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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논문

소태산 문학작품 유형 및 분석(탁대환)
소태산 문학작품 유형 및 분석(탁대환)
원불교학과2019-09-24

 

소태산 문학작품 유형 및 분석

 

 

탁대환

 

 

 

 

 

 

 

 

Ⅰ. 서론

Ⅱ. 문학의 의미와 분석 방법

1. 문학의 의미

2. 문학적 분석 방법

 

Ⅲ. 소태산 문학작품 유형과 특성

1. 가사문학의 유형과 특성

2. 선시문학의 유형과 특성

3. 산문문학의 유형과 특성

4. 소태산 문학 특징 도출

 

Ⅳ. 결론

 

 

 

 

 

 

 

 

 

 

 

 

 

. 서론

 

글은 대부분 글쓴이의 의도와 목적성을 띠기 마련이다.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설명문의 목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주관적 주장을 통해 읽는 이를 설득하는 것은 논설문의 목적이다. 또한 글쓴이의 정서와 느낌, 경험 등을 표현하여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거나 정서를 순화시키는 것도 문학작품의 목적이다. 이것은 분명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 대종사의 글에도 적용될 수 있다.

1891년 동아시아 조선의 궁벽한 시골에서 태어난 박중빈은 나이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음 병진년 3월 26일)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원불교의 교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상당량의 종교문학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소태산 박중빈은 제대로 문학 수업을 받을 기회도 없었고 자신이 문인이라는 자각도 없었다. 장인정신이나 프로정신의 유무도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여가나 소일거리로 문학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작품은 대부분 자신이 깨달은 진리의 정립과 그를 통해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목적을 담고 있다. 이것이 소태산 작품의 한계일 수 있지만, 역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종교문학의 영토를 늘리고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구실을 하는 측면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인은 소태산 문학작품을 다루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작가 소태산이 원불교의 교조로서 문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인물이라고 보기 때문이고, 둘째, 원불교인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소태산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소개하기 위함이며, 셋째, 이러한 연구가 원불교의 문화나 문학의 창조적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소태산 대종사가 어떤 종류의 작품을 썼는지 살펴보고, 그 작품들이 내포하고 있을 의미를 도출하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소태산의 문학작품이 지금 세상에 어떠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밝혀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는 비록 작은 걸음일지라도 후세 원불교인들에게 있어 소태산 박중빈이라는 인물에 대한 심층적 이해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문학의 의미와 분석 방법

 

  1. 문학의 의미

 

문학이란 본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근대 사회로 오면서 학문의 발달과 더불어 의미가 한정되어 자연과학이나 정치, 법률, 경제 등과 같은 학문 이외의 학문, 즉 순수문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언어학 등을 총칭하는 언어가 되었다. 이후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의미가 축소되어 단순히 순수문학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따라서 문학이란 문예와 같은 의미로써 다른 예술, 즉 음악, 회화, 무용 등의 예술과 구별하고, 언어 또는 문자에 의한 예술작품을 말한다. 종류별로는 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 일기, 르포르타주(reportage) 등을 가리킨다.

기본적으로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언어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과 구별되고, 예술이라는 점에서 언어 활동의 다른 영역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문학이라는 용어의 ‘문’은 말이 아닌 글을 뜻하고, ‘학’은 예술이 아닌 학문을 지칭하지만, 용어의 어원에 따라 대상의 성격이 규정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말로 된 것이든 글로 적은 것이든 언어예술이면 모두 다 문학이다. 다만 우리가 다뤄야 할 소태산 대종사의 작품들이 한국인 국적 인간이 한글로 지은 책이라는 점에서 먼저 한국 문학에 대해 정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문학은 한국인의 문학이고 한국어로 된 문학이다. 이 경우 한국인은 한민족을 말한다. 국가는 침탈되거나 분단되어도 한민족과 한국어가 가지는 기본적인 동질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이유에서 한국 문학은 단일한 민족 문학이다.

다만 민족 문학과 민족어로 된 문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어는 한문과 공용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하지만 한문은 동아시아 전체의 공동 문어였으므로 모두 다 중국의 글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한국 고유의 발음과 쓰임새를 가진 고유의 문화를 가졌으므로 앞의 내용이 적합하지 않다.

문학을 표현 방법에 따라 나눈 것을 오랫동안 서구어를 빌려 장르(genre)라고 일컬어왔고 한국어로는 ‘양식’이라고 하였는데, 요즘 이러한 용어가 ‘갈래’로 대치되고 있다.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은 문학작품을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서 이해하자고 하여 갈래 구분이 시작되었고, 그래야 할 필요성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계속 인정되고 있다.

갈래에는 유개념으로서의 갈래와 종개념으로서의 갈래가 있다. 유개념으로서의 갈래는 ‘큰 갈래’라고도 하는데, 문학의 갈래를 몇 가지 기본적인 성향으로 나눌 때 나타나는 것이다. 기본적인 성향에 지나지 않으므로 수가 많지 않고, 어느 영역이나 시기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포괄성을 지닌다. 종개념으로서의 갈래는 ‘작은 갈래’라고도 하는데, 기본적인 성향이 구체적인 특징을 갖추어 문학사에 실제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서정, 서사가 큰 갈래라면, 시조, 소설은 작은 갈래이다.

처음에는 문학의 갈래를 시가와 산문으로 크게 나누는 것을 관례로 삼았으나, 그 기준이 율격을 갖추었느냐 하는 데 있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수정이 이루어져 서정, 교술, 서사, 희곡 넷을 기본적인 부문이라 하고, 부수적인 부문을 따로 인정하여 평론과 잡문을 소속시켰다. 또한 서정에는 서정민요·서정무가·한시일반·사(詞)·고대가요·향가·고려속요·시조·잡가·신체시·현대시가 있고, 교술에는 교술민요·교술무가·속담·수수께끼·사(辭)·부(賦)·한문일반·가전(假傳)·몽유록(夢遊)·시화(詩話)·만록·경기체가·가사·창가·수필·서간·기행·일기·비평이 있으며 서사에는 서사민요·서사무가·판소리·서사시·설화·소설, 희곡에는 탈춤·꼭두각시놀음·무당굿놀이·창극·신파극·현대극으로 분류함으로써 정리를 하였다.

갈래 체계를 마련하고 갈래를 구분하는 작업이 문학작품을 파악하는 데 있어 완벽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 갈래를 이루는 작품의 성향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소설에는 극적 소설이 있고 희곡에는 서사적인 희곡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을 무리 없이 처리하려면 소설은 서사이어서 희곡과는 애초에 다르다는 데 집착하지 말고, 문학에는 오직 서사적 성향을 지닌 것과 희곡적 성향을 지닌 것이 있다고 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1. 문학적 분석 방법

 

문학(文學)은 문학작품의 구성, 그 창작과 감상,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문맥 등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문학은 한 편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 예를 들어 은유, 상징, 리듬, 인물, 시점, 비극성 등의 의미와 작품 속 기능에 관해 연구한다. 또한 문학은 작가가 한 편의 작품을 생산하는 체제와 독자가 그것을 수용하는 과정에 관해서도 연구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서 중요한 토대, 최종적으로 그 의미에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적, 역사적 문맥에 관해서도 종합적으로 연구한다. 문학이라고 하면 시, 소설, 수필 등으로 분류되는 문학작품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서, 때에 따라 학문으로서의 문학은 그와 구분하여 ‘문학 연구’로 명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문학’이라는 용어는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사용된다.

문학사(文學史) 연구에서는 시간적, 공간적, 장르적 경계를 설정한 뒤 그 안에 포함되는 문학 작품들 사이의 연관 관계를 탐구한다. 시간적 경계를 설정할 경우, 문학사 연구는 고대문학사, 근대문학사, 현대문학사 등으로 실현될 수 있고 공간적 경계를 설정할 경우, 유럽문학사, 동양문학사, 한국문학사로, 장르적 경계에 따라 시사(侍史)나 소설사(小說史)로 구체화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데 있어 그 작품의 구조와 성격, 인접 학문 간의 관계, 시대와 사회에 따른 문학의 다양한 양태 등에 관해 포괄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학작품의 생산과 유통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거나 인접 학문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 문학에 관한 이해에도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 문학 이론은 한계를 노출하며 갱신되기도 하고 새로운 문학 이론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문학작품 주요 분석 영역으로는 장르분석, 작품분석, 작가분석, 독자(독서) 분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장르 분석에서는 장르 구분 방법, 예를 들어 시, 소설, 드라마 등 개별 문학 장르의 구조와 성격 및 그 역사적 변화, 그리고 각각의 장르를 구성하는 하위 장르들에 관해 탐구한다. 예컨대, 시 장르의 구조와 성격에 관한 연구는 리듬, 은유, 상징, 환유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역사적 변화 양상에 관한 연구는 서정시, 산문시, 해체시 등 하위 장르 등을 통해 수행된다.

문화 양식(樣式)의 하위 부류에 해당하는 장르(genre)는 문학의 사회 문화적 또는 역사적 실체로 등장하는 여러 가지 작은 갈래의 문학 형태를 말한다. 문학에서 서정적 양식, 서사적 영식, 극적 양식 등은 각각 시대와 여러 문화에 걸쳐 가장 보편적이며 지속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이들 문학 양식은 여러 가지 다양한 하위의 역사적 장르로 형상화되어 특정한 언어를 기반으로 문학사에 등장하게 된다. 문학의 장르는 그 소재와 형식의 구성 방법에 따라 각각의 특징이 규정된다. 이것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변화하며, 공간적으로 특정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그 형태나 구조가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사회사적인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문학의 하위 장르의 개념과 속성은 보편적인 문학 연구의 방법에 따라 규정되기보다는 그 장르가 존재했던 역사적 조건에 의해 해명되는 것이 보통이다. 문학의 하위 장르의 범주와 그것들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양상은 문학사 연구에서 특정 시대의 문학적 영향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주목되는 요소가 된다. 그래서 문학의 장르는 특정한 나라나 시대의 문학을 바탕으로 한 개별성이 강조되는 개념이다.

개별적인 문학의 장르는 특정의 언어를 매체로 하여 특정 나라나 시대에 따라서 구체적인 문학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 본질적인 특징에 따라서 문학의 큰 갈래 속에 묶이게 된다. 예컨대, 한국 문학에서 향가, 고려가요, 시조, 현대 시는 그 시대와 배경이 다르고 작가가 다르지만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우선 작가의 눈에 비친 대상과 그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와 사상을 관련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은 말의 가락, 나아가서는 마음의 가락을 느끼게 하며 그 길이가 짧다. 이러한 공통점들을 통해 이들을 서정적 양식이라는 큰 갈래로 묶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작품분석에서는 기본적으로 개별 문학작품의 구성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문학사적 가치라든가 사회적 의의까지도 평가한다. 문학이란 우선 문학작품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작품연구는 문학 연구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분석에 있어 주요 영역이라 볼 수 있는 내용분석은 본래 의사소통 과정에서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확인하고 분석하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다. 즉, 누가, 무엇을, 어떻게, 누구에게 전달했으며 그 효과나 결과는 무엇인지를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기술하던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중매체의 의사소통 내용을 분석하는 기법으로 출발한 것이지만, 그 효용 가치가 인식되면서부터 사회과학의 다른 분야에서도 점차 활용하게 되었다. 내용분석은 일종의 문헌연구법이므로, 문헌연구 중에서도 특히 문헌 자료의 양적 분석을 하는 데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역사적 고찰을 한다든가, 사망했거나 접근하기 힘든 인물에 관한 연구, 또는 어떤 정책 내용이나 교육 프로그램 내용에 관한 평가연구를 할 때 많이 이용하며, 그 밖의 내용분석을 위한 자료의 출처는 매우 다양하다. 역사적 기록, 전기, 연설문, 편지, 문학작품, 교과서, 신문 사설 등 기존의 여러 가지 기록된 자료가 내용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는 새롭게 자료를 개발해서 그 내용을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다거나, 어떤 주제에 관하여 글을 쓰도록 해서 얻은 자료를 분석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작가분석은 특정 작가가 저술한 문학 작품들을 대상으로 문학적 특성을 포착하거나, 그의 문학적 연대기를 저술하는 것이다. 작가연구를 통해 특정 작가의 문학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개별 작품을 그와 관련해서 파악할 수도 있다.

또한 작가가 실제로 생활했던 시대적 배경과 지역적 배경에 주목한다. 문학의 현실과 인간의 삶을 모방하는 특성을 고려하여 작품 속 현실과 대상 세계와의 관련성을 탐구한다. 또한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에 인간의 삶과 환경이 담기는 속성을 고려할 때, 문학작품은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며, 사회적 산물로 규정할 수 있다. 작가는 특정 사회상을 관찰해 작품에 반영하고 독자는 그 작품을 소비하면서 작가가 만든 현실에 속해 체험하게 된다. 따라서 문학작품은 작가와 독자의 사회에서 자연 발생한다.

독자분석은 개별 독자나 독자 집단에 관한 연구를 통해 문학작품이 수용되는 구조를 탐구한다. 작가의 창작이란 독자의 독서를 염두에 두고 전개된다는 점에서, 또한 문학작품의 의미란 독서를 통해서 해석되고 현실화한다는 점에서 독자(독서) 연구는 문학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안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대중이 텍스트를 수용하는 순간 의미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수용자는 텍스트의 소비자가 아니라 의미의 생산자다. 수용자는 텍스트를 해석할 때 자신의 사회 문화적 상황과 연관 짓는다. 모든 텍스트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므로 그 안에서 수용자는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자기 나름대로 텍스트를 해석한다.

독자 분석, 특히 독자 반응 비평은 특정한 방법이나 비평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이 비평은 개별 독자나 계급, 성별, 종족 등과 같은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독자들의 텍스트 수용 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독자라는 개념은 텍스트 수용자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본문의 의미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다.

시간이든, 경험이든, 상황이든 이 세상의 모든 조건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동일한 독자에서조차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틈새는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메우며 자기 방식의 해석을 하게 되므로 그 의미가 확정되지 않고 불확실성 속에 놓인다. 확정적 의미와 불확정적 의미의 상호작용은 독자에게 계속해서 다양한 해석을 하게 만든다.

텍스트와 독자의 상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 이론은 텍스트의 의미를 독자의 반응에서 찾는다.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독자가 텍스트를 접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완성된 의미는 텍스트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자의 경험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 소태산 문학작품 유형 및 특성

 

소태산은 다양한 분야의 많은 문학작품을 저술하였다. 다만 본 논문에서 이 모두를 다루기에는 제한이 따르는 관계로, 분야별로 그 성향을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작품을 선정하여, 그 작품들 중심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성향을 도출하기로 한다.

 

  1. 가사 유형의 유형과 특성

 

가사(歌辭)란 고전 문학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한 발생 경로를 지닌 장르에 속한다. 가사 문학은 시조나 한시처럼 처음부터 어느 한 시형으로 나타난 장르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고유의 민요적 율격 위에 향가나 고려가요, 한시 등의 내용적 영향이 보태져 새로운 시형으로 형성된 장르이다. 이 때문에 가사는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가사는 운문 문학에 속하지만, 내용이나 형식 면에 있어서 일반적인 시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앞서 언급한 가사의 발생 과정상의 독특함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데 가사는 기본적인 율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운문 문학이라 할 수 있지만, 거기에 포섭된 기존 장르의 성격이 다양하므로 어떠한 요소와 주제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산문성이 강화되기도 하고 운문성이 강화되기도 한다. 실제로 가사 작품을 살펴보면 그 속에는 서정성이 강하게 두드러진 작품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외에도 사실과 체험에 바탕을 둔 내용을 기술한 것, 유교적 이념이나 교훈을 알리기 위한 것, 소설처럼 허구적인 이야기 구조를 강화하여 일정한 사건에 초점을 맞춘 것 등 산문성이나 교술성이 강조된 작품들도 상당수 포함된다.

가사의 발생기로 추측되는 고려 후기 이래, 가사는 경수필(輕隨筆)·연문학(軟文學)의 갈래와 함께 중수필(重隨筆)·경문학(硬文學)의 갈래가 줄기차게 전개됐다. 후자의 대표적 보기가 교훈 가사나 종교 가사라고 할만하다.

나옹의 <승원가> <서왕가> <심우가> 등이 불린 이래 서산·침굉 등의 불교 가사며, 퇴계·율곡 등이 작자로 알려진 <도덕가> <권선지로가> <자경별곡> 등을 비롯한 유교 가사 등에서 보듯이, 가사라는 편리한 그릇은 포교나 훈민을 위해서 많이 애용되어왔다. 이런 현상은 근세에 와서 1779년 정약전·이벽의 <십계명가> <천주공경가>로 비롯되는 천주가사로 이어지고, 1860년대에 들어서면서 최제우의 <용담가> <교훈가> 등으로 비롯되는 동학 가사가 나왔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개신교에서도 1915년을 전후하여 비롯된 <지로가> <상제애세가> 등 상당량의 개신교 가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종교 가사의 맥락이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의 선명한 전통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1916년(원기 원년) 원불교 개교와 더불어 시작되는 원불교 가사 또한 종교 가사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 ‘원불교 가사’의 성립 근거는 ① 교단의 독립성, ② 가사 성격의 독자성, ③ 작품의 양적 확보와 질적 수준 등에 의하여 타진될 수 있다.

특히 원불교 가사의 성립은 1916년, 즉 소태산 박중빈이 대각을 이룬 그해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원불교 가사의 최상 수준을 보여주는 것도 소태산 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소태산 가사에 대한 논의는 원불교 가사 논의의 핵이 될 수 있다.

소태산이 지은 가사는 모두 14편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탄식가> <경축가> <권도가> <회성곡> <교훈편> <안심곡> <십계법문가> <만장> <전반세계가> 등 9편에, 2005년에 얼굴을 드러낸 <몽각가> <권업가> <지로가> <낙도가> 등 4편이 추가되어 13편이 되었고, 여기에 다시 구전 <천하농판>을 첨가한 것이다.

소태산 가사의 이본들을 표기 측면에서 살펴보면 두 가지 분류가 가능하다. 하나는 유식자에 의한 기록이요 다른 하나는 무식자에 의한 기록이다. 전자는 오자가 거의 없어 내용 이해에 무리가 없으나 후자의 경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필사해서 보고 베낀 경우와 받아 적은 경우가 또 차이가 나는데, 선본(善本)을 보고 베낀 경우 오류가 적으나 구송을 받아 적을 경우는 구송자나 수필자 중 어느 한쪽이라도 무식하면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더구나 유일본의 경우 대조할 이본이 없는 관계로 해독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소태산 이후의 원불교 가사를 살펴보면, ① 교조 소태산 및 성지에 대한 것 ② 원불교 교법에 대한 것 ③ 교단(불법연구회)과 집단 수도 생활에 관한 것 등 원불교적 불·법·승 삼보에 관한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 성격상으로는 찬양·예찬이 많고, 자부와 긍지를 노래한 것이나 구도(求道)와 권도(勸道)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소태산의 입장은 신도·추종자의 입장과 같을 수 없다. 또 태반의 작품이 원기 5년(1920) 교강 발표 이전에 만들어졌으므로 교법의 조리 있는 천명이 있을 수 없고, 또 교조 자신에 대한 찬양이나 자신이 제정한 교법에 대한 자화자찬도 있을 수 없고, 성지 예찬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러한 위상의 차이에 따라 소태산의 가사는 후속되는 여타 원불교 가사와는 내용상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소태산 가사 중 <탄식가(歎息歌)>와 <경축가(慶祝歌)>를 다루고자 한다. 이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신심 고취를 위한 의도적 발심 조흥과 초기 교리의 일면이라는 소태산 가사의 두 성향을 매우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 논문에 있어 더 많은 작품을 논하더라도 소태산 가사의 핵심을 도출하는 데 적절한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물론 성향을 엄격히 양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 비중에 따라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나누어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탄식가>의 경우 회보 62호에서 서대원에 의해 소개되고 있는데, 서대원은 이 가사에 대해 「탄식가는 종사님(인용자주:소태산)께서 대각을 하시지 못해서 탄식, 대각을 하셨으되 말할 곳이 없어서 탄식하신 등의 내용을 그리신 것이요….」라고 평하고 있지만, 전체 구성을 본다면 그리 간단하게 탄식 일변도로 보기 힘들다.

 

여바라 남주야 말 드러라 / 나도 또한 중생으로 / 세상에다 밥을 두고 /

매일 통곡 이러하며 / 어찌하야 아라 볼까 / 어찌하야 생사고락 그 이치며 /

우주 만물 그 이치를 아라 볼까 / 이러구러 발원하야 / 이산으로 가도 통곡 /

저 산으로 가도 통곡 / 사방 두루 복배하고 / 산신을 맛나 볼까 /

도인을 맛나 볼까 / 이인을 맛나 볼까 / 이리저리 하여보니 /

조실부모 이 내 몸이 / 사방에 우접 없이 / 일편 단신 되얏으니 /

의식 도리 전혀 없어 / 일일 삼시 먹난 것이 / 구설 음해 욕이로다 /

그리 그리 통곡타가 / 소원성취 한 연후에 / 사오 삭 지내가니 /

소원 성취 이내 일을 / 어대 가서 의논하며 / 어느 사람 아라볼까 /

쓸 곳이 전혀 없어 / 이리 가도 통곡 / 저리 가도 통곡 /

이 우름을 어찌하야 그만 둘고 / 그칠 곳을 생각하니 / 허허담담 노래로다 /

산이로구나 산이로구나 / 층암 절벽 산이로구나 / 천봉만학 좌우 산천 /

우둑소사 높아 있고 / 물은 흘러 대해로다 / 일년 삼백육십 일에 /

사시절이 도라와서 / 산도 또한 산이 되고 / 물도 또한 물이 되야 /

천지 만물 되얏도다 / 이리저리 하여보니 / 조실부모 이내 몸이 /

사방에 우접 없이 / 이런 산수 어쩌다가 있엇든고 / 내 아니면 이런 산수 있을소냐 /

가고 가니 내로구나 / 열렷구나 열렷구나 / 밝은 문이 열렷구나 /

밝은 문 여려노니 / 명도 판결 우리 학도 / 전정이 만리로다 /

일심으로 공부하야 / 복헤 양족 잡아들고/ 무도자를 비소하며 /

춘추 법려로 노라보자 / 예롸 낙화로다

 

형식은 반복법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구조에서는 4·4조의 보편적 구조로 되어 있다. 전통적 민요, 가사 형식으로 낯익은 가사 형태이다. 4·4조 반복은 독자들을 효과적으로 깨치게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수사법의 차원에서는 설의법이 중심이 되어 있으며 서술적 차원에서는 시적 화자(나)가 남주라는 청자에게 진리의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넋두리가 아니라 시적 화자(나)와 청자(남주) 사이의 가치와 목표, 실천 의지가 담겨 있다.

원문을 놓고 보았을 때 서사(緖詞)(처음~구설 음해 욕이로다)에는 소태산이 26세 대각을 할 때까지 그가 겪은 갖은 고행과 궁핍, 그리고 주변인들에 의해 온갖 구설로 시달림을 당하는 등 자신의 구도 과정에서 일상화됐던 탄식을 “통곡”으로 격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만 그가 통곡한 이유는 「생사고락 그 이치와 우주만물 그 이치」를 알아내기 위한 발원 때문이었지 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본사(本詞)(그리 그리 통곡타가~가고 가니 내로구나)에 들어가면 상황은 일시에 급전한다. 1916년 4월 28일, 소태산은 26세의 나이로 20년 구도의 결정(結晶)인 대각을 이룬다. 그러나 대각의 환희는 대조적으로 또 하나의 탄식, 또 하나의 통곡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성불과 제중이라는 양대 목표 중 성불은 이루었으나 후속되는 제중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곡의 끝에 가서도 그는 절망하거나 기진하는 법 없이 백척간두에 진일보로 새로운 경지를 대담하게 전개한다(이 우름을 어찌하야 그만 둘고~허허담담 노래로다).

결사(結詞)(열렷구나 열렷구나~끝)는 한결 낙천적이다. 그는 일심으로 수도하면 복혜가 보상으로 돌아올 것을 장담하며 마지막으로 기발한 결어를 통해 작품의 주제성을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이처럼 「탄식가」는 구도의 여정 끝에 큰 깨달음을 얻고 큰 회상이 열린 가운데 함께 공부하여 즐겨보자는 축배의 노래이다. 통곡이 곧 통곡이 아니라 기쁨이 넘쳐서 나오는 환희의 노래인 것이다. 이처럼 가사에서 드러나는 소태산의 사상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작품인 <경축가>는 제목만으로 본다면 앞의 작품, <탄식가>와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앞에서 보여준 소태산 특유의 낙천적 시각이나 가락은 같다. <탄식가>의 내용을 구도의 탄식과 대각의 환희로 정리한다면, <경축가>는 일원대도 새 회상에 대한 경축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경축가>는 원기 원년인 1916년 혹은, 그 다음 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소태산이 선정한 제자 8명을 중심으로 전남 영광 길룡리에 개펄을 막는 방언 공사를 할 때 많이 불렸고, 기도하거나 심고 드릴 때 많이 외웠다고 전해진다.

 

세계 조판 이 가운데 / 제일 주장 누구신가 / 만물지중 사람이라 /

사람마닥 주장인가 / 사람이라 하고 보면 / 우로 보니 보은이요 /

알로 보니 배은이라 / 보은 보공 하여 잇고 / 배은 망덕 알고 보면 /

제일 주장 되것드라 / 업섯드라 업섯드라 / 보은자는 업섯드라 /

높앗드라 높앗드라 / 보은자는 높앗드라 / 악도로다 악도로다 /

배은자는 악도로다 / 우리세계 일체 동포 / 근본이야 같지마는 /

형형색색 달나 잇고 / 사업 동귀 아니기로 / 서로 보고 몰으도다 /

사방으로 보고 나니 / 어찌 아니 반가운가 / 보은 보공 알고 보면 /

무궁지재 되야 있고 / 배은 망덕 알고 보면 / 무궁지보 실렷으니 /

그 아니 조흐신가 / 입어 보세 입어 보세 / 천지 은덕 입어 보세 /

천지 순환 이 가운데 / 만물 포태 되야 있고 / 풍운우뢰 하난 때에 /

만물 양생 하여 잇고 / 일월 왕래 되난 때에 / 방방곡곡 밝아 잇고 /

춘하추동 되난 때에 / 생사 유무 잇섯도다 / 이런 은덕 또 있는가 /

부모 은덕 입어 보세 / 부모 은덕 입는 날에 / 애지중지 길러 내어 /

이리저리 붓도다서 / 이리저리 자라나니 / 어찌 아니 은덕인가 /

이런 은덕 또 있는가 / 세계 은덕 입어 보세 / 세계 은덕 입는 날은 /

서로서로 생겨나서 / 서로서로 작반하야 / 서로서로 밝혀 내여 /

서로서로 선생 되야 / 서로서로 지도하니 / 어찌 아니 은덕인가 /

이런 은덕도 있는가 / 법률 은덕 입어 보세 / 법률 은덕 입는 날은 /

차레 법이 생겨나서 / 상벌로 강령하야 / 등분으로 낙을 삼고 /

발원으로 조직하야 / 훗 기약이 생겨나서 / 세세생생 길기나니 /

어찌 아니 은덕인가 / 가련하다 가련하다 / 불신자는 가련하다 /

너도 입고 나도 입고 / 서로서로 입어나서 / 배은망덕 하엿나니 /

어찌 아니 가련인가 / 천지로다 천지로다 / 보은자는 천지로다 /

귀신일네 귀신일네 / 보은자는 귀신일네 / 세계로다 세계로다 /

보은자의 세계로다 / 보은일네 보은일네 / 수도자가 보은일네 /

업섯드라 없엇드라 / 수도 이치 아난 사람 / 부당지사 아니하고 /

당연지사 하엿으니 / 수도자가 이 아닌가 / 만세로다 만세로다 /

수도자는 만세로다 / 과거사를 보아 내여 / 현재사를 밝혀내니 /

미래사의 경사로다 / 삼세 이치 알고 보니 / 자유자재 하여 잇고 /

무체무애 되얏드라 / 무체무애 되고 보니 / 이치알기 걸림 업고 /

일용사물 걸림 업고 / 왕래하기 걸림 업고 / 존비귀천 걸림 업고 /

수명 복록 임의로다 / 천종 만물 나열이나 / 사생 중에 제일이요 /

오복 중에 제일이요 / 천상천하 독존일네 / 남녀 세상 이 때로서 /

사람이라 하엿시니 / 이런 사업 아니 하고 / 다시 볼 일 무엇인가 /

놉고 놉흔 저 하날에 / 무궁 이치 덥혀 있고 / 광대 광대 산하 대지 /

무궁지물 실려 잇고 / 최령하다 보은자는 / 흉장불사 하여 놓고 /

무궁 무궁 드러가니 / 배은 망덕 업섯드라 / 배은 망덕 업섯으니 /

보은가나 불러 보세 / 삼삼으로 벌린 건물 / 서로서로 주장하야 /

서로서로 보은하니 / 화피초목 하여 잇고 / 뢰급만방 이 아닌가 /

화단에 밝은 화초 / 지지춘광 되얏드라 / 혼몽 중에 싸인 생명 /

어서어서 자라나서 / 어서어서 밝혀 보세 / 어서어서 밝혀 내면 /

사중보은 될 것이요 / 제도중생 자연이라 / 영산에 꽃이 피여 /

일춘 만화 아닐는가 / 일춘 만화 되게 되면 / 사시절이 이 아닌가 /

사시절을 알게 되면 / 순리 역리 알 것이요 / 혼몽 자각 될 것이요 /

풍운 변화 알리로다 / 풍운 변화 알게 되면 / 차별 이치 업서지고 /

일원 대원 될 것이니 / 경축가나 불러 보세 / 경축가 사오성에 /

백발이 업서지고 / 소년 시절 이 아닌가 / 일심으로 경축하니 /

우리 천지 만만세라 / 일심으로 경축하니 / 우리 천지 만만세라

 

이 작품의 제재는 ‘은(恩)’이다. 원불교 교리도를 보면 기본 교리의 두 기둥이 인생의 요도인 신앙문(信仰門)과 공부의 요도인 수행문(修行門)인데, 신앙문의 내역이 사은사요(四恩四要)요, 수행문의 내역은 삼학팔조(三學八條)다. 그러니까 <경축가>는 소태산의 교강 발표(1920) 이전에 쓰인 것이지만, 원불교 교강의 한쪽 기둥인 신앙문으로서 사은(四恩)에 대한 소태산의 사상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소태산은 세상의 일체 관계를 은(恩)으로 파악하고, 이를 감사하고 보답하는 일을 신앙 행위의 골자로 제시하였다. 원불교 사대강령(四大綱領) 가운데 ‘지은보은(知恩報恩)’은 이를 직서(直敍)적으로 말한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분석하는 데 있어 앞의 <탄식가>보다 분량이 많은 관계로 서사·본사·결사 구조보다 기사(起詞)·승사(承詞)·전사(轉詞)·결사(結詞)의 형식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먼저 기사(처음~그 아니 조흐신가)의 경우,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요 만물의 영장이 된 본의가 무엇인가를 따진다. 그는 은혜를 아는 보은자나 은혜를 저버린 배은자, 둘 중 어느 것이 되느냐에 따라 선악 죄복이 양분됨을 가르치고, 보은 보공의 바른길을 가지자고 권유한다.

승사(입어 보세 입어 보세~어찌 아니 은덕인가)에서는 사은은 각각 차례대로 그리고 쉬운 말로 누구나 알기 쉽도록 노래했다. 먼저, 천지은덕으로 인간과 만물의 생장하고 생존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음 부모은덕은 인륜의 보편적 인식으로서 생육의 은덕을 노래하고 있어서 익숙하지만, 이어서 나오는 세계은덕은 낯설다. 세계은덕은 뒷날 교리에서 동포은(同胞恩)으로 개칭된 것인데, 소태산은 인류와 금수 초목까지 지상에서 함께 생을 누리는 모든 생명체를 통틀어 동포라고 하고 이들 관계의 본질을 은혜라고 했다. 작품에서는 그런 내역까지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서로서로’를 다섯 차례나 반복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동포 보은의 도리를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법률은덕이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법률(法律)은 국가 사회의 실정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인류 문화가 축적해 놓은 일체의 규범과 제도로서 인도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 모두가 해당한다. 여러 성현이 정해놓은 윤리적, 도덕적 교훈도 물론 법률에 속한다. ‘차례법’이란 말로 질서의식을 강조하고, ‘상벌(賞罰)’을 강령으로 하여 권장과 금지의 양면성을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등분(等分)’이란 용어로 법의 공정성과 평등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전사(가련하다 가련하다~뢰급만방 이 아닌가)에서 작자는 배은자와 보은자를 나눈 후 배은망덕한 불신자를 가련하다고 거듭 말하면서 보은자를 찬양하고 축복하기를 일관한다. 천지·세계의 소유자가 보은자임을 밝히고 아울러 보은자와 수도자를 오버랩(overlap)시켜 동의어로 인식하게 하는 절묘한 수법이다. 이는 신앙문과 수행문의 접합이니 사은신앙과 삼학수행이 본질적으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소태산 특유의 겸전(兼全)사상에 맥을 대고 있다. 수도 이치를 아는 사람은 부당지사와 당연지사를 구분하여 행하고(戒), 삼세의 이치를 밝혀내어 걸림 없고(慧), 자유자재 무체무애하게 되니(定), 여기서 원불교의 삼학 개념인 작업취사(戒), 사리연구(慧), 정신수양(定)이 수도의 내역으로 드러난다.

결사(화단에 밝은 화초~끝)는 새 시대, 이른바 후천개벽시대의 전망이 기본 제재다. 소태산 사상에 일관하고 있는 낙천성과 미래 긍정이 상징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화단에 밝은 화초 지지춘광(枝枝春光) 되얏드라」, 영산에 꽃이 피여 일춘 만화(一春萬花) 아닐는가」와 같이 선시적 발상에 따라 ‘봄’과 ‘꽃’으로 새 시대 도래와 오도(悟道)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또한 「백발이 업서지고 소년 시절 이 아닌가」와 같이 소년이 노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백발노옹이 다시 소년이 되는 순환 논리를 빌려 선후천의 교역(交易)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어서어서’의 반복 사용은 새 시대를 기다리는 초조함과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소태산은 범부(혼몽 중에 싸인 생명)가 수도하여 보은하고, 성불하여 제도중생하는 데까지의 과정을 깊은 신뢰와 확신으로 노래한다. 예의 낙천성은 「일심으로 경축하니 우리 천지 만만세라」의 반복으로 무한한 환희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소태산 가사 2편을 문학적 시각에서 고찰한다면 총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소태산 가사 태반이 파격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다. 1음보 3·4음절로 이루어진 1행 4음보 단위의 제한 없는 연속체가 정격가사의 보편적 인식이라고 볼 때, 또한 소태산 가사가 출현하던 당시 개화기 후기 가사가 독립가·애국가 류의 창가, 사회등(社會燈) 가사 등 4·4조의 완고한 음수율이 판치고 분절·분련 현상이 생기는 등 형식적 경직성이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예를 들어 「에롸 낙화로다」(탄식가)의 경우 2음부 1구로 동떨어져 대구(對句)가 없고, 「배은 망덕 알고 보면 / 무궁지보 실렷으니 / 그 아니 조흐신가」(경축가)의 경우 1행이 4음보로 떨어지지 않고 6음보로 되어있다. 음수율과 더불어 이런 유의 음보율 차질은 소태산 가사 전반에 나타난다. 이런 특징은 아마 격식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소태산의 문학의식과 더불어 판소리 본향 호남을 문화적 성장배경으로 삼은 데 원인이 있는 듯하다.

두 번째는 문체에서 판소리, 민요, 민속극 등과 유사한 점을 많다는 점이다. 「여바라 남주야 말 드러라」(탄식가)는 판소리에서 흔히 접하는 유형이다. 「여보소 역군들 말을 듣소」(흥보가), 「여봐라 군사들아 늬 내 설움 들어라」(적벽가) 등이 그 예다. 「춘추 법려로 노라보자 / 예롸 낙화로다」(탄식가)에서 등장하는 ‘놀아보세, 놀아보자’와 같은 추임새 역시 민요 내지 판소리의 연희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이상으로 소태산의 가사문학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의 가사작품은 분명 문학적 요소를 갖추고 있으되, 종교적 문학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소태산 문학이 등장하는 시대는 이미 현대시의 주가 되는 신시의 등장으로 인해 가사 문학이 쇠퇴 또는 소멸하는 시기였지만, 소태산은 한 종교의 교조로서, 그리고 깨달은 자로서 문단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자기의 체험과 사상과 정서를 가사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이것은 고려말 이래 전통을 이루어 온 종교가사 맥락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며, 나아가 송규, 김기천 등을 비롯한 30여 명 100여 편의 후속 원불교 가사의 선구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이 가사들 대부분이 혼자 써서 사장된 것이 아니라 신도들에게 읽히고 구송시켜 혹은 종교적으로 혹은 문학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1. 선시 유형의 유형과 특성

 

선시(禪詩)란 모든 형식과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적(禪的) 사유(思惟)를 담고 있는 불교 시를 뜻한다. 선시라는 단어는 선과 시가 합일화된 용어로서, 여기에는 ‘선과 시’, ‘선적인 시’, ‘선의 시적 표현’, ‘시의 선적 표현’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선과 시의 공통적 원리의 일치를 바탕으로 고도의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종교와 문학이 합일되는 시선일여(詩禪一如)의 경지를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자연관을 정립하였다는 데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온갖 잡된 생각을 떨어버리고 분별적 사유를 떠나 고요한 가운데 진리의 본체에 이르러 인간과 우주 등 일체 존재의 본질을 직관함을 선(禪)이라 할 때, 이 선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그 오도적 세계나 과정, 또는 체험을 시화한 종교적 시를 선시라고 한다.

선과 시는 정신적 원천에 있어서 본질에서 상통하며, 같은 정신적 경지를 나타내는 방법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즉, 무애(無碍)한 무분별지에 근거하여, 신비한 절대 세계를 초 논리적 직관으로 요해하려는 선의 입장은, 꾸준한 정신적 추구와 시적인 영감을 통하여 사물과 인생의 본질을 추구하고 미적 가치를 발견하려는 시 창작의 원리와 일치한다. 아울러 불립문자·언어도단을 표방하는 선가의 언어는, 지극히 압축되고 비약적이고 비유적이고 고도로 상징화된다는 점에서 시의 언어와 상통한다.

소태산은 1916년 대각 직후 시를 읊었다고 하거니와 지금은 사라진 『법의대전(法義大全)』에 많은 한시가 있었던 모양이고, 이름만 전하는 <백일소(白日嘯)>와 <심적편(心迹篇)> 등을 두고 ‘시편(詩編)’이라 했으니 역시 한시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소태산은 시인으로서 장인의식을 가지고 붓을 든 것이 아니었기에 그 시가 기성의 시작법을 추종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미학적 세련은 생각 밖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시로서의 장르의식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시는 그 생성 동기를 볼 때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어떠한 상황에서 천어(天語)처럼 불쑥 뛰어나오는 자연 발생적 생성이다. 시흥에 도취해 나오는 일도 있고, 우주와 인생의 오의(奧義)를 통달한 자로서 오도적 흥분이 즉흥적으로 표출된 경우일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모종의 소식을 전하고자 의도적으로 쓴 경우다. 거기에는 그의 경륜과 포부가 있고 때로는 계시와 교훈이 있다.

소태산이 남긴 시는 <대각송> <상량시1> <상량시2> <변산시> <석두암시> <경륜시> <금강산시> <성주> <게송>이 있다. 이 밖에도 소태산이 읊은 것으로 알려진 한시·주문류에는 ① 宇宙神適氣適氣/十方神接氣接氣 ② 一陀同功一陀來 二陀同功二陀來·······十陀同功十陀來 ③ 靑山白骨爲後事 處名世傳無人市 등이 있지만, 선시적 탐구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합한 구조가 아니기에 제외하는 바이다.

소태산 선시 중에서는 <대각송(大覺頌)>, <변산시(邊山詩)), <게송(偈頌)> 세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작품들을 분석하고자 하는 이유는 소태산이 지은 선시 중 그의 일생의 흐름을 가장 명확히 관측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각송>은 일곱 살 때부터 시작된 19년간의 고된 구도 과정 끝에 소태산이 대각을 이루고 난 뒤 그 감상을 정리한 글이고, <변산시>는 소태산이 1919(원기4)년에서 1924(원기9)까지 전북 부안군 변산면 실상동의 실상초당과 석두암에서 제자들에게 내린 법문이며, <게송>은 소태산 열반 2년여 전인 1941년(원기26) 1월에 발표한 전법게송이다. 따라서 타 작품과 비교해 봤을 때 위 세 시를 순차대로 분석해나가는 것이 작자 소태산의 삶을 더욱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이라고 본다.

먼저 <대각송>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淸風月上時(청풍월상시) 맑은 바람 불고 달 떠오를 때

萬象自然明(만상자연명) 삼라만상이 제 스스로 밝도다

 

1916년 소태산의 오도송이다. 그러나 옛 불교 고승들의 선시처럼 절구나 율시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있다. 5언 2구의 이 송은 시부의 낙구처럼 보여 적어도 두 구쯤 결락(缺落)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자 소태산은 시의 구조적 완결성을 위해 군더더기를 붙이는 수고를 거부하고 있다.

 

微風引松籟(미풍인송뢰) 산들바람 소나무 끝에 부니

蕭蕭淸且哀(소소청차애) 쓸쓸히 맑고도 구슬퍼라

晈月落心波(교월락심파) 흰 달이 마음 물결에 뜨니

澄澄淨無埃(징징정무애) 맑고 깨끗하여 티끌 없구나

 

이것은 고려 선사 혜심의 <지상우음(池上偶吟)>인데 <대각송>과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 청풍은 바로 무애의 오경(悟境)을 나타낸다. 번뇌와 우치의 암울한 심적 상태를 달도 없는 먹구름 밤중이라 한다면, 맑은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 구름을 걷어내고 동산에선 두렷이 밝은 달이 떠올라 온 세상이 일목요연한 것, 즉 오도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선시에서 달은 ‘밝다는 점에서 진여의 광명으로, 그리고 높이 떠서 만물을 고루 비춘다는 점에서 차별 없는 불법의 현현으로’ 보이거니와, 그것은 곧 마음의 달(心月)이요 성품의 달(性月)이요 지혜의 달(慧月)이다. 즉, 대각을 이루고 난 후, 마음 달이 허공 법계에 떠올라 시방 삼세를 비추어 보니 인과보응과 불생불멸의 진리가 손바닥 위의 구슬처럼 환히 나타난 것이다. 이는 선의 전통적 은유로써 대각의 기쁨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작품은 <변산시>이다.

 

邊山九曲路(변산구곡로) 변산 아홉 굽이 산길에서 보니

石立聽水聲(석립청수성)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고 있더라

無無亦無無(무무역무무) 없고 없고 또한 없고 없으며

非非亦非非(비비역비비) 아니고 아니고 또한 아니고 아니다

 

회보 31호(1936)에 나와 있는데, 『대종경』 성리품 11에서 수렴하였다. 소태산이 봉래정사에서 제자들에게 이 시를 써 주고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닫는 자이니라」고 했다고 한다. 완료형인 ‘깨달은’ 자가 아니라 진행형인 ‘깨닫는’ 자라 함에 묘미가 있다. 때는 전후 사정으로 보아 빨라도 1920년 4월 이후다. 이 작품은 자수율에 있어서만은 5언 4구로 절구(絶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앞의 세 작품에 비하면 그나마 시형을 갖추었다고 하겠으나 평측(平仄)은 물론 압운(押韻)까지도 무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파격이기는 마찬가지다.

앞의 두 구는 돌(石)이 의인화되어 따뜻한 피가 돌고 숨소리가 들리듯 선취(禪趣)가 진진한 느낌이고, 뒤의 두 구는 사막처럼 냉랭한 관념들의 도열(堵列)이 읽는 독자에게 하여금 곤혹게 한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일종의 언어유희처럼 보이지만 언어유희적 포장에 의미 심원한 역설을 담는 것, 그것이 선시의 오랜 관습이다.

 

石女忽生兒(석녀홀생아) 석녀(돌)가 갑자기 아기를 낳으니

木人暗點頭(목인암점두) 목인(나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끄덕

-경한선사 <又作十二頌呈似> 中-

 

山黙黙水潺潺(산묵묵수잔잔) 산은 묵묵하고 물은 졸졸 흐르는데

石女喧嘩木人咄(석녀훤화목인돌) 석녀(돌)가 떠드니 목인(나무)이 혀를 끌끌

-태고화상 <白雲庵歌> 中-

 

돌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차는 나무, 아기를 낳은 석녀를 보고 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목인, 이들 모두 천연 그대로 부처이다. 그러나 이 소식은 역시 깨달은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법이다.

물이 설법을 하고 돌이 청법을 하는 소식, 더러는 여기의 돌을 자칭 석두거사인 소태산으로 보는 예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러한 해석은 특정한 개인만을 위한 비의(秘儀)로 한정하여 축소 해석할 염려가 존재한다.

유유자적한 심경으로 유무를 초월하고 분별을 떠난 자리이기에 ‘무무역무무’요, 시비를 초월하고 선택을 배제한 자리이기에 ‘비비역비비’이다. 우주 자연의 진제(眞諦)에 대한 체험 없이 비유와 역설만으로 기교적으로 해설한다면 이 작품의 본의를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게송(偈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나 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등도 그렇지만, 전통적 게송처럼 한시 형태를 취하지 않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아마도 더욱 쉽게 많은 이들에게 전하려는 의도로 추정되나, 그런데도 4행시 형식을 취한 까닭은 아마 전통적 게송 양식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有)는 변하는 자리요, 무(無)는 불변하는 자리나,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이 자리며, 돌고 돈다, 지극하다 하였으나 이도 또한 가르치기 위하여 강연히 표현한 말에 불과하나니, 구공이다 구족하다를 논할 여지가 어디 있으리요.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고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

 

대종경 성리품 31장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소태산 해석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성품의 진체를 담고 있는 것이 <게송>이다. 유무의 관념을 초극하여 공(空) 사상을 보이고, 다시 공을 구족이라 하며 허무주의적 오해의 여지를 없이했다. 용(用)을 거쳐 체(體)를 찾고, 결국은 ‘구족(具足)’이란 한 단어로 체의 온전성과 절대성을 갈파한 것이다.

‘유’와 ‘무’의 반복과 도치, ‘돌다’와 ‘구공’의 반복, ‘구(俱)’와 ‘구(具)’의 두운적 효과도 눈에 띄지만, 4음절 2음보로 8음절 1구를 만들고, 다시 이를 네 차례 반복하여 한 편의 게송을 이룬 기교가 돋보인다. 어디 한 글자라도 더 넣거나 뺄 수 없으며, 어느 한 글자도 다른 것으로 교체할 수 없는 완벽성을 보인다.

이처럼 소태산의 선시는 시인으로서의 장인의식은 처음부터 배제된 채 사무사(思無邪)의 상태에서 지어졌고, 문학적 기교나 세련은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다. 소태산은 법회에서 자신의 <금강산시>를 소개하기 전에 「단문(短文)한 나로서 졸구(拙句)를 난면(難免)이나 제군들은 들어보라」고 했다. 이 말은 결코 겸양의 뜻으로 한 말이 아닌 진솔한 고백일 것이다.

그의 한시는 어느 하나 율격을 제대로 갖춘 것이 없다. 겨우 글자 수나 맞추고 대구나 만든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그의 시 속에는 선시가 갖추어야 할 요소, 즉, 비유와 상징, 비약과 역설 등 범부들의 분별지와 관념지의 허를 찌르는 예지로써 가장 오묘한 시의 진수를 획득하고 있다. 이는 기교로 점철된 속인들의 말장난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며, 이러한 선시의 지취야말로 미학적 본질에 더욱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1. 산문 유형의 유형과 특성

 

산문(散文)이란 운문(韻文)에 대립되는 글의 양식으로 리듬이나 정형성(定型性)을 지니고 있지 않은 글을 의미한다. 대체로 일상적인 표현 방식이나 언어 용법으로 짜여있는 글 대다수가 이것에 해당한다.

산문의 기본 의미와 형태 그리고 여러 가지 특질들을 정확하게 알려면, 운문과 대비시켜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실제로 산문은 운문과는 차별성을 내보이는 가운데서도 동질성 또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머조리 불톤(Boulton, M.)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여 산문과 운문의 차이점을 밝혀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운문이 그 핵심적 특질인 리듬을 주로 반복성(repetition)의 원리에서 짜나가는 것인데 반면 산문은 변용(variation)의 논리에 선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변용이란 구체적으로는 서론·본론·결론이나 발단·전개·대단원 등과 같은 구성 방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구성 방법도 리듬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둘째, 운문은 대체로 ‘비범한’ 언표형식(言表形式)을 지향하는 데 반해 산문은 평범하거나 일상적인 언술(言述)로 나타난다. 또한, 운문이 ‘최적의 질서 속에 놓여 있는 최적의 단어 모임’인데 반해 산문은 ‘최적의 질서 속에 있는 단어들’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상에서 밝힌 산문과 운문 사이의 차이점은 이따금 동질성으로 뒤집힐 가능성 앞에 놓여 있다. 최소한 산문적 특질과 운문적 성격의 상호 침투성은 엄연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산문의 갈래를 나누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흔히, 교과서 부류의 책에서는 글을 쓴 의도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산문을 묘사문·서사문·설명문·논설문 등으로 유별한다. 여려가지 있을 수 있는 산문 유형론 중에서도 소설이나 에세이가 모델이 되는 ‘수사적 산문(rhetorical prose)’과 평론이나 각 분야의 논문 또는 사설이 대표적인 예가 되는 ‘논리적 산문(rational prose)’으로 대별하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이다.

소태산의 문장은 본격적인 문학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더러는 경문이요 논술문이요 제문이요 법문이기도 한데,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색깔이 다양하여 한 묶음으로 설명하기도 마땅치 않다. 그 가운데는 가끔 문학적 구조나 성격의 문장도 있지만, 대개는 논리성이 정서를 압도한다. 그래도 넓은 의미의 문학에 넣을 만하고, 장르를 논한다면 중수필(重隨筆) 위주의 에세이 문학에 속할 것이다.

본래 동양 전통에서 문학의 외연은 넓었다. 너무 옹색한 장르 구분에 맞추어 순문학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노벨상도, 역사가 데오도르 몸젠(1902)의 『로마사』를 비롯하여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927)과 버트런드 러셀(1950)의 철학 저술 및 정치인 윈스턴 처칠(1953)의 『제이차세계대전 회고록』 등에도 노벨문학상이 주어졌다. 이는 서구의 문학관도 문·사·철 등 인문학 저술을 광의의 문학으로 보던 동양 전통과 큰 간격은 없어 보인다.

특히 소태산의 교리가 집약된, 원불교의 교서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전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장을 지적하라고 하면 단연 <일원상서원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근거에서 이 문장이 소태산의 대표가 될 수 있는가? 첫째,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이 손수 지은 원불교 경전 『정전(正典)』 교의편의 핵심 부분이기 때문이며, 둘째, 원불교 표상인 일원상에 대한 가장 간결하고도 완벽한 설명인 동시에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살펴본 가사 <경축가>에서도 ‘일원대원(一圓大圓)’이란 어휘가 등장하는 것을 보았을 때 소태산은 이미 대각 직후부터 원(圓)에 대한 교리적 성찰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35년(원기 20)에 나온 『조선불교혁신론』에서도 소태산은 등상불(等像佛) 숭배를 일원상 신앙으로 바꿀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1935년 4월 익산 총부에 대각전을 준공하고 불단에 일원상을 정식으로 봉안하였으며, 1938년에 와서는 교당은 물론이고 교도들의 가정마다 일원상을 봉안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였고, 이 무렵에 소태산은 손수 <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心佛一圓相內譯及誓願文)>을 지어 가르치고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일원상서원문>의 전신이다.

<일원상서원문>은 소태산의 작품이지만 후대로 넘어오면서 약간의 손질을 통해 변동이 생겼다. 이를 시대적으로 살펴보자면 ①<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心佛一圓相內譯及誓願文)>(회보 49호, 1938) ②<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心佛一圓相內譯及誓願文)>(불법연구회근행법, 1939) ③<일원상서원문(一圓相誓願文)>(불교정전, 1943) ④<일원상서원문>(원불교교전, 1962) 순으로 발행 및 수정되었다. ①<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心佛一圓相內譯及誓願文)> 원본은 다음과 같다.

 

一圓은 言語道斷의入定處이요 有無超越의生死門인바 天地 父母 同胞 法律의 本源이요 諸佛 祖師 凡夫 衆生의 佛性으로 能而成ㅣ有常하고 能而成ㅣ無常하야 有常으로보면 常住不滅로 如如自然하여 無量世界를 展開하엿고 無常으로보면 宇宙의成住壞空과 萬物의生老病死와 四生의心身作用을따라 六途로變化를식혀 或은進級으로 或은降級으로 惑은恩生於害로 或은害生於恩으로 이와갓치 無量世界를展開하엿나니 우리어리석은衆生은 此心佛一圓相을 體받아서 心身을 圓滿하게守護하는工夫를하며 는事理를 圓滿하게아는공부를하며 는心身을圓滿하게使用하는工夫를 至誠으로하야 進級과 恩惠는 엇을지언정 降級과 害毒은엇지안이하기로써 一圓의威力을엇도록까지 誓願하고 與一圓으로合하도록까지 誓願함

 

각 문장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먼저 ①<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心佛一圓相內譯及誓願文)>의 경우 제목 제외 300자이며, 표기법이 ‘能而成丨有常(能而成有常), 식혀(시켜), 갓치(같이), 하엿나니(하였나니), 는(또는), 엇지 안이하기로써(얻지 아니하기로써)’ 등으로 예스럽다. 또한 ‘凡夫衆生의 佛性’이나 ‘此心佛一圓相’, ‘與一圓으로’, ‘進級과 恩惠는’, ‘降級과 害毒은’ 등의 현재 <일원상서원문>과 비교해보았을 때 다른 표현들이 많다.

②<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心佛一圓相內譯及誓願文)>의 경우 길이는 300자로 같으나 표기법에서 ‘갓치’가 ‘같이’로, ‘는’이 ‘또는’으로, ‘엇지 안이하기로써’가 ‘얻지 않이하기로써’로 바뀌는 등 표기법상 약간의 변화가 보인다.

③<일원상서원문(一圓相誓願文)>은 길이가 306자로 불어나고 표기법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따르고 있다. ‘凡夫衆生의 佛性’이 ‘凡夫衆生의 性品’으로, ‘此心佛一圓相’이 ‘此法身佛一圓相’으로, ‘與一圓으로’는 ‘一圓의 體性에’로, ‘進級과 恩惠는’과 ‘降級과 害毒은’은 각기 ‘進級이 되고 恩惠는’과 ‘降級이 되고 害毒은’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엇(얻)을지언정/엇(얻)지/엇(얻)도록’ 등이 ‘입을지언정/입지/입도록’ 등으로 바뀌었다.

④<일원상서원문>은 내용과 표기법이 앞과 거의 같고, 길이도 마찬가지로 306자다. 다만 ‘此法身佛一圓相’이 ‘이 법신불일원상’으로 바뀌었다.

정리하자면, 1938년에 처음 선보인 300자 경문이 1943년 『불교정전』을 내면서 306자 경문으로 바뀌었지만, 이 과정에서 ‘심불’이 ‘법신불’로 혹은 ‘불성’이 ‘성품’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차이는 표기법이나 수사법의 차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 또한 소태산 본인이 수정한 것이다.

이 문장의 중요성은 소태산 사상에 있어 매우 중요할 것이기에 작자 본인도 무척이나 고심하고 심혈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분석하는 데 다음 네 가지 전제를 염두에 두고 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는 내용적 측면이다. 한 종교 교법의 정수(精髓)를 기술한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일원상’에 관한 한 그 종교적 비중 때문에 어려움이 유난히 컸을 것이다. <일원상서원문>의 내용을 분석하기에는 본인의 분수에 역부족이며, 문학적 구조와 분석이라는 주제에 어긋날 소지가 있기에 본 논문에는 다루지 않으려 한다. 다만 소태산은 대체로 자신이 쓴 문장에 대해 만족했던 것 같다. <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心佛一圓相內譯及誓願文)>을 처음 짓고 난 후 5년이 지난 1943년에 그가 짓고 출판과정도 철저히 감수한 정식 교서 『불교정전』에서도 그 내용은 전혀 손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게 서술했는가이다. 유무식·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중에게 고루 교법을 보급하려는 소태산의 신념으로 볼 때 문장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평이하게 쓰는 기술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심오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기술함에는 추상적 관념어를 동원해야 하는데 이러한 약점은 결국 난잡한 한자어를 피해갈 수 없다는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현대인의 안목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울지라도, 한문 경전만을 경전으로 보던 당대 일반인의 언어의식을 고려해 볼 때, 또 일원상 진리 자체가 쉬운 말로 기술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음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목표 달성을 이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셋째는, 문장 구조가 구송에 편리하도록 간결한가이다. 대중이 일상적으로 친숙하게 암송하기 위해서는 양이 길어져서는 곤란하다. 원불교 의식에서 가장 많이 구송하는 경문 중 하나인 반야심경과 비교해 볼 경우, 260자(제목 제외)임으로 적당하나 한문이 아닌 한글 경문으로는 꽤 구송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어 경문 <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心佛一圓相內譯及誓願文)>(300자)이 한문 반야심경(260자)에 비해 15% 남짓 늘어났지만, 그 길이에 있어 간결성에 적절히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넷째는 경전으로서 갖추어야 할 권위와 품격이 있는가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난삽한 한문투와 다라니 식(式) 신비어가 담보해 왔음이 사실이지만,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라고 외치는 소태산으로서 인도식 다라니나 중국식 한문투 역시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 숙제와 같은 것이다. 또한, 당시 조선인의 의식구조를 고려할 때 알기 쉬운 한글 어휘로 구성된 글이 경문으로서 권위를 가질 수 없음도 생각해야 한다. 이 조건은 둘째의 그것과 맞물린 것이지만 한문투의 부분적 원용과 한문 숙어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무난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능이성유상(能而成有相), 능이성무상(能而成無相), 은생어해(恩生於解), 해생어은(害生於恩)’ 등이 전자의 예요, ‘언어도단(言語道斷), 유무초월(有無超越), 성주괴공(成住壞空), 생로병사(生老病死)’ 등은 후자의 예다.

문장 구조는 단 하나의 문(文, sentence)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도식으로 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11 -①언어도단의 입정처  
      ②유무초월의 생사문  
  -1(내역) -12 -①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  
      ②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  
    -13 -①(유상)상주불멸로 ······································· 무량세계 전개
      -❶우주의 성주괴공  
ㅇ-   ②(무상)- -❷만물의 생로병사 ··무량세계 전개
      -❸사생의 육도변화  
      (은생어해·해생어은/진급·강급)  
         
      -①심신을 원만하게 수호   -(可)진급/은혜-  
  -2(서원) -21-일원상 체받아서 -②사리를 원만하게 앎 -지성공부-   -일원 위력 얻음
      -③심신을 원만하게 사용   -(否)강급/해독-  
    -22-일원의 체성에 합합

 

통산 306자의 간결한 경문인 <일원상서원문>은 종교적으로는 원불교의 핵심 교리를 집약한 법문이요, 문장상으로는 견고한 논리 구조와 조화로운 문장 구조를 갖추고 있다. 비록 시대적 상황과 경문으로서의 품격이라는 요청에 따라 한자 용어의 사용빈도가 높다든지 혹은 통사론적 결함을 시비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306자를 한 문(文)으로 하여 이만큼 완성도를 높인 문장은 희귀한 예라 할 수 있다. 비록 문예문이 아닌 만큼 문학적 가치를 논할 여지는 별로 없지만, 문장론적 가치만은 분명 평가할 만하다.

불경이나 성경이 그렇듯 소태산의 법문도 훌륭한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이 언어를 매체로 하여 수용자에게 미적 감동을 주는 일개 예술 행위라고 정의하더라도 소태산의 법문은 손색없는 문학이다. 물론 법문이 주는 감동은 문학적 감동에 앞서 종교적 감동이요, 법문의 가치 역시 문학적 가치에 선행하여 종교적 가치에 비중이 있다. 우리가 서구적 근대 문학의식으로만 법문을 재단하려 든다면 혹 종교적 감동이 문학적 감동에 장애가 된다거나 종교적 가치가 문학적 가치와는 무관하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겠으나, 동양 전통의 ‘문학이란 도를 담는 그릇이다(文者載道之器)’ 식의 문학관으로 본다면, 종교적 감동과 가치가 상승작용을 하여 오히려 문학적 감동과 가치를 더욱 제고시킨다고 볼 수 있다. 소태산의 법문을 굳이 문학적 장르 개념을 가지고 보기로 한다면 아마 상당량이 교술문학(敎述文學)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소태산에게는 상당히 유식한 제자도 적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대중이 더욱 소중한 교화 대상이었다. 그는 알아듣기 좋도록 사용 가능한 최대한의 평이한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결코 초세간적 신비주의나 형이상학적 관념론에 신세를 지지 않았다. 이는 소태산 법문의 문학성을 논함에도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야 하는 대목이다. 그의 법문이 수필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근거도 종교적 통찰의 심오함과 더불어 이러한 일상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 소태산 문학 특징 도출

 

소태산 문학의 성격은 총 5개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혁신성(革新性)이다. 소태산은 일찍이 『조선불교혁신론』을 쓴 바도 있거니와. 조선 불교의 말법적 형식주의, 둔세주의, 분파주의, 기복신앙 및 미신과의 습합이나 출가위주의 귀족주의 등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다만 소태산의 혁신성은 파괴적 과격이 아니라 포용적 온건주의다. 그는 불교뿐 아니라 유교, 도교 등 기성종교 내지 동학, 증산도 등 신종교의 타락을 비판은 할지언정 그 교조와 근본 교리에 대해서는 항상 경의를 표했다. 그는 그들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그 근본정신을 재활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비판과 자기 부정을 통해 끝없이 거듭 태어나려는 개혁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는 회통성(會通性)이다. 소태산은 선천시대의 풍속으로서 분할·편파·배타주의적 속성들을 모두 배제하고 이들을 통합 활용하고자 했다. 이것을 두 가지 측면으로 고찰하자면 하나는 겸전주의(兼全主義)요 다른 하나는 통합주의다. 겸전주의란 원불교 표어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동정일여(動靜一如), 이사병행(理事竝行), 영육쌍전(靈肉雙全), 자타력병진(自他力竝進), 신앙수행병진(信仰修行竝進), 공부사업병진(工夫事業竝進), 생활시불법/불법시생활(生活是佛法/佛法是生活) 등 언뜻 대립적이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양자택일의 것, 양립불가의 것으로 보는 태도를 지양하고 이들을 겸전하는 것만이 완성의 길이라 보는 것이다. 통합주의란 유·불·선 등 기성종교는 물론 동학·증산도 등 신종교의 사상까지 수용 활용하고, 민속신앙의 존재 근거를 긍정해주고 있다. 다만 주종(主從)과 본말(本末)을 밝히고 시비(是非)와 정사(正邪)를 가려 올바른 취사를 일러 줌으로써 혼합주의적 혼돈을 지양하고 주견 없는 태도를 경계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는 대중성(大衆性)이다. 소태산은 자신이 빈궁한 두메 추신이었듯이 그의 제자들을 숯장사와 엿장사를 했고, 소작농은 물론 양계·양돈·양토·양잠·원예 등 온갖 실업으로 손발이 닳도록 땀 흘리며 주작야선하는 서민 대중이었다. 따라서 그는 정선된 엘리트보다는 가난하고 무지한 대중에게 적합한 교화의 장을 펼쳤고 그들을 의식하며 설법하였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설법도 그는 고답적 한문 경전 대신 농촌에서 흔히 보는 실생활에서 자료를 찾았다.

 

  • ·····이에 본회 창립 준비를 토의할새 서중안 송만경 이청춘 이춘풍 문정규 박원석 전음광이 각각 발기인이 되다. 이 모든 발기인이 먼저 본회 창설 장소를 정하기 위하여 상호 논의하더니 대종사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익산군 이리 부근은 토지도 광활하고 또는 교통이 편리하여 무산자의 생활이며 각처 회원의 내왕이 편리할 듯하니 그 곳으로 정함이 어떠하냐?”고 물으심에 발기인 일동은 그 말씀에 복종하였다.

-송규, <불법연구회창건사> 中-

 

불법연구회(원불교 전신) 총부 선정 기준에서도 알 수 있듯 종래의 불교가 깊은 산속의 명당을 찾던 것과는 대조가 되며, 부유한 화주(化主)나 신분 높은 신도를 선호하던 것과는 정반대다. 무산자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총부이니 이는 원불교가 처음부터 대중 종교임을 의식하고 출발했음을 뜻한다. 소태산이 ‘불교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표방했을 때 그 셋이 말은 다르나 결국 ‘대중성’에 고리를 걸고 있음도 알 수 있다.

넷째는 상식성(常識性)이다. 흔히들 종교는 과학과 달라 종교됨의 조건이 신비성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불교는 그 신비성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은 교조 소태산의 강력한 유지로 여전히 살아 있다. 소태산의 교법은 정신적 위안이나 자기 최면으로서의 종교를 지향하지 않았다. 언제나 도덕을 강조하였고 도덕성이 없는 광신·맹신은 철저히 배격했다. 비록 소태산의 신통력이나 이적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바가 있기는 하지만 원불교에서 이런 일들은 그저 이야깃거리에 가깝다. 결코 근본주의적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없다.

다섯째는 낙천성(樂天性)이다. 소태산 사상 속에는 기독교적 종말론이 없다. 불법적 말법관이나 세속적 말세론은 선후천교역론(先後天交易論)에 의해 적극적으로 극복되고 있다. 즉, 당대는 선천시대(구세계)의 끝이요 후천시대(신세계)의 시초로서 극심한 혼란은 필연적이며 새 시대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의 사상을 항상 밝게 채색하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순환하는 이치를 모르고 가을과 겨울로 가면서 점차 추위로 혹독해져 종말이 오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절망과 비탄밖에 없지만, 가까운 날에 화창한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늦겨울의 마지막 추위를 웃으며 견딜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창립기의 극심한 궁핍과 일제의 갖은 탄압 등 천신만고 속에서도 그는 민중에게 밝은 내일을 약속하였을망정 어떤 낙망도 없었다. 『대종경』 전망품에 가득한 낙관론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것은 허황된 꿈이나 요행을 기다리는 안이한 기대가 아니다. 1919년(원기 4) 3.1운동의 만세 소리가 전국을 뒤흔들 때 그는 그 역사적 의의를 ‘개벽의 상두소리’로 규정했다. 즉 선천시대의 종언을 알리고 아울러 후천 개벽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바다를 막아 옥토를 만들겠다는 방언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던 처지에, 그는 제자들과 하늘의 감응을 불러내기 위한 법인기도에 착수했다. 그는 절망에 빠진 민중을 사후의 천국이나 극락으로 위로하지 않고 오히려 현세의 낙원 건설로 설득했다.

소태산은 고작 고구마와 누룽지를 먹으며 제자들과 더불어 ‘깔깔대소회(-大笑會)’라는 웃음 잔치를 열고 즐겼다지만, 그의 풍부한 해학도 알고 보면 이런 낙천성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 법하다.

 

 

. 결론

 

소태산 문학이 가질 수 있는 의의를 설명하자면 크게 2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첫째, 소태산 문학은 한 종교의 교조가 친필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근대에만도 숱한 종교들이 일어나고 교조도 많이 등장했지만, 종교문학이란 견지에서 소태산만큼의 작품 양을 남기고 간 사람은 희귀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의 목적을 생각할 때 단순히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소태산이 일생 일군 법과 그 의지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는 원불교 문학의 지향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소태산의 작품은 문학의 기본 틀을 따르고 있지 않고 그 성향도 다른 부분이 있지만, 원불교 법을 체화하고 그로써 진급하기를 목적하는 우리에게 있어 나침반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오랜 기간 공을 들여 탄생한 『정전』이 현재 원불교 교리서로서 핵심위치에 있음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앞으로 이어져 나갈 원불교 문학과 문화에 있어 방향성 제시에 충분히 몫을 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또한 <탄식가>를 비롯한 가사 작품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체제나 다양한 표현 기법 및 내용의 수월성이라든가, <대각송>을 비롯한 선시에서 보여주는 무기교와 파격, <일원상서원문>의 뛰어난 문장 구조나 <법설>에서 드러난 현장체험에 근거한 설법의 묘미 등, 지성인이나 대중을 막론하고 독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다양한 감동의 원천을 간직하고 있다.

소태산의 생애가 문학과 고른 교섭 속에서 전개된 것도 아니고 그의 사상이 반드시 문학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구도 끝 이룩한 대각의 일성을 <대각송>으로 시작하고, 대각 후 현실적 갈등은 <탄식가>로 털어버렸듯이. 그의 문학적 감수성은 예민했다. 그뿐만 아니라 생애의 길목마다 혹은 한시로 혹은 가사로 혹은 문장으로 그 생각과 정서를 유감없이 표출하였다. 마침내 그는 『불교정전』으로 손수 엮어 자신의 깨달음과 사상을 문자로 새기고, 열반에 대비한 <게송>으로 문학적 생애를 마감했다.

소태산은 종교적, 문화적 업적이 실상과 비교하면 알려진 바가 적다. 더구나 그의 문학은 한국 문단이나 학계로부터 소외되어 관심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한국 근대사에서 숱한 신흥종교들이 생멸 부침하고, 몇 가지 민족 종교는 신종교로 자리 잡는 가운데, 소태산은 가사, 선시, 문장 등의 다양한 면모를 갖추고 비교적 풍부한 양과 수준 높은 질을 확보한 문장을 통해 원불교 고유의 종교문학을 이룩했다. 이는 한국 문학사에서 종교문학 가운데도 교조문학(敎祖文學)이라고나 할만한 독특한 위치에서 더욱 가치를 발하고 있다. 소태산 문학은 비록 세련미가 부족할지라도 종교가 문학과 손잡음으로써 제생의세(濟生醫世)란 종교적 목적 달성에 문학이 달성할 수 있는 성과와 더불어, 종교가 문학의 효용과 가치 결정에 이바지한 성공적인 예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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