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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논문

원불교 좌선법 연구에 대한 고찰(임진수)
원불교 좌선법 연구에 대한 고찰(임진수)
원불교학과2019-09-24

2019 학년도

 

 

 

 

 

 

 

 

원불교 좌선법 연구에 대한 고찰

– 요지를 중심으로 –

 

 

 

 

 

 

 

 

 

 

 

 

 

 

 

 

 

 

 

원 광 대 학 교

 

원 불 교 학 과

 

임 진 수

 

원불교 좌선법 연구에 대한 고찰

– 요지를 중심으로 –

 

 

임영욱(진수)

 

 

 

 

 

Ⅰ. 서론

 

 

Ⅱ.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

1.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

2. 초기교서에 나타난 좌선법

 

Ⅲ. 좌선법 요지의 의의와 특성

1. 좌선법 요지의 의의

2. 원불교 좌선법의 특성

 

 

Ⅳ. 결론

 

 

 

 

 

 

 

 

. 서론

 

소태산 대종사는 103년 전 과학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이 날로 쇠약하여, 도리어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생활에 파란고해가 있으니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원불교를 창시하였다.

103년이 지난 21세기 지금, 현대인들은 물질의 발달로 편리하고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그 안을 보면 많은 사회병리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병리현상으로는 첫째 물질만능과 배금주의 현상이다. 물질만능으로 가치관이 전도되어 있어서 결국 인간은 물질의 노예로 전락되고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회로 구축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한없는 탐욕과 이기주의에 빠져서 이 세상을 다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고, 맹목적인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끼리의 신뢰도 갈수록 상실되어가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기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집단이기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적 소통마저 마비되어 있다.

둘째는 환경파괴와 생명경시 현상으로 모든 인류시민이 황폐된 자연환경 속에서 극심한 공해를 겪고 있다. 동물과 식물에 대한 생명경시 현상은 생태계의 파괴뿐만 아니라 인간성마저 황폐화시켜 마침내 인류의 생존문제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파괴된 자연환경과 생명력 없는 사회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본래의 순순한 인간성을 유지하고 살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셋째는 가치관 부재와 도덕불감증 현상이다. 사람들은 한탕주의와 향락의 유혹에 빠져있고 무조건 출세하고 보자는 식의 출세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가치관이 없이 살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 도리인 인륜도덕이 문란해지고, 사람들은 병든 사회의 그늘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유혹의 깊은 함정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국민총생산량 등 표면 경제는 상승하는 것 같지만 사회는 갈수록 양극화되어 불안정하고 혼란한 세상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넷째는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인생의 목표 없는 생활로 신경증과 노이로제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 같지만, 막상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조차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앞뒤 좌우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똑같은 상태로 불행하게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대부분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다.

그 사회병리현상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로 현대인들은 정신의 영역 즉 자기 내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있다. 그에 따라 자기 내면을 바라보기 위해 선과 명상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2001년 유엔보건기구(W.H.O)에서는 건강의 개념에 종래의 정신적 건강, 신체적 건강, 사회적 건강에 더하여 영성적 건강을 추가하였다. 또한, 작년 2018년 12월 4일에 애플은 올해의 앱 트랜드로 명상, 심리 치료 등을 뽑았다. 이는 현대인들이 영성적으로 건강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방법 중 하나인 명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서양에서 선의 열풍이 불어 선 센터나 템플스테이 등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 논자는 지금 서양에서 불고 있는 선의 열풍이 더 강해질 것이고 곧 동양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본다.

원불교에서는 선의 방법으로 좌선과 무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원불교 선법은 21세기를 비롯한 미래 시대에 맞는 선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선의 열풍이 불고 있고 앞으로 선의 열풍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명상과 선에 대해 지도해줄 수 있는 교역자가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원불교 예비교역자 시절 명상과 선에 관심이 있는 예비교역자가 적으며, 왜 좌선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고 있어 좌선에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본 논문은 크게 서론,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 좌선법의 요지의 의의와 특성, 결론의 4단락으로 나누어서 정리하고자 하는데 그중에서도 원불교 좌선법의 요지를 중심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

 

좌선은 인도의 요가와 우파니샤드의 영향을 받은 구차체정의 선법과 비상비비상처정, 나아가 바라문 계통의 수정주의와 불타 전후의 고행주의가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다. 좌선은 중국에서 조식법과 도인법에 영향을 받았던 바,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 선종이 좌선을 강조하면서 묵조선과 간화선이 전개되어 왔고, 이것이 한일 불교의 좌선법에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원불교는 이러한 불교의 좌선법과 도교 수련법의 영향을 받아 수승화강의 단전주 선법으로 이어온 것이다.

원불교 좌선법을 알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원불교 좌선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은 크게 3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좌선법 구상의 기초가 되는 대종사의 구도 과정과 대각의 체험이 1단계에 해당한다면, 정식교서가 발간되기 전 제 종교의 좌선을 참고하기도 하고 체험하기도 하면서 좌선법을 구상하고 제자들에게 적용해 보기도 하던 때가 2단계에 해당되겠고,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면서 정식 교재에 채택하게 된 좌선법의 형성기는 3단계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의 생애와 초기교서에서의 좌선법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서 원불교 좌선법의 형성과정을 알아보려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

 

소태산 대종사의 7세부터 시작된 하늘과 구름에 대한 의심은 점차 모든 것에 대한 의심, 이 세상 모든 이치와 만사에 대한 의심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한번 의심머리가 시작됨을 따라 일백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나를 생각한즉 내가 스스로 의심되고 물건을 생각한즉 물건이 또한 의심되어 이 의심 저 의심이 한 가지 대종사의 가슴을 긴장케 하였고 이러한 상황은 ‘세상에서 이 모든 이치를 아는 자’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친척들과 선산 시향제에 참석했다가 듣게 된 산신을 만나 그 의심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산신의 능력이 탁월하므로 대종사의 의심을 해결하여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4년간(11세~15세)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와 정성을 바쳤으나 산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대종사도 산신의 정체나 존재 유무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처가에서 읽은 소설의 주인공처럼 도사를 만나서 공부하면 자신의 모든 의심을 해결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도사를 찾아 5년간(16세~22세)을 노력하였으나 도사는 나타나지 않고 걸인, 이인, 은사, 처사들의 무리들만을 만나게 되었다.

대종사는 그렇게 애타게 찾던 도사는 찾을 길이 없고 20세에 구도역정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부친마저 잃게 되자 22세 되던 해부터는 도사를 만나고자 하는 생각마저도 단념하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한 많은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소태산 대종사는 유년기의 아동들이 가질 법한 우주와 인생에 대한 의문의 제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의문을 기필코 해결하여 알고자 하였는데 처음에는 산신이라는 외부 대상을 통하여 알아내고자 하였고, 나중에는 도사 즉, 스승을 만나 공부를 통한 의문 해결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외적인 스승의 추구도 한계에 부딪히게 된 대종사는 22세부터 ‘장차 이 일을 어찌할꼬’하는 한 생각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기간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24세가 되던 해부터는 그 생각마저도 잊어버리게 되어 점점 혼수상태와 같은 입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략) 이 기간 동안에는 한 번 입정에 들었다하면 밥을 먹는 것도, 시장 보러 가는 것도 잊고 그대로 침잠해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모든 생각을 잊고 대입정의 상태에 들기도 하는 동안 대종사의 정신이 어떤 때에는 흑 분별이 있기도 하다가 도로 혼돈해지고 혹 기억이 나타나는 듯 하다가도 도로 망각하기도 하는 등 가슴 속은 점점 더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26세 3월 이른 새벽 대종사 묵묵히 앉아 있는데 우연히 정신이 쇄락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기분이 들어 밖으로 나와 사면을 살펴보니 천기가 청랑하고 별들이 교교하여 그 공기를 호흡하며 장내를 두루 배회하더니 문득 이 생각 저 생각이 심두에 나타나서 사리가 환히 밝아지게 되었다. 날이 밝자 청결하는 도구를 찾으니 이것이 출정의 초보였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천도교 동경대전의 [오유영부 기명선약 기형태극 우형궁궁(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이란 구절을 듣고 돈연히 그 의지가 해석이 되기도 하고, 유학자들의 주역에 [대인여천지합기덕 여일월합기명 여사시합기서 여귀신합기길흉(大人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이라는 구절들의 의지가 확연히 분석이 되므로 이것이 마음 밝아지는 증거가 아닌가 하여 전에 원하던 모든 화두를 차례로 연마해 보니 모두 한 생각을 넘지 않고 드디어 대각을 이루게 되었다.

 

대종사는 대각을 이루시고 진리 관을 제시했으니 그 내용은,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각의 경지에서의 제일성은 그야말로 선의 진경에서 솟아오른 달관적 진리관이다. 이는 곧 무적 체험이며 절공관이 아닌 체험관에 의한 제일성이다.

이러한 소태산의 구도과정을 통해 원불교 선법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몇 가지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대종사가 당시 유행되던 유교나 불교나 도교 등 다른 종교의 수행시스템에 의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대종사도 술회하고 있듯이 무사자오의 수행은 너무도 더디고 건강쇠약 등의 후유증을 낳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성종교의 다른 선법과의 연계성도 중요하지만, 그 대오분상에서 밝힌 교리사상에 입각한 원불교 선의 정체성을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초기교서에 나타난 좌선법

 

정신수양이 나오기 시작한 초기교서는 1927년(원기 12년) 3월에 초판이 발행된 「불법연구회규약」부터이다. 여기에서는 재가공부인 응용할 때 주의사항에 좌선에 대한 조목이 없고 염불로만 나타나고 있다.

 

  1. 석반을 먹은 후에 家産에 대한 사무가 혹잇스면 다-마치고 잠 자기전 남은 시간이 잇든지 夜半淸晨이든지 정신을 수양하기 위하야 염불하기를 주의할 일.

또 「冬夏六個月에 每日 工夫하난順序」에 공부인의 하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함으로써 초기에 좌선을 오전에 2시간 하도록 하고 있으나 종국에는 무시간단으로 수양과 연구를 병행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1. 一. 주야 24시에 8시간은 공부하고 8시간은 육신을 운동하야 정신도 소창하며 모둔 동류로 더부려 각항 의견을 교환하기로흠.
  2. 二. 오전 2시간은 좌선하고 또 2시간은 취지 규약 경전을 연습하고 오후 2시간은 일기를 하되 시간을 대조하야 기재하며 응용하난대 각항 처리건을 기재하며 엇더한 감각이 잇고보면 감각된 사유를 기재하며 또 2시간은 문목 의두를 강연하기로 흠

단, 처음에난 시간을 정하고 과정을 정하얏스나 공부하난 정도를 따라서 시간과 과정을 차차 업세우고 무시간단으로 수양하난 방법과 연구하기를 주장함.

 

그 후 1932년(원기 17년) 4월에 초판이 발행된 「보경육대요령」을 보면 단전주선이 좌선과 결부되어 처음으로 나타나 있다. 「보경육대요령」에서는 좌선법이라는 장이 따로 분장되지 않고, 정신수양 정기훈련과목의 해석에서 간단하게 그 요지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단전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坐禪이라 함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과 기운을 아래 丹田(배꼽아래)에 住하고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圓寂無別한 眞境에 그쳐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純然한 根本精神을 陽成하난 방법이니라.

 

이는 오늘날 「정전」 정기훈련법 좌선에 대한 설명과 일치한다. 이를 통해 단전주를 핵심으로 하는 원불교 좌선법의 틀이 초기교단의 첫 번째 정식교서라 할 수 있는 「보경육대요령」에서부터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935년(원기 20년) 원불교 좌선법 변천 과정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좌선에 대한 법문」178)이 「회보」에 등장한다. 이 법문에서는 원불교 좌선은 수양을 하는 방법 즉,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는 활동이며, 정신을 비우고 쉬는 활동으로서 화두를 드는 등의 정신을 쓰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좌선이라 하는 것은 모든 번뇌를 떼이고 오직 無心寂寂한 지경에 그쳐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찾아 양성시킴이니 곧 언어가 道斷하고 심행처가 멸한 것을 들어 보내는 것으로서 비유를 들어 말한다면 달이 그믐에 아주 어두워 버려야 초생달이 다시 나오듯 이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적적한 자리를 찾아 그쳐야만 성리의 진면목을 본 것이며 따라서 지혜광명을 얻게 되나니라. (중략)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정신이 혼혼한 가운데 그리되는 것이요, 별 공부가 되어서 그리되는 것은 아니니 여기에 만일 정신을 팔리고 보면 반드시 害가 있으리라. 또는 잠이나 번뇌가 들어온다 하여도 거기에 성가시지도 말고 다만 온전하기만 주장할 것이니 그런다면 차차 정신의 수양력을 얻어서 온전한 정신이 회복되는 머리에 일과 이치에도 분석이 밝게 나며 자주력 정신을 얻게 되리라 하시더라.

 

이를 보면 원불교 좌선은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찾아 양성하여 자주력 정신을 얻게 하는 수행법임을 볼 수 있다. 또한, 좌선을 할 때는 화두를 들지 말고 오롯이 수양만 하고 그 후 정신이 맑아진 상태로 화두를 들어 점진적으로 깨우치게 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현행 정전의 「좌선의 요지」와 「좌선의 방법」 「단전주의 필요」장에 대한 대체적인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이는 불교정전에 편입되기 이전 소태산이 구상했던 좌선법의 일단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935년(원기 20년) 조선불교혁신론에서 다시 나오게 된다. 그 후 1938년(원기 23년)에 회보 44호에서 이공주 수필의 ‘좌선의 필요’가 나온다. 여기에서는 좌선의 필요와 공덕 10가지, 그리고 그 내역까지 아주 상세히 밝히고 있다.

 

우리가 좌선을 많이 하야 그 힘을 얻고 보면

  1. 경거망동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는 것. 그 내역 : 보통 사람이란 사심에 끌려서 자주력이 서지 못하여 어떠한 일에나 경거망동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좌선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항상 그 마음을 직혀서 사심은 제거하고 정심을 양성함으로 자연히 정중한 태도가 표면에까지 나타나서 경거망동하는 것이 감소되여 지나니라. (중략) 10. 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 그 내역 : 생사라 하난 것은 자연의 공도이요 천지의 조화인지라 흔동천지掀動天地하든 영웅호걸도 생사의 앞에는 꼼짝 못하고, 당세에 권세를 잡은 고관대작도 생사의 앞에는 절대 복종을 하게 되난 것이다. 그러나 마음 거래에 자유를 얻난 좌선을 많이 하야 자유를 얻고 보면 자연히 생사를 초월하게 되는 동시에 생사에 자유를 얻게 되나니라. 상술한 바와 같이 좌선은 우리 인생에게 그와 같이 필요한 공부나 그도 과도히 한즉 상기가 되고 그 하는 방식을 모르고 한즉 도로혀 병을 얻게 되야 혹은 정신에도 고장이 나서 폐인되는 예도 적지 않나니, 제군은 과불급이 없이 도에 맞게 또는 그 방식을 알고 좌선을 하야 좋은 효과를 얻게 하기 바라노라 하시더라.

 

회보 44호에 나타나는 좌선의 공덕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좌선을 많이 하고 보면 ① 사심을 제거하고 정심을 양성시킴으로써 경거망동이 없어지고, 인내력이 생겨나며, 육근동작에 순서를 얻고, 사심이 정심으로 변하며, ② 수승화강이 됨으로써 얼굴이 윤활해지고 몸에 병고가 감소되며, ③ 언어도단하고 심행처가 멸한 자리를 관하여 마음에 거래가 끊어지고 거래에 자유하게 됨으로써 착심이 없어지고, 극락을 수용하며, 생사에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회보 44호에 나온 내용은 후에 좌선의 공덕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 회보 44호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943년(원기 28년)에 소태산 대종사가 친히 감수한 불교정전이 발간된다. 그동안 초기교서에서 다뤄졌던 소태산 대종사의 교리나 사상들을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감수하였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원기 25년 9월부터 소태산은 본회 교과서를 통일 수정하기 위하여 교리에 능숙한 제자 이공주, 송도성, 서대원에게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동파서류(東派西流)를 종합한 대성적(大成的) 종전(宗典정전)을 편찬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때 이루어진 편차는 제1편에는 육대요령을 다소 수정하였고 그 외에 권두표어, 일원상 서원문, 병든 세상 치료법, 단전주의 필요, 무시선법, 참회문이 추가되었다. 이는 선교양종의 동파서류를 종합한 불법을 주체로 한 합리적이면서도 혁신적이고 원만한 불법을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를 볼 수 있는 자료이다.

그 후 1950년(원기 35년)에는 교무들의 훈련교재로 사용된 수심정경이 발간되었다. 이 수심정경 은 정산종사가 강증산의 딸 순임으로부터 입수하여 소태산에게 바쳐 수양연구요론 편술의 자료가 되게 했던 「정심요결」을 다시 30여년이 지난 후 장을 나누고 편술 ․ 첨가하여 발행하고183) 교무훈련의 보조교재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1962년(원기 47년)에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정전이 완성되었다. 현행 정전 의 좌선법은 불교정전 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지만, 「단전주의 필요」에서 ‘주하는 법’의 실례와 설명, ‘단전주의 불교적 연원’에 대한 내용들이 대거 생략되어 간단하게 정리된다

이상으로 원불교 초기교서에 나타난 좌선에 대해 살펴보았다. 원불교 교서에 나타난 원불교 선의 형성과정을 정리하면 표1과 같다.

 

<표1. 원불교 교서에 나타난 원불교 선의 형성과정>

  교서 및 자료 내용
1932년

(원기17년)

보경육대요령 (4월)

보경육대요령 (5월)

공식교서에 좌선 언급 – 단전과 좌선의 요지 결부
1934년

(원기19년)

불법연구회규약 (5월)

보경삼대요령 (12월)

불법 주체 전환
1935년

(원기20년)

회보 15호 좌선의 필요 – 좌선할 때에는 수양만 오롯이
조선불교혁신론 (4월) 불법 주체 선언
1938년

(원기23년)

회보 44호 좌선의 공덕
회보 47호(9월) 전음광의 감상 – 무시선법
1943년

(원기28년)

불교정전 (3월) 단전주의 필요 등장 – 단전주의 불교적 연원 강조

무시선법 최초 등장(정혜를 쌍수하는 공부)

1950년

(원기35년)

수심정경 교무 훈련 교재로 사용
1962년

(원기47년)

정전 원불교 선의 정비

「좌선법」에서 단전주의 필요 보충설명 삭제

「무시선법」이 ‘삼학을 병진하는 공부’로 수정됨

 

 

 

. 좌선법 요지의 의의와 특성

 

좌선이란 무엇인지는 좌선의 요지에 보면 알 수 있다. 정전 좌선의 요지를 보면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라고 밝히고 있고 정기훈련법에 보면

 

“좌선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과 기운을 단전(丹田)에 주(住)하되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원적 무별(圓寂無別)한 진경에 그쳐 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순연한 근본 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이요”

 

라고 밝히고 있다.

좌선의 요지에 나온 좌선과 정기 훈련법에 나온 좌선의 두 가지 의미를 종합해보면 좌선은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수기를 오르게 하고 화기를 내려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 즉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몸에 있어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본래 상태란, 원래의 온전하고 조화로운 원기를 회복하여 오장육부의 기능과 신경과 세포조직까지 기가 충만한 본래의 상태로 원기회복하자는 것을 의미한고 있고 마음에 있어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본래의 상태란, 청정한 우리의 본성을 회복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본성을 회복하자는 것은 정전 일원상의 진리에서 “일원은 일체중생의 본성”이라고 하였으므로 일원상 진리를 회복하였다 또는 알았다는 의미가 된다. 즉 성품의 이치를 알았다는 의미로 견성(見性)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선을 하게 되면 본성을 회복하여 견성하고 일원의 진리를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만들어서 밖으로는 몸과 원기를 회복하고 안으로는 본성을 회복하여 견성을 하자는 것이 좌선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좌선의 공덕 중 열 가지 중 하나로 “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는 것이요”라고 밝혀주었다. 그러므로 좌선을 통해 자성의 혜광을 나타나게 해야 되고 각자의 본래 성품을 회복하여 견성을 해야 되고 진리를 깨쳐나가야 한다.

 

  • 좌선법 요지의 의의

 

정전 좌선의 요지의 의의는 좌선에 대한 개념과 원리 그리고 좌선을 왜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좌선의 요지에 보면 좌선에 대한 개념에 대해 나와 있다.

 

대범,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

 

먼저 “대범, 좌선이라 함은”부터 “몸과 마음이 한결 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까지는 좌선에 대한 설명과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그러나, 만일 망념이 쉬지 아니한즉” 부터 “일체의 화기를 내리게 하고 청정한 수기를 불어내기 위한 공부니라”는 좌선을 해야 하는 목적과 필요성을 밝혔다.

또한, 좌선의 원리를 몸과 마음 두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와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은 식망 현진(息妄現眞)이고 뒤에서 말한 것은 수승 화강(水昇火降)을 말한다. 식망 현진은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 한다면 수승 화강은 기운을 기르는 공부라 할 수 있다. 좌선의 원리에도 정신과 육신의 조화를 통해 수행해가는 영육 쌍전의 원리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망념이 쉬지 아니한즉 항상 위로 올라서 온 몸의 수기를 태우고 정신의 광명을 덮을지니 사람의 몸 운전하는 것이 마치 저 기계와 같아서 수화의 기운이 아니고는 도저히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것인 바, 사람의 육근 기관이 모두 머리에 있으므로 볼 때나 들을 때나 생각할 때에 그 육근을 운전해 쓰면 온 몸의 화기가 자연히 머리로 집중되어 온 몸의 수기를 조리고 태우는 것이 마치 저 등불을 켜면 기름이 닳는 것과 같나니라.”라는 내용을 통해 사람의 심신 작용이 수화 작용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화기는 불기운이며 수기는 물기운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불기운이란 의미는 온몸이 피곤할 때 탁한 기운, 위로 뜨는 기운, 불안한 기운이라는 뜻이며, 물기운이란 온몸이 편안할 때 맑은 기운, 아래로 가라앉는 기운, 안정된 기운이라는 뜻이다. 해석해보면 좌선을 통해 불안하고 탁한 기운은 밑으로 내리고 안정되고 맑은 기운을 위로 올려 정신과 기운을 상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불교에서는 정기로 법의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한 정기 훈련법과 공부인에게 상시로 수행을 훈련시키기 위한 상시훈련법이 있다. 그중에서 좌선은 정기훈련법 중 정신수양 과목에 속한다.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에 보면 정기 훈련법은 정할 때 공부로서 수양, 연구를 주체 삼아 상시 공부의 자료를 준비하는 공부법이라고 하였다. 정신수양 과목 중 하나인 좌선으로써 수양력을 쌓아 일상생활에서 언제 어디서나 일체의 화기를 내리고 청정한 수기를 불어낼 줄 알아야 한다.

 

  1. 원불교 좌선법의 특성

 

좌선의 방법이 그동안 모든 선가(禪家)의 가풍(家風)에 따라 그 나름의 특유한 가풍이 있다. 원불교 좌선의 방법에도 특유한 가풍이 있다. 특히 원불교에서는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쉽게 행할 수 있는 공부이니, 이것이 곧 선수행의 일차적인 공부길이다.

본고에서는 원불교 좌선법의 특징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선과 단전주법과 간화선과 묵조선의 병행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선

 

좌선의 방법 제일 첫 부분을 보면 좌선의 방법은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아무라도 행할 수 있나니 라고 하였다. 남녀노소 선악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간단하게 편이하여 아무라도 좌선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선악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소태산 대종사의 평등사상을 느낄 수 있다.

좌선의 방법은 원래 간단하고 복잡한 것이었으나 오랜 시간 연구가 되어가면서 복잡해졌다. 소태산 대종사는 그러한 문제를 발견하였고 간단하고 편이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간단하고 편이하다는 것은 좌선을 하려면 우선 복잡한 방법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고 좌선법에 나와 있는 대로 쉽게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전의 좌선의 방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좌선법에 나와 있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데 실제로 하다보면 좌선의 방법대로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하는 경우가 많다.

좌산 상사는 좌선의 방법 내용에는 토씨 하나에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데 평범한 표현을 빌려 열거했다 해서 자칫 가벼이 알아 대강대강 넘기고 다른 어떤 것을 찾아 헤맨다면 그것은 그만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결과라고 경책하고 있다. 좌선할 때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좌선의 방법에 나와 있는 토씨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여겨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정력을 절약할 수 있다.

 

2) 단전주법

 

원불교 좌선은 그 당시 일반적인 선법인 결과부좌와 간화선을 주로 하지 않고 반가부좌를 하고 단전주에 의한 선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전주법은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수화의 기운을 조절해서 심신의 안정을 얻고 심단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丹田住)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 하노니, 의두 깨치는 방법이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을 따라 연마하는 것이 그 힘이 도리어 더 우월한 까닭이니라.

 

또한, 소태산 대종사는 간화선 즉 화두만 오래 계속하면 기온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대중적인 좌선을 위해 묵조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지나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말라”

 

는 내용을 통해 단전주법은 단전에 전신의 힘과 마음을 주하는 선법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단전이란 배꼽 아래 삼촌 또는 이촌 반에 있는 곳에 마음과 기운을 온전히 정하고 기운주한 대중으로 방심하지 않고 온전한 기운을 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생각 단전에 온전하고 한 기운 단전에 조절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방심되지 아니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그동안 잡념이 생기는 것을 이 단전에 집주함이니, 집주하는 가운데 한 마음의 대중을 풀지 아니하여 항상 챙기는 마음을 가지고 단전에 집주하자는 것이다. 어느 좌선법이나 근원적으로 한 마음을 주하는 것이지만 특히 단전주는 아랫배에 마음과 기운과 숨을 함께 조절하여 마침내 한 대중심이 오래 가도록 하는 공부가 이 단전주 공부이다. 따라서 단전주는 곧 조절하는 법인 동시에 챙기는 공부이며, 유무념을 함께하는 온전한 마음공부이다.

이러한 단전주법의 특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마음의 안정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단전주의 필요를 보면 “마음을 머리나 외경에 주한 즉 생각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안정이 잘 되지 아니하고, 마음을 단전에 주한 즉 생각이 잘 동하지 아니하고 기운도 잘 내리게 되어 안정을 쉽게 얻나니라”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머리나 외경에 주하는 것보다 단전에 주하는 것이 안정을 쉽게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선정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일거양득하는 법이다. 다시 한 번 단전주의 필요를 보면 “이 단전주는 좌선에만 긴요할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극히 긴요한 법이라, 마음을 단전에 주하고 옥지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리면 수화가 잘 조화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하나니, 이 법은 선정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실로 일거양득하는 법이니라.”라고 밝히고 있다. 기존의 불교 수행법은 화기가 오르는 등 병을 얻기가 쉬우나 단전주법은 정력을 쌓으면서 동시에 건강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3) 묵조선과 간화선의 병행

간화선(看話禪)이란 화두(話頭)를 근거로 수행하는 참선법으로 우리나라 불교 역사 속 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선 수행법이다. 간(看)은 보는 것을 의미하고, 화(話)란 화두의 준 말이며, 화두를 들어 그것을 해결하며, 철저한 큰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선풍을 말한다. 묵조선(默照禪)이라는 평을 받은 조동종(曹洞宗)의 선풍에 대한 임제종(臨濟宗)의 선풍이 그것이다. 송(宋)나라 때 조동종의 굉지정각(宏智正覺)이 묵조선을 표방하고 나오자, 임제종의 대혜종고(大慧宗杲) 일파가 그것을 비난하고 화두를 참구(參究)함으로써 평등일여(平等一如)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인도의 선정(禪定)과는 매우 다른 중국 선종만의 독특한 수행 양식이다.

 

<그림 1> 대혜종고 선사

 

묵조선(默照禪)은 중국 송나라 때의 굉지정각에 의해서 제창된 선법이다. 좌선할 때 화두나 공안을 들지 아니하고 한 생각 적적하고 성성한 마음을 대중 삼아 선하는 공부이다. 한 생각 화두도 없는 원적무별한 상태에 의지하여 계속 정진하는 것이 묵조선의 일반적 의미이다.

 

<그림 2> 굉지정각 선사

 

간화선과 묵조선은 방법이 다르나 궁극적인 목표인 깨달음으로 향하기 위한 수행법임은 같다. 그러나 간화선은 의심을 일으켜 분별식심을 끊는 수행법이므로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한다하여 소태산은 대중적인 좌선을 위하여 묵조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는 간화선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정전 단전주의 필요 내용 중 간화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혹 이 단전주법을 무기의 사선에 빠진다 하여 비난을 하기도 하나에서 그러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묵조선의 병폐 중 하나인 무기의 사선에 빠지지 않게 방법을 제시하였다.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 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에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이와 같이 하면 공적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분별에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을 체득할 수 있나니라.하며 단전주선 후 잠깐의 의두 연마 시간을 통해 간화선을 하여 묵조선과 간화선의 병행을 하였다.

공적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맑은 정신으로 의두를 연마하기 때문이며 분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단전주로 깊은 정에 들기 때문이다. 동정 없는 진여성을 체득한다는 것은 정할 때는 나가대정이라는 진여의 경지를 체험하는 것이며 동할 때는 그 일 그 일에서 끌리지 않는 진여의 경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불교 선법은 분명 종래 중국선가에서 문제되었던 과거 선법의 양대맥을 그 장점을 살려 활용해 나감과 동시에 그 기본을 단전주법으로 삼는 혁신적 선법이요, 이상적인 선법인 것이다.

 

 

. 결론

 

지금까지 원불교 좌선법에 대해 고찰하였다. 본 논문의 서론에서는 103년 전 소태산 대종사가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자고 주장하면서 원불교를 창시하였지만 103년이 지난 아직도 사회는 물질만능주의 등 사회병리현상으로 현대인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였다. 현대인들은 치료방법 중 하나로 현대인들은 정신의 영역 즉 자기 내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고 정신의 영역을 회복할 수 있는 명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말했다. 그러한 시대에 맞춰 원불교 예비교무들이 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현대인들을 지도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2장에서는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 과정 대각의 체험 그리고 초기교서를 통해 어떻게 좌선법이 변하였는지 형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원불교 좌선의 성격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몇 가지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대종사가 당시 유행되던 유교나 불교나 도교 등 다른 종교의 수행시스템에 의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대종사도 술회하고 있듯이 무사자오의 수행은 너무도 더디고 건강쇠약 등의 후유증을 낳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성종교의 다른 선법과의 연계성도 중요하지만, 그 대오분상에서 밝힌 교리사상에 입각한 원불교 선의 정체성을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3장에서는 원불교 좌선법 좌선의 요지의 의의와 원불교 좌선법의 특징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먼저 좌선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였다. 선이 좌선은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수기를 오르게 하고 화기를 내려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 즉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선을 통해 본성을 회복하고 견성을 하여 일원의 진리를 깨칠 수 있음을 살펴보았고, 원불교 좌선법의 원리가 식망현진과 수승화강이고 정신과 육신의 조화를 통해 수행해가는 영육 쌍전의 원리가 들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원불교 좌선법의 특징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얘기하였다. 첫째, 원불교 좌선법은 간단하고 편이하여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였고 둘째,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수화의 기운을 조절해서 심신의 안정을 얻고 심단을 이루기 위한 방법인 단전주법이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간화선과 묵조선의 선법을 병행하여 각각의 병폐를 막은 수행법인 좌선법을 소태산 대종사는 내놨다고 얘기하였다.

원불교 예비교무들에게 좌선의 흥미를 불어 일으키고 필요성과 경각심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본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이번 논고에서 그 부분을 채우지 못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 논고가 지금 서양에서 불고 있는 선의 열풍과 곧 동양으로 그 열풍이 불어올 바야흐로 선 열풍 시대를 맞이하여 선 지도자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교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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