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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논문

교화단 활용의 방향 고찰(한솔)
교화단 활용의 방향 고찰(한솔)
원불교학과2019-09-24

교화단 활용의 방향 고찰

– 불법연구회 팔괘(八卦)와 관련하여 –

 

 

한 솔

 

 

 

 

 

목 차

 

Ⅰ. 서론

 

Ⅱ. 교화단의 의미와 정신

1. 교화단의 의미

2. 법인성사의 의의

3. 교화단의 정신

 

Ⅲ. 선·후천 팔괘와 원불교 팔괘

1. 선·후천 팔괘의 성립

2. 초기교단의 팔괘기

3. 현 원불교 교화단의 팔괘

Ⅳ. 교화단 활용의 방향

1. 팔괘와 창립정신의 습득

2. 팔괘와 단원의 결속력 함양

3. 교화단 훈련법 강화

 

Ⅴ. 결 론

 

 

 

 

 

 

 

 

. 서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종교를 갖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포와 불안 그렇다면, 사람은 왜 공포심과 불안감 등을 느끼며 살아갈까? 사람이 공포심과 불안감 등을 갖는 것은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완전한 존재로 지으시지 않고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힘 너머의 것은 신의 영역에 속하며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실현 시킬 수 없는 최고선은 신이 존재하고 그 존재하는 신의 힘을 빌어야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칸트의 요청설에 의하면 인간이 도덕적 존재인 한, 인간은 덕복일치의 최고선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지향하는 한, 그것의 실현 가능 조건인 영혼불멸한 신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풀어보면 인간이 공포와 불안을 갖게 되는 것은 모든 존재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졌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로의 삶을 지향하지만,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나 이외에 존재에 의지하고 나를 완전한 존재로 이끌어줄 초월적 존재를 숭상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줄 누군가가 있으면 공포심과 불안감은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은 종교를 갖게 되는 것이고, 절대자에게 귀의하게 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소속감을 상실한 모든 존재는 공포심을 갖기 마련이다. 사람이 교화를 하는 것도, 이러한 소속감이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이 소속감은 사회 구성원으로써도 가질 수 있지만, 더 크게는 먼저 살아오면서 깨달은 사람, 성인, 성자들의 가르침들로 믿고 따라가며 의지하니, 내 마음의 안정과 의지처가 된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만이 종교의 필요성을 자각하며 종교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게 되는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 종교란 ‘으뜸되는 가르침’, 또는 ‘인간 삶이 근본법도’라는 의미로서 동양에서는 보통 ‘도(道)’라고 부른다. 불교《능가경》에서 ‘종(宗)’은 불교의 근본 진리를 파악한 것에 의해 도달된 궁극의 경지를 의미하며, ‘교(敎)’란 근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방편적인 가르침을 의미한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종교는 ‘근본 진리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 종교학에서의 종교를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하나는 본질적 정의로써 종교 자체의 본질적 성격, 또는 궁극적 본질을 묻고 설명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기능적 정의로 종교가 행하는 사회적, 심리적 기능들, 즉, 종교의 역할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설명한다.

이에 원불교라는 종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1891년에 태어나 많은 고행과 난행 끝에 1916년 4월 28일에 대각을 하였다. 소태산은 그 당시 시국을 살펴보며 과학의 문명이 발달 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는 것을 보며 이러한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함을 목적하며 개교의 경륜을 보인다.

이후 소태산 대종사는 자신이 깨달은 법을 남녀·노소·선악·귀천을 막론하고 과거에 편벽된 법을 원만하게 하며, 어려운 법을 쉽게 하여 누구나 바로 대도에 들게 하기 위하여 맨 처음으로 한 일이 바로 신심 굳은 구인 제자를 제정하시며, 오직 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을 고루 훈련 할 빠른 방법인 십인 일단의 교화단을 조직하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완전을 꿈꾸지만 완전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결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들에게 소태산은 과연 어떻게 받아 들여졌을 것인가? 마치 구세주처럼 보이지 않았겠는가? 일제강점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세상을 향한 허무맹랑한 언행에도 신심이 생길 정도라면 제자들의 스승에 대한 존경은 스승을 넘어서 ‘신앙’의 대상이 될 법도 할 것이다. 그러니 바다를 막아 방언을 만들자는 그의 말에 믿음을 바치고 몸을 바치지 않았겠는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지도는 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태산은 자신이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마다하고 교화단법을 발표하였다. 교화단은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서로 돌보는 삶의 공동체이다. 나 혼자만이 공부하는 것 아니라 내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채워주고, 다른 사람이 부족한 것이 있으면 내가 채워주며 함께 공부해 가는 것이다. 소태산은 개인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라는 키워드 그리고, ‘전체(시방)’와 ‘개인의 영성(시방을 한 몸에 합한 이치)’을 드러낸 것이다.

원불교는 이 교화단을 통해 통치 조단되어 운영되고 있다.(이단치교) 즉, 교화단으로 조직되어 수행하고, 신앙하고, 교화하고 봉공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교화단’이 원불교에서 갖게 되는 위상은 실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교화단을 상징하는 ‘회기’에도 변천이 있는데, 초기교단은 현재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이며 진리의 도면이라고 하고 있는 ‘일원상’이라는 상징이 없었기 때문에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 팔괘기를 활용하였다. 초기 구인 선진의 법인기도 때에도 팔괘기를 진설했다고 하며, 불법연구회의 회기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원기 85년 수위단 사무처의 발의로 제작한 회기를 사용하여 이단치교의 교단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원불교 교단은 교화단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단장에 종법사를 필두로 하여 중앙, 그리고 단원으로 구성되어 최상위 결의기관인 수위단으로 결성되어 있다. 그러나 점차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교화단 체제는 약하다는 것을 느낀다. 교당에서는 교화단이 단순히 동호회, 그리고 내가 지금 위치 해있는 이곳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서원관에서도 교화단 체제의 시스템이 아닌 하나의 또 다른 소속감으로만 느껴진다. 이에 논자는 교화단으로 운영되는 서원관이 아닌 서원관의 운영 속에 교화단이라는 하나의 친목 모임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에 아쉬움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이 우리는 초기교단 소태산 대종사가 바라는 교화단의 의미를 파악하여 교화단을 강화시켜 교화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원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으며, 교화단 체제에 발전적으로 적응하지 못함에 따른 지도역량 함양을 목적한 훈련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개개인이 교육목적에 부합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항단은 교육 목적에 부합하는 운영 방향을 설정해야 하고, 개인과 항단이 이어져야 한다. 개인과 항단과 이어지기 위해서는 개인이 속한 방과 저단의 연계성이 살아나야 하고, 저단과 항단의 연계성이 살아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화단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더불어 각단으로부터 항단·단장·방장으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 체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이에 교화단에서 단장과 단원이 해야 할 의무는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에 자세히 나타나 있지만, 현 교화단 운영에 있어서 그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교화단을 상징하는 회기에도 변천이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현재 교화단을 표시하는 팔괘가 소태산 대종사 당대 때 사용했던 팔괘의 모양이 다르다. 그러나 팔괘에 대한 지식이 깊지 못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교화단을 공부해보면 조금이라도 그 이유를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화단에 관심을 가지던 중 지금 현재 교화단의 의미와 활동들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논자는 소태산 대종사가 어떠한 의미로 교화단을 조직하였는지 역사적 상황을 비롯하여 단 조직 이후 교화단으로써 처음 활동한 법인성사, 그리고 교화단을 팔괘와 연결시킨 부분에서 후천개벽시대의 문왕팔괘와 초기교단 사용했던 팔괘를 비교함으로써 교화단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현 교화단 방향의 문제성을 알아보고, 앞으로 소태산 대종사가 바랬던 교화단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교화단을 강화시킬 것인가를 논해보고자 한다.

 

 

. 교화단의 의미와 정신

 

  1. 교화단의 의미

 

교화단의 의미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교화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교화‘란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원불교 교법으로 사람을 가르쳐서 훌륭한 인격자가 되도록 인도하는 것, 범부가 변하여 성현이 되게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을 바른 믿음을 갖게 하며. 원불교 교법을 신앙하도록 이끄는 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특정 종교에서는 선교, 포교라는 말이 있는데 이와 같은 의미로 원불교에서는 교화라고 사용한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 자신이 깨달은 이 좋은 법을 시방세계에 간이하고, 빠르게 전하기 위해 많은 연마 끝에 교화단이라는 단을 조직하게 된 것이다.

교화단이란 단원들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함에 있어서 원활하고 효율적인 교화와 일관되고 통일적인 교당 및 교단 운영을 위한 열 사람을 표준 단위로 구성된 조직을 말한다. 단장 1인, 중앙 1인, 단원 8인을 기본으로 하여 10인 1단으로 구성하되, 단장은 매월 단회를 통해 단원들의 상시공부를 점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과 교화·교육·자선의 사업 방향을 일관성 있게 지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교화와 교단 통치의 원활을 도모하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자신이 깨달은 법으로 교화를 시작하신 지 몇 달 만에 믿고 따르는 사람이 40여 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특히 진실하고 신심 굳은 아홉 사람을 고르시며 회상 창립의 표준제자로 내정하였고, 10인 1단의 단 조직으로써 오직 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을 고루 훈련할 빠른 방법이니 몇 억만의 많은 수라도 가히 지도할 수 있으나 그 공력은 항상 아홉 사람에게만 드리면 되는 간이한 조직으로 이 단이 곧 시방을 대표하고 거두어 말하면 시방을 곧 한 몸에 합한 이치라 하며, 단장에 대종사, 중앙에 송규, 단원에 이재철, 이순순, 김기천, 오창건, 박세철, 박동국, 유건을 이 회상 최초의 단으로 조직한 것이다.

팔방을 기준으로 하여 단 조직을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종사께서 일찍이 조단 방법을 강구하여 장차 시방세계 모든 사람을 통치교화하는 법을 제정하셨으니, 그 요지는 오직 한 선생의 가르침으로 원근각처에 산주하는 천만 사람을 고루 훈련하는 빠른 방법인 바, 그 대략을 말하자면 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 중앙을 응하여 9인으로 1단을 삼고 단장 1인을 가하여 9인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 감독케 하며, 9단장이 구성되는 때는 9인장으로 1단을 삼고 단장 1인을 가하여 9단장을 공부와 사업을 지도 감독케 하되, 각, 항 저, 방, 심, 미, 기, 두, 우, 여, 허, 위, 실, 벽, 규, 루, 위, 묘, 필, 자, 삼, 정, 귀, 류, 성, 장. 익, 진 28자의 순서를 응하여 처음 9인 단장을 각장이라 칭하여 1각 2각으로 지어 9각장하며, 9각장의 단장을 항장이라 칭하여 1항 2항으로 지어 9항장하며, 9항장의 단장을 저항이라 칭하여 1저 2저로 지어 9저장하되, 이상 단장도 계출되는 대로 이와 같이 하나니, 다시 그 지도의 차서를 말하면 각장은 건, 감,간,진,손,이.곤,태 중앙의 번호를 가진 9인을 통치하는 단장이요, 항단은 9가장을 통치하는 단장이며, 저장은 9항장을 통치하는 단장인바, 이상 단장의 통치도 이와 같이 28자의 번호를 따라서 기천기만의 다수라도 지도할 수 있으나 그 지도하는 강령을 말하면 항상 9인에 지나지 않는 간이한 조직이며, 단의 종류에 있어서는 그 중에 특별히 정수위단과 예비수이단이 있고, 모든 사람의 처지와 발원과 실행을 따라 전무출신단, 전무출신기성단, 거진출진단, 보통단 합 6종으로 구분한바, 대종사께서 먼저 8인을 선택하신 것도 오직 이 조단을 예비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7월 26일에 남자정수위단을 조직하셨으니 그 정원은 아래와 같다.

(단장 : 대종사, 중앙 : 정산종사, 건 : 이재풍, 감 : 이인명, 간 : 김성구, 진 : 오재겸, 손 : 박경문, 이 : 박한석, 곤 : 유성국, 태 : 김성섭

 

<그림 1>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제자

 

이처럼 10인을 1단으로 하고, 그 가운데 1인은 단장이 되어 9인 단원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 감독케 하는데 아홉 단원들이 공부의 힘과 사업의 능력을 얻었을 때, 또 그들이 각각 단장이 되어 각 1단씩 조직하여 각자 아홉 단원들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 감독하는 법이다. 이 조직은 1인은 윗단의 충실한 단원임과 동시에 아랫단의 솔선하는 단장이 되는 것이다. 각자 상통하달의 핵심적 임무를 띠도록 한다. 최초의 1인으로 시작하여 9인을 지도 감독하는데 이는 시방세계를 뜻한다. 시방이란 사방·사우·상하를 통털어 일컫는 말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통치 교화하자는 것이다. 방위는 인도상의 이치를 밝힌 문왕팔괘도는 6천년 전에 천지 창조의 이치를 밝힌 복희팔괘도에 준하여 건(서북),감(북),간(북동),진(동),손(동남),이(남),곤(남서),태(서) 8방과 중앙(땅)과 단장(하늘)이다. 모든 단원들은 이 시방의 방위 이름을 따라 건방단원, 감방단원 등으로 단원의 이름을 칭하게 하였으며, 종(縱)으로 구분을 두어, 28수의 순서를 따라 단명과 단장 명을 칭하게 하였다. 28수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에 따라 천구를 28구로 구분한 것이다.

 

  1. 법인성사의 의의

 

법인성사도 팔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구인 제자를 내정하신 뒤, 9인 단원만 데리고 활동한 것은 법인기도였다. ‘법인’이란 원불교가 법인기도를 통해 법계로부터 인증을 받았다는 뜻으로. 법인성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원기 4년(1919·己未) 3월, 방언 공사를 마친 후, 소태산 대종사는 9인 단원에게 그대들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라, 마음이 한번 전일하여 조금도 사(私)가 없게 되면, 곧 천지로 더불어 그 덕을 합하여 모든 일이 다 그 마음을 따라 성공될 것이니, 그대들은 각자의 마음에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각자의 몸에 또한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라 하며, 9인은 황송하고 기쁜 마음으로 청하였다.

이에, 3월 26일에 시작하여, 10일간 재계(齋戒)로써 매 삼륙일(每三六日)(6일·16일·26일)에 기도식을 거행하되, 치재(致齋) 방식은, 첫째 마음 정결을 위주하고, 계문(戒文)을 더욱 준수하며, 육신도 자주 목욕재계하고, 기도 당일에는 오후 8시 안으로 일찌기 도실에 모여 대종사의 교시를 받은 후, 9시경에 기도 장소로 출발하게 하였다.

기도는 10시부터 12시 정각까지 하며, 기도를 마친 후 또한 일제히 도실에 돌아오되, 단원들이 각각 시계를 가져, 기도의 시작과 그침에 서로 시각이 어긋나지 않게 하였다. 장소는 각각 단원의 방위를 따라 정하되, 중앙봉으로 비롯하여 8방의 봉우리(峰巒)를 지정하고, 단기(團旗)인 팔괘기(八卦旗)를 기도 장소 주위에 세우게 하며, 기도식을 시작할 때에는 먼저 향촉과 청수를 진설하고, 헌배와 심고를 올리며, 축문을 낭독한 다음 지정한 주문을 독송케 하였다.

 

<그림2> 팔괘에 준한 9인 기도봉의 위치

 

원기 4년(1919·己未) 7월 16일에, 소태산 대종사는 그대들이 지금까지 기도해 온 정성은 심히 장하나, 아직 사념(私念)이 남아 있는 연고인지라, 인류 세계를 위한다면 몸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만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 없이 그 일을 실행하겠느냐고 묻는다. 이에 구인 단원은 잠깐 비장한 태도를 보이다가 곧 일제히 희생하기로 고백하였다. 이에 10일간 치재를 더하게 하시어, 다음 기도일(7월26일)을 최후 희생일로 정하고, 그 날 기도 장소에 가서 일제히 자결하기로 약속하였다.

7월 26일(음), 9인은 일제히 도실에 모이는지라, 밤 8시가 되매, 소태산 대종사는 청수를 도실 중앙에 진설케 하고, 각자 가지고 온 단도를 청수상 위에 나열케 하신 후, 일제히 [사무여한]이라는 최후 증서를 써서 각각 백지장(白指章)을 찍어 상(床)위에 올리고, 결사(決死)의 뜻으로 엎드려 심고(伏地心告)하게 하였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가 증서를 살펴보니, 백지장들이 곧 혈인(血印)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구인 단원들의 일심에서 나타난 증거였으며 마음은 천지신명이 이미 감응하였고, 음부 공사가 이제 판결이 난 것이다.

11시가 지난 뒤, 대종사, 다시 일제히 중앙봉에 올라가 기도를 마치고 오라 하신 후, 돌아온 단원들에게 이제 세계 공명인 새 이름을 주어 다시 살리는 바이니 많은 창생을 제도하라 하시며 법호(法號)와 법명(法名)을 주었다. 이것이 거룩한 백지 혈인(白指血印)의 법인성사(法認聖事)였다. 그 해 10월 해재(解齋)하였으며, 이 9인 기도와 법인성사는 곧 무아봉공의 정신적 기초를 확립하고, 신성·단결·공심을 더욱 굳게 한 새 회상 건설의 일대 정신 작업이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법인성사의 의미 속에서 팔괘와 관련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기도 장소 또한 아무 봉우리로 정하신 것이 아닌 팔방에 의하여 정하였고, 그에 따라 단원들 보내시어 단기와 팔괘기를 세워 기도케 하신 것이다.

칸트는 인간을 경험적 자아와 초월적 자아로써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한 구인 제자들은 물리 생리적 법칙성에 따라 발생하는 필연적 과정으로써 살아가는 경험적 자아가 법인기도를 통하여 초월적 자아가 됨으로써 모든 삶이 자아가 스스로 선택하여 수행하는 자율적 행위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동서양의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이것이 동서양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교화단의 정신

 

소태산 대종사의 뒤를 이은 정산종사는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데 세 가지 큰 요소가 있나니, 주의는 일원주의요, 제도는 공화제도요, 조직은 십인일단의 조직이라 하였다. 하지만 현재 원불교 교도 수가 줄어듦에 따라 교당에서는 10인 1단의 교화단을 구성할 수 조차 없게 되면서 교화단 운영에 대해서도 많이 침체되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소태산 대종사의 교화단 조직에서는 10인 1단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사람 수에 따라 인원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그 인원 숫자로써 교화단을 만들어 훈련해야 한다. 즉, 10인 1단의 단 조직 핵심은 10명을 꼭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닌, 한 스승으로 빠르게 훈련하는 방법인 것이다.

현실의 인간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지향하는 사회는 모두가 평등한 인격체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대동사회이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상황들을 미리 예견하시어 원불교를 창시하였고, 파란고해에 빠진 일체 중생들을 깨달음의 길로 빠르게 갈 수 있는 법들을 제정하시어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이끌고자 대동사회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 교화단 법이다.

단 조직 후 단원들과 함께해온 방언공사, 저축조합, 법인성사,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 속에는 일심합력, 사무여한, 이소성대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소태산 대종사가 만든 교화단의 의미 속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들이 바로 교화단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교화단의 정신을 현 교화단 운영에 있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파악하고, 이에 따른 방향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결코 모든 것이 일원의 진리에 바탕하여 모든 법을 밝혀 놓았으나, 이것이 다 각각 따로 적용되는 법들이 아니다. 우리가 삼학 수행에 있어서도 쇠스랑과 같다고 표현해 주신 것은 하나만 잘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이 아닌, 이 세 가지가 함께 역할을 해 나갈 때 우리는 쇠스랑의 세발이 주는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원불교는 지금에 오기까지 이 교화단의 정신에 바탕하여 움직여 왔으며, 지금도 움직여 가고 있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 원불교를 왜 창시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히고 그 다음으로 바로 한 것이 어떻게 하면 이 법을 전할까에 대한 방법으로 단조직을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화단의 정신이 주는 의미는 원불교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며, 이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모든 것이 운영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 ·후천 팔괘와 원불교 팔괘

 

  1. 선·후천 팔괘의 성립

 

선천(先天)과 후천(後天)론은 주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천지가 열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먼저 열린 시기를 선천이라 하고, 이후에 열렸다 해서 후천이라고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면, 선천이란 성인이 천도를 자각하여 주체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면, 후천이란 성인이 겸허하게 천지의 도를 따르려고 하는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송대 소강절에 의하면 선천은 근원적 자연질서를 의미한다면 후천은 이에 바탕하여 인문의 질서를 형성해감을 상징한다. 선천은 과거의 시대, 어두운 시대와 편협한 시대이며, 밝음의 시대로써 상생과 조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후천이 그려진다. 이에 선천과 후천시대의 시각에서 팔괘를 나타낸 것이 바로 선천팔괘, 후천팔괘이다.

중국의 도와 음양의 원리에 대한 사상은 『주역』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었으며, 유교·도교·음양 오행 사상들을 중심으로 만물을 음양으로 범주화시키고, 음양의 원리에 따라 만물의 변화하는 이치를 밝혀 음양, 오행, 팔괘, 64괘, 360효 등 세분화하여 발전되었다. 『도덕경』 42장에서는 만물의 발생이 도로부터 생성되며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로 기운이 충만한 때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팔괘는 주역에 바탕한 것으로 우주 자연의 도를 상징하고 있으며, 음양의 변화와 작용을 도식화 한 것이다.『주역』계사상전 제 11장에 “역(易)6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음양을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八卦를 낳는다” 라고 하였다. 4괘의 기본이 되는 팔괘는 사상(四象)이 다시 음양작용으로 분화되어 성립하게 되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3> 태극·양의·사상·팔괘의 관계

 

1~8까지는 卦의 생성순서를 의미하고, ‘乾·兌 ··· 坤’은 卦名을 표시한 것이며, ‘天·澤···地’는 그 괘의 가장 대표적인 물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4> 팔괘의 명칭

 

복희씨는 하늘의 상, 땅의 법, 만물의 모습과 인간을 관찰하여 팔괘를 정하였다고 말한다. 즉 우주 안에 존재하는 일체의 물상과 인사를 대표하는 전형이 팔괘이다. 이 팔괘를 통해 천하의 이치를 담고 만물의 실정을 드러냈다. 풍우란(馮友蘭)은 팔괘의 배치가 지닌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우주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최대의 것은 천지이고, 하늘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해와 달, 바람과 우레이고, 지상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산과 못이고, 인생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물과 불이다. 옛사람이 이 여덟 가지로 우주의 근원을 삼았다. 그래 이를 팔괘로 배치하였다.”

 

<그림5> 복희팔괘도

 

선천팔괘는 복희팔괘라고도 한다. 소강절의 설을 계승한 『주역본의』에서는 “건남·곤북·이동·감서·진동북·태동남·손서남·간서북으로 진에서부터 건까지는 순이 되고, 손에서부터 곤까지는 역이 된다.”고 하여, 팔괘의 방위를 확정하고, 또 「복희팔괘차서」를 통해 팔괘에 1에서 8까지의 수를 배정하여 1건(☰) · 2태(☱) · 3이(☲) · 4진(☳) · 5손(☴) · 6감(☵) · 7간(☶) · 8곤(☷)을 논함으로써 복희선천팔괘도를 설명하고 있다.「설괘」제3장을 근거로 복희팔괘도를 보면, 천지를 상징하는 건괘와 곤괘가 남북에 자리가 정해지고, 간괘와 태괘는 서로 기운 통하며, 진괘와 손괘는 서로 엷어지고, 감괘와 이괘는 서로 쏘지 않는 상태의 팔괘도인 것이다. 이는 ‘하늘과 땅의 위치가 정해지고, 산과 연못의 기운이 통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엷어지고, 물가 불이 서로 쏘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그림6> 문왕팔괘도

 

후천팔괘는 문왕팔괘라고도 한다. 「설괘」제5장에서는 문왕팔괘도에 배치된 팔괘의 철학적 의미와 방위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만물이 진괘에서 나오니 진은 동방이다. 손괘에서 가지런하니 손은 동남이고, 가지런하다는 것은 만물의 깨끗함과 가지런함을 말한다. 이 괘는 밝음이니 만물이 모두 서로 나타나기 때문으로 남방의 괘니 성인이 남면하여 천하를 들어서 밝음을 향하여 다스리니 모두 이것에서 취한 것이다. 곤괘는 땅이니 만물이 모두 지극히 길러지기 때문에 그러므로 곤에서 지극히 길러진다고 한다. 태괘는 정추이니 만물의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태에서 말씀을 기뻐한다고 한다. 건괘에서 싸운다는 것은 건은 서북의 괘이니 음양이 서로 엷은 것을 말한다. 감괘는 물인 정북방의 괘이니 수고로운 괘로 만물의 돌아가는 바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감에서 수고롭다고 한다. 간괘는 동북의 괘이니 만물의 마침을 이루는 곳이고 시작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간에서 말씀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처럼 복희팔괘는 상하좌우의 공간적인 분별상을 가지고 있고, 문왕팔괘는 춘하추동의 시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복희팔괘에서 항에는 건위천(乾爲天)이 있고, 하에는 곤위지(坤爲地)가 있으니 상하(上下)천지(天地)가 정립한 상(像)이오 좌(左)에 리위화(離爲火)가 있고 좌에 감위수(坎爲水)가 있는 것은 일월이 출몰하는 뜻이다. 즉, 상하좌우(上下左右) 사정위(四正位)에는 전문적인 현상이 나타나 있고, 사간 위에는 사해운풍(四海雪風)이라는 지리적인 현상이 나타나 있다. 복희팔괘의 괘상은 만물을 생성 장양하는 자연의 본상이 들어있다. 이처럼 복희팔괘는 외상(外像)과 천도(天道)를 표현하고 있고, 문왕팔괘는 내정(內情)과 천도(天道)를 계승한 인사(人事)를 표현하는 측면이 강하다. 옛날 사람들은 복희팔괘는 ‘대대이립기체(對待以立其體)’하고, 문왕팔괘는 ‘류행이립기용(流行以立其用)’한다고 하여 복희팔괘는 체가 되고 문왕팔괘는 용이 된다고 하였다. 천지일월의 법도를 살펴보면 천지는 체가 되고 일월은 용이 된다. 따라서 체가 되는 복희팔괘는 체가 되는 건곤(乾坤)이 중심축에 자리 잡고 용이 되는 문왕팔괘는 용이 되는 감리(坎離)가 중심축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선천도는 만물의 창조와 출생을 의미하고 후천도는 이를 계승하여 변화하고 발전함을 설명하고 있다.

 

  1. 초기교단의 팔괘기

 

원불교는 한국 근대 신종교로써 후천개벽사상이다. 당시 상황이 세밀하게 전해지지는 않으나 소태산 대종사의 교화 활동 초창기에 팔괘기를 사용했던 흔적이 발견된다. 이때 당시에는 ‘원불교’가 아니라 ‘불법연구회’로 활동하고 있었다. ‘불법연구회’는 원불교 교명 선포 이전의 임시 명칭으로 1916년부터 1948년까지 교단을 대표하던 이름이다.

팔괘가 우주 자연의 도를 상징하고 있으며,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은 궁극의 진리와도 합일한다. 십인 일단의 단 조직은 교단의 통치조직이며, 교화조직인 교화단의 상징으로 팔괘가 사용되었다. 이 팔괘기는 초기교단 활동에서 제자들을 조직화하는데 중요하게 활용되었으며, 교단 창립의 여명기에 활용한 팔괘방위도는 ‘문왕팔괘방위도’와 유사하다. 불법연구회를 상징하는 깃발에 이를 새겨넣고 대내외 활동에 이를 게양하였다. 팔괘방위도의 활용의 의미는 두 가지 측변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교단 조직과 활동의 방편으로 활용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진리의 상징으로 일원상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활용한 점이다.

 

 

<그림7> 초기교단의 팔괘기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Ⅱ. 교화단의 의미와 정신’에서 최초의 단 조직과 법인기도의 의미를 보면 이 팔괘방위도는 제자들의 활동을 시작하면서 8방을 응하였고, 초기 제자들의 활동 단위조직을 ‘단’으로 편성하여 시방을 대표하는 의미를 둔다. 또한, 구인 단원과 법인성사를 할 때 단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9인 제자들은 각각 산봉우리에서 기도를 하였는데, 기도 장소에는 단기를 제작하여 세우게 하였다.

이처럼 팔인 단원의 기도봉을 정한 방위도 팔괘의 방위를 따랐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나타나고 있다. 이 다른 견해로 임병학에 따르면 “대종사와 9인 선진의 기도봉에 팔괘를 배치한 것이 문왕팔괘도와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9인 선진의 기도봉과 문왕파괘도를 연결시키고 있지만, 이미 신순철은 ‘원불교 법인기도 9인 기도봉 위치 검토(<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35집, 2007)’에서 기도봉을 문왕팔괘도에 배치하는 것은 잘못임을 논증했다. 9인 선진의 기도봉은 중앙과 팔괘를 기준으로 나이 순서에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논자는 법인성사를 할 당시 팔괘의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팔괘를 기준으로 하여 법인성사가 주는 의미에 주가 되어 되새겨야 한다고 보았다. 팔괘에 의하여 단장은 하늘, 중앙은 땅, 팔인 단원은 순서와 상관없이 팔방을 응하여 10인이 한 단이 되어 시방세계, 즉, 우주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우주 안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는 소태산 대종사의 경륜이 나타난 것이다.

그 후 1924년 공식적으로 ‘불법연구회’가 창립되었고, 팔괘기는 불법연구회의 회기가 되었다. 불법연구회 상징으로 일원상기를 사용하기 전 1935년까지 팔괘기를 사용한 것은 무극과 태극이 곧 허무적멸의 진경을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림8> 불법연구회 당시 팔괘기가 사용된 단체사진

 

그러나 그 후 팔괘기는 지방 교당에 적극적으로 게시되지는 않고 동시에 점차 일원상으로 대치 되다가 팔괘기의 사용이 다시 재개되는 것은 이단치교(以團治敎)의 교단 활동을 강조하면서 조직화한 단기에서 선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단기로서 팔괘기의 제작은 2000년(원기 85년) 수위단회 사무처의 발의로 제작되어 교역자 총단회 시 각 단을 대표하는 단기로서 불단에 게양되고 있다. 또한, 각 단회 시 단원의 방위를 표시하기 위해 절보부도 사용되며 이것은 시방을 대표하는 단의 의미를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계승되어 온다고 볼 수 있다. 이는 8방과 상하를 의미하는 만큼 이 세상 전체를 포용해갈 원대한 꿈을 실현해 가는 현실적 도구가 되고 있다. 교단 통치의 단위가 되고. 이를 근간으로 각 방위(方位)가 다시 단장이 되어 새로운 단을 생성하여 가는 교화 확산과 조직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또한, 현실 세상에서 구원을 완성하고자 한 소태산 대종사의 구세 이념과 일원의 진리를 모든 민중과 함께 실현함으로써 낙원을 건설하려는 의지가 표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현실 세계가 곧 진리가 펼쳐진 모습 자체이며, 이를 무대로 살아가는 생명의 작용이 곧 진리 실현의 주체라는 인식이다. 그 주체적 역할은 자각된 정신으로 세상을 한울안, 한이치, 한권속으로 보는 큰 정신에 의해 실현하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팔괘 방위기의 사용을 통해 이를 자각시키고, 그 실현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1. 현 원불교 교화단의 팔괘

지금 현재 교화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팔괘의 모양은 아래와 같다.

<그림9> 현 교화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팔괘의 모양

 

이 팔괘는 문왕팔괘 그대로이다. 아마 후천시대의 종교라서 문왕팔괘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소태산 대종사 당대때 사용했던 ’불법연구회‘ 회기의 팔괘와는 조금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순서는 문왕팔괘도와 같으나, 모양이 다른 것이다. 문왕팔괘도는 안에서 밖으로 향하고 있다면, 불법연구회에서 사용한 팔괘는 밖에서 안으로 향해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은 것으로, 우리의 마음이 세계(밖)로 향하는 것을 내 본성(안)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즉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우리 내면의 본성·불성을 깨우치는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에서 교화단의 의미와 법인성사의 의의를 살펴보면 결국 소태산 대종사는 내면의 본성과 불성을 깨우치고 밖으로 창생을 제도하라는 의미로 보인다.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았을 때는 안과 밖을 다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초월자아는 곧 내재적인 수행(성불)과 신앙에서 안을 강조하였다면, 밖으로는 창생을 제도(제중)하는 측면에서 안과 밖의 구분을 두지 않고 함께 아우르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초기교단에 사용되었던 팔괘와 모양은 다르지만, 순서는 같다. 이를 통해 왜 달라졌는가는 깊게 연구하지 못했지만, 소태산 대종사가 단을 조직하실 때 어떠한 의미로 팔괘를 사용하였고, 어떻게 해서든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은 이치를 알리고자 한 방편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화단 활용의 방향

 

  1. 팔괘와 창립정신의 습득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많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를 들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혈심으로 움직인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배우고, 알기 때문에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그들을 추모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교화단으로 활동하기 앞서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 선진의 창립정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창립정신에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무여한의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Ⅱ. 교화단의 의미와 정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초기교단에서의 교화단의 의미와 최초 교화단을 만든 뒤에 하신 법인성사의 정신을 먼저 알게 되면 신심과 더불어 교화단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교화할 무렵, 40여 명에 이르는 교도가 있었으나, 그 중 특별히 진실하고 신심있는 제자 9인을 고른 뒤, 이 9인 제자에게는 인류와 세계를 위해 죽어도 여한 없는 대서원과 결단력을 보여준 사무여한의 정신과 법계에 다시 태어난 공인으로서 어떠한 역경에도 변함없이 공부와 사업에 순일하게 힘쓰는 대 봉공의 정신이었다.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선진들은 인간을 서로 분리되어 있는 각각의 존재, 나는 너가 아니고, 주관과 객관의 구분, 나는 우주 만물과 구분되고. 타인과 대립해 있으며, 만물 중의 일부분으로써 존재하며, 각각의 부분은 서로 시공간적으로 구분되는 위치인 개별자로써 보지 않았다.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 무경계의 마음, 유와 무의 분별을 넘어선 무분별의 마음으로 본 것이다. 이에 유무를 넘어선 그 절대의 무한이 불교에서는 ‘공(空)’, 도교에서는 ‘도(道)’, 유교에서는 ‘천(天) 또는 태극(太極)’이라 불린다. 이처럼 창립정신에서도 팔괘와 연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미 무경계, 무분별의 자리에서 창생을 제도하겠다는 굳은 서원으로 구인선진과 함께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임했고, 또한, 모든 제자들과 함께 성불제중 제생의세의 서원으로 자타 무분별한 경지로 살아온 것이다. 나 하나에만 그친 것이 아닌 시방세계의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것이 소태산 대종사가 교화단과 팔괘를 연결시킨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식민 치하에서의 가난한 생활과 초창 교단의 설립을 위하여 노동을 통한 경제생활에 직접 참여하면서 소태산 대종사의 탁월하신 지도에 바탕하여 교화를 받는 공부인이면서 피교화자의 입장이었다. 집 짓고, 엿 제조하는 등 낮에는 생계를 직접 해결하면서 밤에는 소태산 대종사와 구전심수의 마음공부로 자신의 성불제중 서원을 향하여 수행하는 공부와 생활이 둘이 아닌 영육쌍전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9인 제자의 모습이 초기교단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이 교화단은 우리가 생활 함에 있어서 공부와 생활이 둘이 아니고,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 천지·만물·허공 법계를 위해 임해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전』, ‘개교의 동기’에서도 나와 있듯이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을 줄여보면 성불제중 제생의세이다. 원불교인이라면 공통적으로 목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는 삼학수행으로 삼대력을 얻어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고, 일체생령을 건져 병든 세상을 치료해야 한다. 이처럼 교화단의 단장과 단원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원불교의 창립정신을 함께 공유하면서 죽어도 여한 없이 일체중생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구인 선진들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성불제중 제생의세를 실현시켜 나가야 하며. 결국, 우리는 교화단의 정체성을 확실히 파악하여 친목모임 이상의 교화단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1. 팔괘와 단원의 결속력 함양

 

원불교가 창립될 당시 3.1운동이 일어나기 3년 전으로 사회적 변혁이 요구되고, 급변하는 역사의 전환기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제의 침략 아래 민중의 희망을 잃고, 갖은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지도강령의 표어를 내걸고 그들과 함께했다. 먼저 9인의 표준제자를 정하고, 저축조합 등의 공동체를 구성했다. 근검저축과 허례폐지 등의 운동을 통하여 저축조합을 개설하고, 축적된 금액으로 방언공사를 시행하여 성공했으며, 도탄에 빠진 생령을 구하겠다는 서원으로 기도를 하여 법계인증을 받았다. 이러한 일들은 이소성대, 일심합력, 사무여한의 정신이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할 일들이었다.

‘이소성대’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이룬다는 뜻으로 저축조합을 통하여 공부비용과 사업할 자금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에 단원들은 술과 담배를 끊고, 의복과 음식을 절약하여 1년 안에 큰 자금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소태산 대종사는 “모든 사물이 작은 데서부터 커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나니 이소성대는 천리의 원칙이니 쌓이고 쌓인 결과 그렇게 커진 것에 불과하나니, 이 정신으로 사심 없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무위이화로 큰 성과를 볼 것”이라 하였다. ‘일심합력’은 제자들이 소태산 대종사에 대한 신심으로 한마음이 되어 대단결을 이룩한 정신이다. 저축조합으로 얻은 금액으로 바닷물이 내왕하는 언을 막아 논을 만드는 방언공사를 하였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못할거라고 단언하여 장담하였지만, 제자들은 그 비평과 조소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더 일심합력하여 나아갔다. 그 결과 방언공사에 성공하여 지금의 전광평이 있게 되었으며, 공부에서는 영과 육이 쌍전하는 영육쌍전을 몸소 실천한 계기가 되었다. 제자들과 일심합력이 되지 않았다면 이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사무여한’은 죽어도 한이 없다는 뜻으로 앞에서 말해온 바(1. 팔괘와 창립정신의 습득)와 같이 법인성사가 이러한 정신에 바탕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세 가지 정신을 각인하여 단원들과 함께 교화단을 통하여 즐겁고 알차게 만들어서 누구든지 교화단을 하고 싶어하는 열정이 우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초기교단 제자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오직 공도의 주인으로서 공사에 의해 모든 일정과 경제가 해결되도록 하는 생활이었다. 즉, 회원의 살림이 모두 공적으로 관리되고 각 교당과 기관에서 무보수로 헌신하는 삶을 살면서, 가사를 불고하고 교단의 명령이라면 추호도 꺼리는 바 없이 공인으로서의 삶의 태도를 견지하며 무아봉공의 공동생활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구조의 기반은 혈연과 지연 등의 자연 공동체였으나, 현대의 사회구조는 이미 혈연이나 지연 공동체는 과거의 그 역할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또한, 팔괘를 통하여 하늘을 단장, 땅은 중앙을 필두로 하여 팔방으로는 팔인 제자로 구성을 하였다. 이 팔괘로써 교화단을 정하신 것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나 결국 팔괘의 의미를 구성원 숫자에 맞춘 것을 둔다면 팔괘가 주는 의미를 조금 더 인간으로서 구현시키기 위함으로 보았다. 하늘과 땅이 없으면 결국 팔방의 의미는 없어진다. 이처럼 단장과 중앙에 대한 신심으로 구인 제자들의 결속력과 단결이 있었기에 지금의 원불교를 만날 수 있었으며, 그 후 제자들 또한 이러한 정신을 체 받았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일원의 한자는 ‘一圓’이다. 여기서 한 ‘일’자를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하나라는 의미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표층적 차원에서는 각기 다른 ‘나’로 나타나지만, 심층적 차원에서는 모두가 하나이다. 내가 나 이상이라는 것, 인간이 인간 이상이라는 것은 인간이 단지 자연과 분리되고 타인과 분리되고 신과 분리된 존재, 그저 우주 만물 중의 한 개체, 전체의 한 부분을 지나지 않는 그런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일체 존재는 그 근원에 있어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 하나의 근원이 바로 만물 안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우주와 하나된 나를 찾은 것이고, 결국 근원적 하나를 찾는다는 말이다.

정전 ‘일원상 법어’에도 나와 있듯이 시방삼계가 다 오가의 소유인 줄을 알고,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 알며, 또는 제불·조사와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을 안다는 것은 결국 다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가 되지 못하면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있다. 초창기 여러 제자들도 소태산 대종사에 대한 믿음 하나로 하나가 되어 궂은 일도 마다하고 끝까지 하여 지금의 원불교를 이룬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교화단이 의미와 역사를 안 동시에 같은 목적을 이루는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라면 강자와 약자를 무시하거나, 지자와 우자가 서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 서로 상생 상화하고, 힘을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 교화단의 기본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1. 교화단 훈련법 강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 선진의 창립정신 습득하고, 어떻게 하면 단원의 결속력 함양시킬까에 대한 방법으로 교화단을 운영해 가야 한다. 원불교 초기교서 가운데 단 조직에 관련된 규약을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에 밝혀있다.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은 교도들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 훈련하기 위한 십인일단의 조단규약으로 ‘단원 매월매일 성적조사표’, ‘단원 매일 일기 조사법’, ‘유무념 대조표’, ‘신분 보고표’ 등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본서의 구성은 총론·단규원칙·세칙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총론에서는 조단의 동기와 목적 등 큰 요지가 밝혀져 있고, 단규원칙에서는 총칙, 남녀구별조직, 수위단의 조직과 선거방식, 각단의 조직, 회의단원 단장의 권리와 의무, 상벌 등이 있으며, 세칙에는 공부와 사업방면에서 단원들의 자기 일기 조사법과 단장이 단원의 일기 성적으로 조사하는 법, 그리고 재가공부인의 응용할 때 주의사항 작성표, 재가공부인이 교무부에 와서 하는 책임사항 작성표, 부채점검표, 이견 제출표, 계문조사표, 유무념 대조표등이 매일 매월 매년마다 상세하게 체크 할 수 있도록 짜여있다. 세칙에 나타난 내용들은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의 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스스로 점검해 갈 수 있도록 하는 조직법이다. 이러한 조항들이 후일에 상시일기법과 정기일기법 등으로 발전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소태산 대종사의 초기 교화방법으로는 정식으로 매월 예회 보는 법을 지시하였으며, 매월 3회씩 회집하되 신을 어긴 자는 상당한 벌이 있게 하였으며, ‘성계명시록’이라는 책을 두어 10일 동안 지낸 바 마음을 조사하여 그 신성진퇴와 실행선부를 대조케 하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함으로써 영육쌍전하며, 이사병행 해오면서 이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공식화 한 것이 바로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이다.

교화단 훈련으로 다양한 것을 진행할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근본을 잊지 않고 기초를 공부함으로써 체질화 할 수 있게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으로 교화단 훈련법을 강화시켜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하나 하나 제정할 때마다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닌 깊은 심사숙고 끝이 이 공부법으로 성불제중하고, 제생의세하는데 얼마나 연관성이 있을까 생각하며 초기교서들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불법연구회 단규 원칙에는 단으로써 해야 할 역할 등을 밝혔다면, 단규 세칙에는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밝혀있다. 단규 세칙에는 일기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기를 통하여 수양, 연구, 취사의 삼대력을 얻기 위해 공부와 사업방면에서 단원들의 자기 일기 조사법과 단장이 단원의 일기 성적으로 조사하는 법, 그리고 재가공부인의 응용할 때 주의사항 작성표, 재가공부인이 교무부에 와서 하는 책임사항 작성표, 부채점검표, 이견 제출표, 계문조사표, 유무념 대조표 등을 기재하면서 공부에 토가 떨어지도록 한 것이다.

교화단 운영은 크게 조직, 훈련, 활동, 의견제출로 나뉜다. 여기서 논자는 네가지 중 훈련에 조금 더 강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가졌다. 정전에도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이 밝혀있듯, 우리는 상시훈련의 체질화롤 통행 삼대력을 증진해야 하기 때문에 상시응용주의사항과 교당내왕시주의사항을 공부해야 한다. 상시응용주의사항은 인간 생활을 하여 가면서도 상시로 공부할 수 있는 빠른 법이며, 교당내왕시주의사항은 상시응용주의사항의 길을 도와주고 알려주는 법이다. 이에 일상수행의요법의 챙기는 마음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상시훈련법을 정하였고,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상시훈련을 고루 시키기 위하여 상시일기법을 제정하였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 단규세칙에 내용으로 교화단에서 실현하도록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교화단을 통해 상시훈련을 할 것인가? 먼저 스스로 훈련을 통해 단원으로서 매일 일기조사를 하는 것이다. 상시훈련을 고루 시키기 위하여 상시 일기법을 제정하였나니, 단원 각자 상시훈련 성적을 매일 상시 일기표에 기재하여 자기가 자기 공부의 선·불선을 알고, 자기가 자기의 공부심을 스스로 권면케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서로서로 훈련을 하는 것이다. 첫째, 단장으로서 단원의 일기 성적을 매월 조사함으로써 단원의 상시훈련에 대하여 단장은 그 성의를 권면하며, 방법을 지도하고, 공부의 진퇴를 대조하기 위하여 매월 단원의 상시훈련 성적을 조사한다. 이렇게 하면 단원들이 상시일기를 쉬지 않고 진행함으로써 상시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문답·감정·해오를 통하여 단원은 교화단에서 교당내왕시 주의사항 1조·2조·3조를 시행하여 상시훈련이 요령있는 공부가 되도록 하고, 상시훈련의 방향을 바르게 찾아간다. 셋째. 신분검사를 통하여 공부인의 공부와 사업을 더욱 향상시키고, 각자의 수행 정도와 인격 내용을 스스로 점검하도록 신분조사법을 제정하였나니, 자기가 자기를 성현으로 만드는 법으로써 모든 교리와 제도로 훈련을 받은 결과 기질 변화가 어느 정도까지 되었는가를 대조하기 위하여 실시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단장과 중앙은 교화단 역할별 훈련으로써 단원들이 잘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지도·권면까지도 해야 하는 역할이 부여된다. 그러므로 훈련을 통해서 공부법의 체를 잡을 수 있도록 지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며, 훈련을 강요만 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시행해나가는 신앙생활이 되도록 훈련을 통해서 지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 결론

 

 

논자는 소태산 대종사 당대 ‘불법연구회’ 단기로 사용했던 팔괘의 모양과 지금 현 교화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팔괘의 모양이 왜 다른가에 대한 의문으로 교화단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어떠한 의미로 팔괘와 교화단을 연결시켰으며, 어떻게 교화단을 조직하셨는지 그 의미를 되돌아보며 지금 현 교화단의 방향을 논해보았다.

십인 일단을 팔괘에서 의미하듯이 우주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최대의 것은 천지이고, 하늘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해와 달, 바람과 우레이고, 지상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산과 못이고, 인생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물과 불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기에 단장을 하늘, 중앙을 땅으로 두고 각 여덟 개의 자연의 이치를 팔방으로 하여 10명으로 한 단을 구성하였다는 것이며, 팔괘기의 사용은 교화 방편의 하나로 단순하게 접근하기보다는 초기교단의 진리관들이 역의 입장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우주 자연의 이치로써 교화단을 구성하였으니, 원불교인의 공동 목적인 성불제중 제생의세를 이 세상을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로써 교화단을 설명하였다.

교화단이 침체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부담을 가지고 교화단을 이끌거나, 참여하는 것보다는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 자신 안에도 불성이 있으니, 바깥으로만 향하는 마음을 내 안으로 돌이켜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먼저 나를 되돌아보며 공부하는 것들을 교화단을 통해 서로 공유하고, 공부함으로써 부족한 것은 채우고, 잘하는 것은 알려줌으로써 공부해 나간다면 더 빠른 서원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교화단 훈련으로써 나의 내실을 갖추는 동시에 함께 공부하면서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된다면 그것이 소태산 대종사가 바라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들은 누구나 자주 듣는 말로서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인간은 어차피 혼자이다.”라는 인간의 개체성을 강조하는 말도 듣는다.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게 되는 사회적 관계는 서로 간의 차이를 통해 성립하므로, 대등한 것이 아닌 상하·귀천의 차이 등으로 서열화가 발생된다. 한쪽이 말을 하면 다른 한쪽을 듣고, 한쪽이 명령하면 다른 한쪽이 따르고, 한쪽이 이득을 취하면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 현실 사회에서의 현실적 인간관계다.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집단 내의 어느 누구와도 다른 존재로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집단이 내게 우연적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떠오르고, 집단과 어울리는 나라는 것은 단지 나의 외형, 나의 껍데기일 뿐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집단 사회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게 될 때, 참된 나를 마주치게 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의 교화단 방법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를 잊고 사는 것에 대해 문제성을 나타냄으로써 내 안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여 원불교 신앙과 수행을 통해 참 나를 발견하는 공부를 하고, 공부한 것을 교화단을 통해 함께 공유함으로써 다시 사회로 나아갔을 때 더 성숙한 나로써 살아가자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다.

논자는 다양한 교화단 활동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할 때든지 기본을 갖추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은 그 법을 우리가 그대로 체 받아 하고 있는가를 보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서 하는 것이 아닌 그 의미 속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태산 대종사가 10인 1단의 교화단을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닌, 교화단을 통해 우리가 진정 무엇을 공부하고자 하는 것인지, 일이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니라 일과 공부가 함께 병진함으로써 교화단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리고 교화단 운영 4가지인 조직·훈련·활동·의견제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훈련이라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원불교 초기교서인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을 통하여 교화단 훈련을 강화함으로써 교화단의 의미를 조금 더 높이고 싶었다. 현재까지도 물질의 세력이 날로 융성함에 따라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정신의 세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많이 느낀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지자를 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을 고루 훈련할 빠른 방법으로 나와 너를 나누지 않는 하나의 세상, 평화의 세계가 되었으면 한다. 이에 우리는 소태산 대종사가 펼쳐주신 이 법을 알고 그치는 것이 아닌, 직접 실천으로 나툼으로써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우리 모두가 해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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