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불교신문] 2138호, 장지해 기자, 2023년 9월 27일자 내용입니다.
- 원불교 기록유산 사업단 세미나… ‘초기 정기간행물에 집중’
- 월말통신·월보·회보, 원기13~25년 교단 역사 살필 중요 사료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월말통신〉, 〈월보〉, 〈회보〉 등 원불교 초기 정기간행물은 교단의 초창기 역사를 담고 있어 기록학적으로 중요한 사료로 손꼽힌다. 원기13년(1928)부터 원기25년(1940)까지 13년간 발행된 초기 정기간행물은 총 113호(월말통신 1~35호, 월보 36~48호, 회보 1~65호)다. 이에 ‘원불교 기록유산 사업단(이하 사업단)’이 원불교 초기 정기간행물에 주목하는 원불교 기록유산 사업단 세미나를 열었다.
9월 20일 원광대학교 교학대학 4층 시청각실에서 열린 세미나는 교단 초기 정기간행물에 주목한 발표와 좌담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박달식·신명국 원로교무는 각각 ‘〈원불교 자료총서〉발간과 불법연구회 〈회보〉’와‘불법연구회 〈월말통신〉의 기록학적 검토’를 제목으로 주제발표 해 눈길을 끌었다. 사업단은 “12월 중 올해 1차년도 성과물로 <원불교 기록유산 총서> 출판 목표를 갖고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원불교 초기 정기간행물 원본의 보존현황을 구체적으로 조사할 수 있었고, 초기 정기간행물의 영인 출판물인 <원불교 자료총서>의 문헌적 가치에 주목하게 됐다. 이에 산파 역할을 한 박달식, 신명국 원로교무와 함께 이번 세미나를 열게 됐다”고 세미나의 취지를 설명했다.
먼저 박 원로교무는 <원불교 자료총서>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대학신문사부터 원광, 원불교신문사 등 언론기관에 근무하면서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했다. 당시 교단 내에 월말통신 1호는 한 부, 어떤 것은 서너 권만 있기에 ‘화재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소박한 생각으로 영인을 제안하게 됐다”는 것이다. 월말통신, 월보, 회보 영인본(원본을 복제한 인쇄본)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원불교 자료총서>는 원기69년(1984) 8월 1일 초판, 원기70년(1985) 9월 1일 재판, 전 10권 부록 1권, 150부 한정판으로 발행된 교단의 중요 사료다.
이어 박 원로교무는 월말통신, 월보, 회보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한 후, 교단 초기 정기간행물의 의미를 풀었다. ‘원불교 초기 대종사 당대의 역사 기록’이라는 점과 ‘일제하 원불교 존립과 대응의 사실적 기록’이라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그는, 그중 특히 <회보>의 경우 공인 허가를 받고 발행한 첫 간행물로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13호부터는 활자로 인쇄하기 시작하면서 소식지 형태를 벗어나 내용과 편집이 현대잡지로 탈바꿈했고, 매월 200부, 중요 사항이 있을 때는 300부를 발행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발표에 의하면 <회보>는 한자와 한글을 병기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고, 중앙과 지방의 정보 공유로 교단 일체화 창구가 됐으며, 불법연구회 회원과 민중의 계몽 역할을 담당했고, 교단초기 교화활동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회보>는 일제식민지하에서 원불교의 유일한 표현 도구였으며, 일제 통치에서 원불교의 존립과 대응의 사실적 자료라는 것이다.
신명국 원로교무는 ‘불법연구회 〈월말통신〉의 기록학적 검토’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월말통신의 공공 기록으로서의 가치 평가와 월말통신의 원본 복원 필요성을 제안했다. 신 원로교무는 “교단 초기 월간 간행물들은 원불교 교단의 사료적인 측면과 한국사의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기록물”이라며 “인쇄본이었던 회보나 등사본으로 발행된 월보와 달리 월말통신은 필사본이었다. 필사본 월말통신은 여러 가지 이유로 편철이 자주 분철돼 원본의 진본성이 훼손됐다. 월말통신의 결루 기사를 되찾는 일과 원본 상태를 복원하는 일은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월말통신의 발행과 보존, 원본 현황, 복사본 간행 과정 등을 설명한 신 원로교무는 “필요에 따른 잦은 분철로 원본 기사의 결루를 초래했지만, 공적인 기록물로써 생산이나 유통, 보존과정에서 위조나 변조의 가능성이나 흔적은 없다”며 “공공기록물의 속성으로 요구되는 진본성, 신뢰성, 무결성, 이용가능성에 근거해 월말통신이 가지는 기록학적 의미를 검토하더라도 양호한 기록물이다. 특히 진본성 문제에 있어서도 내용상 훼손이 아니라 형식상의 훼손이므로 신뢰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추가 설명했다.
고원국 교무(본명 시용, 원광대 교학대학장·원불교사상연구원 부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원불교 관계자들이나 원불교학 연구자들은 초기교서에 대한 중요성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며 “1974년 원불교사상연구원이 개원된 이래 처음으로 이런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하게 됐다. 뒤늦게나마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자리가 마련돼 다행이자 영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