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학과

Wonkwang University
Department of Won-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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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상징의 비교연구-최원일

교학대학 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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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상징의 비교연구-최원일

 

 

 

 

 

종교 상징의 비교연구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최영훈

 

 

 

차례

Ⅰ. 서론

Ⅱ. 종교의 상징

1. 다양한 종교 상징 소개

2. 종교 상징이 갖는 의미

Ⅲ.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 십자가의 개념 고찰

1. 원불교의 일원상

2. 기독교의 십자가

Ⅳ. 기독교의 십자가와 원불교의 일원상의 비교고찰

1. 진리관

2. 신앙관

3. 역사관

4. 구세관

Ⅴ. 결론

 

. 서론

 

종교에서는 진리 또는 깨달음이나 종교적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많은 표현을 사용해 왔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서 부처의 손에 연꽃을 드는 경우를 다수 발견할 수 있으며, 유학에서는 밝은 거울 상징을 마음이 갖는 본질적인 역량을 다 실현한 이상적인 상태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종교 상징을 연구함으로써 종교의 진리와 깨달음, 교리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각 종교의 진리와 깨달음, 교리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각 종교가 천명하고 있는 진리, 교리, 깨달음의 경지 등에 대한 공통적인 부분과 차이가 나는 부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종교 간의 이해가 더욱 깊어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진리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불교만 들어 보아도 석가모니가 이야기했던 진리를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연구를 해 오며 주석은 늘어가고 있지만, 진리에 대한 해석은 아직도 분분함을 보면 종교에서 진리를 말로 표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한정적인 언어와 논리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므로, 수많은 내용을 내포하면서 해석의 풍부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암시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종교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암시적인 방식이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인식 가능한 어떤 것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더 큰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징이란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인식 가능한 것으로 그 인식 불가능한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그 상징이 내포하는 의미를 넘어 해당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와 깨달음까지 함께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종교의 상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밝히고,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의 의미를 연구함으로써 두 상징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두 상징의 비교를 통해 해당 상징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논한다. 그 목적은 상징의 두 상징의 비교연구를 통해 각 종교의 진리관, 신앙관, 역사관, 구세관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고, 모든 종교를 통합 활용하자는 기치를 가지고 있는 원불교에서 이러한 비교연구를 통해 각 상징에 대해 통합 활용해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선행연구로는 임부연의 「거울의 종교적 상징체계–유학자의 마음공부를 중심으로」, 조응태의 「한국 신종교의 ‘물 신앙’」 하승애·방광자·주진희의 「인도 종교 조형물에 나타난 연꽃의 상징성」에서는 특정 상징이 여러 종교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이 되고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종교 상징을 어느 하나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울의 경우 대표적으로 유교, 불교, 기독교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기독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십자가라는 것을 보면 상징이 하나로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종교 내에서 나타나는 상징에 대한 연구인 이경원·백경언의 「증산계 신종교의 의례와 상징에 관한 연구 – 치성 의례를 중심으로」 에서는 같은 종교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상징을 활용해서 진리나 신앙 등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앙적 표현의 상징인 의례 속에서도 의식의 순서, 방법 등의 차이가 나타나며 같은 순서에서도 부여되어있는 의미 또한 같은 종교임에도 다르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종교 상징에 대한 연구로는 윤강수의 「폴 틸리히의 종교 상징론에 관한 연구」, 정인재의 「종교체험의 상징성과 해석에 대한 연구」, 임형모의 「종교적 상징과 해석의 문제 연구:폴 틸리히와 폴 리쾨르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종교에서 상징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 하며 상징의 의미를 알아내고 분석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종교 상징의 가장 기초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원불교 일원상에 대한 연구로는 강은희의 「일원상진리의 신앙에 관한 연구」, 서경전의 「일원상상징과 제종교상징의 비교연구」, 조성훈의「『불교정전』 「일원상」장 성립의 의의 – 1935-1942년을 중심으로」 등에서 일원상의 성립 과정과 의미, 의미변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서경전의 연구에서는 일원상에 대한 연구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 상징과의 비교를 통해 일원상 상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비교하여 밝히고 있다.

기독교의 십자가에 대한 연구로는 김준성의 「십자가 도상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의미 연구 –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표현부터 16세기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도상을 통한 고찰」, 김상옥의「십자가의 상징성과 그리스도교 영성 (1)-(종)」, 조재웅의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십자가의 의미와 기능」 등에서 기독교 십자가가 형성되어 온 과정과 의미변화, 십자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밝히고 있다. 십자가가 기독교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왔는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은 다음과 같다. 기존 연구에서는 동일한 상징이 다른 의미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부분이나 같은 종교 내에서 다른 상징이 나타나는 경우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종교 상징에 대한 비교연구 또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선행 연구들이 했던 것에서 더 나아가 각각 다른 종교의 상징을 비교함으로써 그 상징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고찰해 본 후, 그 상징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비교 연구하려 한다.

특정 상징을 다른 상징군과 비교함으로써 해당 상징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연구하는 것은 해당 상징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의미를 드러낼 수는 있으나 다른 상징들과 비교하여 어떤 의미가 다른지 비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므로 일원상과 십자가의 비교를 통해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각 종교가 방법은 다르지만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먼저 종교에서 상징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고,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의 의미를 밝힌 후 각 상징의 비교를 해 나가는 방향으로 논문을 진행하고자 한다. Ⅱ. 종교의 상징에서는 종교에서 상징이 가지는 의미를 밝혀 종교 연구에 있어 상징의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를 이야기하고,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상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한다. Ⅲ.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 십자가의 개념 고찰에서는 여러 상징 중에서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가 상징으로써 어떻게 사용이 되어 왔는지 밝힌 후, 현재는 어떤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는지 고찰해 볼 것이다. Ⅳ.기독교의 십자가와 원불교의 일원상의 비교고찰에서는 Ⅲ에서 밝힌 내용을 토대로 두 상징의 진리관과 신앙관, 구세관을 논함으로써 이 상징을 통해 각 종교가 나가고자 하는 방향성은 어떤 것인지 비교해 볼 것이다.

 

 

 

. 종교 상징

 

본 장에서는 먼저 여러 종교에서는 어떤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지 드러냄으로써 종교에서 사용하는 상징이 다양함을 드러낼 것이다. 그 후, 종교에서 상징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이 있는지 드러냄으로써 종교에서 상징의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1. 다양한 종교 상징 소개

인도에서는 기원전 3000년 경이라고 추정되는 연꽃의 여신상이 발굴되고, 바라문 경전에는 이 여신이 연꽃 위에 서서 연꽃을 쓰고 태어났다고 기록되고 있다. 자인교에서는 꽃을 가득 꽂은 꽃병이 자이나 신자들의 상징으로 숭배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연꽃이 부처님의 상징으로 활용되면서 연꽃에 대한 표상을 많이 확인할 수 있는 종교 중 하나이다.

다음으로는 거울이다. 거울 상징은 실존의 삶을 반성하고 초월적인 실재에 다가가려는 종교적 인간의 존재론적 추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교에서는 무자성의 실상에 대한 불성의 내성적인 관조의 의미를 표현하였으며, 성리학에서는 거울은 마음이되 거울의 밝음이 바로 성품이라고 이야기한다. 기독교에서는 신을 인식하고 영원한 진리에 이르는 영혼을 거울로 상징하고 있지만, 신을 부분적인 방식으로만 인식하는 불완전환 수단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 민간 신앙에서는 새벽에 우물에서 길러 온 찬물 한 그릇을 장독대에 얹어 놓고 소원을 비는 <정화수 신앙>이 있으며, 이 정천 신앙, 정화수 신앙을 이어 한국 신종교에서는 <청수 신앙>이 개벽의 의미 주창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한국의 신종교 내에서도 이러한 청수 신앙이 발전하였으며, 물을 신앙의 핵심으로 창교한 ‘찬물교’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 종교에서는 유불선 삼교의 교리가 물법에 담겨 있다고 가르치기도 하는 등 ‘물’ 자체를 진리의 상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도교에서 우리가 가장 흔하게 알고 있는 상징은 팔괘가 있다. 태극기에도 네 모서리에 팔괘의 괘 중 네 가지가 그려져 있으므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주역』에서는 팔괘가 상징하는 다양한 사물에 관해 건괘는 하늘, 임금, 아버지, 금 등을 곤괘는 땅, 어머니, 가마솥 등을 상징하며 이 괘가 서로 중첩되어 형성된 64괘가 또 다시 의미를 형성하며 384효에서는 각 효사가 제시되어 있다. 세분화 될수록 지시하는 상황이나 사물이 구체화된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날 때와 나타나기 이전의 모든 것에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함께 제시하면서도 구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흔하게 접하고 있는 사물부터 시작해서 특정한 종교의 상징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까지 다양한 종교의 상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소에 ‘저건 어떤 종교의 상징이다’라고 인지하지 않는 사물도 종교적인 상징물로써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물’을 신앙의 대상이자 진리의 상징으로써 삼고 있는 ‘찬물교’의 예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 상징은 특정한 상징물을 넘어서 특정 장소도 종교 상징으로써 남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유대교 세 종교의 성지로써 역할을 하고 있는 예루살렘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하나의 장소를 넘어서, 성스러운 장소로써 성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 종교 상징이 갖는 의미

“상징”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인식 가능한 어떤 것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더 큰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징이라는 말은 형이상학적 실재를 근간으로 하거나 인식 가능 영역을 넘어선 초월적, 신비적 차원을 표현하는 모든 학문, 예술, 종교 안에서 널리 쓰여 왔다. 그만큼 인류가 문명을 형성할 때 상징은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의 의미를 기호와 혼동할 수 있는데, 폴 틸리히는 상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 번째로 상징과 기호는 자신을 넘어서 어떤 다른 것을 지시하는 특징을 가진다. 두 번째로 기호는 지시하는 실재에 참여하지 않지만, 상징은 참여한다. 기호는 편의나 협약의 이유로 대체될 수 있지만 상징은 그렇지 않다. 세 번째로 상징은 닫혀져 있는 실재의 한 차원을 열어준다. 네 번째로 상징은 접근할 수 없고 숨겨진 실재의 차원들과 요소들을 열어주며, 실재의 차원과 요소에 상응하는 영혼의 차원과 요소를 열어 보여준다. 상징을 대하는 존재의 감추어진 깊이도 밝혀주는 것이다. 다섯째로 상징은 의도적으로 생산될 수 없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징은 발명될 수 없으며, 조작될 수 없고, 성장하기도 죽기도 한다. 상징은 시대가 변해도 그 의미하는 바를 간직해야 하며, 본래적 의미가 사라지면 종교개혁이나 전혀 새로운 종교가 된다. 상징의 의미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기호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종교에서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진리는 인식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종교에서는 상징을 통해서 그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종교적 근원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징은 우리의 추론적 사고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어떤 실재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며, 상징을 통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는 실재의 측면을 보여준다. 종교에서 상징적 언어나 이미지를 사용하는 목적은 정의할 수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특정한 개념을 표현하기 위함인 것을 볼 때 많은 종교에서 이러한 상징을 통해 일반적으로는 알 수 없는 진리의 실재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징은 단순히 그 실재의 측면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실재의 차원과 요소를 열어줄 뿐 아니라 실재의 차원과 요소들에 상응하는 우리의 영혼의 차원과 요소를 열어 보여준다. 존재의 감추어진 깊이를 밝혀준다. 단순히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진리가 있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적인 요소 또는 그 일부가 인간에 내재 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그것을 통해 인간이 더 높은 차원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즉, 종교에서 상징은 진리의 한 측면을 보여주며 인간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더 높은 차원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상징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해당 종교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높은 차원으로 많은 사람이 올라오게 된다면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해당 종교가 성립되었을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며, 그때 당시 그 지역의 문화를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상징은 의도적으로 생산될 수 없으며,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에서 성장하는 것으로 우리 존재의 무의식적 차원에 의하여 용납되어야만 작용할 수 있다. 종교적 상징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은 그 종교가 성립될 때 해당 문화권에서 아주 기초적인 부분이라도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상징이 무의식적 차원에서 창조된다는 말은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거부당하지 않고 문화내적 개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상징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 종교의 진리와 방향성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종교가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했으며, 역사를 거쳐 오면서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 왔는지도 담고있다.

이와 같은 것을 볼 때 종교에서 상징은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며, 인간을 더 높은 차원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앙심을 고취 시키고, 더 높은 차원으로 갈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을 그 차원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음을 제시한다. 또한, 무의식 속에서 오랜 기간 문화내적 개념으로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해당 종교가 발생한 문화권과 그 상징을 사용하는 종교의 역사성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와 상징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 십자가의 개념 고찰

일원상과 십자가 상징을 본격적으로 비교하기 전, 일원상과 십자가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먼저 원불교의 일원상이 어떤 형성 과정을 거쳤는지 알아보고 일원상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일원상이 현재 원불교 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고찰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십자가의 형성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기독교 내에서 십자가 상징의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본다. 그 후 기독교에서 십자가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 의미를 고찰한다.

 

  1. 원불교의 일원상

원상은 불교 선가에서 깨달음의 상징물이었다. 아울러 불교 삼신불 개념과 연계할 수 있는데 삼신불 개념에서도 진리의 상징으로서 원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에서만이 아니라, 동양 철학에서 음양을 대표하는 도형으로 원은 하늘의 무한함과 동적인 속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원과 구, 이것들만큼 신성한 것에 어울리는 형태는 없다. 그러기에 신은 태양이나 달 그 밖의 별들 그리고 우주 전체를 구 모양으로 만들었고 태양과 달 그리고 모든 별들이 원을 그리며 지구 둘레를 돌도록 하였던 것이다.”라고 감탄하였다. 서양비학의 중심인물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투스가 정의한 ‘신은 원이며 그 중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원의 원주는 어느 곳에도 없다.’는 표현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진리 본체의 상징으로서의 원의 의미와 특성은 역사적으로 동·서양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원 상징이 동서양을 통틀어 진리의 상징으로써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원 상징을 진리의 상징으로써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종교가 원불교이다.

원불교의 상징은 일원상이다. 원불교는 이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원불교의 교의 체계가 성립된다. 원 상징은 동양과 서양에서 모두 진리의 상징으로써 활용되어왔다. 이러한 원이 가지는 상징성은 한국 사상의 근원을 이루어왔으며, 궁극을 의미하며 거시적 우주적 세계이면서도 미시적 자아적 세계를 동시에 형상화하고 있기에 그 상징으로써 원 상징을 채택하는 것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朴重彬, 1891~1943, 이하 소태산)은 일원상을 상징으로써 천명하기 전에 정산 송규(宋奎, 1900~1961, 이하 정산) 일원을 주제로 시를 짓게 하기도 했으며, 금산사 벽에 일원상을 그려 붙인 일, 제자들이 ‘一圓之圖’, ‘一圓’, ‘大圓’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조선불교혁신론』이 출간된 1935년 직전에 ‘일원상’이라는 명칭이 확정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상징으로써 활용되기 시작한다. 『조선불교혁신론』의 마지막 7장인 ‘등상불 숭배를 일원상 숭배로’에서 일원상의 내역을 사은이라 했고,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모두 부처님으로 모시기 위하여 불성 일원상을 숭배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일원상이 신앙의 대상으로써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1937년 4월에 정산은‘신앙과 수양’이라는 글에서 일원상에 바탕한 신앙과 수행을 함께 강조했고 10월에는 「일원상에 대하야」라는 논문을 통해 일원상을 신앙·숭배하고 체 받아(수행) 이용하는 법을 총체적으로 다루었으며, 12월 소태산은 ‘일원상을 모본하라’는 법설에서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언급하며 일원상과 수행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등 신앙과 수행을 함께 강조하였다.

그 후 일원상 서원문과 법어, 게송의 체계를 통해 일원상의 진리, 신앙, 수행을 담아내고 깨침과 행동의 표준을 담아냄으로써 일원상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기 시작했으며 『불교정전』의 「일원상」장에 ‘일원상의 진리’,‘일원상의 신앙’,‘일원상의 수행’이 포함됨으로써 소태산의 대각의 메시지가 완전히 담기게 된다. 즉, 소태산은 일원상을 통해서 대각을 통해 얻은 진리가 어떤 것인지 제시하는 동시에 수행을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동시에 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원불교의 교당에서 종교 행사가 진행되는 대각전에는 일원상 상징을 모셔 놓음으로써 진리의 상징이자 신앙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일원상은 우주의 궁극적 진리 그 자체를 부처로 본 것으로, 진리의 체성 뿐 아니라 작용까지도 동시에 포함한 통일자로써의 진여 실상을 지칭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원상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진리의 실상만을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현상까지 그 안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이 우주 만유 전체가 죄복을 직접 내려주는 사실적 권능이 있는 것으로 알아서 진리적으로 믿어 나가는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범위가 어떤 한 곳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로 그 신앙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정산 또한 “그 실체를 말하자면 우주 만유가 모두 법신불 아님이 없다.”고 표현함으로써 우주 전체에 이러한 진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일원상 상징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종교적 상징으로서 또한 인류 역사와 전통을 일원상 상징 속에 충분히 수용하면서 과학과 종교를 병행하면서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원불교는 일원상을 통해 진리 그 자체를 보여주는 동시에 원 상징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통해 진리 표현의 전통도 함께 이어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일원상을 종교의 상징으로써 천명한 것은 진리의 상징인 것과 동시에 원 상징이 가지는 역사성을 함께 가지고 옴으로써 그 진리가 하나임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것은 소태산이 일원상이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라, 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 혹은 무극이라고 하고 선가에서는 자연 혹은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청정 법신불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바라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그 의미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일원상은 잠재적이고 주체적인 것으로써 인간의 상징적 태도에 있어서도 향외적 지향 태도를 동시에 병진하도록 하였으며, 은혜를 입는다는 수직적 관계와 공부를 지성으로 한다는 수평적 관계로 인간과 결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진리의 상징으로써 신앙의 대상으로만 기능하게 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목표로써 수행의 표본으로써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다.

일원상은 그 자체가 진리의 모습이다. 모든 종교의 교지를 담은 융합체이며, 동시에 진리를 구현한 것이며, 세상 구원의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완성된 인격자의 실생활과 연락시키는 표준이 되는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정산은 ‘일원상을 진리의 근원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일체를 이 일원에 통합하여 신앙과 수행에 직접 활용케 하여 주셨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원상 상징은 대종사의 대각으로부터 비롯된 상징으로서 새로운 생명이 부여된 것이며 이에 대하여 상징적 태도를 가지는 사람들의 삶을 인도하는 종교적 진리의 이상향인 것이다. 또한 진리적 의미들의 함축성이 내재적으로 조직된 궁극적 실재의 한 표현인 것이다.

일원상을 통해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일원상이 진리 그 자체라는 표현은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소태산은 “저 원상은 참 일원을 알리기 위한 표본이라. 비하건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손가락이 참 달은 아닌 것과 같으니라.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표본의 일원상으로 인하여 참 일원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정산은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으로 진리 그 당체의 사진을 직접 보여주셨으므로 학인들이 그 지경을 더위잡기 훨씬 편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일원상은 곧 진리 전체의 사진이니 이 진리의 사진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정성을 쌓으면 누구나 참 진리 자리를 쉽게 터득할 것.”이라고 표현한다. 일원상이 진리를 나타내는 표상으로써 나타낸 것은 맞지만, 부모님과 부모님의 사진을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사진을 통해서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듯이 일원상을 통해서 진리 그 자체의 모습을 보고, 결과적으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1. 기독교의 십자가

십자가 상징은 기원전 4천 년 경에 어떤 정신적 실체나 범우주적인 개념 및 종교적인 표상을 나타내는 데 이용되었으며, 종교적인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 고대 문화에서 우주적 표상으로 인간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죽음과 장례문화와 함께 종교적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십자가는 필연적으로 두 선이 서로 교차한다. 그러면서 그 밖의 상징적 요소들과 여러 가지 연관관계를 갖는다.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십자가로 나타나는데, 같은 길이의 4개의 가지가 뻗혀 있는 희랍형 십자가는 세계 사방을 의미하고, 이집트에서 볼 수 있는 고리 하나가 위에 얹혀 있는 타우(tau T)형은 영원한 생명과 번영을, 만(卍)형 십자가는 살아 움직이는 불, 신성한 불, 태양 등을 상징하며 동양 전역에 거쳐 깊고 널리 보급된 십자가형이기도 하다. 그만큼 십자가 상징이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십자가 상징이 그리스도교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십자가형이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로마제국 내에서 집행되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출현한 시기와 활동 지역이 겹치면서 그 의미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 활동하던 지역 내의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고발당하게 되었고, 예루살렘의 로마 총독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이러한 죽음의 과정은 그를 따르던 이들에게 완전한 죽음과 희망의 단절을 가져왔다. 이러한 죽음으로부터 부활을 목격한 이들에 의해 승리의 상징이자 신비로운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생활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의 징표이며, 신앙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구원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은 수난과 죽음의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부활과 그것을 통한 구원의 상징이 된 것이며, 그리스도교 상징인 십자가는 신비를 깨닫게 하고 죽음을 통한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을 알려주는 완전한 표징이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십자가로 인해서 ‘십자가 숭배자들’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하기 위해 십자가의 신비를 역설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초대 교회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간단한 십자 성호를 긋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봉헌남을 나타내는 표시였음을 나타낸다. 동시에 성서상의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십자가 상징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 그 제자들에 의해 그 신비성이 역설됨으로써 상징으로써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십자가의 의미는 더욱 절실해지고, 박해와 함께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징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시는 가장 완전한 안식의 상징이 되었으며, 우주적 구원의 상징이자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죽음과 파탄의 상징으로 십자가가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박해의 상황이었으므로 내외적으로 구원의 상징으로 삼기에는 십자가의 의미가 가혹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는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7년 십자가형을 폐지함으로써 십자가의 부정적 의미가 종교적 의미로 승화될 길이 열렸으며, 그리스도교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4세기 중엽 이후에는 그리스도교 예술의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된다. 즉,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에는 십자가 상징이 처형의 도구로써의 의미로 인해 신앙의 표시로써 드러내놓고 사용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며,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로 인해 활발해게 사용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으로 그리스도교가 새로운 시각으로 발전하고 공적 종교의 지위를 가지는 동시에 국가의 국교가 되고, 콘스탄티누스가 사용한 십자가 표현이 그가 승리한 전투를 통해 승리의 상징이 됨으로써 십자가 표시를 지하에서 지상을 끌어올렸으며, 국가적 공식적 차원으로 승격되었다. 유럽 문명에서 당대 최고의 지위를 가지고 있던 국가가 공인함으로써 십자가의 상징성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의 논쟁을 통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고상으로 표현해 내기도 한다. 십자가 상징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표시이자 승리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를 통해서 하느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자유를 얻은 뒤에야 십자가가 교회의 상징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며, 예수의 부활을 표현한 승리의 십자가 형태가 나타난다. 죽음보다는 삶과 승리와 영광이 강조된 모습이다. 십자가형이 폐지된 4세기 후반에 이르러 고통과 비통함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나, 승리한 예수가 그려진 부활의 십자가였다. 9세기 이후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인간의 회개와 속죄, 원죄와 연옥 등이 신학적으로 강조되면서 죽음과 고통과 고뇌가 잘 묘사된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속죄를 대신하였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의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중세 시기를 거치면서 구원의 도구인 십자가는 인간을 위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도구이며, 구원을 갈구하는 신앙인들 사이에는 영속적인 구원의 표징이자 삶의 희망으로 자리하게 된다. 또한, 12세기 ~ 15세기 사이에는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는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인간의 육신이 지니는 한계와 고통을 드러낸다. 나아가 정화의 의미를 넘어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실현인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보여준다. 십자가 그 자체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형상과 결합되는 과정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드러내고, 구원을 위한 상징으로써만 사용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정통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의 희생을 강조하는 표시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 세상에 왔음에도 수 많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희생의 의미 또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 세상에 내려왔지만, 인간의 육신이 지니는 한계와 고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십자가에 의해 희생당함으로써 많은 인류의 죄를 구원해 주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예수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의미도 더욱 강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십자가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인지되어 있는 희생, 사랑, 고난, 구원 등 기독교 교리의 함축적인 상징물로써 기독교인에게 삶의 의미를 충족시켜 주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간접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제 십자가는 단순히 그리스도교 내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그리스도교가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상징으로써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 속에서 하느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 하느님의 힘과 인간의 힘을 발견하고 있다. 하느님의 율법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그의 죽음으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십자가 안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에서 십자가는 일반적인 의미와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써 바라보는 신비로움의 상징인 동시에 세상을 주재하는 하느님의 권능의 상징으로써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복종, 자기 낮춤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그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었다고 보고있으며,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그 이름 앞에 꿇게 하고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린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으로 보아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에 의해서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써 신성한 존재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그 영광은 하나뿐인 ‘신’인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상으로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 그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에서 십자가 상징은 하나님의 권능, 영광으로써 그 진리인 하나님을 드러내는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권능과 영광으로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 기독교의 십자가와 원불교의 일원상 비교고찰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가 상징으로써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고찰할 것이다. 가장 먼저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진리관을 알아봄으로써 두 종교가 진리의 인식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비교한다. 다음은 그 진리에 대한 신앙관을 알아봄으로써 신앙에 대한 인식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신앙의 행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비교한다. 다음은 두 상징이 성립된 과정 속에서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목표 중 하나인 세상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구원관에 대해 비교함으로써 구원의 행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본다.

 

  1. 진리관

원불교에서 일원상은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하는 표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소태산은 제자의 ‘큰 우주의 본가가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일원상을 그려 보이며 ‘이것이 곧 큰 우주의 본가이니 이 가운데에는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 있다’고 표현했다. 또, 정산은 일원상에 대해 진리의 근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원불교에서 일원상은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하는 상징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진리의 범위는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진리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현상도 진리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일원상의 진리는 주객이 없는 본래자리로, 일원상에는 없는 것이 없다. 내로 얻은 바도 없고 외로 구할바도 없으므로 원근친소가 없으며 애착 탐착도 없다.

원불교의 일원상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요, 제불 제성의 심인이요, 일체 중생의 본성인 일원상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상징인 것이다. 진리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정산의 표현을 통해 더욱 잘 드러나 있는데, 그는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으로 진리 그 당체의 사진을 직접 보여주셨으므로 일원상은 곧 진리 전체의 사진”이라고 표현했다. 일원상은 진리로 안내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닌 진리 그 자체를 드러내 주는 사진과 같은 것이다. 원불교는 일원상을 통해서 진리 그 자체를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의미의 토대 위에서 관조를 통하여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원의 진리가 현상 만유에 내재해 있다고 해석한다. 우주만법은 일원에 귀일하지만, 일원은 만법을 떠나지 않는 것이며, 일원의 변화 또는 발현이 이 우주인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 그 제자들에 의해서 그 희생과 신비로움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여겨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생, 사랑, 고난, 구원 등 기독교 교리를 함축한 상징물로써 이해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에 구원의 최고의 길이 있음을 가르치는 신적 지혜의 초월성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 행위는 그리스도교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갈 길을 닦아놓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십자가의 안에는 하느님의 권능이 숨겨져 있다고 보며, 그 속에 하느님의 지혜, 인간의 지혜, 하느님의 힘, 인간의 힘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리스도교의 승리와 믿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써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십자가는 진리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진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준다. 십자가가 하느님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가진 힘을 표현해 주는 것이며 그를 통해서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십자가가 가지고 있는 영구적인 속죄의 힘은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손이 미치는 힘이었다. 바오로가 그리스도교 안에서 이방인들도 하느님의 약속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안에서만 진리의 하나님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그 힘이 작용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십자가는 그들만의 상징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상징이고 진리인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상징으로써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는 그 종교의 교리가 무엇인지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진리 그 자체 또는 그가 가진 힘을 형상화 시켜 놓은 진리의 상징으로써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두 종교의 진리관이 약간 다름을 볼 수 있는데, 앞에서 기독교가 십자가를 통해 신의 영광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본 것, 십자가가 하느님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인 ‘권능’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에서 하느님 그 자체로 도달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옆자리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라고 할 수 있다. 진리 그 자체인 신과 인간은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불교에서는 “일원의 체성에 합”한다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 진리 그 자체와 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일원상이 진리가 가진 힘, 권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진리를 그대로 찍어서 나타낸 ‘사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진리 그 자체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통해서 진리와 닮아가고, 진리와 하나가 되어 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즉, 기독교에서는 진리 그 자체인 ‘신’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신의 권능으로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십자가에 의해 희생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권능으로 높힘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다고 본다. 십자가 상징 그 자체로써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권능과 힘이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진리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힘이 나타나는 모습을 통해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원불교는 진리 그 자체의 사진이라고 표현하였으므로 진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가 어느 하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나타나는 현상 모두가 진리 그 자체라고 보고 있다. 일원상이 진리 그 자체를 보여주는 동시에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 신앙관

원불교에서 일원상은 진리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므로, 신앙의 대상으로써도 기능한다. 신앙의 강령으로써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을 제시한다. 또한 소태산은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다.”고 말하며, 어느 때 어느 곳이든 경외심을 놓지 말고 부처님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로 응하며, 직접 당처에 불공하기를 힘써서 현실적으로 복락을 장만하는 것이 원만한 신앙이자 사실적 신앙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원불교에서 진리를 형이상의 어떤 것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나타나 있는 것 그 자체도 진리의 내용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과 통하는 내용이다.

이는 곧 처처불 신앙, 감사보은불공, 인과진리의 신앙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신앙으로써 실지 불공을 강조한 사은신앙은 원불교의 특색 중 하나이다. 또한, 수행을 신앙적 견지에서 보면서 인간 본성에서의 절대 긍정하에 진리가 자아 본성에 내재하여 있음을 강조하여 진리적 인격을 구현해 가는 일원불의 자력적 신앙인 자성불 신앙도 중요한 특색이다. 원불교의 일원상 신앙은 진리 그 자체와 진리의 나타남을 넘어서 사물 하나하나에도 진리적인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 속에 진리가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에 불공을 하는 것이 곧 진리를 향한 신앙의 행위로써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복이니 죄니 하는 것이 모두 진리 자체의 무위 가운데 행해지는 것이며, 우주 안에서 작용하는 바에 따라 그대로 나타내는 현상인 것이며, 일체만상이 다 불성을지닌 부처님임을 자각하여 일동일정이 부처님께 불공드리는 알자는 것이다. 소태산은 모든 존재 속에 진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일원상은 곧 청정 법신불을 나타낸 바로서 천지 부모 동포가 다 법신불의 화신이요 법률도 또한 법신불의 주신 바라.”고 표현한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낸다. 그리고, 예수의 희생을 통한 영광이 결국 하나님에게 돌아간다고 보고 있다. 바오로의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는 십자가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의연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러한 믿음은 오직 성령께서 베풀어 주시는 신앙의 빛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을 통한 믿음에 의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이야기 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며,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십자가가 하나님 그 자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희생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는 과정에서 그 권능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며, 그러한 십자가에 권능이 깃들어 있음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이 존재함을 믿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 내에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써의 상징, 부활에 의한 승리로써의 상징을 넘어서 그것이 나타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깃들어 있는 표식으로써 사용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존재함을 믿음으로써 기독교적 신앙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가 지닌 신비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신은 인류의 아버지이며, 초감각적이고 위력을 가진 존재이므로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자 존재 여부를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탐구의 목표인 것이다.

두 상징 속에 깃들어 있는 신앙관 속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원불교는 일원상이 진리 그 자체의 표상으로써 신앙의 대상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대상이 일원상을 넘어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모든 현상 속에 진리가 있다고 봄으로써 신앙의 대상을 우주 전체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을 통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십자가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써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표상으로써 하나님이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 그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써 어떤 일이든 이루어 낼 수 있으며, 그것을 믿음으로써 구원의 자리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다고 보는 것이다. “신은 이 세계와 우주와 모든 존재를 창조한 유일한 초월적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께 기도를 함으로써 그 힘을 빌려오는 기도가 중요한 신앙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두 상징이 담고 있는 신앙관에서 결국 모든 신앙이 하나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불교는 일원상이 담고 있는 진리로 귀결되며 기독교는 하나님으로 귀결된다. 그러면서도 원불교는 일원상의 진리가 모든 것에 내재 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불공이 신앙의 행위로써 작동하지만, 기독교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고, 그것이 작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힘에 의한 것이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끝난다. 그러므로 그 권능과 힘을 가진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믿음을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행위가 된다. 원불교의 신앙은 모든 사물에 일원상의 요소가 깃들어 있음을 알아 나가는 것이고, 기독교의 신앙은 모든 작용이 하나님의 힘과 권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불교에서는 일원상을 진리의 사진이라고 표현하며 진리 그 자체의 상징으로써 신앙하는 것이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모습 중 하나로써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힘이 나타날 수 있음을 증거 하는 모습으로써 십자가를 신앙하는 것이다.

 

  1. 역사관

소태산은 세계 모든 종교의 근본 원리는 하나이지만, 교문이 달라 제도와 방편을 다르게 해 왔기에 서로 융통을 보지 못한 일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소태산이 일원상을 진리의 상징으로 천명한 이유 중 하나가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진리의 상징을 일원상으로 통합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산도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서 종교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였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아 일원상을 통해 이 전에 흩어져 있던 신앙의 대상을 하나로 통합하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소태산은 “때를 따라 성자들이 출현하여 종교와 도덕으로 우리에게 정로를 밟게 하여 주심”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전에 있던 종교가 추구했던 진리가 원불교가 밝히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일원상을 통해서 종교의 상징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은 이 전에 있던 종교가 가지고 있던 의미보다 원불교가 천명하고 있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 아닌, 모든 종교가 바라보는 진리가 결국 하나라는 것이며, 그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는 길만 서로 다르다고 본 것이다. 소태산은 일원상을 통해서 모든 종교가 향하는 방향이 결국 하나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정산은 “과거에는 천하의 도가 다 나뉘어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천하의 도가 모두 합하는 때이니, 대세계 주의인 일원 대도로 천하를 한 집안 만드는 데 같이 힘쓰라.”고 이야기 한 것에서 소태산의 사상이 이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원불교는 일원상을 통해서 모든 종교가 존재했던 이유가 그 상황에 맞는 법을 성자들이 정로를 밟게 하는 길로써 밝혀준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 진리의 자리가 결국 하나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종교의 상징뿐 아니라 전 세계도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치열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꽃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과 부활을 지켜본 제자들은 그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십자가 상징을 활용했으며 그 신성성을 증명하기 위한 역사를 가진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 권능과 힘을 통해서 높은 위상을 얻었다는 것을 십자가 상징을 통해 증명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공인을 통하여 승리의 십자가의 힘으로 자신의 십자가 표현을 드러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성을 드러내는 증거이자 그리스도교의 승리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에 따라 십자가의 의미는 하나님의 권능과 힘을 통해서 결국 승리에 이르는 역사적인 상징으로써도 자리매김 하고 있다. 결국 기독교에서 십자가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힘이 실존함을 증거하는 역사의 과정이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 부활과 로마 국교 공인으로 인한 승리의 표상인 것이다. 그 이후에도 서양 세계에서 십자가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독교의 십자가 상징은 하나님의 권능과 힘을 증거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승리의 역사로 끝났으며, 그것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세상에 파견되어 영광과 권능을 포기하고 인간의 삶으로 들어왔다고 본다.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교의 승리 또한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승리의 표시라는 것은 과거, 현재의 승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승리할 것임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세계창조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은 역사의 고정된 점이며, 하나님은 이제도 있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인 것이다.

원불교와 기독교는 일원상과 십자가를 통해서 결국 세상이 하나로 나아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일원상은 모든 종교의 진리가 하나이며 세상도 그 진리에 따라서 하나로 나아가고 있음을 천명한다. 기독교는 십자가에 의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과 힘을 통해 이 세상이 나아가고 있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이다.

 

  1. 구세관

소태산은 대각 후 세상의 모습을 파란 고해로 보고, 사람이 인의대도를 잃어버림에 따라 세상이 크게 어지러운 때임을 간파했다. 이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모으고 뜻을 합하여 쇠퇴해 가는 인심을 바로잡아야 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원불교 개교의 동기에서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어떤 특정한 깨달은 사람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광대 무량한 낙원 건설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소태산은 “나는 이 다섯 가지 화제와 약을 가지고 병든 세상과 병든 사람들을 전문 치료시키는 의사니, 그대들은 나의 좋은 조수가 되어 이 병든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잘 낫게 해 주어서 하루속히 이 세상을 평화 안락한 전반 세계로 만들어 보라.”고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소태산 자신이 천명한 법으로 공부하여 초범 입성의 큰일을 성취하라고 이야기한 것을 알 수 있다.

원불교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한 방법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성자가 되는 것이 가장 첫 번째이다. 그래서 초범 입성의 큰 일을 성취하라고 이야기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원상에 깃들어 있는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도 알림으로써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을 낫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해서 모든 사람이 성인과 같은 경지에 이르도록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십자가 그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힘과 권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러운 부활로 영원히 살아나 인류 구원을 위한 표징이 되었으며, 그의 영원함을 설명한다. 그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신비를 십자가를 통해 깨닫게 된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신비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이미지와 결합되면서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했다는 메시지를 담게 된다. “예수님을 보고 잇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류의 구원은 예수의 사랑과 희생에 의한 것이며, 더 넘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실현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상징은 초월적이며 객체적인 것으로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상징적 태도는 향외적 지향태도로써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구원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던 것은 결국 하나님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독교에서 구원은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도 아닌 하나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십자가는 그러한 위력과 힘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표상인 것이다.

아무리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되는 예수 그리스도일지라도 인류를 구원으로 이끌 수는 없다. 그가 인류의 죄를 속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힘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지 그에게 어떤 큰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이야기한다. 기독교에서 구원은 인간이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두 종교 상징 사이의 구원관은 아주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의 일원상은 그 자체로써 진리적 상징으로써 작용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그 일원상이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스스로 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줌으로써 그 사람들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위력과 힘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표시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써는 위력이 없다고 본다.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십자가로써 그 힘을 나타낸 하나님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 결론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종교에 있어서 상징은 그 진리와 신앙, 교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종교에서 다양한 상징을 활용하고 있으며, 그 형태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부터 시작해서 특정 장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는 이러한 진리와 신앙 교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일원상과 십자가 모두 이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진리 상징으로써의 의미를 이어받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원상은 직접적인 진리의 상징으로써 그 의미를 부여받았으며, 십자가는 하나님의 권능과 힘의 표시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지만, 양 쪽 모두 진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앙의 대상을 드러낸다는 의미로써 신앙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명확한 차이점을 드러내는데, 진리를 보여주는 부분에 있어서는 일원상은 ‘사진’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진리 그 자체를 투영해서 보여준다. 이 세상에 나타나 있는 모든 현상조차도 진리로써 인지한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십자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실존한다는 보여주는 매개 중 하나일 뿐이고, 예수의 희생과 사랑을 통해 그 위력이 나타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 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현상도 같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힘과 권능에 의한 것이지,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양쪽 모두 그 상징이 진리 그 자체라거나, 하나님 그 자체라고 표현하지 않는 점은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도 원불교는 현상 그 자체도 진리로써 보고 있으므로 그 하나하나에 마음을 쓰고 불공을 하는 것이 신앙의 행위로써 작용하게 된다. 모든 것이 일원상이고, 진리의 하나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현상은 그저 하나님이 만들어 낸 피조물이며, 신앙을 바칠 대상도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신앙의 표시를 바치는 기도가 신앙의 행위로써 강조된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피조물임에도 그러한 사랑과 희생으로써 하나님의 힘과 위력을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원불교와 같이 그 행위를 신앙의 행위로써 작동하는 것은 아니나,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사랑과 희생의 의미 또한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역사 속에서도 십자가는 하나님의 힘과 권능이 실존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투쟁의 과정 속에 있었으며, 기독교 국교 공인이라는 승리를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하나님의 힘과 권능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승리의 역사가 되리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일원상은 모든 종교의 진리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향점을 향하고 있으며, 이 세상도 점점 하나가 되어감에 따라 모든 사람이 같은 뜻으로 협력한다면 평화 세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구세관에서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원불교에서는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그 진리가 실존함을 인지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는 것을 통해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독교에서는 십자가가 물론 하나님의 힘과 권능을 나타내고 있지만 십자가 그 자체로는 구원을 바랄 수 없다고 본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존재 하나뿐이다.

이렇듯,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는 진리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으로써 공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현상 세계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게 나타남으로써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원불교의 일원상과 기독교의 십자가는 종교의 상징으로써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리를 인식하고 있는 방식과 현상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방식에 의해 여러 차이점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진리관, 신앙관, 역사관, 구세관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려 하였으므로 각 항목에 대한 더 세부적인 내용을 논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원 상징과 십자가 두 가지 상징만을 비교하였으므로 다른 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상징에 대한 비교가 불가능하였다.

이후에는 진리관, 신앙관, 역사관, 구세관 등을 더 세밀히 비교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며, 원 상징과 십자가만이 아니라 또 다른 상징물과의 비교연구를 통해서 각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알아냄으로써 각 종교에 대한 이해가 그를 통해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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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학과

Wonkwang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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