노인으로 진입하는 일정한 단계를 기점으로 사망 때까지 수차례 반복되는 특성이 있다. 이는 장수를 기원하고 축하하는 풍습으로써 노인이 된 이후 삶의 과정 자체가 축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계종의 『통일법요집』에는 축수의례 절차를 개식, 삼귀의, 반야심경, 정근(석가모니불 21편), 주인공 소개, 발원문 낭독, 가족대표인사말, 헌다(차나 술을 올리고 헌배함), 회갑축원, 떡(케이크)절단, 사홍서원, 축가 및 잔치 순으로 이루어진다.
- 상장
상장은 주변인에 있어서는 슬픈 일이지만 당인에 있어서는 새 몸을 받을 시기라 친척, 친지의 정곡(情曲)을 풀며 절차를 갖춤과 동시에 열반인의 참 열반과 천도를 기원하여야 한다. 상장의 예는 열반 및 열반식, 호상, 입관 및 입관식, 발인식 및 운상, 입장식 및 장사, 복제로 이루어져 있다.
상장의례는 사람의 일생을 마치고 보내는 일로서 친근자에 있어서는 그 섭섭함이 비할 데 없지만 당인에 있어서는 이 몸을 버리고 새 몸을 받을 시기라 반드시 올바른 천도를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의식은 친척·친지들의 정곡(情曲)을 풀며 절차를 갖추는 것인 동시에 당인을 본위하여 그 참 열반과 천도를 기원하는 것이 원불교 상장의례가 가진 수행목적이다. 의례의 식순은 열반인의 입관을 통해 열반에 들었음을 열반인에게도, 주변인에게도 알려 오롯한 천도의 길을 가게 하는 입관식을 하는 등 각 의미에 따라 각기 다른 과정목적을 가지고 있다.
상장의 예는 영가의 열반을 허공법계와 제불제성에 고하는 열반식, 열반인을 관에 넣는 입관식, 열반인의 평생 공덕을 추모하고 후생에는 더욱 진급하여 성불제중의 대업을 성취하기를 축원하는 발인식, 관을 묻는 입장식 등이 있으며 이 일련의 식을 통해 열반인에게, 주변인에게 열반인의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천도발원에 정성을 들이게 하여 온전한 천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각 상장의례의 의식 절차를 살펴보면 먼저 열반식은 정산종사 법어 세전에 나와있는 ‘열반의 도’를 더욱 이행하며 열반 1시간이 지난 후 열반식을 진행한다. 개식, 입정, 심고, 성주, 천도법문, 독경, 염불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사망 진단을 받은 후 수의와 관이 준비되는 대로 입관식을 진행한다. 입관을 마치면 개식, 입정, 심고, 헌배, 성주, 천도법문, 독경, 염불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발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3일 만에 행함을 원칙으로 한다. 개식, 착복 및 고유문, 상주대표 고사, 심고 및 일동경례, 성주, 천도법문, 독경 및 축원문의 순서로 이루어지며 같은 순서로 입장식이 진행된다.
원불교의 상장의례는 윤회사상에 입각하여 천도를 중심으로 하는 의식이 강하다. 그것은 영혼의 윤회에 바탕하여 중음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영식을 천도하기 위하여 7,7재를 사십구일동안 올려주는 의식이 강함을 알 수 있다. 즉 영혼의 천도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상장의례는 절차가 복잡하고 그 기간이 심히 길어 상주가 상례를 다 하기로 하면 3년간은 부득이 애를 써야 하는 지라 그것이 부모를 위한 정성이라 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갓 물질낭비로써 사회 발전상 장애를 가져다주었다. 이에 원불교에서는 27개월까지의 상례를 49일로 줄이고 과거 풍수배의 명당설을 타파하고자 하는 등 재래의 불필요한 관습을 없애고자 하였다.
불교 상장의례는 임종, 빈소, 이운, 다비, 매장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임종 직전·직후에는 임종의례가 행해지며, 빈소를 차린 뒤에는 불교의 계(戒)를 받는 수계의식 및 염습·입관·상식 등이 유교식 절차에 맞게 치러진다. 이운의례는 관을 장지까지 모시는 의식이며, 다비·매장의례는 장례방법에 따라 화장 또는 매장으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절차이다.
이 중 빈소의례에서 행해지는 의식을 시다림이라 한다. 수계는 고인에게 불교의 계(戒)를 내리는 의식이고, 염습·입관은 시신을 염(殮)하여 관 속에 넣는 의식이며, 상식은 고인을 위한 쌀·과일 등의 공양물을 올리는 의식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룰 때의 절차로, 실제 의식은 대상과 상황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다. 특히 수계에서 상식까지 모든 의식을 행하는 것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대 장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신교의 제례는 추도식으로 불리어진다. 유교적 전통 제례와는 달리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지 않고 사진, 유물을 준비하거나 초 또는 꽃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고인의 기일이 되면 가족과 친지들이 주례목사를 초청하여 찬송, 기도, 성경 봉독, 찬송, 기념추도, 묵도, 찬송, 주기도문의 순서로 진행한다.
천주교 상례는「성교예규」에 의하여 장례식이 진행 된다. 종부성사, 임종 전 대사, 운명, 초상, 위령미사, 엄습과 임관, 장례식, 하관 의 순서로 진행된다. 또한 한국 천주교에서는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마음을 기리기 위하여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예식을 2013년 발표 하였다.
- 재(제사)
제사란 열반인에 대하여 추모의 정성을 바치는 것으로 추모하는 정성을 바치는 동시에 열반인의 영원한 명복을 축원하여야 한다. 열반인의 명의로 헌금함으로써 명복이 되게 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원불교에서의 제사는 열반인에 대하여 추모의 정성을 바치는 것인데, 청정한 마음으로 불전에 발원하여 숙세의 업장을 녹히고 도문에 인연을 깊게 하며 헌공금으로 공도사업에 활용하여 그 미래의 명복을 증진하고 사회의 발전을 도움과 함께 열반인의 공덕을 추모하며 자손 대대에 그 근본을 찾게 하여 후생의 보본사상을 권장하고자 함이다.
재래 제사지내는 모습은 무조건 성대히 하여야만 자손의 도리로 아는 것이었다. 더하여 그 주체는 장남으로서 차남이나 장녀, 차녀가 되고 보면 제사의 예를 올리지 못하였다. 이에 원불교는 기념주의 자격을 자녀 모두에게 주었으며 음식 진설을 없애고 오직 보은과 추모와 축문으로서 그 선영을 위하여 축원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대종사는 제자의 천도재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천지에는 묘하게 서로 응하는 이치가 있어 사람이 땅에 곡식을 심고 비료를 주면 땅도 무정한 것이요, 곡식도 무정한 것이며, 비료도 또한 무정한 것이지만 그 곡출에 효과의 차를 내나니, 무정한 곡식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최령한 사람이 어찌 정성에 감응이 없으리요. 모든 사람이 돌아간 영을 위하여 일심으로 심고를 올리고 축원도 드리며 헌공도 하고 선지식의 설법도 한즉,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고 기운과 기운이 서로 응하여, 바로 천도를 받을 수도 있고, 설사 악도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차차 진급이 되는 수도 있으며, 또는 전생에 많은 빚을 지고 갔을지라도 헌공금(獻貢金)을 잘 활용하여 영위의 이름으로 공중 사업을 하여 주면 그 빚을 벗어 버리기도 하고 빚이 없는 사람은 무형한 가운데 복이 쌓이기도 하나니, 이 감응되는 이치를 다시 말하자면 전기와 전기가 서로 통하는 것과 같다 하리라.
열반인은 물론 식을 지내는 모두로 하여금 세세생생을 통하여 바른 천도의 길을 걷게 함이 그 수행목적이며 재 혹은 제사를 지냄으로써 열반인을 추모하고 명복을 축원하는 것이 과정목적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제사상을 차리지는 않으며 간소한 음식으로 공양하는 것은 좋으나 분수 밖의 비용을 들여 접대하는 것은 폐지하라 하였다. 예의 근본을 잃지 않고 간단한 예법으로써 시대에 맞고 생활에 적절한 예법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Ⅳ. 결론
의례는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축적되어온 집단적 산물이다. 가정에서 행해지는 통과의례는 각 단계별로 의미를 가지며 종교적 상징성을 띄고 있다. 원불교 가례는 예의 정신에 바탕한 형식의 간소화 이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가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유교의 사회의 영향으로 불교는 민간의 생활과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기에 죽음과 관련된 국면을 제외하면 체계화 되어 있지 못한 편이다. 사후문제처럼 종교적 해명이 따르는 부분에서는 불교 특유의 세계관으로써 두드러지는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으나 생전의 가례에 대해서는 영향력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 불교의 가례는 생로병사를 벗어나 근원적 번뇌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불교의 가르침 과 같이 삼귀의를 시작으로 하고 사홍서원을 마지막으로 식순이 구성되어 있다. 이는 불교의 가례가 가지는 근본적인 목적이 결국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한국 개신교의 가례는 주례목사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 관혼상제 등의 가례에 대해 체계적인 식순을 마련하고 있지 않고, 교단별로 그 식순은 상이하지만 의식서를 제공하고는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독자적인 식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가례는 편의와 권면을 위주 하였다. 그 본질적 객관화 하고 분석하여 바람직한 것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만을 모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걸러내어 챙긴 의미 있는 것이 개신교의 가례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개신교의 가례는 배려, 축복 혹은 위로, 권면 등 사회 윤리적 요청의 부응들을 위한 합리성에 부합하는 것이 목표이다.
천주교에서는 혼례와 상·제례를 제외하곤 일반적 의미의 가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교회법에 준하여 가정이 아닌 교회 속에서의 삶, 신앙적 성숙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일반적인 관례나 결혼 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오로지 하느님께 귀의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을 맹세하는 순차적인 성사가 있을 뿐이다.
입교식인 세례성사를 시작으로 보다 강하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견진성사,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눔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는 성체성사, 아픈 이들을 위한 병자성사, 남녀의 결합을 위한 혼인성사, 참회를 통해 죄를 쇄신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어 전진하는 고해성사, 사도가 되기 위한 성품성사의 7가지 성사를 통해 천주교 신도들은 하느님을 떠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비록 가정의 삶을 떠난 의식이지만 의례를 통해 성숙을 이룬다는 점에서 천주교의 7성사와 가례를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하느님이 계획한 것이며 그에 순응하여 나아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천주교의 가례가 가진 목표라고 하겠다.
원불교의 가례는 가정 속에서 부모·자녀의 행할 바 길을 잘 행하고, 부부 사이에 부부의 행할 바 길을 잘 행하고, 또 붕우 사이에도, 동포사이에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각각 당연한 길을 행한다면 그 사람은 곧 도를 아는 사람이며 각각의 위치에서 그 도를 행한다면 천만가지 도를 따라 덕이 생겨나므로 개인 가정, 나아가 국가, 세계가 화하게 될 것이라 하셨다. 떳떳이 행하는 것을 통해 세계를 화하게 하는 은혜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원불교 가례는 기본적으로 유교의 관혼상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회 질서 확립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유교적 가례의 이념에 더하여 가정 교화를 시작으로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를 교화하고 세계에 이익을 주고자 하는 목적이 더해진 것이 원불교 가례라고 할 수 있다.
원불교는 사회의 예법이 너무나 번거하여 사람들의 생활에 많은 구속을 주고, 경제방면에도 공연한 허비가 많아 사회발전에 장애가 됨을 지적하고 의례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시대에 맞게 새로이 제정된 원불교 가례는 관혼상제를 포함하여 출생, 성년, 회갑, 재 등 7종류의 의례를 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생활의 유익과 편리를 줌과 동시에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의례를 교당에서 행함으로써 형식적 의례가 아닌 의례가 가진 근본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가정이 더욱 진급하고 나아가 사회에 세상에 이익을 주는 것이 원불교 가례의 목표인 것이다.
가정이 아닌 교당에서 가례를 진행함으로써 더 많은 인연을 맺게 되고 교도로 하여금 신심을 나게 하는 훌륭한 교화의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 교화현장에서 천도재는 좋은 교화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웃 종교의 가례와 마찬가지로 원불교 가례도 열반 후의 상장과 제사에 치우쳐져 있다는 점이다.
가례가 가진 각 의식의 의미와 목적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시대와 교도의 생활 유익 등에 따라 차등이 있게 의례가 발전되어 왔다. 전통을 무조건적으로 지키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그 근본 의미를 알고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핵심을 알려 차근차근 실행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가례가 친목 위주의 이벤트로 간소화 되며 현대인에게 가례가 가지는 예의 근본 의미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 가례의 의미와 더불어 따라서 우리는 시대적 가치에 부응하면서도 예의 정신을 살려 그 형식과 내용을 바르게 하고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가례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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